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달팽이 박사의 생명 이야기

면도날 위를 거침없이 가는 달팽이, 어떻게 다치지 않을까?

浮萍草 2013. 7. 7. 13:09
    기 'why@chosun.com'이라는 전자 우편주소가 있다고 치자. 
    이메일의 @를 흔히'달팽이(snail)'라거나 '골뱅이'라 부르는데 영어로는'at(앳)'이나 'to(투)'로 읽는다지.
    그 녀석의 껍데기 꼬임이 고작 1층밖에 되지 않으니 갓 알에서 깨어난 새끼 달팽이에 지나지 않는다. 
    다 자란 어미 달팽이는 5~6층이 되니 말이다.
    그리고 주소의 'why'가 참 마음에 든다. 
    '왜?'란 '새롭고 신기한 것을 좋아하거나 모르는 것을 알고 싶어 하는 마음'인 호기심(好奇心)을 뜻하고 호기심은 동심(童心)이요 동심은 시심(詩心)과 통하며 그것
    들이 다 과학심(科學心)이라 그렇다. 
    과학을 하려면 철부지의 본성과 시인의 심안(心眼)을 가져야 한다는 말씀.
    
    뉴시스

    본론으로 돌아와, 옛날에는 달팽이를 '와우(蝸牛)'라 했는데 蝸는 달팽이, 牛는 소라는 뜻으로 행동이 소처럼 느릿느릿하다는 의미가 들었다. 그건 그렇다 치고 우리말 '달팽이'는 어디서 왔담? 어근(말 뿌리)을 찾을 수 없으니 나름대로 생각해 본 것이 밤하늘에 비치는 둥근 '달'과 땅바닥이나 얼음에 지치는 팽글팽글 돌아가는 '팽이'를 닮아 붙여진 이름이리라. 하늘(天)의 달과 땅(地)의 팽이, 둘의 짝 지움이 썩 마음에 든다. 그리고 느림보 달팽이의 어눌한 품새에 어쩐지 살가운 정감이 가고 기꺼이 만져보고 싶은 마음이 일며 둥그스름한 됨됨이 탓에도 절로 마음이 끌린다. 무엇보다 타고나면서 집을 가지고 나와 주택 부금 안 넣어도 되는 달팽이 네가 무척 부럽다. 달팽이는 연체동물(軟體動物) 중 배 바닥을 발삼아 기어다니는 복족류(腹足類)로 땅에 사는 패류의 한 종인데 신기하게도 뿔(더듬이 또는 촉각)이 넷이다. 위에 한 쌍의 큰 더듬이가 있고, 아래에는 작은 더듬이 둘이 있다. 위로 곧추세워 잇따라 설레설레 흔드는 큰 더듬이 끝에 작고 새까만 달팽이 눈이 들었으나 물체는 보지 못하고 오직 명암만 분별한다. 그리고 아래 작은 더듬이는 수굿하게 떨어뜨리고 쉼 없이 간들거리면서 냄새나 기온, 바람, 먹이를 알아낸다. 장난삼아 달팽이 눈을 손끝으로 살짝 건드려 보면, 얼김에 눈알이 긴 더듬이 안으로 또르르 쏙 말려 들어갔다가 이내 곧 나온다. 그래서 민망스럽거나 객쩍고 겸연쩍은 일을 당했을 때 "달팽이 눈이 되었다"고 한다. 역할이 다른 더듬이는 각자 제 몫을 하기 위해 이리저리 움직인다. 사람들은 이 모습을 보고 더듬이끼리 다투는 것으로 잘못 알고 와우각상쟁(蝸牛角上爭·달팽이 뿔 위에서 싸움)이라는 말을 썼다. 별것도 아닌 것을 가지고 집안끼리 다투는 것을 일컫는다. 우리의 속귀에도 달팽이를 빼닮은 '달팽이관'이 있다. 아무튼 달팽이나 껍데기가 없는 민달팽이는 기어간 자리에 흰 발자취를 남긴다. 근육 발로 운동하는 달팽이는 바닥이 꺼칠하거나 메마르면 움직임이 편치 못하다. 그래서 발바닥에서 점액을 듬뿍 분비하여 스르르 쉽게 미끄러져 나가는데 그것이 말라 족적으로 남는다. 그리고 끈적끈적한 진이 강력 본드처럼 재빨리 굳어지기에 달팽이가 넌지시 면도날 위를 다치지 않고 거침없이 타고 넘기를 한다. 달팽이는 느리지만 조심스럽다. 더듬이를 안테나 삼아 끊임없이 주변 환경을 감지하면서 움직인다. 달팽이가 살아가는 방법이다. 요술쟁이, 꾀보 달팽이! 굼뜨지만 꾸준한 느림보 달팽이를 닮아보리라! 꾸준함은 영재를 이긴다. 첫 인사를 이렇게 필자의 전공인 달팽이 이야기로 갈음하는 바이다.
    Chosun     권오길·강원대 명예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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