萍 - 저장소 ㅁ ~ ㅇ/王의 병을 보면 건강이 보인다

중종-감기

浮萍草 2013. 8. 17. 00:00
    積熱(적열·열이 쌓임)때 약 잘못쓰면 혼수 부를수도
    견갑통 외에도 중종은 여러 가지 건강 이상으로 고생을 한다. 1년 내내 감기를 앓기도 하고 치통을 호소하기도 했고 아랫배가 아프기도 했으며 변을 볼 수 없는 지경이 되기도 했다. 식욕이 없어 먹는 것이 시원치 않으니 왕의 몸은 점점 쇠약해 갔다. 의관들은 병을 고치려고 야단들이었지만 별 차도가 없었다고 한다. 수많은 질병 중에서 결정적으로 중종을 괴롭힌 질병은 조선시대 역대 왕들의 고질병인 ‘종기’였다. ‘왕조실록’에는 신하들이 왕의 종기를 고치기 위해 무던히도 애쓴 기록들이 나온다. 함경도에서 몸에 바르는 일종의 연고를 구해오기도 하며 심지어는 거머리까지 잡아들여 상처에다 붙여 고름을 뽑아내곤 했는데 “여러 약을 먹어도 낫지 않고, 진물과 고름이 섞어 나오기에 거머리로 시험해 보니 살이 단단하고 도독해진 곳과 고름이 삭아서 편안해졌다”고 어의에게 거머리의 효과를 털어놓는 장면도 기록되어 있다. 현대에도 어혈과 고름 등을 제거하기 위해 거머리를 사용하는 경우도 있다. 중종은 특히 1534년 종기 때문에 6개월 동안 정무를 보지 못한 채 방에서 누워만 지내기도 했을 정도로 그 정도가 심했다고 한다. 사극 드라마‘대장금’의 시대적 배경이 바로 중종 때인데 드라마 중간에 중종의 질병을 일반감기로 오인하여 부자 등의 약물이 포함되어 있는‘상한론(傷寒論)’ 처방을 쓰다가 낭패를 보는 장면이 나온다. 열이 떨어지기는커녕 더욱 고열이 나서 혼수상태까지 이르게 되는 것을 보는데 중종이 실제 종기로 고생을 심하게 했다는‘왕조실록’의 기록을 볼 때에 개연성이 있다. 체질적으로 몸속에 쓸모없는 적열(積熱)이 많은 데에 잘못 약을 쓰니, 그 열 증상이 더 심해지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 든다. 전문적인 한의학 지식과 제대로 된 체질과 병증의 진단 없이 함부로 약을 조제해서 복용하면 위험할 수도 있음을 증명하는 아주 좋은 사례라고 할 수 있겠다. 드라마 ‘대장금’은 조선 중종시대의 실존인물인 의녀 장금이의 일생에 관하여 작가의 허구적 상상이 결합되어 완성된 작품이다. ‘왕조실록’에 실제 기록되어 있는 장금이의 기록은 다음과 같다. 최초로 중종 10년에 한 번 중종 19년에 한 번 28년에 한 번 나타나고 그 다음에는 무려 11년 동안이나 보이지 않다가 중종이 숨을 거두는 1544년에 기록이 집중되어 나타난다. 물론 그동안 중종의 몸이 건강을 유지했기에 이에 따라서 장금의 기록도 나타나지 않았을 것으로도 보이지만 이렇게 띄엄띄엄 나타나는 기록 때문에 역사 속의 장금이 한 사람이 아니라 같은 이름을 쓰는 여러 의녀들이었다고 보는 견해도 있는 것이다. 중종이 사망한 1544년 1월의 기록을 보면 왕이 자신이 앓던 해수증에 사용할 처방을 장금이와 의논하라고 어명을 내리는 부분이 있다. 그리고 그 열흘 후에 치료를 성공적으로 잘했다고 장금이에게 상을 내리는 기록이 있다. 또한 장금이가 중종의 수면상태와 소변 그리고 대변 상태를 소상하게 언급하는 부분이‘왕조실록’에 나오는데 중종은 자신의 병을 ‘여의’인 장금이 안다고 직접 말 하고 있다. 그런데 중종이 사망한 이후로는 더 이상 장금이의 기록은 찾아볼 수가 없다. 선조의 질병을 훌륭하게 관리했던 어의 허준이 그 아들인 광해군에게도 전폭적인 신뢰를 받아 어의의 활동을 계속했던 것에 비하면 아마도 장금에게는 무언가 변고가 있지 않았나 싶기도 하다.
    Munhwa     장동민 대한한의사협회 홍보이사 하늘땅한의원장 www.okskyland.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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