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편집과 왜곡의 과학사에 대한 고찰

浮萍草 2013. 10. 8. 09:39
    과학에서 스토리텔링은 독?
    1885년 9살 때 미친 개에 물린 마이스터는 파스퇴르가
    만든 광견병 백신을 맞고 목숨을 건졌다.그는 파스퇴르
    연구소에서 수위로 일했는데 1940년 독일군에 맞서
    파스퇴르의 무덤을 지키려고 자살했다 알려져 있었으나
    최근 사실이 아님이 밝혀졌다. 사진은 13살 때의 모습.
    - 위키피디아 제공
    “산을 움직이는 것은 믿음이지 사실이 아니다. 사실이 믿음을 낳지는 않는다. 믿음은 자신을 떠받쳐줄 이야기가 필요하다.” - 아네트 시먼스, ‘The Story Factor(이야기 요소)’ 수년 전부터 여기저기서 ‘스토리텔링(storytelling)’이라는 말이 들렸다. 유색인이라는 도저히 넘을 수 없을 것 같은 핸디캡을 극복하고 버락 오바마가 미국 대통령이 될 수 있었던 것도 스토리텔링 기법이 도입된 선거전략 때문이라고도 했고 촌스럽게 노골적으로 제품을 알리는 대신 세련된 스토리텔링 기법으로 소비자의 감성을 자극하는 상업광고가 화제가 되기도 했다(초코파이 정(情) 이나 박카스 광고를 떠올려보라). 강연에서도 스토리텔링이 없으면 설사 내용이 아무리 유익하더라도 청중들은 스마트폰만 본다고 한다. 스토리텔링을 약간 문학적인 용어로 이야기하면 서사(narrative)라고 하는데 한마디로 요즘 사람들이 원 하는 건 귀가 솔깃하고 정서를 자극하는 이야기라는 것이다. 그러다보니 기자들이 쓰는 기사에도 스토리텔링 기법을 적용해야 한다는 얘기가 많았다. 실제 최근 기사를 보면 이게 소설의 한 구절인지 기사인지 헛갈리는 소위 ‘내러티브 기사’가 종종 보이고 심지어 ‘내러티브 저널리즘’을 추구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있다. 귀가 무척 얇은 필자는 수년 전‘남들 다 하는데 그럼 나도 한 번’하는 심정으로 기웃거리다가 우연히 프랑스 작가인 크리스티앙 살몽의‘스토리텔링’이라는 책을 손에 넣게 됐다. 스토리텔링을 제대로 공부해보자는 각오로 책을 펼쳤는데 읽다보니 좀 이상하다. ‘이야기를 만들어 정신을 포맷하는 장치’라는 책의 부제에서 감을 잡았어야 했는데 그렇다! 이 책은 스토리텔링에 대한 비판서였던 것이다. 앞의 문구는 이 책에서 인용한 걸 또 인용한 건데 스토리텔링의 부정적인 측면을 잘 보여주고 있다. 아무튼 이 책을 읽고 스토리텔링에 대한 관심이 시들해졌다.
    ㆍ결초보은은 없었다!
    학술지 ‘네이처’ 10월 3일자에 ‘위대한 신화는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Great myths die hard)’라는 묘한 제목의 글이 실렸다. 미국 하워드휴즈의학연구소의 엘로이즈 두포와 션 캐럴이 쓴 기고문으로 1885년 루이 파스퇴르가 만든 광견병 백신을 처음 접종받은 조셉 마이스터라는 사람의 죽음에 대한 이야기이다. 미친개에 물린 9살 소년 조셉은 파스퇴르의 백신 덕분에 살아났고 뒤에 파스퇴르연구소의 수위가 됐다. 1940년 6월 14일(16일이라는 문헌도 있다) 이제 64세인 마이스터는 여전히 연구소로 출근했다. 물론 파스퇴르는 이미 고인이 돼(1895년) 연구소 지하묘실에 안장돼 있었다. 그런데 이날 파리를 점령한 나치 독일군이 몰려와 마이스터에게 지하묘실 문을 열라고 했고 마이스트는 이에 저항해 자살함으로써 55년 전 자신의 목숨을 구해준 은인의 명예를 목숨으로 지켰다는 감동적인 스토리다. 분자생물학자인 필자들은 2년 전 저명한 생물학자인 자크 모노에 대한 책을 쓰려고 프랑스 파스퇴르연구소 에서 자료를 수집하다가 우연히 1940년 당시 연구소 박테리오파지실험실을 이끌던 유진 울먼의 일기를 손에 넣었다.
