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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 플라톤의 『향연』

浮萍草 2013. 9. 22. 10:56
     2400년 전 사랑에 대한 취중진담의 기록
    독일 화가 안젤름 포이어바흐(1829~80)가 그린 ‘향연’(1871~74). 베를린 구(舊) 국립미술관 소장.
    리말 사전이 정의하는 심포지엄은“특정한 문제에 대하여 두 사람 이상의 전문가가 다른 각도에서 의견을 발표하고 참석자의 질문에 답하는 형식의 토론회”다. 오늘날 딱딱하고 진지한 느낌을 주는 심포지엄은 ‘술잔치’를 뜻하는 그리스 말에서 나왔다. 심포지엄은 고대 그리스 상류 사회의 풍습이었다. 목적은 음주가무였다. 초대받은 사람들은 7~9개 소파에 기대어 만찬을 즐긴 다음 게임도 하고 피리 연주도 감상했다. 이들은 물로 희석한 포도주를 마셨다. 포도주 원액을 마시는 것은 천하다고 여겼다. 손님이 원하면 여흥을 위해 나온 여인들과 잠자리를 마련하기도 했다. 우리말에 “취담(醉談) 중에 진담(眞談)이 있다”고 했다. 고대 아테네 사람들도 술에 얼근해진 기운을 빌려 정치·철학·사랑 같은 다양한 주제를 놓고 허심탄회하게 토론을 벌였다. 역사상 가장 유명한 심포지엄은‘철학의 아버지들’중 한 명인 플라톤(기원전 427년께~347년)의『향연(饗宴·Symposion·Symposium)』(기원전 384년께)에 기록됐다. 때는 기원전 416년 겨울. 비극 작가 아가톤이 주신(酒神)인 디오니소스의 축제에서 벌어진 비극 경연에서 처음으로 우승한 것을 기념해 아테네 명사들을 집으로 초대했다. 손님 중에는 아리스토파네스처럼 작취미성(昨醉未醒)인 사람도 있었다. 의사인 에뤽시마코스는 취하도록 마시는 것은 건강에 나쁘다고 역설했다. 그래서 ‘오늘만은 각자 원하는 만큼 마시자, 강권하지 말자’는 쪽으로 의견이 가닥을 잡았다. 또한 여흥을 대신해 사랑의 신(神) 에로스(로마의 큐피드에 해당)를 찬양하며 사랑에 대해 논하자고 중지가 모였다.
    『향연』의 한글판(왼쪽·천병희 역)과 영문판(옥
    스퍼드 월드 클래식·Oxford World’s Classics) 표지.
    100% 허구일 가능성이 있지만 술잔치에 참가한 7명의 발표를 기록한 게 『향연』이다. 플라톤은 42개 대화편을 남겼는데(진짜는 25~28편으로 추정됨) 그중에서도 『향연』이 백미라는 평가가 있다. 『향연』이 대화편 중에서 문학적으로 가장 완벽하다는 것이다. 『향연』은 플라톤이 철학적으로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한 중기 작품이다. 초기 작품은 스승인 소크라테스, 말기 작품은 플라톤 자신의 사상에 상대적으로 더 가깝다.
    ㆍ배꼽은 한몸이던 연인들 분리한 흔적
    일반적으로 『향연』은 ‘플라토닉 러브(Platonic Love)’의 중심 문헌으로 이해된다. 반론도 있다. 고대 그리스 철학 전문가인 로빈 워터필드에 따르면 『향연』은 플라토닉 러브와 무관하다. 플라토닉 러브는 말 자체가 사랑에 대한 플라톤의 관점에 대한 몰이해에서 르네상스 시대에 생겨났다는 것이다. 『향연』의 주제는 사실 성애(性愛) 즉“남녀 사이에 일어나는 성적 본능에 의한 애욕(愛慾)”이다. 그리스인들에게 에로스는 사람을 송두리째 사로잡는 비합리적인 욕구였다. 플라톤의 대화편은 어떤 문제의 다양한 측면을 드러낸다.
