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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균들의 以夷制夷

浮萍草 2013. 8. 6. 22:34
    박테리아로 박테리아 제압한다
    배양된 유비저균 콜로니.원래 토양이나 하천에 사는
    환경 미생물인 유비저균 입장에서도 사람과 만나는 건
    일종의 사고다.서로 진화적으로 적응이 안 됐기 때문
    에 감염된 사람을 죽게 할 수도 있지만 결국 자신도
    죽기 때문이다. - 위키피디아 제공
    칠 전 전두환 전 대통령의 역할로 유명세를 탔던 탤런트 박용식 씨가 갑작스레 별세했다는 뉴스에 많은 사람들이 안타까워했다. 박씨는 올해 5월 영화 촬영차 캄보디아에서 3주 정도 머물렀는데 이 때 유비저균에 감염됐고 귀국 후 증상이 나타나 치료를 받다가 결국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수 일,수 년에 걸친 잠복기를 가진 유비저균(학명은 부르콜데리아 슈도말라이 Burkholderia pseudomallei) 은 열대지방의 흙이나 물에 살고 있는 박테리아로 호흡기나 상처난 피부를 통해 침투한다. 잠복기를 지나 본격적인 활동이 시작되면 코에 고름이 생기는 것 같은 증상이 나타나는데 이 질환을 비저균 (Psedomonas mallei)에 감염됐을 때 증상과 비슷하다고 해서‘유비저(類鼻疽,melioidosis)’라고 부른다. 일단 활동을 시작하면 유비저균은 빠른 속도로 전신으로 퍼져나가 결국 폐렴이나 패혈증 같은 심각한 증상을 일으킬 수 있는데 치사율이 40%나 된다고 한다. 지난 연말에는 ‘신바람’ 황수관 박사도 패혈증으로 사망했다. 호흡기 감염이 악화돼 패혈증으로 진행됐다. 두 사람 모두 평소에 건강하고 쾌활해 보였기 때문에 이런 갑작스런 죽음은 정말 뜻밖이다. 그런데 적지 않은 사람들이 패혈증으로 사망하는 것 같다. 필자 주변을 봐도 지난 1~2년 사이 친척 한 분(호흡기 감염)과 지인의 아버님(수술 중 감염)이 패혈증으로 유명을 달리했다. 입원하고 불과 1주일여 만에 사망했기 때문에 가족들로서는 사고로 고인을 잃은 것이나 마찬가지다. 21세기를 사는 현대인들은 암이나 심혈관계 질환으로 죽을까봐 걱정하지만 이처럼 병원균에 감염돼 급작스럽게 죽을 수도 있는 게 엄연한 현실이다.
    ㆍ병원균은 죽이지만 사람세포에는 영향 없어
    사실 감염으로 사망할 가능성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고 볼 수도 있는데, 바로 항생제내성병원균이 급증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달 4일에도 국내 13개 병원에서 신종 슈퍼박테리아에 감염된 환자 63명을 확인했다는 발표가 있었다. 소위 ‘마이신’으로 불리는 항생제를 먹으면 웬만한 감염성 질환은 치료가 되지만 이런 저런 항생제를 써도 듣지 않는 경우가 점차 늘고 있다는 게 문제다. 특히 만성질환이나 과로 고령 등으로 면역력이 취약한 사람들은 항생제내성병원균에 감염될 경우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 있다. 박용식 씨나 황수관 박사도 적지 않은 나이(둘 다 67세)에 과로가 겹쳐 면역력이 떨어진 게 병원균의 증식을 막지 못해 패혈증으로까지 진행된 원인 가운데 하나로 보인다. 기존 항생제에 내성을 보이는 병원균들이 늘어나면서 제약사들은 새로운 항생제를 개발하라는 압력에 시달리고 있지만 여의치 않은 일이다. 신약이 하나 나오려면 수많은 시험을 통과해야 하는데 십여 년의 시간과 수천억 원의 개발비가 들어간다. 이렇게 어렵게 만들어 현장에 투입해도 얼마 가지 않아 내성을 지니는 병원균이 또 나타나는 게 현실이다. 한마디로 화학자로서 박테리아는 사람보다 한 수 위인 셈이다. 이런 위기 상황에서 과학자들은 새로운 길을 모색하고 있는데 그 가운데 하나가 박테리아로 박테리아를 무찌르는 전략이다. ‘오랑캐로 오랑캐를 제압한다’는 뜻의 사자성어‘이이제이(以夷制夷)’가 글자그대로 적용되는 방법이다.