    그리고 일기를 읽다가 마이스터의 죽음에 대한 진실을 알게 된다. 즉 6월 14일이 아니라 24일자 일기에“오늘 아침 마이스터가 죽은 채 발견됐다”는 구절이 나오고 “가스를 마시고 자살했다”는 내용이 이어졌다. 나치가 파스퇴르의 무덤을 훼손하는 걸 용납할 수 없어서 권총으로 자살했다는 이야기와는 전혀 다른 서술이다. 그렇다면 마이스터는 왜 자살했을까. 필자들은 수소문해서 마이스터의 손녀를 만났는데 그녀가 들려준 이야기는 안타까운 비극이었다. 즉 마이스터의 아내와 자녀들은 독일군이 파리를 점령하기 직전 파리를 떠났는데 열흘이 지나도록 이들에게서 소식이 없자 마이스터는 이들이 독일군의 폭격으로 죽었다고 생각하고 자책하다가 목숨을 끊었다는 것. 그가 자살한 바로 그날 아내와 딸들이 파리의 집으로 돌아왔다. 하루만 더 참았어도 그가 자살할 일은 없었을 것이다. 그런데 이런 비극적 죽음이 어떻게 영웅적인 죽음으로 둔갑하게 됐을까. 필자들은 이 사례를 통해 과학의 신화가 탄생하는 과정을 그리고 있다. 즉 약간의 사실(이 경우 자살)에 기초해 ‘위대한 인물’을 빚어내는 데는 시간이 필요하다. 즉 신화가 반복될수록 진실에서 점차 멀어지면서 결국 신화가 자체의 삶을 획득한다는 것. 마이스터의 죽음 역시 누군가가 독일군과의 연관성을 얘기했고 그 뒤 자살 날짜가 열흘 당겨지고 방법이 바뀌는 과정을 거치면서 결초보은의 스토리가 완성됐고 그 뒤 역사적 사실로 남게 된 것이다. 그리고 이렇게 터를 잡은 신화는 설사 진실이 밝혀지더라도 좀처럼 사라지지 않는다.
    ㆍ1등만 기억하는 더러운…
    그래도 마이스터는 과학자가 아니지만 기고문을 읽다보면 알렉산더 플레밍.조셉 리스터 같은 과학자에 대해 우리가 알고 있는 내용 중에는 사실뿐 아니라 신화도 있다는 구절이 나온다. 게다가 이런 사례는 과학계에 만연해 있다는 것. 기고문은 참고문헌 둘을 여러 차례 인용하고 있는데 하나는 2004년 출간된 ‘Fabulous Science: Fact and Fiction in the History of Scientific Discovery (기막힌 과학: 과학발견사의 진실과 허구)’라는 책으로 아쉽게도 번역돼 있지 않다. 다른 하나는 2003년 학술지 ‘과학교육’에 실린 미국 미네소타과학철학센터 더글러스 알친 교수의 논문으로 파일을 다운받을 수 있다. 논문은‘과학적 신화-개념(Scientific Myth-Conceptions)’이라는 재미있는 제목으로 알친 교수는 오개념(misconceptions)이라는 용어 대신 일부러 신화개념이라 는 조어를 만들어 썼다고 한다. 지나치게 스토리텔링에 몰두하다보니 어느새 사실이 신화로 교체됐다는 것. 논문에는 과학적 신화개념에 대해 5가지 사례가 나온다. 즉 유전학의 아버지 그레고르 멘델과 환경오염에 따른 나방 몸색깔의 진화를 발견한 영국 생물학자 버나드 케트웰, 항생제 페니실린을 발견한 영국 세균학자 알렉산더 플레밍 산욕열로 인한 산모의 높은 사망률이 위생불량 때문임을 밝힌 헝가리 의사 이그나즈 제멜바이스 심장 박동을 원동력으로 혈액이 순환함을 밝힌 영국 의사 윌리엄 하비에 대한 이야기다. 다들 재미있지만 지면 관계상 플레밍에 대한 신화개념만 소개한다. 잘 알려졌듯이 플레밍은 1928년 어느 날 우연히 포도상구균을 배양하는 배지가 곰팡이에 오염돼 망쳐진 걸 발견했다. 그런데 곰팡이 포자 주위가 투명하다는 즉 박테리아가 자라지 못한다는 현상을 알아차리고 이에 의문을 갖는다. 그는 ‘연역적 추리’를 통해 곰팡이가 박테리아의 생장을 억제하는 물질을 분비한다고 결론내리고 이를 분리해 페니실린이라고 불렀다. 이렇게 발견된 최초의 항생제 페니실린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수백만 명의 목숨을 구했고 매독 결핵 같은 치명적인 전염병도 퇴치되면서 인류와 병원균과의 관계가 근본적으로 수정됐다. 