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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안 내소사

浮萍草 2013. 5. 5. 07:00
    무엇이 나무를 겸손함으로 이끌었을까
    울에서 시원스레 뚫린 서해고속도로를 타고 내려가다 산들이 크게 보이지 않는 탁 트인 곳에 들어선다. 산 많은 우리나라에서 지평선을 볼 수 있다는 곳, 이곳이 최대의 곡창지대인 김제평야다. 이 넓은 평지를 달리다 서해 쪽으로 처음 나타나는 산악지대가 바로 변방에 홀로 떨어져 있다 해서 이름 붙은 변산(邊山)이다. 반도 자체가 국립공원으로 지정되어 있을 만큼 아기자기하게 예쁜 지역이다. 마치 조물주가 내륙의 산을 심취해서 만들다가 미처 잊어버리고 자리를 마련하지 못한 산 덩어리를 나중에 살짝 붙여 놓기라도 한 듯 평야지대 끝에 홀로 솟아 있다. 변산은 예로부터 능가산이라고도 불렸다. 석가모니 부처님이 불교경전 <능가경>을 설했다는 능가성(楞伽城)에서 전해온 이름. 그 능가산 아래 내소사가 있다. ㆍ시원스럽지만 흐트러짐 없는 경내
    내소사는 백제 무왕 34년(633년)에 창건된 오래된 절이다. 전형적인 백제 사찰의 모습을 갖춘 평지형 가람인데 참으로 다양한 표정을 가지고 있는 절집이다. 먼저 예의 그 유명한 전나무길 진입로는 수직적인 요소로 방문객을 이끈다. 이어지는 벚나무와 단풍나무 길에서 수직선은 사라지고 잔잔함이 흐른다. 확연하게 달라지는 풍경이지만 더 없이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천왕문을 들어서면 이내 수평적인 요소의 경내를 만난다. 평지형 가람의 시원스럽지만 흐트러짐 없는 경내 그리고 마지막으로 그 풍경은 봉래루의 낮은 하부 공간을 지나 금당 마당에 이르러 협소하지만 포근한 내소사의 절정을 이룬다.
    보물 제291호 내소사 대웅보전

    누군가는 조선시대 팔작지붕 중 최고라고 하는 대웅보전(보물 제291호)은 부드럽고 산뜻하게 서 있다. 마치 금방이라도 능가산을 향해 날아갈 듯 유려한 처마의 곡선이 아름답기만 하다. 대웅보전을 지으면서 생긴 전설도 재미있다. 3년 동안 나무토막만 다듬던 목수를 보고, 짓궂은 사미승이 토막 하나를 감추었다. 결국 목수는 감춘 나무토막은 부정 탄다고 빼 놓고 건물을 완성했다. 지금도 내부 공포에는 목재가 하나 빠져 있다고 한다. 대웅보전 마당에 올라서기 위해 계단을 오르다 보면 고개를 숙이고 있는 소나무 또한 일품이다. 무엇이 나무를 겸손함으로 이끌었을까. 이는 고려시대의 소박하고 단정한 석탑과 함께 한 폭의 수채화 같은 풍경을 완성한다. 이 모든 것들의 조화가 바로 내소사다. ㆍ다시 만나 함께 찾아오고 싶은 곳
    … 내가 처음 내소사를 찾은 건 아내와 결혼을 하기 전이었다. 전나무 숲길을 제외하고 무채색 가득하던 겨울 오후였다. 나무의 황토빛깔 가득한 대웅보전 꽃창살 연꽃무늬가 더 없이 따뜻하게만 느껴졌다. 우리는 대웅전 경내 한켠에 앉아 한동안 햇살을 품으며 행복해했다. 아마도 그런 햇살은 이생에 다시 만날 수는 없다는 생각마저 든다. 어쩌면 그건 내소사였다기 보다 그 시절이라는 의미였는지도 모르니까. 다시 찾은 내소사는 녹음이 우거진 여름의 한복판이다. 햇살은커녕 한 조각 그늘을 찾아 몸 하나 숨기기에 바쁘다. 이제 아이 둘 키우는 부부의 시간은 또 다른 속도로 흐르고 있었다. 하지만 온가족이 내소사 전나무 숲길을 걸어 나오며 생각해 보니 왠지 그런 시간이 또 없으리라는 법도 없을 것 같다. 내소(來蘇)란 ‘다시 소생한다’는 의미. 다시 태어나서 다시 만나 다시 함께 찾아오면 되는 것 아닐까!
    불교신문 Vol 2845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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