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기생충 이야기

눈을 멀게 하는 기생충

浮萍草 2013. 8. 4. 22:28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
    대학 교수
    녀가 등산을 갔다. 같이 밥도 먹고 술래잡기도 하며 재미있는 시간을 보냈는데 한 달쯤 지난 뒤 여자가 갑자기 길거리에서 쓰러진다. 눈이 안 보인다는 것. 황급히 병원에 간 두 사람은 의사로부터 충격적인 얘기를 듣는다. “안타깝지만 왼쪽 눈이 거의 실명상태입니다.” 작년 9월 방영된‘위기탈출 넘버원’의 한 꼭지다. 여자가 왼쪽 눈의 시력을 잃은 이유는 동양안충 때문이었다. 등산을 하면서 눈물을 먹고 사는 초파리가 여자의 눈에 맞닿았고 그 순간 초파리의 입에 있던 동양안충의 유충이 들어갔다는 설정이었다. 동양안충은 곧 어른으로 자라 각막에 손상을 가져왔고 그게 여자의 실명을 유발했다는 것. 하지만 실제로 동양안충이 사람의 눈을 멀게 하는 일은 극히 드물다. 사람은 눈이 작아 동양안충의 좋은 숙주가 아닐뿐더러 눈이 매우 큰 배우 이나영조차 소나 사슴에 비하면 어림도 없다. 게다가 사람은 극도로 예민해 눈에 먼지 하나만 들어가도 금방 알아차리니 동양안충이 마음 편히 살 수가 있겠는가?
    그래서 동양안충은 사람과 달리 눈 안에 막이 하나 더 있는데다 아무리 많은 수가 서식해도 뺄 방법이 없는 개나 소 등을 주요숙주로 삼는다. 설령 사람이 동양안충을 오랫동안 방치한다 해도 각막에 손상이 약간 있을 뿐 실명까지는 아무래도 무리다. 우리나라에도 많은 환자가 보고돼 있지만 시력저하를 일으킨 적은 한 번도 없으니까. 그보다는 소간을 먹고 걸리는 개회충이 시력손실의 원인이 되는 경우가 훨씬 많다. 개회충은 종숙주가 개인지라 사람에서 성충이 되지 못하며 유충이 눈을 침범해 망막박리 등을 일으키는 경우가 얼마든지 있을 수 있다. 실제로 개회충에 감염된 사람들이 병원에 가는 이유 중 상당수가 갑작스러운 시력손실이니 동양안충보다는 개회충을 훨씬 더 조심해야 한다. 하지만 이 개회충도 회선사상충에 비하면 아무 것도 아니다. 우리나라에 없어서 다행이지만 회선사상충은 트라코마라는 균에 이어 감염으로 인한 시력손실 2위를 차지하고 있는 무서운 기생충이다. 주로 사하라사막 남쪽의 아프리카에 서식하는 이 기생충은 먹파리라는 흡혈파리를 통해 사람에게 전파된다. 특이한 것은 회선사상충이 곧바로 눈에 침범하는 게 아니라는 점. 이 기생충은 사람의 피부에서 주머니를 만들고 살면서 그 안에서 성충이 된다. 이때만 해도 별 증상이 없어 안심하지만 곧 비극이 찾아온다. 회선사상충이 낳은 자식들이 이곳저곳을 헤매다 사람의 눈까지 침범하게 되는데 그 결과 각막이 혼탁해진다. 어처구니없는 것은 회선사상충에 대해 우리 몸이 만든 항체가 엉뚱하게도 망막을 공격함으로써 시력손실을 가속화한다는 것이다. 2010년 보고에 따르면 이런 식으로 시력을 잃는 이가 27만명이나 됐다고 하니 정말 무서운 기생충이 아닐 수 없다. 소위 ‘강가의 실명’으로 알려진 이 병으로 인해 아프리카에서는 어린 아들이 막대기를 이용해 눈이 먼 아버지를 인도하는 것이 흔한 풍경이 됐으며 먹파리가 사는 강 유역에는 아이가 어른을 막대기로 끄는 동상을 세움으로써 사람들에게 경고하고 있다. 물론 회선사상충은 억울할 수도 있겠다. 자기가 일부러 그런 게 아니라 자기 아이들이 그런 거니까. “애들이 천방지축이라 그런 걸 날더러 어쩌란 말이냐?”고 항변하는 회선사상충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진다. 하지만 의도가 어쨌든 간에 그 유충이 회선사상충의 자식인 것은 틀림없는 사실이고 회선사상충은 그에 따른 책임을 져야 한다. 그 책임은 당연히 ‘멸종’이다.
    K-Health     서민 단국대학교 의과대학 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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