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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간게놈이 양자컴퓨터를 만났을 때

浮萍草 2013. 8. 21. 21:48
    구글, 양자컴퓨터 두 번째 고객 돼
    최근 NASA가 구매한 양자컴퓨터 디웨이브투의 512큐비트 프로세서.양자컴퓨터는 최적화문제 같은 특정 계산에서 기존 디지털컴퓨터보다 훨씬 뛰어난 성능을 보인다. - D-Wave 제공
    "반갑습니다.” “그동안 잘 지내셨어요?” 무더위가 절정인 지난 13일 송도 신도시에 있는 이원생명과학연구원 R&D센터에서 필자는 미국에서 바이오 벤처 다이애그노믹스(Diagnomics)를 운영하고 있는 이민섭 대표를 만났다. 수년 전 이 대표가 국내 바이오회사에 초빙돼 근무할 때 취재원과 기자로 알게 됐는데, 그 뒤 이 대표는 미국으로 돌아가 자기 회사를 만들었다. 이번에 방한한 건 이원생명과학연구원과 다이애그노믹스가 공동제휴해 ‘이원다이애그노믹스게놈센터’를 설립 했기 때문. 이 박사는 연구원 4층에 자리한 게놈센터의 대표도 맡았다. 이원생명과학연구원은 진단 분야에서 독보적인 기술을 소유하고 있는데 여기에 다이애그노믹스의 인간게놈 분석기술을 더해 본격적인 개인게놈시대를 열겠다는 비전이다. 송도 신도시는 몇 번 와봤지만 연구원이 자리한 남쪽은 특히 더 이국적인 분위기였다. 필자 집(안양)에서 차로 불과 30분 거리임에도 인천대 캠퍼스 풍경이나 올해 완공했다는 연구원 건물 디자인이 외국에 온 것 같다. 동석한 이원의료재단의 윤영호 원장의 안내로 2층의 진단 실험실을 둘러봤는데 그 거대한 규모에 충격을 좀 받았다.
    전국에서 모여든 혈액 같은 생체시료들이 하루 수만 건씩 이곳에서 분석되고 있다고 하는데 미래 인류의 모습을 그린 SF영화 속 장면을 보는 것 같다. 쾌적한 구내식당에서 점심을 하고(미역냉국이 나온 백반을 먹으면서 약간 현실감각이 돌아왔다) 조제커피를 마시니 ‘여기도 사람 사는 동네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런데 이 대표와 담소를 나누다 다시 미래가 현실이 되는 충격과 마주쳤다. 최근 다이애그노믹스가 세계 유일의 양자컴퓨터 제조사인 캐나다의 디웨이브(D-Wave)와 합작법인인 ‘DNA-Seq’라는 회사를 만들었다는 것. 인간게놈분석기술과 양자컴퓨터의 계산능력을 결합해 새로운 차원의 개인게놈시대를 연다는 비전을 공유했다고 한다. 먼 미래의 이야기인줄로만 알았던 양자컴퓨터가 어느새 현실이 돼 우리 눈앞에 불쑥 모습을 드러내고 있는 셈이다.
    ㆍ최적화 문제 해결에 탁월
    다이애그노믹스와 디웨이브의 만남은 우연에서 비롯됐다. 2년 전 같은 동네에 사는 두 회사의 직원이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서로의 기술을 합치면 뭔가 혁신적인 결과물이 나오겠다는 공감을 했고 각자 회사로 돌아가 제안을 한 것. 게놈분석전문가들이 양자컴퓨터를 알 리가 없고 양자물리학자들도 생명과학에 문외한이었지만 만남을 계속하면서 점차 그림이 그려지기 시작했다. 이들이 추진하는 프로젝트를 요약하면 이렇다. 인간게놈에 500여개 있는 인산화효소(kinase) 유전자에 돌연변이가 생기는 게 암 발생의 주요 원인인데 환자의 게놈분석으로 변이가 생긴 유전자를 확인한 뒤 양자 컴퓨터로 변이 유전자가 만들어내는 변이 인산화효소의 구조를 예측한 뒤 이를 표적으로 한 약물을 찾는다는 것. 한마디로 개인게놈과 양자컴퓨터를 이용한 환자 맞춤형 항암치료인 셈이다. ‘이 대표가 이런 몽상가였나?’라는 생각이 잠깐 머리를 스쳤지만 문득 얼마 전 학술지 ‘네이처’에 실린 디웨이브 관련 기사가 떠올랐다(6월 20일자). 지난 5월 디웨이브가 두 번째 양자컴퓨터를 판매한 걸 계기로 양자컴퓨터의 현주소를 다루고 있는데 한마디로 ‘양자컴퓨터가 더 이상 황당한 얘기는 아니다’라는 내용이다.
