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옛글에서 읽는 오늘

추석 밝은 달

浮萍草 2013. 9. 14. 10:46
    가위 보름달은 정도전의 시심(詩心)을 자극했다. 추석날 달을 보며 쓴 시가 여러 편이다. 그 가운데 ‘중추가(中秋歌)’는 나주 회진현에 유배 간 이듬해 쓴 시다. 공민왕의 개혁정치에 힘입어 조정에 진출했던 정도전이 수구세력에 밀려 유배를 가게 된 것이다. “작년엔 추석 달 즐길 때에 가무와 농담으로 잔치 벌였지. … 취중에 달 불러 금분(金盆) 만들어 예쁜 술병 맛난 술에 백 편 시 지었지. 금년엔 멀리 회진현에 귀양 오고 대 울타리 초가집에 거친 산이 앞에 … 이때에 달 보니 더욱 서글프고 돌아보니 옛 놀던 벗들 연기처럼 흩어졌네.” 지난해만 해도 벗들과 의기투합하여 추석을 즐겁게 지냈건만 올해는 상황이 전혀 다르다. 이 몸도 밝은 달도 달라진 것 없는데 사람의 처지와 느낌이 그렇다. 밝은 달이 비추는 세상에 누구는 즐겁고 누구는 슬프다. 과연 내년의 내 처지는 어떠할까. “내년엔 달 보는 곳 또 어디며 즐거울지 슬플지 알 수가 없네. 밝은 달 말없이 밤은 지나는데 아득하게 홀로 서서 원망하는 시 노래하네.” 위 시를 지을 때 정도전 나이 34세였다. 그는 유배와 방랑 기간을 거치며 자신을 단련했다. 이후 이성계를 만나고 새 왕조의 개창을 주도했다. 18년 유배기간 동안 위대한 학문적 성과를 이룬 정약용은 57세에 고향에 돌아와 18년 여생을 보냈다. 71세에 지은 ‘송파수작(松坡酬酌)’이란 시에서, 그는 보름달에 집착하지 않았다. 추석 전날에는, “구분(九分)쯤 된 달빛인 오늘밤이 좋다 /굳이 기다려 보름달을 구할 것 없다.” 추석 당일에는, “갠 날씨 시골마을 즐거운 맘에 떠들썩 / 가을 동산 풍미는 자랑할 만하네.” 그러면서도 몸이 쇠약해져 밤 뱃놀이를 가지 못해서 달빛에 금물결이 출렁이는 모습을 보지 못하는 것을 탄식했다. 달빛이 맑았던 추석 다음날에“달구경은 보름달에 상관할 바 아니고/구름 한 점 없는 곳에 가을하늘 시작된다”면서“인간 세상에서 몇 회나 이런 즐거움이 가능할까/ 좋은 밤 한번 만남이 기이한 인연이로다”라고 노래했다. 정약용은 쇠약해지는 몸과 유한한 인생을 안타까워하기도 했지만 가을하늘 달구경을 만끽했다. 곧 추석이다. 모두들 몸과 마음이 평화롭고 풍요로운 추석을 지냈으면 좋겠다.
    Khan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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