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랑이와 가장 가까운 종은 사자?
 | ▲ 빅캣 가운데서는 가장 작은 종인 구름표범. 동남아 일대에 분포 하는데 나무를 자유자재로 타며 사냥할 수 있다. 표범 계열에서 가장 먼저 갈라져 나와 별도의 속(Neofelis)으로 분류돼 있다. - 위키피디아 제공 | "지난 수천 년 동안 사람과 맹수는 서로에 대해 두려움과 경외감을 지닌 채 맞서왔다.
이런 갈등은 앞으로도 계속될 것이다.” - 조지 셸러, 팬써라(Panthera, 야생 고양잇과 동물 보호
기구) 부회장
집채만한 호랑이가 굶주림을 못 견디고 인가로 내려왔다.
호롱불빛이 비치는 문 앞으로 다가갔는데 안에서 아기 울음소리와 여인의 목소리가 들린다.
“자꾸 울면 호랑이가 와서 물어간다.”
“응애 응애”
“안 되겠네. 자 곶감이다.”
“…”
맹수인 자신의 이름 앞에서도 울음을 멈추지 않던 아기가 곶감이란 한 마디에 조용해지자 놀란
호랑이는 곶감을 피해 얼른 산으로 도망쳤다.
이런 얘기를 보면 우리 조상들의 시적 상상력이 대단하다는 생각이 든다.
그럼에도 ‘집채만한 호랑이’라는 표현은 좀 진부한 것 같다.
그런데 지난 2009년 11월 말 이듬해가 호랑이해라 호랑이 취재를 하러 과천 서울대공원에 갔다가
호랑이가 정말 집채만하다는 걸 실감했다.
보통 동물원 맹수 우리는 넓고 깊은 해자가 가로막혀 있어 호랑이가 30~40미터는 떨어져 있다.
 | ▲ 연구팀은 호랑이 게놈과 함께 눈표범 게놈도 해독했다.눈표범의 분류학적 위치는 오랜 논란 거리로 별도의 속(Uncia)으로 놓기도 하는데 2006년 DNA염기서열을 비교한 결과 호랑이에 가장 가까운 것으로 나타나 표범속(Panthera)에 포함시켰다.이번 연구 결과 눈표범은 저산소인 고지에 적응할 수 있게 EGLN1 유전자의 변이가 일어났다는 사실이 밝혀졌다. - 위키피디아 제공 |
따라서 호랑이가 큰 건 알겠는데 실감이 나지는 않는다.
그런데 당시 필자는 우리 뒤쪽으로 가서 호랑이를 한 뼘 거리에서(물론 철창이 가로막고 있었다) 지켜봤는데 정말
컸다.
철창을 따라 걸으며 호랑이가 지나가는데 머리에서 몸통 꼬리까지 한참이 걸렸다.
당시 동행했던 여기자는 호랑이의 오줌세례를 받아 청바지가 다 젖기도 했다.
ㆍ눈표범 게놈을 함께 해독한 이유는
최근 국내 연구진이 주축이 된 공동연구팀이 아무르호랑이(시베리아호랑이)의 게놈을 해독해 화제다.
100여년 전만해도 한반도 백두대간을 주름잡았던 아무르호랑이는 호랑이 아홉 아종 가운데서 가장 클뿐더러 고양이
과 맹수 가운데서도 가장 크다
(불임 잡종인 라이거는 제외).
연구팀은 아무르호랑이와 함께 아종인 뱅갈호랑이(백호), 사자, 백사자, 눈표범의 게놈도 함께 분석해 비교했다.
비교를 위해 호랑이 아종이나 사자를 선택한 건 이해하겠는데 눈표범은 왜 포함시켰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우리나라 연구진이 주축이므로 역시 한반도에 살았던 표범이 더 낫지 않았을까.
눈표범이야 히말라야 고산지대에 적응한 표범의 변종인데 굳이 포함한 이유가 무엇일까.
연구팀은 호랑이의 게놈 서열이 고양이와 95.6% 일치한다는 사실을 밝혀냈는데 논문에서 둘의 조상이 대략 1080만
년 전에 갈라졌다는 내용이 나온다.
이 구절의 참고문헌을 보니 2006년 ‘사이언스’에 실린 논문으로 오늘날 고양이과 동물 38종의 계통분류학에 대한
내용이다.
일단 기본을 알아야할 것 같아 이 논문을 먼저 읽기로 했다.
고양잇과 동물의 분류학은 너무 복잡해서 정리가 안 된 분야인데 저자들은 DNA염기서열을 비교하는 분자계통
분류학으로 이들 38종 사이의 가계도를 만든 것이다.
이들 38종의 공동조상은 약 1080만 년 전부터 갈라지기 시작했다.
즉 표범 계열(Panthera lineage, 호랑이를 비롯한 대형 고양잇과 동물 6종)이 떨어져 나온 것.
그리고 단계적으로 계열이 갈라져 나오면서 현재 8가지 계열로 분류하고 있다.