    양자컴퓨터는 큰 방만한 크기인데,프로세서가
    양자교란을 받지 않게 절대온도 0.02도의 극저온을
    유지하기 위한 냉각장치를 설치해야 하기 때문이다.
    - D-Wave 제공
    양자계산의 가능성은 이미 수십 년 전부터 이론물리학자들 사이에서 논의돼 왔고 알고리듬도 여럿 개발됐다. 문제는 이를 구현할 ‘실물’ 양자컴퓨터가 없었던 것. 따라서 양자계산은 튜링머신처럼 관념의 영역에 속했다. 양자계산의 원리를 잠깐 소개하면(물론 필자도 이해하지는 못하지만) 기존의 디지털컴퓨터가 ‘0 또는 1’이라는 정보단위 즉 비트(bit)를 바탕으로 작동하는데 반해 양자컴퓨터는 ‘0과 1’이라는 양자 비트 즉 큐비트(qubit)를 단위로 한다. 직관에 반하는 양자역학의 세계에서는 양자상태의 중첩이라는 현상이 있고 따라서 큐비트가 10개면 2의 10승, 즉 1024가지 계산이 동시에 이뤄지고 100개면 2의 100승이라는 어마어마한 경우의 수를 소화할 수 있다. ‘네이처’기사에 따르면 올해 41살인 디웨이브의 조르디 로즈 대표는 공대를 졸업하고 캐나다 브리시티컬럼비아 대학에서 이론물리학으로 박사학위를 할 때 기술벤처투자전문가인 해이그 패리스의 강의를 듣고 양자컴퓨터를 만들어야겠다는 열정에 휩싸였다고 한다. 1999년 패리스가 꿔준 돈 4059.50 캐나다달러(약 400만 원)로 컴퓨터와 프린터를 산 로즈는 디웨이브란 회사를 차리고 투자자를 모았고 이듬해 수백만 달러(수십억 원)를 확보해 연구팀 15곳에 투자해 양자컴퓨터의 가능성을 모색했다. 2001년 학술지 ‘사이언스’에는 미국 MIT 이론물리학센터 에드워드 패리 박사팀의 양자계산알고리듬에 관한 논 문이 실렸다.
    연구자들은 단열양자계산(adiabatic quantum computing)이란 방법을 쓰면 최적화문제(optimization problem)를 푸는데 기존 디지털컴퓨터보다 훨씬 뛰어나다는 걸 시뮬레이션으로 보인 것. 논문은 아래 문장으로“큰(상업적인) 양자컴퓨터는 아직 만들어지지 않고 있지만 이런 기기에 프로그래밍하는 양자역학의 법칙에서 유도된 규칙은 잘 성립돼 있다.” 단열양자계산이란 (물론 필자도 개념을 이해하는 데는 실패했지만) 먼저 각각의 큐비트가 독자적으로 계산을 한 뒤 서서히(즉 단열적으로) 이들 독립 큐비트들을 서로 상호작용하게 해 답을 찾아가는 알고리듬이라고 한다. 처음부터 큐비트들이 연동이 된 계산은 큐비트 숫자가 늘어날수록 에러가 누적돼 결과를 신뢰하기 어렵다고 한다. 그런데 단열양자계산법은 적용할 수 있는 계산 유형이 최적화문제 같은 종류로 제한돼 있다. 최적화문제란 주어진 여러 가능성 가운데 가장 효율적인 경로 또는 상태를 찾는 문제로 ‘순회 세일즈맨 문제(traveling salesman problem)’가 가장 유명한 예다. 즉 도시를 한 번씩 방문할 때 최단 경로를 찾아내는 문제로 도시가 늘어날수록 경우의 수가 지수적으로 늘어나기 때문에 디지털컴퓨터로는 한계에 봉착한다. 그런데 단열양자계산을 쓰면 여러 경로를 동시에 탐색하기 때문에 바로 답을 알 수 있다는 것. 변이 인산화효소의 구조를 밝히는 일도 최적화문제의 하나다(가장 안정한 구조를 찾는 것이므로). 로즈 대표는 각고의 노력으로 단열양자계산을 할 수 있는 양자컴퓨터를 만드는데 성공했고 2007년 16큐비트짜리 양자컴퓨터를 시연했다. 당시 칩은 미항공우주국(NASA)의 제트추진연구소에서 만들었다. 2011년 디웨이브는 마침내 첫 상용 양자컴퓨터인 128큐비트짜리 ‘디웨이브원(D-Wave one)’을 미국의 군수품제조회사 록히드마틴에 1000만 달러(약 110억 원)에 팔았고 올해 5월 512큐비트짜리 ‘디웨이브투(D-Wave Two)’를 구글에 1500만 달러(약 170억 원)에 공급했다. 사실 2011년 첫 양자컴퓨터를 팔았을 때만 해도 ‘희대의 사기극’이라는 말이 많았는데 그 뒤 이 기계가 진짜 양자계산을 한다는 실험결과가 속속 저널에 실리면서 양자계산의 진위논쟁은 사실상 끝났고 이제는 과연 이 괴물을 어디에 쓸 것인가가 관심사가 되고 있다. 매년 메모리를 두 배씩 높이겠다는(무어 법칙의 양자컴퓨터 버전!) 로즈 대표조차 “우리가 차세대 양자컴퓨터를 만들 수 있다는 건 절대적으로 확신하지만, 이걸 어떻게 작동해야 할지는 정말로 전혀 아이디어가 없다”고 고백하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 연구진들은 지난해 128큐비트인 디
