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茶로 즐기는 옥수수수염, 그냥 수염이 아니에요 꽃가루 받는 암술이래요

浮萍草 2013. 8. 17. 11:28
    새 옥수수가 한창이다. 
    글 쓰기도 전에 구수하고 존득존득한 찐 강냉이가 먹고 싶은 맘에 어느새 입안에 군침이 한가득 돈다. 
    외떡잎식물인 옥수수는 볏과의 한해살이풀로 대나무처럼 허우대가 헌걸차고 멀쑥한 멋쟁이 식물이다.
    남미 안데스 산맥이 원산지인 옥수수는 16세기쯤 중국에서 한국으로 전래했고 중국 이름 '옥촉서(玉蜀黍)'에서 '옥수수'가 됐다고 한다. 
    강원도 사투리인 '옥시기'가 부르기에 더 정이 간다.

    잎은 꼿꼿한 줄기에 어긋나게(호생·互生) 하나씩 열리고 보통 한 식물에 넉넉잡아 12~14개가 달린다. 긴 것은 길이 92㎝, 너비 8㎝나 되며 잎 가장자리에는 맨눈에 보일 듯 말 듯한 자잘한 톱니(거치·鋸齒)가 가뜩 난다. 곧게 선 줄기에는 도드라진 마디가 여럿 나고, 거기에 잎사귀가 한 개씩 달리며, 줄기 겉껍질이 매끈하고 속심이 단단하다. 외떡잎식물이라 원뿌리(주근·主根)는 없고, 땅 위에 드러난 굵은 수염뿌리 15~20개를 탄탄하게 땅에 박았다. 부실한 놈은 곁뿌리(공기뿌리)를 아랫동아리 첫째 마디에 주렁주렁 뻗어내려 줄거리를 굳건히 떠받쳐 주기에 여간 센 바람에도 끄떡 않는다. 옥시기는 암수 한 그루(자웅동주)이자 암·수꽃이 따로 피는 단성화(單性花)로 씨를 심은 지 40~50일이면 개화한다. 수꽃이삭인 '개꼬리'가 대 꼭대기에 먼저 솟아나고 암꽃이삭은 며칠 뒤 아래서 헤아려 통상 6·7·8번 줄기 마디에 있는 잎겨드랑이를 밀고 나온다. 이렇게 암꽃보다 수꽃이 앞서 피는 것을 웅성선숙(雄性先熟)이라 한다. 이들은 풍매화로 기어이 타가수정(他家受精)하기에 옥수수를'신사식물'이라 칭하며 열성(劣性)인 찰옥수수와 우성(優性)인 사료 옥수수를 함께 심었다면 죄다 사료 용이 열리고 만다. 줄기 옆구리에 불쑥 솟아난 죽순(竹筍)을 닮은 옥수수통 끝자락을 보면 반질반질하게 찰랑대는 머릿결 흡사한 비단 실(silk hair)이 더부룩하게 다발로 뭉쳐난다. 옥수수수염이다. 꽃가루가 달라붙는 암술이다. 질긴 껍질(포엽·苞葉) 7~12장이 풋옥수수를 서너 겹 차곡차곡 포개 둘러싸 득시글대는 벌레의 공격을 막는다. 포엽을 조심스레 발가벗기다 보면 포실하게 여물어가는 강냉이 알갱이 하나하나에 길쭉하고 야들야들한 수염 가닥(암술대)이 파고든 것이 보인다. 즉 옥수수수염과 알갱이의 수는 같은 셈이다. 이제 옥수수통 하나에 씨알이 몇 개인지 볼 차례다. 옥수수마다 다르지만 보통 세로축으로 낟알 8~14줄이 줄지어 쪼르르 붙고 한 줄에 씨알이 40~50여개씩 박히니 결국 한 대에 자그마치 300~700개가 열린다. 잎사귀 고작 열두서너개가 500개 넘는 옥구슬을 만들어내니 이는 딴 식물보다 광합성 능력이 썩 높은 탓이란다. 못살던 우리 어린 시절에 강냉이를 풋바심(채 익기 전 미리 땀)해 하모니카 불듯 생으로 꾹꾹 씹어 먹으면 비릿하면서도 달착지근한 젖물이 한입 가득했지. 수수깡이나 옥수숫대로는 안경을 얽어 맞춰 썼다. 강냉이밥·수제비·범벅·올챙이 묵 같은 색다른 우리 토속음식 말고도 팝콘·기름·빵·과자·물엿·시럽·버번(술)을 만들며 옥수수수염을 달여 마시면 몸에 부기를 빼줘 요로결석에도 좋다고 한다. 가축 사료의 주원료인 옥시기가 없었다면 고기붙이 맛도 못 볼 뻔했다. 강냉이 죽도 배불리 못 먹고 굶주림에 쩔쩔매는 사람들이 쌔고 쌨는데 갖은소리하고 앉았다 하겠지만.
    Chosun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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