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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빗족은 지금도 어딘가에 살고 있을까?

浮萍草 2013. 9. 16. 00:00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발견한 인류학자 마이클 모우드 타계에 부쳐
    간 학술지 ‘네이처’와 ‘사이언스’에는 한 달에 한 두 번꼴로 부고가 실리는데 다들 대단한 업적을 이룬 과학자일 것임에도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경우가 많다. 글을 읽다보면 ‘이 일을 한 게 이 사람이었구나!’ 하고 놀라곤 한다. 그럼에도 정서적으로는 별로 흔들리지 않는데 낯선 사람들인데다 대부분 팔구십의 나이 즉 천수를 누렸기 때문이다.
    2003년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를 발견한 탐사팀을 이끈 마이믈 모우드 교수가 7월 23일 암으로 타계했다. 울런공대 동료 두 사람이 ‘네이처’에 기고한 부고.
    - 네이처 제공

    그런데 가끔은 안타까울 때가 있다. 아직 한창 일할 나이에 그만 병이나 사고로 타계한 경우로 그 정도 지식과 식견을 갖추기 위해 평생 각고의 노력을 했을 걸 생각하면 인간의 운명이 야속하기도 하다. 8월 22일자 ‘네이처’에 부고가 실린 호주 울런공대의 인류학자 마이클 모우드(Michael Morwood)도 그런 경우다. 모우드는 2003년 ‘세기의 발견’으로 불리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Homo floresiensis), 일명 ‘호빗(Hobbit)’의 발굴을 이끈 인류학자다.
    ㆍ고대인이 남긴 암각화에 관심가져
    1950년 뉴질랜드 오클랜드에서 태어난 모우드는 오세아니아 원주민의 조상들이 바위에 남긴 그림(rock art)에 매료돼 인류학자가 됐다. 1981년 호주 뉴잉글랜드대학에 자리를 잡은 뒤에 많은 연구를 진행했고 1992년부터 2000년까지 호주암각화연구협회 회장을 맡기도 했다. 모우드는 암각화에서 암각화를 그린 사람들로 관심의 폭을 넓혀 이들이 언제 어떻게 아시아에서 오세아니아로 건너왔는지를 연구하기 시작했다. 그는 인도네시아 동남부와 호주 북서부 사이에 있는 플로레스(Flores)섬을 주목했고 인도네시아고고학센터와 공동으로 탐사에 들어갔다. 모우드 발굴팀은 2001년부터 플로레스섬의 석회동굴인 ‘리앙 부아(Liang Bua)’를 발굴했다. 2003년 모우드 교수가 자카르타에 있는 사이 발굴팀은 두개골이 온전히 보존된 작은 인류의 뼈를 발굴했다. 조심스럽게 회수한 뼈들을 정밀하게 조사한 결과 모우드 교수는 이 화석이 현생인류가 아닌 미지의 인류라는 결론을 내린다. 2004년 ‘네이처’에 발표한 논문에서 연구자들은 이 인류에게‘플로레스 섬의 인간’이란 뜻의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라는 학명을 붙였다. 모우드 교수는 톨킨 소설 ‘반지의 제왕’에 나오는 키 작은 종족 호빗을 떠올려 이 작은 인류에게 ‘호빗’이라는 별칭을 붙여주기도 했다.
    같은 뼈 다른 얼굴. 화석을 바탕으로 한 복원은 작업
    한 사람의 상상력이 많이 개입된다.호모 플로레시엔시
    스의 두 가지 복원 모습. 오른쪽 이미지가 널리 쓰이고
    있다. - 사이언스 제공
    두개골을 비롯해 꽤 많은 뼈가 회수된 LB1이라고 명명된 사람은 30세가량의 여성으로 키가 불과 106센티 미터인데다 뇌용적은 380cc(후에 정밀한 측정 결과 426cc로 약간 커졌다)로 추정됐다. 적당한 체형일 경우 몸무게는 25킬로그램에 불과하다. 어른이 초등학교 1학년생 만하다는 말이다. 물론 현생인류 가운데도 세계 곳곳에 피그미족이 있지만 키는 작아도 140센티미터는 된다. 연구자들은 이들이 아마도 호모 에렉투스의 일족으로 섬에 고립되면서 왜소화가 일어나 이렇게 작아졌을 것이라고 해석했다. 현생인류와 가장 가깝다는 네안데르탈인조차 2만4000년 전에 멸종했는데 100만 년도 더 이전에 갈라진 것 으로 추정되는 인류가 1만8000년 전에도 살고 있었다는 충격적인 이야기였다. 그 뒤 추가적인 발굴로 현재는 호모 플로레시엔스가 9만4000년 전에서 1만3000년 전 사이에 살았던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ㆍ병든 현생인류라는 주장과 논쟁 벌여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의 발견은 인류의 진화계보를 다시 그리게 했다. 현생인류와 100만 년 전 이전에 갈라진 호모 에렉투스의 후손이 불과 1만3000년 전까지
    살고 있었다는 건 누구도 예상하지 못했던 충격적인 발견이었다. - 네이처 제공

