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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남부군’ 고창 선운사

浮萍草 2013. 5. 22. 07:00
    이념 갈등으로 얼룩진 한국인의 한을 담고…
    6.25 한국전쟁으로 무수히 사라진 중생의 삶 눈덮인 산사에 내려놓고…
    한국전쟁의 아픔을 간직한 영화 ‘남부군’의 촬영지 고창 선운산에 하얀 눈이 쌓여 있다. 희생자들의 넋을 기리며 손을 모아 본다.

    영화 ‘남부군’ 마지막 장편. 주인공 이태가 울부짖고
    있다.
    1950년 9월 ‘조선중앙통신사’ 종군 기자로 전주에서 일하고 있던 이태 (안성기 분)는 조선 노동당 유격대‘남부군’에 합류,빨치산이 된다. 지리산과 소백산 등을 배경으로 휴전협정이 체결된 이 후 까지도 이들은 산 속에서 활동했다. 1990년 개봉한 정지영 감독의‘남부군’은 종군 기자였던 이태의 눈을 통해 사랑과 이념 그리고 동족간 전쟁의 허무함을 이야기한다. 이 영화는 제 11회 청룡영화상에서 감독상,남우주연상,남우조연상을 수상 했다. 깊은 겨울 이태의 소대는 악담봉 전투에 참여한다. 그곳에서 시인 김영(최민수 분)을 만난 그는 전쟁의 무모함을 토로한다. 계속되는 전투에 쫓긴 남부군은 지리산에 밀려와 이현상 사령관을 만나고, 이태는 김희숙 대원(이혜영 분)의 용감성에 놀란다. 이때부터 이태는 정치부 소속의 정식당원이 된다. 휴전소식이 들리는 가운데 대원들 분위기는 어수선해지고 남부군은 추위와 굶주림으로 궁지에 몰린다.
    생존을 위한 필사의 투쟁,쇄진해진 사기로 위기에 놓인 남부군. 급기야 최후의 발악과 같은 전투가 벌어지고 대열에서 낙오된 이태는 눈속을 헤매고,그의 기나긴 빨치산 투쟁도 막을 내리게 된다.
      
    ▲ (좌)보물 제278호 금동지장보살좌상. 박물관에 모셔져 있다.▲ (중) 선운사 입구에 세워져 있는 ‘남부군’촬영기념비▲ (우)선운사
    야경

    영화 ‘남부군’의 대다수 장면은 산 속이다. 깊고 어두침침한 겨울산은 다름아닌 고창 선운산이다. 선운사 일주문을 들어서기 전 매표소 바로 앞에 영화 ‘남부군’을 찍었다는 내용의 기념비가 서 있다. 일주문을 지나 선운사로 향한다. 계곡과 나무를 하얗게 덮은 설경에 감탄사가 절로 난다. 백제 위덕왕 24년(577) 검단스님이 창건한 선운사는 “오묘한 지혜의 경계인 구름(雲)에 머무르면서 갈고 닦아 선정(禪)의 경지를 얻는다”고 하여 절 이름을 ‘선운(禪雲)’이라 지었다고 전한다. 송창식의 노래로 유명해진 봄에 피는 동백꽃이 있고 9~10월에 피는 꽃무릇 또한 유명하기도 하다. 하지만 눈 내린 겨울 선운사 또한 놓치기 아까운 절경이기도 하다. 겨울산 능선을 바라보면 잎을 잃은 나무들이 마치 속살을 보이듯이 비춰진다. 수줍게 속살을 비추고 있는 겨울산은 아름답긴 하지만 한국전쟁 당시 산 속에서 연명했던 빨치산들에게는 상처와 아픔,절망과 굶주림의‘무덤’이었다. 토벌군을 피해 산속 깊은 곳으로 다니는 빨치산,한 발 한 발 쑥쑥 빠지는 눈을 헤치고 살기 위해 도망자가 된 영화 장면들이 눈앞에 펼쳐진다. 영화 속 이야기만은 아니다. 이 곳 선운산과 선운사는 한국전쟁 당시 가슴 아픈 역사의 현장이다. 1950년 인천상륙작전 후 후퇴하지 못한 인민군과 빨치산의 본거지였다. 빨치산들이 낮에 선운사 뒷산과 계곡에 은신했다가 밤이면 사찰을 근거로 민가에 침투해서 약탈을 일삼았다. 절을 지키기 위해 절을 떠나지 않았던 당시 선운사 주지 호명스님은 정보를 제공해 줬다는 이유로 죽임을 당하기도 했다. 한국전쟁동안 남북 총희생자 수는 사망 130만명,행방불명 111만여 명에 달한다. 선운사에 모셔진 금동지장보살좌상(보물 제279호)은 지난날 아픈 넋을 기리는듯 지긋한 표정으로 중생들을 보듬고 있다.
    불교신문 Vol 2695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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