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螢雪之功… 반딧불이로 독서하려면 최소 200마리 있어야 활자 구분 가능

浮萍草 2013. 9. 14. 12:18
    둠이 깔린 초저녁 동구 밭 조용히 날고 있는 반딧불이(개똥벌레·반디·반딧벌레·반딧불로도 불림·사진)를 손바닥 으로 탁 쳐 잡자마자 사정없이 꼬리를 동강 내 이마 볼에 쓱 문질러'귀신놀이'를 했었지 연방 얼굴에서 희끗희끗한 빛을 내니 그것이 형광(螢光)이다. 그런데 바글바글 거침없이 산지사방을 누비던 그들은 대관절 어디로 다 갔단 말인가. "개똥불로 별을 대적한다"란 말이 있다. 상대가 어떤지도 모르고 어리석은 짓을 하는 걸 일컫는데 여기서 개똥불은 개똥벌레의 꼬리불이다. 개똥벌레의 국명은 '반딧불이', 한자로는 '형화(螢火)', 영어로는 'firefly'다. 형설지공(螢雪之功)이란 반디의 꼬리불빛과 눈빛으로 학업에 정진하여 입신양명함을 빗댄 것으로 중국 진나라 때 "손강은 겨울이면 눈빛에 비추어 책을 읽었고 차윤은 낡은 명주 주머니에 반딧불을 잡아넣어 그 빛으로 공부했다" 는 고사에서 유래했다. 까마득한 옛날 필자도 그 이야기를 주워듣고 유리병에 한가득 잡아넣어 흉내 내봤으나 허탕쳤다. 반딧불이가 200마리는 넘어야 신문 활자 구별이 된다고 한다. 반딧불이는 반딧불이과(科)의 딱정벌레(갑충·甲蟲)로 자란벌레·알·애벌레·번데기를 거친다.
    세계적으로 2000여종 우리나라엔 8종이 있다고 전해지나 실제로 채집되는 건 기껏해야 애반딧불이, 늦반딧불이 파파리반딧불이 운문산반딧불이 4종뿐이다. 우리가 주로 보는 것은 앞의 둘로, 애반딧불이는 6월 중순에서 7월 초순, 늦반딧불이는 8월 중순에서 9월 중순경까지 나타난다. 짝짓기 4~5일 뒤 애반딧불이는 물가의 이끼에 나머지는 흙에다 알을 100여개 낳는다. 3~4주가 지나면 유충이 알을 깨고 나와 여름 내내 4~6회 허물을 벗으면서 자란다. 가랑잎 더미나 땅속에서 겨울을 난 유충은 늦봄에 흙속에 집을 짓고 그 속에서 번데기가 된다. 그 뒤 수 주 동안 변태기를 거쳐 날개를 만든다. 그런데 4종 중에 애반딧불이 유충은 고즈넉한 산골짜기 실개천에 살아 다슬기나 물달팽이를 잡아먹지만 나머지는 음습한 땅에 살면서 달팽이, 민달팽이를 먹는다. 이놈들이 어디 감히 달팽이를 먹어!? 나를 먹어도 좋으니 부디 농약, 제초제 따위는 검세게 버텨 내렴 몇 안 되긴 하지만 그나마 여태 절멸되지 않고 모질게 살아남은 것만도 기특하고 갸륵하다. 꼬리불을 깜박거리며 하늘을 나는 것은 모두 수컷이고 암컷은 날개가 없어 날지 못해 앉은뱅이 모양새다. 꼭 벌레 닮은 유충 그대로지만 커다란 두 겹눈을 가졌다. 그러나 물에서 유생 시기를 보내는 애반딧불의 암컷은 날개가 있어 잘 난다. 이들은 죄다 성충이 되면서 입이 퇴화해버려 내처 살아있는 동안 도통 요기를 하지 않는다. 반디는 빛으로 말한다. 반딧불이의 아랫배 끄트머리 두세째 마디에 특별히 분화한 발광기가 있다. 거기에서 발광물질인 루시페린(luciferin)단백질이 산소와 결합, 산화루시페린이 되면서 빛을 낸다. 에너지 전환 효율이 90%로 고스란히 빛으로 바뀌기에 냉광(冷光)이며, 자외선과 적외선 없는 가시광선이다. 자동차미등(尾燈)도 분명 반딧불이의 깜박불을 본뜬 것일 터. 그런데 빛의 간섭을 죽도록 싫어하는 개똥벌레는 일종의 환경지표생물로 족족 강이나 땅이 망가지면 따라서 다친다. 이렇게 촘촘한 먹이그물이 한 코 두 코 줄줄이 빠지면 생태계는 걷잡을 수 없이 요동친다. 모름지기 무위자연(無爲自然)인 것을!
    Chosun Vol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