    그러나 모든 사람이 이들의 발견에 찬사를 보낸 건 아니었다. 일부 인류학자들은 호빗이 병든 현생인류라고 반박했다. 인도네시아의 저명한 인류학자인 가자마다대 테우쿠 자콥(Teuku Jacob) 교수는 LB1이 현재 플로렌스 섬에 살고 있는 피그미족인 람파사사의 조상으로 ‘이상소두증’ 이라는 뇌가 비정상적으로 작은 질환에 걸린 사람이라고 주장했다. 그러나 이에 대해서는 두개골 전문가인 미국 플로리다주립대 딘 폴크 교수 등 여러 전문가들이 재반박하는 연구결과를 내놓았다. 한편 호빗의 손목뼈나 어깨뼈 정강이와 발의 길이 비율 등이 현생인류보다는 원시적인 인류와 가깝다는 결과도 있다. 이에 대해서 반대 의견이 있는데‘라론증후군(Laron syndrome 성장호르몬을 제대로 인식하지 못해 생기는 왜소증)’에 걸린 환자였다는 주장도 있도 ‘풍토성 크레틴병 (endemic cretinism 선천성 갑상선 기능 저하로 일어나는 심신 발육부전 질환)’이라는 주장도 있다. 모우드 교수와 동료들은 추가 발굴한 화석 시료와 정밀한 측정 자료들을 토대로 이런 주장을 반박하는 논문을 발표해 왔다. 2007년 반대 진영을 이끈 자콥 교수가 사망하고 그 뒤 이렇다 할 반증 결과가 나오지 않으면서 지금은 대다수가 호모 플로레시엔시스를 인정하는 분위기라고 한다. 물론 DNA를 분석하면 이 문제는 완벽하게 해결이 되겠지만 몇 차례 DNA추출을 시도했으나 아쉽게도 분석할만한 수준의 DNA를 얻지 못했다. 한편 이들이 인류 진화 계보에서 차지하는 위치와 지리적 분포, 존재한 시기(앞에 언급한 범위는 추정치) 등 답해야 할 물음들이 여전히 산적해 있다. 모우드 교수의 때 이른 죽음이 더 안타까운 이유다. 모우드 교수는 진지하게 생각한 것 같지 않지만 호모 플로레시엔시스와 관련해 흥미로운 가설 하나가 있다. 이들이 멸종하지 않고 지금도 어디선가 살아있을지 모른다는 것. 캐나다 앨버타대 인류학과 그레고리 포스 교수는 2005년 학술지 ‘인류학 투데이’에 발표한 논문에서 플로레스섬의 토착부족인 나지(Nage)족에서 전해져 내려오고 있는 ‘에부 고고(Ebu Gogo)’ 전설이 바로 호빗족을 보고 나온 이야기일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에부’는 나지어로 ‘할머니’ ‘고고’는 ‘가리지 않고 먹는다’는 뜻이라고 한다. 즉‘식탐 많은 할머니’라는 말인 것 같은데 아무튼 전설이 묘사하는 에부 고고는 키가 작고 몸에 털이 많고 얼굴이 넓적하고 코도 펑퍼짐하다. 게다가 이들은 17세기는 물론, 20세기에도 목격됐다고 한다. 깊은 숲 어딘가에서 호빗족들이 지금도 살아있다는 상상만으로도 흥미진진하다.
    ㆍ두 거장의 다른 죽음
    학술지 ‘사이언스’ 2007년 11월 9일자에는 인도
    네시아의 저명한 고인류학자 테우쿠 자콥의 사망을
    알리는 단신이 실렸다.많은 업적에도 불구하고 과학
    사에서 그는 호모 플로레시엔시스 연구를 집요하게
    방해한 인물로 남지 않을까. - 사이언스 제공
    모우드 교수의 때 이른 죽음을 안타까워하면서 앞에서 언급한 테우쿠 자콥 교수의 죽음과 비교하게 된다. 인도네시아가 아직 네덜란드의 식민지였던 1929년 태어난 자콥은 독립운동의 주요인사일뿐 아니라 인도네시아 에서 호모 에렉투스의 화석을 여럿 발견한 저명한 고생물학자다. 앞서 언급한대로 자콥은 호빗이 이상소두증에 걸린 현생인류라고 주장했는데 2004년 12월 자카르타의 국립고고 학연구센터에 보관돼 있는 화석을 무단으로 가져가 3개월이나 반환하지 않는 돌출행동을 했다. 국제적인 비난에 마지못해 반환한 시료는 이미 많이 훼손돼 있어서, 모우드 교수는 “역겨운 일이다. 야콥은 탐욕스러운 사람이고 완전히 무책임하게 행동했다”고 비난하기도 했다. 그런데 더 놀라운 일이 기다리고 있었다. 인도네시아 당국이 리앙 부아 동굴을 폐쇄한 것. 이에 대해 발굴 과정에서 호빗이 현생인류가 아니라는 결정적인 증거가 나올 경우 국민 영웅인 자콥 교수가 곤란해질 것을 우려한 조치라는 얘기가 있었다. 그런데 이를 입증이라도 하듯이 2007년 자콥 교수가 사망하자 동굴은 다시 학자들에게 공개됐다. 모우드 교수의 동료 두 사람이 쓴 부고를 보면“호모 플로레시엔시스가 새로운 종이 아니라 병든 호모 사피엔스 라는 우려에 대한 반응으로 모우드는 외부의 인간진화연구자들을 초청해 화석을 연구하고 시료를 채취하게 했다. 이 열린 의문의 정신은 투명성에 대한 모우드의 일관성과 강조를 잘 보여주고 있다”는 부분이 나온다. 어떤 분야의 권위자가 죽으면서 주변에서 그 분야의 발전이 더뎌질 것을 우려하는가 하면(상식적인 상황이다) 때로는 권위자의 존재가 오히려 그 분야의 발전을 막고 있을 수도 있다는 걸(주객이 전도된 상황이다) 두 사람의 삶과 죽음이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Dongascience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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