    웨이브원을 이용해 아미노산 6개로 이뤄진 단백질의
    안정한 구조를 찾는 실험을 진행했다.한 실험 계산
    과정에서 각각의 큐비트(원)가 연결된 상태를 보여
    주는 도식이다. - 사이언스리포츠 제공
    그러나 걱정할 필요는 없어 보인다. 록히드마틴의 연구자들은 디웨이브원이 소프트웨어 코드를 읽고 버그가 있는지 여부를 ‘절대적으로’ 판단할 수 있 는 알고리듬을 개발했다. 하버드대 연구자들은 디웨이브원을 이용 아미노산 6개로 이뤄진 단백질의 가장 안정한 구조를 찾는 알고리듬을 개발했다. 미 암허스트대 컴퓨터과학자 캐서린 맥그로치는 최적화 문제 3가지를 갖고 디웨이브원과 16기가램 워크 스테이션으로 계산을 했는데 한 문제의 경우 디웨이브원이 0.5초 걸려 30분이 소요된 디지털컴퓨터보다 3600 배나 빨랐다고 한다. 한편 구글의 연구자들은 ‘이항 이미지 분류자(binary image classifier)’라는 알고리듬을 개발했다고 한다. 즉 이미지를 보고 그 안에 차가 있는지 없는지 컴퓨터가 판단할 수 있게 하는 것인데 디지털컴퓨터로는 극히 어려운 과제다. 구글이 구매한 양자컴퓨터는 실리콘밸리에 있는 NASA 에임스연구센터의 ‘양자인공지능실험실’에 설치될 예정 인데 구글은 주로 웹 검색과 음성인식기술 등에 활용할 예정이고 NASA는 은하충돌 시뮬레이션, 관측 데이터 분석 등에 적용할 것이라고 한다. 구글과 NASA가 각각 40%씩 작동 시간을 나눠 쓰고 나머지 20%는‘흥미로운’ 프로젝트를 제안하는 미국의 대학 연구진에게 할당한다고 한다. 로즈 대표도 인정하듯이 계산 과제를 양자컴퓨터가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프로그래밍하는 건 현재 무척 어려운 일이라고 한다. 디지털컴퓨터가 처음 나왔을 때 소수의 컴퓨터과학자들만이 코딩을 할 수 있었던 상황과 비슷하다. 그러나 오늘날은 조금만 공부하면 누구나 기본적인 코딩은 할 수 있듯이, 양자컴퓨터 프로그래밍도 빠르게 발전 하리라는 전망이 우세하다. 하지만 집채만한 디지털컴퓨터가 수십 년 만에 PC가 돼 개인기기가 된 것 같은 일은 양자컴퓨터에서 일어나지는 않을 것이다. 양자컴퓨터는 프로세서의 양자상태가 외부의 교란을 받으면 안 되기 때문에 우주에서 가장 차가운 절대온도 0.02도(영하 273.13℃)에서 작동해야 하기 때문이다. 디웨이브 크기가 방만한 것도 손톱만한 프로세서를 극단적인 저온으로 유지하기 위한 냉각시스템 때문이다. 다른 많은 일처럼 코딩도 실제 짜서 컴퓨터로 실행해보고 하면서 실력이 는다. 이미 양자컴퓨터가 나와 있는데 여전히 이론적인 알고리듬 연구만 해야 한다면 당사자도 꽤 답답할 노릇일 것이다. 필자가 가끔 모교에 가보면 여기저기 대기업들이 돈을 댄 건물들이 위풍당당하게 서 있다. 대학에서야 공짜로 지어준다니 덥석 받았겠지만 텅텅 비어있는 게 좀 돈낭비라는 생각도 든다. 차라리 양자컴퓨터를 한 대 사줘 우리 과학자들도 미래를 사는 경험을 하게 해주는 게 더 낫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Dongascience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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