    억지로 한 방향의 결론으로 몰고 가지는 않는다. 『향연』에서도 마찬가지로 사랑에 대한 의견이 다채롭게 쏟아졌다. 첫 번째 발표자 파이드로스는“사랑은 덕(德·virtue)에 도달하는 데 가장 큰 도움을 준다”고 했다. 파우사니아스는 “사랑에는 두 종류가 있다. 좋은 사랑과 나쁜 사랑, 영적인 사랑과 육체적인 사랑이 있다”는 의견을 내놨다. 파이드로스는 에로스가 신들 중에서도 가장 오래됐다고 했다. 반면 아가톤은 에로스가 가장 젊은 신이라고 주장했다. 에뤽시마코스는 사랑에 병자를 치유하는 힘이 있다고 역설했다. 아가톤에 따르면 사랑은 고대 그리스의 4대 덕목(cardinal virtues)인 정의·절제·용기·지혜의 원천이기도 하다. 기발한 아이디어도 나왔다. 파이드로스는“남자건 여자건 오직 사랑하는 사람들만이 연인을 위해 스스로를 희생할 준비가 돼 있다”며 연인들로 군대를 구성하면 전 세계를 정복할 수 있다고 주장 했다. 사랑이 군사력을 배가할 수 있다는 파이드로스의 구상이 허무맹랑한 것은 아니다. 현대의 국방력도 ‘전우애’와 ‘조국애’를 강조한다. 언젠가 누구나 들어본 적이 있는 이야기도 나온다. 『향연』에서 희극작가 아리스토파네스는 사람이 원래는 남녀 두 종류가 아니라 몸이 붙어 있는 남남·남녀·여여 커플 세 종류였다고 주장했다. 남남 커플은 태양에서, 여여 커플은 지구에서, 남녀 커플은 달에서 왔다. 신들에 대한 인간의 도전을 우려한 제우스신이 커플들을 분리했다. 배꼽이 바로 분리의 흔적이다. 그래서 사람은 본래 제 짝을 찾을 때까지 외롭다. 제 짝을 만나면 절대 떨어지려고 하지 않는다. 사람이 신들을 숭배해야 하는 이유는 신들이 사람을 다시 쪼갤 수 있기 때문이다.
    ㆍ소크라테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사랑”
    이런저런 이야기가 나오지만 『향연』의 중심 인물은 소크라테스다. 『향연』에서 소크라테스는 이렇게 말한다. “내가 아는 유일한 것은 사랑의 기예(技藝)다.” 자신이 무지하다는 것을 알기에 유일한 현자가 된 소크라테스가 한 말치고는 파격적이다. 대화편에서 소크라테스와 플라톤의 생각을 분리해 내는 것은 쉽지 않다. 플라톤이 『향연』에서 소크라테스의 입을 빌려 하고자 한 말을 요약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에로스는 신이 아니다. 신과 인간 사이의 전령이다. 에로스는 풍요를 아버지로, 결핍을 어머니로 삼아 태어났다. 사랑은 욕구의 한 종류다. 사람은 자신에게 결핍된 것을 갖고 싶어하고 가진 것을 유지하고 싶어한다. 행복을 목표로 하는 사람이 진정 사랑하는 것은 아름다움(Beauty)이라기보다는 선함(Goodness)이다. 사람은 아름다움에 끌리지만 사랑은 아름다움보다는 선함 덕(德)과 더 관계가 깊다. 사람은 선함을 일시적으로가 아니라 영원히 갖고 싶어한다. 뭔가를 영원히 갖고 싶어하는 것은 필멸(必滅)인 인간이 불멸(不滅)을 추구하기 때문이다. 필멸인 인간이 불멸을 얻는 방법은 두 가지다. 자식을 낳는 것과 영원한 예술·지식 같은 것을 낳는 것이다. 아이를 낳는 것보다는 도덕과 지식을 낳는 관계가 보다 숭고한 사랑의 관계다. 지혜를 사랑하는 철학자가 된다는 것은 지식이라는 자식을 낳는 것을 업으로 삼는 것이며 불멸에 동참하는 길이다. 『향연』은 이렇게 끝난다. 술에 취한 사람들이 향연장에 들이닥친다. 이를 핑계 삼아 손님들은 하나 둘 귀가하거나 잠을 청한다. 소크라테스는 밤새도록 희곡에 대해 논한다. 다음날 그는 밤이 될 때까지 취침하지 않고 깬 상태에서 철학 활동을 계속한다.
    Sunday.Joins Vol 341    김환영 기자 whanyung@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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