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생로병사

친절에 갇혀 권위까지 잃어 가는 병원들

浮萍草 2013. 4. 24. 10:58
    면회객 아무 때나 우르르 몰려오고 휴일이면 병실서 요란한 종교 행사
    감염 우려되고, 심리 안정 해쳐도 병원들 친절에 갇혀 그대로 방치
    항공 안전 위해 공항 검색 엄격하듯 환자 안전 위해 통제와 교육 나서야
    일러스트=이철원 기자
    즘 병원에 가면 참으로 친절하다는 생각이 든다. 발레파킹을 해주는가 하면, 병원 정문에 직원이 서 있다가 자동차 문도 열어 준다. 로비에 카페를 차려 놓고 커피,음료수를 나눠주는가 하면 엘리베이터 앞에 유니폼 여성이 층별 안내도 해준다. 병원이 마치 백화점이나 호텔 같다. 딱딱하고 성의없는 의료진을 마주칠 때도 있지만 예전보다 많이 친절해졌다 는 느낌이 든다. 여기까지는 좋은 현상이다. 문제는 그다음이다. 친절이 지나쳐 병원의 권위까지 잃어 가는 것은 아닌가 싶다. 우선 병문안 행태부터 보자. 병원은 환자의 안정과 외부 세균 유입을 막기 위해 으레 면회 시간과 면회객 규모에 제한을 둔다. 하지만 이게 잘 지켜지지 않는다. 면회객 편의대로 밤낮을 가리지 않고 아무 때나 찾아와,절대 안정이 필요한 환자를 앉혔다 눕혔다 하는 일이 다반사이다. 면회객의 태도도 문제지만 이를 놔두는 병원도 문제다. 지방 환자는 버스를 대절해 마을 주민 수십 명이 병실을 찾는 경우도 있다. 면회객 대부분이 병실 입구에 비치된 알코올 젤리로 손을 닦지 않고 환자의 몸과 주변 물건을 만진다. 음식물을 싸 와서는 그게 질병 관리에 도움이 되는지 안 되는지 아랑곳하지 않고 권하는 일도 잦다. 여럿이 쓰는 병실의 공동 냉장고에는 각기 가족이 갖고 온 음식물이 수북이 쌓인다. 이런 행동들은 자칫 병원 감염이나 식중독 사고로 이어질 수 있다. 그런데도 병원은 통제에 적극적으로 나서지 않는다. 면회객 열 사람이 오면 처방 열 개가 나오는 것이 우리의 병문안 문화다. "뭘 달여 먹으면 금세 회복된다" "○○버섯을 먹고 감쪽같이 나았다"
    "어느 병원 어느 의사가 용한데 왜 그리로 옮기지 않느냐"는 등 각자의 '비방(秘方)'을 꺼내 놓는다. 가뜩이나 몸과 마음이 위축된 환자와 보호자를 혼돈에 빠뜨린다. 이는 투병 의지를 북돋우는 데 도움이 되지 않는다. 오히려 환자에게 해로울 수 있다. 환자가 지금 받는 치료를 전적으로 신뢰하지 않으면 치료가 제대로 될 수 없다. 의료진도 이런 병문안을 달가워할 리가 없다. 병원이 병문안 시 주의해야 할 내용과 행동 요령을 담아 면회객들에게 안내문을 나눠주고 경각심을 심어주면 좋으련만 환자 가족과 면회객에 대한 교육은 눈에 띄지 않는다. 휴일이 되면 병실은 교회가 되고 사찰이 된다. 여럿이 함께 쓰는 입원실에서 찬송가,찬불가가 여기저기서 들린다. 어떤 목사님은 교회 위세를 과시하듯 신도를 대거 데리고 와서는 병실 밖까지 울리는 기도를 한다. 다른 종교를 믿거나 무(無)종교인 환자들이 이를 피해 복도를 서성이게 된다. 불교 환자를 위한 목탁 소리가 복도에 널리 퍼지기도 한다. 때론 다른 병실에 들어가 포교 활동을 하거나 막무가내로 기도를 해주겠다고도 하는 경우도 있다. 요란한 종교 문안으로 병동 간호사들이 업무에 집중할 수 없다고 하소연할 정도다. 선진국 병원들은 공식적으로 운영되는 원내 종교 시설 안에서만 종교의식을 가지게 한다. 외국인 관광객들에게 친절해야 한다고 경복궁을 아무 때나 아무 곳이나 맘대로 들락날락하게 하진 않는다. 더욱이 병원에서는 환자 주변의 사소한 행동 하나가 환자를 위험에 빠뜨리는 경우가 많다. 무심코 먹인 물 한 모금으로 수술 후유증이 도질 수 있고 부주의로 살짝 흘린 바닥 물기로 환자가 낙상(落傷)에 이를 수 있다. 베개 위치에 따라 환자 호흡이 달라질 수 있으니 의료진 허락 없이 원래 잡아놓은 베개 위치를 맘대로 바꿔선 안 된다. 투약하러 들어온 의료진에게는 업무가 끝나기 전까지 투약 이외의 것에 말을 걸어서는 안 된다. 자칫 집중력을 떨어뜨려 투약 오류의 빌미가 된다. 이처럼 병원은 모든 가능성을 염두에 두고 환자를 안전하게 보호해서 병을 낫게 해야 하는 책무가 있다. 그것이 병원과 호텔이 다른 이유다. 지금은 친절이 과해서인지 환자 가족과 주변인에 대한 교육과 통제가 너무 느슨하다. 의학적 이유로 금지해야 할 것들도 그대로 놔둔다. 우리는 공항에서 순순히 보안 검색에 따른다. 그것은 엄격한 룰이기도 하고, 궁극적으로는 승객의 안전을 위한 것이기도 하다. 철저한 검색은 순간 불편하지만 그것을 통과한 이후에는 되레 안심을 준다. 이렇게 철통같이 보안 검색을 하는데 무슨 일이 나겠나 하는 생각이 들기 때문이다. 병원도 마찬가지다. 환자 안전을 위한 진료 체계를 업그레이드 하고 아울러 환자와 그 주변을 적절히 통제하고 교육하는 시스템을 갖추면 병원에 대한 믿음은 더 커질 것이다. 이는 병원을 일상처럼 이용하게 되는 고령 장수 사회에서 우리 모두가 참여해야 할 일이기도 하다. 병원이 친절해야 한다고 해서 본연의 권위마저 잃으면 환자가 위험해진다.
    Chosun         김철중 조선일보 의학전문 기자,의사 doctor@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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