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불교미술의 해학

15. 부처님 지키는 무수한 龍

浮萍草 2013. 8. 6. 07:00
    사찰 ‘구석구석’ 佛法수호 용틀임 ‘꿈틀’
    수미단서 각종 불화까지 등장…신비감 자아내 통치자들 이미지 구축 한몫…백성에겐 영물로
    청원 안심사 약이 오른 용
    리나라 사람들은 용을 모르는 사람도 거의 없지만 실제로 용의 모습을 본 사람 또한 없다. 그러나 사찰에서 가장 많이 볼 수 있는 것이 용이다. 용은 사찰의 모든 조형물에 나타나 있다. 눈을 돌려서 보면 없는 곳이 없을 정도로 다양한 용들이 살아 있는 듯 꿈틀대고 있다. 불단의 닫집,수미단,창문,기둥,대들보,공포,천정,벽,탑,부도,비석,지붕 위,기와,계단,범종,북,향로,향완,원패뿐만 아니라 각종 불화 에도 나타나지 않은 곳이 없으니 사찰은 가히 용천지라 말할 수 있다.
    상주 남장사 용의 인사
    용이 중국에서 시작되어 극히 제한된 황제의 전유물로 인식되어 왔으나 우리나라 에는 용을 우리의 생활 속에서 느끼고 기원하며 희망과 기대를 가지게 할뿐 아니라 부처님의 법을 지키는 수호자로서의 역할을 담당하면서도 해학과 익살적인 모습 으로 우리의 눈길을 사로잡는다. 그런데 왜 이렇게 많은 용들이 사찰에 있으며 우리민족은 특히 용을 좋아 하였을까 용은 신비한 능력과 무궁무진한 조화로 최고의 권위를 가진 최상의 상상적 동물로 일찍부터 불교와 우리민족의 인식 속에 자리하여 왔다. 5세기 초에 세워진 ‘광개토대왕비문’에 황룡이 나타나고 이 황룡(黃龍)은 고구려 시조 주몽이 천제지자(天帝之子) 즉 하늘의 아들임을 알려주는 존재로 나타났을 뿐만 아니라, 삼국을 통일한 문무대왕이 죽어서 동해의 용으로 변하여 왜구를 물리치겠다는 유언으로 보아 신라인들은 나라를 지키는 호국정신의 표상으로 용을 표현하기도 하였다. 또한 백제 무왕의 어머니는 과부로 남지 연못의 용과 교통하여 무왕을 낳았다 하였으며,고려 왕건의 할머니가 용녀(龍女)로 용의 혈통임을 나타내 신의 아들로 권력의 안정과 정통성을 확보하기도 하였다. 그리고 조선 또한 용비어천가(龍飛御天歌)에서 세종의 선조들을 모두 육룡(六龍)에 비 유하여 신분 변화의 당위성을 나타내기도 하였다. 그러나 전쟁에서 패배한 견훤이 꿈을 이루지 못하여 용이 되지 못하고 지렁이의 아들로 묘사된 것 등등,이러한 모든 전설 설화는 용이 권력과 직접 관련됨을 나타 내어 통치자의 이미지를 갖고 있기 때문이다. 일반 백성들은 이무기, 뱀 등이 여의주를 얻으면 용으로 변화하여 승천하게 된다는 인식을 가지게 되어 백성들도 더 나는 삶을 영위하기 위한 희망을 용에 비유하여 상상의 동물을 자신의 내재된 영혼 속에 묻어두어 희망과 용기를 잃지 않게 되었다.
