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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명상록』

浮萍草 2013. 8. 25. 10:25
     ‘잘 사는 법’ 고민한 철학자 황제의 병영일기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 대리석 흉상(프랑스 툴루즈 생레몽박물관·170~180년께).
    러리 클린턴 전 미 국무장관도 그렇지만 빌 클린턴 전 미국 대통령은 엄청난 독서가로 유명하다. 대통령이 돼 1993년 백악관으로 입성할 때 4500여 권의 책을 가지고 입주했다. 그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의『명상록(Meditations)』을 1~2년에 한 번씩은 다시 읽는다고 자랑하기도 했다. 플라톤이『국가론』에서 주창한 철인정치(哲人政治)는 서구인들의 상상력을 자극했다. 클린턴이 『명상록』의 애독자가 된 이유도 일찌감치 철인 대통령을 꿈꿨기 때문인지 모른다. 버락 오바마 미 대통령에 대해서도 그가 철인 대통령인지 아닌지에 대해 잊을 만하면 심심치 않게 논의가 벌어진다. 서구 역사에서 철학과 정치를 융합한 원조는 단연 철인황제(哲人皇帝)로 불리는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121~180)다. 그는 40세에 로마의 황제(161~180 재위)로 즉위했다. 마르쿠스는 재위 기간의 반을 전장(戰場)에서 보냈다. 낮에는 행군을 하거나 적과 싸웠을 것이다. 『명상록』을 쓴 것은 아마 이른 아침이나 밤일 것이다. 당시 철학의 언어인 그리스어로 기록된『명상록』에는 원래 제목이 없다. 원제가 『스스로에게 보내는 [생각거리 혹은 글들](타 에이스 헤아우톤, [thoughts/writings addressed] to oneself/himself)』라는 설이 있지만 확실한 것은 아니다. 『생각(The Thoughts)』『성찰(The Reflections)』이라는 제목을 붙인 사람들도 있지만 영미권에서는 『명상록』이 대세로 자리 잡았다. 『명상록』은 오늘의 우두머리나 내일의 우두머리를 꿈꾸는 모든 이들이 꼭 읽어야 할 책이다. 어쩌면 『명상록』을 읽는다는 것은 부귀영화로는 더 바랄 게 없던 한 인간의 일기를 몰래 훔쳐보며 그 내면을 들여다보는 것과 같다.
    ㆍ“궁전에서도 훌륭한 삶을 살 수 있다”
    글로벌 기업인이나 노숙자나 내일의 먹거리 내일의 삶을 고민한다. 마르쿠스 또한 어떻게 사는 게 잘 사는 것인가 하는 문제를 두고 고민했다. 그는 황제보다는 선생님, 학자, 철학자로 사는 게 체질에 더 맞았다. 불행히도 그는 10대에 이미 차기 황제로 내정됐다. 황제라는 감투는 자신이 바라는 삶을 사는 데 최악의 조건이었지만 마르쿠스는 “궁전에서도 삶을 잘 살 수 있다”는 결론을 내렸다. 『명상록』은 화려하지만 아첨꾼과 모사꾼 역모를 꿈꾸는 자들이 득실거리는 궁전에서도 잘 사는 비법을 기록한 책이라고 볼 수 있다.
    『명상록』의 한글판(왼쪽·천병희 역)과 영문판(펭귄
    그레이트 아이디어스·Penguin Great Ideas판).
    『명상록』은 장(章·chapter) 분량에 불과한 권(卷) 12개로 구성됐다. 많은 사람들이 책을 사서 끝까지 다 읽지 못한다. 『명상록』은 첫째 권과 둘째 권의 첫 단락만 읽어도 충분히 남는 게 있다. 첫째 권은 마르쿠스가 오늘의 자신을 만들어준 모든 이들 조부모 부모 친구 스승 등에게 전하는 감사의 글 이다. 살다 보면 억울한 일 슬픈 일 섭섭한 일 괴로운 일 아쉬운 일도 많겠지만 인생에는 사실 감사할 일이 제일 많다는 것을 마르쿠스는 오늘을 사는 우리에게 일깨워주고 있다. 둘째 권의 첫 단락이 책의 핵심이다. 오늘을 시작하는 황제의 다짐이 정리돼 있다. 오늘도 황제 마르쿠스 아우렐리우스는 그에게 간섭하기 좋아하고 고마워할 줄 모르고 오만하고 정직하지 않고 질투심 많은 인간 군상을 만날 참이다. 한마디로 짜증나는 일이지만 마르쿠스는 둘째 권 첫 단락에서 자신에게 이렇게 위로하며 오늘을 대비한다. 나는 선함의 아름다움과 악함의 추함을 경험했다. 나는 선악을 판별할 수 있는 교육을 받았다. 나는 어려서부터 최고의 스승들에게 최고의 가르침을 받았다. 그러나 그들은 무지하다. 선과 악을 구별하는 방법을 배우지 못했다. 『명상록』 전체를 요약하면 대충 이런 내용이다. 우주 자연 하느님들(gods) 혹은 하느님(God)은 결국 같다.
