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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계총림 송광사

浮萍草 2013. 4. 26. 07:00
    깃털과 같이 몸이 가벼워지다’
    랜 역사를 지닌 우리나라 사찰들은 저마다 깊은 이야기들을 간직하고 있다. 그렇다면 송광사처럼 크고, 많은 이들이 거쳐 간 절집이라면 곳곳에 사연들이 묻어 있을 수밖에 없을 것이다. 더불어 자연스레 하얀 종이에 담아 보고 싶은 풍경도 많아진다. 사찰 스케치여행을 다녀보면 어디를 골라 담아 볼까 살펴보면서 예전에 알지 못했던 또는 보지 못했던 여러 가지 것들을 새롭게 발견하고는 한다. 놀랍고 즐거운 경험이다. 특히 그 곳이 예전에도 가본 곳이라면 더욱 그러하다. 조계산 송광사로 들어서는 다리 아래에서 만난 엽전 세 냥도 그 중 하나다. 번데기가 성충으로 변하는 걸 ‘날개 우(羽)’자를 써서 우화(羽化)라 한다. 꾸물꾸물 기어 다니던 것이 날개를 달고 날아가게 되는 이 극명한 변신은 자연이 만들어내는 위대한 예술 중에도 가히 손꼽힐 만큼 멋진 일이 아닐까. 송광사에도 이 이름과 같은 전각이 하나 있다. 바로 우화각(羽化閣)이다. 일주문을 들어서 대웅보전 경내로 들어가기 위해 지나야 하는 다리 위에 놓인 집이다. 송광사에 한 번이라도 가본 이라면 이 우화각이 보이는 풍경을 송광사의 여러 절경 중에서도 으뜸으로 손꼽기를 주저하지 않을 것 같다.

    우화각은 ‘깃털과 같이 몸이 가벼워진다’는 의미를 갖고 있다고 한다. 아마도 우화하는 애벌레의 기분도 이와 다르지 않을 것이다. 전각의 천장에는 이미 이곳을 다녀간 많은 시인과 묵객들이 아름다움을 노래하여 새긴 현판들이 빼곡히 걸려 있다. 그들 역시 내가 스케치로 담고 싶은 기분과 다르지 않았으리라. 또한 이 풍광 속 다른 전각들도 풍경에 어울릴 만한 멋진 이름들을 갖고 있기에 소개해본다. 먼저 우화각을 받치고 있는 무지개 돌다리는 능허교(凌虛橋)라고 하는데‘모든 것을 비우고 허공으로 건너 오르는 다리’라는 뜻이다. 다리와 집채가 모양새뿐만 아니라 의미까지도 잘 조화를 이루고 있다. 왼편으로 두 발을 시원스럽게 물에 담그고 있는 건물은 임경당(臨鏡堂)이다. ‘거울 같은 물가에 임한 집’이라는 의미이다. 진정 잔잔한 개울에는 다시 한 번 절경을 그대로 담은 거울이 있었다. 그 거울에 비친 무지개다리는 원을 이루며 풍경을 확장시킨다. 다리 오른편으로 길다란 건물은 침계루(枕溪樓)라고 한다. ‘시내를 베고 누워 있다’니 얼마나 서정적이고 근사한 표현인가.

    그리고 마지막으로 이 모든 풍경들은 다리 아래 걸려 있는 엽전에 얽힌 사연을 알게 되면 비로소 마무리가 되는데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능허교 아래에는 용이 물을 향해 고개를 내밀고 있는데 이는 수살막이라 하여 물을 통해 들어오는 나쁜 기운을 차단해 주는 역할을한다. 재해를 막는 주술적인 의미인 것이다. 그런데 능허교 용은 특이하게 엽전 세 닙이 꿰인 줄을 물고 있다. 바로 조선 숙종 때 돌다리 불사를 끝내고 남은 돈을 걸어 놓은 것이라고 한다. 시주 받은 돈을 다른 곳에 쓰지 않고 훗날 다리의 보수를 위해 보태라는 의미로 남겨둔 것이라고 하니 이보다 더 믿음직스러운 용이 또 있을까. 오늘날 송광사라는 승보사찰의 맥락을 잘 보여주는 한 획이 아닐 수 없다. 나는 풍경에 취하고, 의미에 취해 한참을 송광사 입구에서 머물렀다. 풍경 자체가 주는 의미들은 마치 송광사를 들어서기도 전에 어떤 깨달음을 주는 것만 같았다. 이대로 껍질을 벗고 날아갈 수만 있다면 아니 내 마음을 겹겹이 감싼 많은 껍질 중 하나만이라도 벗어 버릴 수 있다면. 나는 내면 어딘가에 깊숙하게 묻혀 영원히 펼 수 없는 인간들의 날개를 생각하며 천천히 우화각을 건너 송광사 대웅보전을 향했다. 작은 폭포가 만들어 내던 낙수 소리가 짙은 녹음에 겹쳐 시원스러운 오후에 묻어나고 있었다.
    불교신문 Vol 2839         이장희 일러스트레이터 www.ttha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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