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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조의 독서법

浮萍草 2013. 6. 3. 07:00
    산 정약용은 방대한 저작을 내어 ‘저술의 달인’이라 할 만하다. 
    그 비법은 무엇일까? 
    아들이 양계를 한다는 소식을 듣고 보낸 편지에서 말했다. 
    독서하는 사람이라면 양계도 뭔가 달라야 한다. 
    농서(農書)를 잘 읽고 좋은 방법을 골라 시험해 보아라. 
    나아가 ‘계경(鷄經)’을 짓도록 해라. 
    그런데 저서 방법은 “여러 책에서 닭에 관한 설을 가려 뽑아 차례로 모으면” 되었다. 
    책 만들기 참 쉽다.
    책을 읽으면서 내용을 가려 뽑아 옮겨 적는 것을 초서(초書) 또는 초록(초錄)이라 한다. 
    다산은 두 아들에게 초서의 중요성을 누차 강조했다. 
    문제는 가려 뽑는 기준이다. 
    이것은 저서의 목차로 구체화된다. 
    “무릇 초서의 방법은 반드시 먼저 내 뜻을 정해 내 책의 규모와 목차를 세워야 한다. 
    그런 후에 뽑아내어야 일관된 묘미가 있게 된다.”
    다산은 아예 아들들에게 목차를 마련해 주기도 했다. 
    만약 목차에서 벗어나지만 꼭 채취할 내용이 있으면 어찌할까? 
    “따로 한 책을 갖추어 얻는 대로 기록해야 힘을 얻을 곳이 있게 된다. 
    물고기 그물을 쳐놓았는데 기러기가 걸렸다면 어찌 버리겠는가.”
    다산은 이것을 누구에게 배웠을까? 정조가 주목된다. 
    정조의 어록인 <일득록>에는 독서 자세 독서와 토론 독서기 쓰기 등 정조의 여러 독서법이 나온다. 
    초록이 소모적이라는 신하의 말에 대해“나는 책 보는 벽(癖)이 있는데 한 질을 다 읽을 때마다 초록해 둔 것이 있어 한가한 때에 
    때때로 펼쳐보는 것이 재미가 있다”고 답했다.
    초록은 정조가 선호한 독서법이었다. 
    “선현들도 모두 초집(초集)에 힘을 기울였다.” 
    “나는 평소에 책을 보면 반드시 초록하여 모았다.” 
    “손수 써서 편집한 것이 수십 권이다.” 
    “사실의 요점을 파악하고 문장의 정수를 모으는 박문약례(博文約禮)의 공부다.” 
    “초록을 해야 오래도록 수용(受用)할 수 있다.”
    초록은 읽은 내용을 내 것으로 만드는 적극적 독서법이었다. 
    여기서 편집이나 비평을 거쳐 한 단계 더 나아가면 저서가 되었다. 
    다만 초록하여 취한 부분과 자신의 입론이 뒤섞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 
    다산이 지적했던 대목인데 오늘날엔 표절문제가 된다.
    초록은 가려 뽑는 기준이 문제다. 
    정조는 몇몇 선집을 말하면서“취사선택에 각각 권형(權衡,저울)이 있었으니 얕은 식견으로 함부로 논의할 수 있는 바가 아니라”고 
    했다. 
    다산은,“초서의 방법은 내 학문에 먼저 주된 바가 있어야 하며 그런 후에야 권형이 마음에 있어 취사가 어렵지 않게 된다”고 했다. 
    결국 초록은 식견과 자기중심이 있어야 잘할 수 있는데 이 또한 상당한 독서와 삶의 체험을 통해 얻어질 것이다.
    
    Khan    김태희 실학21연구소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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