이 업적으로 플래밍은 1945년 노벨생리의학상을 받았고 그는 기회가 있을 때마다“내가 페니실린을 발명한 건 아니다. 자연이 발명했다. 나는 단지 우연히 발견했을 뿐이다”라고 이야기했다. 플레밍은 ‘타임’이 선정한 ‘20세기 100명’ 가운데 이름을 올리기도 했다. 그런데 알친 교수는 논문에서 기적의 항생제 페니실린의 진실은 좀 다르다고 이야기한다. 즉 1928년 플레밍이 페니실린을 발견하고 1929년 논문으로 보고한 건 맞지만 그가 기여한 건 여기까지라는 것. 플레밍은 페니실린을 인류를 박테리아 질환에서 구해줄 항생제로 쓸 생각을 하지 않았고 그저 박테리아 연구에서 박테리아 성장을 조절할 때 쓰는 정도였다. 그는 페니실린을 더 연구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옮겼다. 페니실린은 발견되고 10년 뒤인 1938년,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건너온 독일의 생화학자 에른스트 체인이 천연 항생물질을 연구하기로 하면서 다시 빛을 본다. 즉 체인은 옥스퍼드대 하워드 플로리 교수와 함께 천연 항생물질 세 가지를 골랐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페니실린이었던 것.
    나치를 피해 영국으로 온 독일 생화학자 에른스트 체인이 1938년 연구할 천연 항생물질 후보로 페니실린을 선택하지 않았다면 페니실린은 지금까지도 잊힌 채로
    있을 가능성이 있다. 페니실린을 발견했지만 더 이상 연구하지 않았던 플레밍은 체인과 플로리 덕분에 노벨상을 받았고 오늘날 페니실린에 대한 모든 공을 독차지
    하고 있다. 1944년 옥스퍼드대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한 체인 박사. - 영국왕립전쟁박물관 제공

    기초연구를 통해 이듬해 두 사람은 페니실린이 의학적으로 잠재성이 있다고 결론짓고 대량생산과 정제방법을 본격적으로 연구하기 시작한다. 이들이 다섯 달에 걸쳐 정제한 페니실린은 동물실험용 쥐 몇 마리를 테스트할 수 있는 양이었다고 한다. 그 뒤 환자 6명을 대상으로 임상실험을 하기 위해 교수 2명 대학원생 5명 실험조수 10명이 수개월 동안 하루도 안 쉬고 곰팡이 배양과 페니실린 추출에 매달렸다고 한다. 1940년 무렵 이들의 연구에 대해 알게 된 플레밍은 그러나 자신이 하던 연구를 계속했고 방관자로 남았다. 대량생산이 불가능하다고 본 것이다. 이런 상황에서 체인과 플로리는 고군분투했고 결국 1941년 미국에서 대량생산에 성공했다. 체인과 플로리는 1945년 플레밍과 노벨상을 공동수상했지만 오늘날 그들을 기억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알친 교수는“과학과 과학자에 대한 모든 서사는 신화로 변질될 위험성을 안고 있다”며“스토리텔링 경향은 구성을 단순하고 명쾌하게 만들기 위해 특정 인물을 영웅 으로 부각시키고(sharpening), 연구에 기여한 다른 많은 사람들은 하향평준화(leveling)시킨다”고 설명한다. 알친 교수는 “스토리텔링 경향 자체가 문제의 근원일 것”이라며 “과학 교육자는 서사의 힘과 파괴력에 대해 재고찰해야 할 것”이라고 덧붙였다. 문득 지금까지 필자가 쓴 많은 글 가운데 사실이 아니라 이런 신화를 바탕으로 한 게 얼마나 될지 생각해보니 뒷목이 약간 당긴다. 아무래도 ‘Fabulous Science’를 사서 읽어봐야겠다.
    Dongascience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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