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기생충 이야기

의사도 아니고 환자 부인이 진단한 선모충

浮萍草 2013. 8. 5. 00:00
    의사도 아니고 환자 부인이 진단한 선모충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
    2011년 1월 세배를 드리러 어머니댁에 가 있던 나는 막간의 시간을 이용해 이메일을 확인했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한통의 이메일이 도착했다. 남편이 열흘 전부터 얼굴이 붓고 근육이 아팠는데 병원에서는 도무지 진단을 내리지 못한다는 내용이었다. 놀라운 말은 다음에 이어졌다. 남편에게 확인한 결과 회사사람들 7명도 같은 증상에 시달리고 있었고 그들은 한달쯤 전 회식자리에서 멧돼지회를 같이 먹었다는 사실도 알아냈다. 그 후 부인이 인터넷을 검색한 끝에 필자가 블로그에 올려놓은 글을 보고‘선모충’에 걸렸다는 자체 진단을 내렸다는 거다. 그러니까 그녀가 내게 이메일을 보낸 건 자신이 내린 진단이 맞는지 확인해 달라는 거였다. 나중에 혈액검사를 해본 결과 그 환자들은 모두 선모충에 걸렸다는 게 확인됐고 회충약을 닷새씩 먹은 후 대다수가 정상으로 돌아갔다. 선모충은 야생멧돼지나 오소리를 먹고 감염되는 기생충질환이다. 기생충은 사람 몸에 들어가 새끼를 낳는데 그것들이 주로 근육을 침범해 근육통을 비롯한 각종 증상을 일으킨다.
    멧돼지는 혼자 먹는 게 아니니 걸렸다 하면 여러 명이 동시에 감염되는데 1997년 처음 발생한 이후 지금까지 딱 6번의 집단발병이 있었으니 의사들이 잘 모르는 것도 무리는 아니다. 이 기생충의 잠복기는 2~3주. 하지만 얼굴이 부은 사람한테 ‘어제 뭐 먹었어요?’라고 물어보기는 쉬워도 ‘3주 전에 뭘 드셨죠?’라고 묻기가 쉽지는 않을 것이다. 게다가 선모충은 이 병을 의심해서 항체검사를 하거나 근육을 생검해 현미경으로 기생충을 관찰하지 않으면 진단이 불가능하니 모르긴 해도 1997년 이전에도 환자가 발생한 적이 있지 않았을까 싶다. 유럽과 미국·일본에서는 환자가 수시로 발생하고 이웃 중국은 선모충의 최대발생국인지라 우리나라에선 진단을 못해 그동안 환자가 없었다는 게 더 신빙성이 있다. 첫 번째 집단발병이 논문으로 나간 이후 선모충에 대한 경각심이 높아지긴 했지만 막상 환자가 발생했을 때 선모충을 의심하는 경우는 거의 없다. 희귀한 질환을 잘 진단해야 명의가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선모충에 대해 의사들이 좀 더 신경을 써주면 좋겠다. 위 사례에서 특이한 대목은 의사가 내리지 못하는 진단을 일반인인 환자의 부인이 내렸다는 점이었다. 병명을 몰라 답답한 마음에 분노의 검색질을 하던 부인이 내 블로그의 선모충 얘기를 보고 얼마나 반가웠을까를 생각하니 혹시나 해 블로그에 선모충 얘기를 써 놓은 나 자신이 대견했다. 블로그에 글을 쓰는 건 설사 그게 전공에 관련된 것이라 해도 시간낭비로 간주될 수도 있다. 논문점수로 인정되는 것도 아니고 기타 학교생활을 하는 데 있어 별반 도움이 안되니 말이다. 게다가 요즘은 의사가 뭐라고 말을 해도 환자가 “인터넷에는 그렇게 안돼있던데요?”라며 따지는 세상이니 블로그에 의학지식을 써놓는 게 꼭 좋은 일만은 아닐 수 있다. 하지만 그 부인이 내 블로그를 보고 진단을 했고 그 다음에 발생한 선모충환자도 내 블로그를 보고 스스로 진단을 해냈으니 블로그를 열심히 한 보람을 느낀다. 아울러 한 가지 당부하자면 남들이 잘 안 먹는 음식을 먹을 때는 가급적이면 익혀서 드시라는 것. 멧돼지가 그렇게까지 이상한 음식은 아니긴 해도 불이 사용된 지 100만년도 더 지난 마당에 멧돼지를 익히지 않고 먹을 필요가 뭐가 있단 말인가? 남들이 안 먹는 음식에는 위험한 기생충이 도사리고 있을 수 있다는 점을 명심하시길.
    K-Health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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