    박테리아를 희생 제물로 삼아 증식하는 박테리아인 브델로비브리오의 생활사.박테리아
    세포 안으로 침입해 증식한 뒤 박테리아를 깨고 나온다.- 위키피디아 제공
    미국 뉴저지의대 치의대 구강생물학과 다니엘 카두리 교수팀은 박테리아를 공격하는 박테리아 용병 두 종으로 병원균을 퇴치할 수 있는 가능성을 보여주는 연구논 두 편을 올해 5월과 6월 학술지‘플로스 원’에 잇달아 발표했다. 연구자들은 다른 박테리아의 세포 안에 침입해 파괴하는 박테리아인 브델로비브리오 박테리오보루스(Bdellovibrio bacteriovorus) 2가지 균주와 다른 박테리아의 세포 표면에 달라붙어 죽이는 박테리아인 마이카비브리오 에루기노사보루스(Micavibrio aeruginosavorus)가 인체에 감염하는 항생제내성 병원균들을 얼마나 효과적으로 퇴치하는지 조사했다. 즉 폐렴이나 패혈증 장질환 등 심각한 병을 일으키는 아시네토박터균(Acinetobacter baumannii 2가지 균주), 대장균(Escherichia coli, 5가지) 폐렴간균 (Klebsiella pneumoniae 5가지) 녹농균(Psedomonas aeruginosa) 슈도모나스 푸티다(Psedomonas putida) 등 5종 14가지 균주의 배양액에 위의 박테리아 용병을 투입한 뒤 병원균의 변화를 관찰했다. 참고로 유비저균은 이전에는 슈도모나스속(屬)으로 분류되기도 했다. 실험 결과 브델로비브리오 한 균주(HD100)는 14가지 병원균 모두에 대해 100분의 1~1만분의 1 수준으로 세포수를 줄이는 효과를 보였다. 델로비브리오 109J 균주도 13가지에 대해 효과를 보였다. 마이카비브리오의 경우 폐렴간균 5가지 균주와 슈도모나스 두 종에 대해서만 테스트를 했는데 5가지에 대해 효과가 있었다. 연구자들은 이 결과를 5월호에 실었다. 그런데 박테리아 용병이 병원균만 죽이고 인체에는 무해하다고 어떻게 장담할 수 있을까. 이 의문에 답하기 위해 연구자들은 먼저 인체각막윤부상피세포 배양액에 박테리아 용병을 넣고 관찰했다. 이 세포를 대상을 삼은 건 세균성 각막염 같은 눈질환을 치료하는데 박테리아 용병을 쓰는 상황을 가정했기 때문이다. 그 결과 이들 박테리아는 사람 세포를 이용해 증식하지 못했고 염증반응을 유발하지도 않았다. 다음으로 박테리아 병원성을 확인하는 모델 동물인 꿀벌부채명나방 애벌레에 박테리아 용병을 대량 투입했는데 역시 별다른 피해를 주지 않았다. 결국 용병들은 진핵생물은 공격하지 않는다고 6월호 논문에서 결론을 내렸다. 아직 사람을 대상으로 본격적인 임상을 시작하지는 않았지만 박테리아 용병은 항생제 내성 병원균을 통제하는 중요한 수단이 될 가능성이 있다.