    우주·자연·하느님의 본질은 이성이다. 하느님은 이성이기에 선(善)하다. 하느님은 또한 우리에게 자연법을 주셨고 선악을 구별하고 자연법을 이해하는 능력을 우리 인간에게 주셨다. 악행을 일삼는 자들은 태어나기를 ‘나쁜 놈’으로 태어났다기보다는 대부분 그런 이치를 모르는 사람들이다. 나는 우주 자연 하느님을 구성하는 일부분이기에 강하다. “견디어 낼 수 없는 일은 그 누구에게도 생기지 않는다.” 하느님의 뜻이 그러하기 때문이다. 그 누구도 내게 상처를 입힐 수 없다. 아픔을 줄 수 없다. “상처받았다고 생각하지 않으면 상처받지 않은 것이다.”
    ㆍ소크라테스와 함께 이교도시대 양대 성인
    만물은 하나다. 그런 의미에서 나를 해코지하려는 자는“또 다른 더 큰 나’다. 역지사지(易地思之)하면 내가 이해하는 세계가 확장되고 또 통일을 이룬다. 나보다 부족하다고 해서 나를 괴롭히는 원수라고 해서 남을 멸시하거나 피하거나 판단하는 것은 하느님의 가르침 자연법에 역행하는 것이다. 내가 원수를 위해 할 일은 그를 하느님의 올바름으로 이끄는 것이다. 하느님은 공정하다. 내가 하느님을 믿는다면 나는 내 원수도 공정하게 대해야 한다. 사람이건 사물이건, 내게 일어나는 그 어떤 일이건 있는 그대로 받아들여라. 내가 바라는 바에 따라, 내 뜻에 따라 받아들이면 안 된다. 세상과 세계를 있는 그대로 볼 수 있게 되면 세상과 세계를 초월할 수 있는 길이 열린다. 세상에는 내가 모르는 게 있다. 좋건 나쁘건 왜 어떤 일이 발생하는지 왜 어떤 사람이 이러저러하게 행동하는지는 알 수 없다. 알 수 없으니 판단하지 말라. 어떤 일이나 어떤 사람과 관련해 내가 모르는, 하느님만 아시는 뭔가가 있다. 내가 우주에 대해, 하느님에 대해, 세상에 대해 아는 것은 지극히 적다. 그러나 나는 안다. 하느님이 마련하신 자연의 질서에 맞춰 사는 게 잘 사는 것이요 역행하는 게 못 사는 것이라는 것을…. 내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태초부터 하느님이 일찌감치 준비한 일이다. 그러니 걱정할 필요 없다. 하지만 사람으로서 최선을 다해야 한다. 최선을 다한다는 것은 “무슨 일을 하든 그게 네 인생에서 마지막 하는 일인 것처럼 행하라”는 말에 순종하는 것을 의미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죽음을 포함해 아무것도 두려워하지 말라. 섭리에 따라 오늘 하고 있는 일에 만족하라. 그러면 나, 너, 우리는 모두 행복하게 살 수 있다. 상선벌악(賞善罰惡)을 기준으로 하는 사후세계에 대해서 나는 별다른 감흥이 없다. 나는 이 우주가 사라지면 또 새로운 우주가 탄생할 것이라고 생각한다. 영원히 그러할 것이다. 나는 영원히 반복해 살 것이다. 이처럼『명상록』에는 그리스도교나 힌두교, 불교의 내용과 비슷한 내용이 많다. 그리스도교의 관점과 상당 부분 유사한 이유는 그리스도교가 스토아철학을 취사선택해 흡수했기 때문이다. 마르쿠스는 소크라테스와 더불어 고대의 이교도 시대가 배출한 양대 성인이라는 평가도 받았다. 마르쿠스는 그리스도교에 대해 아는 바가 많지 않았고 아는 것에 대해서는 싫어했다. 그는 그리스도교인들을 앞장서서 박해한 일은 없으나 지방관들의 박해를 방조했다.
    Sunday.Joins Vol 337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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