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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계를 넘어

浮萍草 2013. 6. 14. 09:47
    산 정약용은 공대 출신인가? 수원화성을 설계했다기에 하는 질문이다. 
    우문(愚問)이다. 
    요즘같이 전공이 구분된 사회에 갇힌 사람의 발상이다. 
    그러긴 해도 당시에는 대체로 기술을 천하게 여겼으니 대다수 식자층은 요즘 학제로 치자면 전형적인 문과 학도였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어떻게?                          
    18세기 실학자들은 문과적 학문 이외에도 천문학, 수학 등 과학에 관심을 기울였다. 
    담헌 홍대용은 나주에서 나경적과 함께 혼천의(渾天儀)와 자명종을 만들기도 했다. 
    성호 이익은 서양 역법이 우수하다고 평가하면서 말했다. 
    “무릇 기기(器機)와 수리(數理)의 법은 후대에 나온 것이 더 공교하다. 
    비록 성인의 지혜라도 미진한 바가 있으니 후세 사람이 늘리고 고침으로써 마땅히 오래될수록 더욱 정밀해진다.” 
    다산도 ‘기예론’에서 말했다. 
    “사람이 모일수록 기술은 더욱 정교해지고 세대가 내려올수록 기술은 더욱 공교해진다.” 
    공간적으로 넓을수록, 시대가 후대일수록 기술 수준은 높아진다는 것이다. 
    기술 발전을 위해 개방이 필수임을 알 수 있다. 서양의 비약적 기술 발전도 오랫동안 외부 세계를 탐험한 결과였다.
     정조가 31세의 젊은 다산에게 수원화성 설계라는 중책을 맡긴 이유를 두 가지 들 수 있다. 
    첫째, 2~3년 전 한강 배다리 설치과정에서 다산의 능력을 검증한 바 있다. 
    둘째, 수원화성은 새로운 개념의 성곽이길 바랐다. 
    다산은 이에 부응하여, 조선과 중국 성제의 장단점을 종합 검토하고 서양의 과학기술을 활용한 계획안을 내놓았다. 
    해답은 한역서학서를 포함한 책들에 있었다.
    요즘 학제적 연구가 강조되고 있다. 
    어디 그뿐이랴. 
    통섭과 융합이 화두다. 
    “창의성이란 연결하는 것일 따름이다”는 스티브 잡스의 말도 회자된다. 
    연결이란 이종(異種)의 결합을 의미한다. 
    이를 위해 내 평소 영역을 넘어 다른 영역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가령 문과 전공이지만 정보기술(IT)에 관심을 가져야 하고 이과 전공이지만 인문학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학자들이 외국어에 관심이 높았다는 점도 주목된다. 
    외국어는 경계를 넘어 다른 세계를 직접 견문하는 데 유용한 수단이다. 
    담헌은 중국에 갈 기회를 기대하며 틈틈이 중국어 공부를 했다. 
    초정 박제가는 통역을 역관에게만 맡겨놓을 수 없고 사대부가 중국어뿐 아니라 만주어·몽골어·일본어도 모두 배워야 한다고 했다.
     담헌이 압록강을 건너면서 자신의 꿈을 노래했다. 
    “요동 들판을 날아 건너 산해관 잠긴 문을 한 손으로 밀치도다.” 
    경계 파괴로 인한 지각변동은 서서히 혹은 갑자기 다가온다. 
    중심을 잡으면서도 경계를 넘어 연결하는 것! 바야흐로 이것이 활로다.
    
    Khan         김태희 실학21네트워크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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