    완주 화암사 용왕
    뿐만 아니라 ‘용용 죽겠지?’ 하여 아이들이 남을 놀리는 대상으로도 사용되어 용이 신비한 동물로만 인식되어온 것이 아니라 우리들과 친근한 동물로 생각하여 왔다. 이러하듯 우리 민족의 깊은 마음속에 자리한 용은 불교와의 만남을 통하여 더욱 신비스럽고 친숙한 사이가 되었다. 인도의 뱀 신앙에서 비롯된 용이 불교에서 가장 먼저 조각으로 표현된 것은 서기전 2세기. 인도 바르후트 대탑의 탑문에 부조된 이라발 용왕의 귀불(歸佛)의 장면으로 “엘라 파트라 용왕 세존을 예배하다” 라고 프라크리타어로 새겨 놓아 용이 부처님을 수호 하는 처음 동물로 표현했다. 용의 쓰임에 따라 불을 잘 삼켜서 지붕 위 용마루에 세워 화재를 막는 역할을 하는 치문(蚩吻)과 부도 비(碑)대로 무거운 것을 짊어지기를 좋아하는 패하(覇下), 비면 에는 글을 좋아하는 미비(眉)라는 용을 장식했으며,범종의 용뉴에는 울기를 좋아 하는 포뢰(浦牢)라는 용을,법고에도 소리를 좋아하는 수우(囚牛)라는 용을 두어 소리가 잘나도록 했다. 전각의 포작에도 조풍(嘲風)이란 힘센 용을 두어 극락세계로 인도하는 반야용선을 상징하기도 했다. 전각 안 수미단대좌에 앉기를 좋아하는 용인 산예(猊)를 두었으며,불상의 머리 위 닫집 속에는 부처님을 가까운 거리에서 수호하고 있는 용을 나타내고 있다. 그리고 장도(長刀)에 새기는 용인 애자()는 사천왕의 칼에 새겨지기도 해 중생의 번뇌를 끊도록 하기도 한다. 또한 불화(佛畵)에서 용은 여래 8부중으로 표현되어 부처님과 불제자들을 수호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다양한 용의 모습 중 먼저 상주 남장사 대웅전 어칸 안초공의 용 조각을 보자. 일반적으로 대웅전 바깥 안초공 용이 활기차게 여의주를 물고 있거나 물고기를 물고 승천하려는 듯한 모습이나 이곳 어칸 양쪽 기둥위에는 특이하게 청룡,황룡의 모습이 대웅전 부처님께 참배하는 불자들을 맞아들이려는 듯 공손하게 인사하는 모습이 해학적이고 재미있다.
    수원 용주사 용왕.
    “안녕하세요? 불자님. 청룡 황룡 인사드립니다. 꾸벅. 먼 길 오시느라 수고 많으셨습니다. 어서 들어가셔서 부처님을 친견하세요.” 부처님에게로 다가가도록 안내하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용의 뿔은 짧아 위엄이 사라지고, 반짝이는 눈과 눈썹은 치장을 한 듯 아름답다. 여의주는 물었으나 머리를 말아 고개 숙여 밝은 모습으로 인사하는 용의 모습에서 상서로운 동물의 권위는 사라지고 중생들과 함께하려는 부처님의 마음을 황룡을 통하여 읽을 수 있을 수 있어 정겹다. 이러한 마음씨 좋은 용이 있는가 하면 청원 안심사 대웅전 닫집 속에 그려진 용은 그 표정이 약이 바짝 올라있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이 놀렸나 보다. “용용 죽겠지? 용용 죽겠지?” “누가 나더러 죽으라고 하는가? 널보고 죽으라고 하면 좋겠어? 이놈들 잡히기만 해봐라. 그냥두지 않겠다.”는 표정이 역력하다. 얼굴은 빨게 지고,푸른 눈은 동그랗게 뜨고,약이 바짝 오른 듯 미간의 눈썹을 찌푸리고 입과 코를 벌려 씩씩거리는 표정이 재미있다. 일찌감치 용의 체면이나 신비감, 권위는 버린 듯 약올라하는 모습에서 중생심을 느껴본다. 용의 이러한 해학적 표정에서 친근감과 동질성을 느끼는 듯 하여 재미있다. 이뿐만 아니라 마음씨 좋은 할아버지의 인간적인 모습으로 용을 표현한 것 또한 편안하고 즐거움을 준다. 완주 화암사 극락전에는 용왕의 모습이 잘 나타나 있다.
    용의 특징인 눈썹과 입술, 수염 등이 희고 톱날처럼 뾰족뾰족하게 처리되어 있어 용왕의 신비스러움을 한눈에 알 수 있을뿐더러 귀 뒤로 나타나는 붉은 머리카락과 뿔은 용왕임을 상징적으로 보여주고 있다. 말씀만 잘 드리면 중생의 소원뿐만 아니라 몸에 지니고 있는 여의주라도 금방 줄 것 같은 우리들의 할아버지 역할을 하는 용왕의 모습에서 상상의 동물인 용을 상상으로만 여기지 않고 현재 존재하는 나와 아주 가까운 관계로 설정함으로써 이상을 현실 속에서 찾으려는 조상들의 심성을 읽을 수 있어 재미있다. 그러나 수원 용주사 삼장탱화에 나타난 용왕은 그 위용이 대단하다. 금으로 만든 보검을 잡고 보관 위에는 여의주를 얹어두어 용왕의 힘을 느끼게 한다. 부릅뜬 눈과 굳게 다문 입술, 귀 뒤로 넘긴 붉은 머리카락은 용왕의 권위를 잘 나타내어 이전 화암사 용왕과는 대조적인 느낌을 준다. 이러한 용들은 세월의 흐름에 따라 살아 있는 듯 위엄을 나타내기도 하고 어린아이들처럼 천진난만하기도 하며 바보처럼 익살 스럽기도 하여 보는 이의 즐거움을 더해 준다.
    불교신문 Vol 2420         권중서 조계종 전문포교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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