    ㆍ성공률 90%에 이르는 분변이식
    클로스트리디움으로 인한 장내세균불균형을 분변이식으로 회복하는 메커니즘.항생제를 복용하면 다양한 장내미생물이 균형을 이루고 있는 상태(a)가 일시적
    으로 교란되지만(c) 회복된다.하지만 병원성 클로스트리디움이 우점하면 장내세균불균형 상태가 지속되면서 심각한 병증이 생긴다(f).이때 분변을 넣어 클로스트
    리디움의 우점을 무너뜨려 장의 항상성을 회복한다.- 플로스 병원체 제공

    학술지 ‘네이처’ 6월 13일자에는 박테리아를 이용하는 또 다른 치료법에 대한 흥미로운 뉴스가 실렸다. 미국 식품의약품안전처(FDA)가 ‘분변이식(faecal transplant)’에 대한 표준화 방법을 논의하기 위한 세미나를 했다는 소식인데 콩팥이식, 간이식은 들어봤어도 분변 이식 즉 다른 사람의 똥을 환자 장에 넣어주는 게 치료라니 말이 되는가. 다소 황당하게 들리겠지만 사실 분변이식에서 진짜 옮기고자 하는 건 분변에 섞여 있는 장내미생물이다. 즉 정상인의 장내미생물을 용병으로 들여와 장에 문제를 일으키고 있는 병원균을 무찌른다는 것. 미국의 경우 여러 병원에서 항생제내성이 있는 클로스트리디움 디피실리(Clostridium difficile)라는 세균을 통제하기 위한 마지막 방법으로 분변이식을 시행하고 있다고 한다. 클로스트리디움은 건강한 사람의 장에서도 발견되는 장내미생물의 하나로 평소에는 다른 미생물에 눌려 조용히 지내지만 병이나 수술로 고강도 항생제 처방을 받아 장내미생물 균형이 무너지면 기지개를 켠다. 그 결과 장내 면역계를 교란해 염증을 유발하고 설사 열 식욕부진 구토 등 다양한 증상을 일으킨다. 클로스트리디움에 대한 유일한 해결책은 반코마이신 같은 정말 독한 항생제를 쓰는 것인데 약을 쓸 때만 잠잠해지고 약을 끊으면 바로 재발하는 경우가 많다. 결국 환자는 기진맥진이 되고 그 결과 미국에서만 매년 수만 명이 이 병원균 때문에 목숨을 잃는다. 그런데 이렇게 고생하는 환자들에게 분변이식을 하면 놀랍게도 열에 아홉은 병에서 완전히 회복된다. 그러다보니 FDA에서 나서서 분변요법의 표준화 방안까지 논의하게 된 것이다. 기사를 보면 여러 병원에서 시행한 임상결과가 표로 정리돼 있는데 방법이 조금씩 다르다. 예를 들어 메이요클리닉에서는 대장내시경을 이용해 세상에 나온 지 6시간이 안 된‘신선한’ 똥 50그램을 환자의 장에 넣어주는데 40여명 가운데 90~95%의 성공률을 보였다. 캐나다 토머스루이의원은‘똥캡슐’을 만들어 환자 33명에게 복용시켰는데 100% 회복됐다고 한다. 그러나 이식에 앞서 매번 건강한 사람의 분변을 받는 것도 문제이고 또 만에 하나 분변 속에 다른 병원균이 있을지도 모르기 때문에 사실 이 방법으로 분변요법의 표준화를 이루기는 어려워 보인다.
    건강한 사람의 분변에서 분리한 장내미생물 33종을
    배양해 혼합한 합성분변 리푸플레이트를 개발한 캐나
    다 퀸즈대 엘레인 페트로프 박사. - 네이처 제공
    그래서인지 기사에서도 좀 더 가능성이 있어보이는 캐나다 퀸즈대 엘레인 페트로프 박사팀의 연구를 사진과 함께 부각시켰다. 이들은 분변 자체를 쓰는 대신 건강한 사람의 분변에서 얻은 장내미생물 33종을 각각 배양해 혼합한 합성분변 ‘리푸풀레이트(RePOOPulate)’를 개발했다. 클로스트리디움 감염으로 위독해진 환자 두 명에게 합성분변을 넣어 회복시킨 결과를 지난 1월 학술지 ‘마이 크로바이옴’에 발표했고 현재 30명을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진행할 계획이라고 한다. 시장에 나와 있는 수많은 항균제품을 보면 여전히 우리 주변에서 미생물을 완전히 없애버리는 게 건강한 삶을 유지하는 길이라고 믿는 사고방식이 주류인 것 같다. 그러나 이런 전략에 30억 년 역사를 갖는 박테리아가 항복할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인체는 미생물들이 거주하는 생태계라는 관점이 오히려 제대로 된 해결책을 찾는 출발이 아닐까. 여우가 사라지고 토끼가 들끓어 황폐해진 숲을 회복시키겠다고 토끼사냥에 나서느니 여우를 들여와 알아서 생태계 균형을 맞춰가게 하는 게 고생을 덜 하는 고수의 전략으로 보인다.
    Dongascience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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