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영화속 도량을 찾아서

3 ‘동승’ 안동 봉정사

浮萍草 2013. 5. 15. 07:00
    해탈의 길 찾는 스님들 이야기 간직한 사찰
     
    ▲ (좌) 봉정사 만세루를 오르면 국보 311호 ‘봉정사 대웅전’이 반긴다.‘덕휘루’는 만세루의 옛이름 ▲ (우)영산암 입구인 우화루. 신
    비로운 공간으로 안내한다
    1999년 영국 여왕 엘리자베스 2세가 안동을 방문했다. 이례적인 일이었다. 한국 전통문화를 깊이 느끼고 싶었다고 한다. 그녀가 다녀간 후 봉정사는 유명세를 날렸다. 특히 봉정사 영산암을 무대로 많은 영화가 앞다퉈 나왔다. 사실 이전에도 봉정사는 영화촬영지로 각광을 받았다. 1989년 로카르노 영화제 최우수작품상 배용균 감독의 ‘달마가 동쪽으로 간 까닭은’과 주경중 감독의 ‘동승’이 대표적이다. ㆍ ‘엄마’ 그리워하는 동승의 마음 천년 고찰의 전설과 어우러져 영상에 담은 영산암 전경 ‘절색’
    영화 ‘동승’의 주무대인 영산암 뜰

    이 중 ‘동승’은 사연이 깊다. 주 감독이 3년간 수많은 사찰을 돌던 끝에 가장 아름다운 사찰 중 하나로 손꼽은 사찰이 바로 영산암이다. 영화 속 3 스님들의 여여한 삶을 진짜 수행자들의 삶처럼 사실적으로 그릴 수 있었던 것도 영산암이 풍기는 회화적 아름다움과 자연 적 수려함에서 비롯됐다. 봉정사 일주문을 지나 소나무 숲길을 따라 절에 오른다. 봉정사가 들어선 천등산(天燈山)은 안동의 진산으로 봉정사를 중심으로 산줄기 곳곳에 절이 자리했던 불교성지였다. 봉정사엔 설화가 전해온다. 천등산 정상 가까이 바위 아래 동굴에서 수행정진을 하던 신라시대 능인스님이 있었다. 어느 날 선녀가 나타나 온갖 방법으로 스님을 유혹했으나 스님은 꿈쩍도 않고 곁눈조차 주지 않았다. 선녀는 스님에게 감복해 떠나면서 옥황상제의 등불을 남기고 떠났다. 이후 스님은 큰 지혜를 얻었고 신라의 고승으로 이름을 날렸다. 이후 수행을 마친 스님은 법등을 밝히고자 절을 창건하기로 마음먹었다. 종이로 봉황을 접어 날려 보냈더니 학가산을 거쳐 지금 도량에 앉았고 스님은 672년 봉황이 머물렀다는 뜻을 담아 봉정사를 세웠다.
    봉정사 만세루로 오르는 길.

    영화‘동승’에서 동자승 도념스님이 석등 뒤에 숨어
    있다
    대웅전으로 향하기 전 만세루로 오르는 계단 길, 길 옆에 서 있는 고목들의 모습에서 영겁의 세월을 체감한다. 색 바랜 천연 나무색으로 서 있는 만세루를 지나 대웅전이 찾는 이들을 반긴다. 왼쪽 화엄강당에서 더 돌아가면 그 유명한 봉정사 극락전과 고금당을 만날 수 있다. 전각과 전각이 처마가 맞닿을 정도로 오밀조밀하게 붙어 있다. 우리나라에서 고려 중엽인 1363년 중수한 우리나라에서 가장 오래된 극락전, 조선초 건물 대웅전,조선 후기 건물 고금당과 화엄강당 등은 목조 건축사의 흐름을 한 눈에 보여주는 생생한 현장이다. 만세루 한쪽에 난 작은 문을 나서니 영산암으로 향하는 길이 나온다. 영화 동승에서“엄마~”라고 큰소리를 불러보는게 소원인 애기 스님과 속세의 유혹에 번민하는 젊은 스님, 애기 스님과 젊은 스님의 행복을 찾아주기 위해 노력하는 노스님이 한솥밥 이야기가 펼쳐지는 곳이 바로 이 곳 영산암이다.
    작은 암자 영산암은 전면의 우화루 밑의 작은 통로만으로 엿볼 수 있다. 고개를 숙이고 살펴봐도 돌계단과 작은 석등만이 보인다. 작은 통로를 지나니 전각들이 즐비하다. 응진전,염화실,송암당, 삼성각,우화루,관심당…. 어느 하나 화려하지 않고 규격화돼 있지도 않다. 무질서한 듯 보이지만 서로가 서로에 의지하면서 조화롭게 둥지를 틀고 있는 형상이다. 영화 ‘동승’ 속에 나온 세 명의 서로 다른 스님들이 수행과 정진으로 해탈해 가듯이
    불교신문 Vol 2691         김형주 기자 cooljoo@ibulgyo.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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