즉 앞의 표범 계열을 시작으로 베이살쾡이 계열(3종) 카라칼 계열(3종) 오실롯 계열(7종) 스라소니 계열(4종) 퓨마
계열(3종) 삵 계열(5종) 고양이 계열(7종)이다.
필자는 대형 고양잇과 동물에 매료돼 있는데(아마 많은 사람이 그럴 것이다) 월간지 ‘내셔널 지오그래픽’ 2011년
12월호를 보면 8종을 대형 고양잇과 동물(big cats)로 보고 있다.
즉 표범 계열 6종(구름표범, 눈표범, 호랑이, 표범, 재규어, 사자)과 치타, 퓨마다.
이 가운데 구름표범(clouded leopard)이 낯설다.
 | ▲ DNA서열을 바탕으로 구성한 고양잇과 동물의 계통수로 38종 가운데 빅캣 8종만 표시했다. 빨간색 숫자는 분기된 시점(단위는 만 년 전)으로 통계적 평균값이다. 2006년 ‘사이언스’에 나온 표를 단순화했다. - 강석기 제공 |
필자는 예전부터 이들 빅 캣 사이의 관계를 나름대로 설정하고 있었는데 먼저 호랑이와 사자를 묶고(둘 사이에는 라이거나 타이곤이 태어난다) 눈표범은 표범의
변종 재규어는 신대륙으로 건너간 표범이 진화한 종 퓨마 역시 신대륙으로 건너간 사자가 진화한 종이라고 생각했다(근거도 없이!).
다만 치타가 골치였는데, 표범과 묶기에는 몸 구조가 너무 달랐기 때문이다.
그런데 분자계통분류 결과를 보니 뜻밖의 매치가 많았다.
가장 놀라운 건 호랑이와 가장 가까운 게 사자가 아니라 눈표범이라는 것.
둘의 공동조상은 288만 년 전에 갈라졌는데 비해 호랑이와 사자의 공동조상은 372만 년 전에 갈라졌다.
눈표범의 입장에서도 표범보다는 호랑이가 더 가깝다.
결국 털의 무늬를 보고 붙인 눈표범이란 이름에 혹해 표범의 변종으로 착각한 것이다.
아무튼 이번 논문에서 표범이 아니라 눈표범의 게놈을 해독한 이유로 보인다.
ㆍ 아메리카에서 건너온 치타
 | ▲ 재규어 수컷과 암사자 사이에 태어난 잡종 재그라이언(Jaglion) 수컷.표범속 동물들인 호랑이,사자,표범,재규어는 서로 교미해 새끼를 낳을 수 있다. - Bear Creek Exotic Wildlife Sanctuary 제공 |
재규어가 아메리카로 건너간 표범의 후예라는 추측도 전혀 아니었다.
재규어와 가장 가까운 건 사자로 둘은 206만 년 전 갈라졌다.
반면 표범과 재규어는 287만 년 전 헤어졌다.
역시 털의 무늬가 판단력을 혼란스럽게 했다.
자세히 보면 표범과 재규어는 무늬 패턴이 다르다.
사실 다큐멘터리에서 재규어를 보면 날렵한 표범에 비해 좀 둔탁하고 억세다는 느낌을 받았는데 머릿속에서 무늬를
지워보니 거의 암사자 느낌이다.
실제 재규어는 호랑이, 사자 다음으로 큰 종이다.
퓨마에 대한 추측도 완전히 틀렸다.
퓨마와 사자는 계열 자체가 달라 둘은 1080만 년 전에 갈라진 종이다.
흥미로운 사실은 치타가 바로 퓨마 계열에 속한다는 것.
둘은 492만 년 전 헤어졌다.
그런데 퓨마는 신대륙에만 있고 치타는 구대륙에만 있는 건 어떻게 설명해야 할까.
재규어와 사자도 마찬가지다.
논문에 따르면 지난 1000만 년 동안 빙하기,해빙기가 여러 번 교차하면서 해수면이 100미터 수준으로 오르내렸는데,
아시아와 북미 대륙이 연결됐을 때 동물들이 이동했다.
신대륙에 있던 치타 조상이 구대륙으로 넘어갔고 해수면 상승으로 단절된 뒤 신대륙에서는 멸종한 결과다(재규어는
반대 경우).
빅캣은 생태계에서 무적의 존재이지만(치타는 사자와 하이에나가 큰 위협이 되고 있다) 지난 100년 사이 개체수가
급격히 줄어 야생에서는 수천~수만 마리밖에 안 돼 멸종이 걱정되는 수준이다(다만 퓨마는 개체수가 충분하다).
물론 이들의 천적은 사람이다.
보전 상태를 보면 호랑이(야생에서 4000마리 미만)와 눈표범(4000~6500마리)이 멸종위기등급(EN)으로 가장 불안
하고 치타와 구름표범 사자가 멸종취약등급(VU)으로 분류돼 있다.
재규어와 표범이 취약근접등급(NT), 퓨마는 아직 여유가 좀 있는 관심필요등급(LC)이다.
이번 게놈 해독 소식을 접하며 이들 빅캣을 동물원에서만 보게 되는 날이 결코 오지 않기를 바란다.
☞ Dongascience ☜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草浮 印萍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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