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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5 - 한산시 (6)

浮萍草 2013. 7. 7. 07:00
    모름지기 보살의 길은
    인욕하는 삶과 곧은 마음이네 
    분노는 마음속의 불(瞋是心中火) 瞋是心中火(진시심중화) 能燒功德林(능소공덕림) 欲行菩薩道(욕행보살도) 忍辱誰直心(인욕수직심) 분노는 마음속의 불 공덕의 숲을 살라버린다네. 보살의 길을 가려고 하거든 인욕하는 생활과 곧은 마음을 지녀야 하네. <한자풀이> 瞋(진): 성내다,눈을 부릅뜨다,분노.嗔(진)과 같은 글자. 是(시): …이다,옳다, 바르다.心(심): 마음, 심장. 中(중): 가운데, 치우치지 않다. 火(화): 불. 심중화(심중화): 마음속의 불. 能(능): 잘 하다, 능히 …하다. 燒(소): 사르다, 불태우다. 功(공): 공, 공로, 공을 자랑하다. 德(덕): 덕, 어진 행위. 功德(공덕): 공적과 덕행.불교에서 현재 또는 미래에 행복을 가져올 선행을 이르는 말. 林(림): 숲, 수풀. 功德林(공덕림); 공덕의 숲. 欲(욕): …을 하려고 하다, 욕구. 行(행): 가다, 걷다, 행위. 菩(보): 보리(깨달음), 풀이름. 薩(살): 보살. 菩薩(보살): 깨달음을 완성한 부처에 버금가는 성인. 道(도): 길, 이치, 근원, 방법. 菩薩道(보살도): 보살이 행하는 길. 忍(인): 참다, 견디어내다. 辱(욕): 욕보이다, 치욕의 줄임말. 忍辱(인욕): 치욕을 잘 참음. 誰(수): 누구, 어떤 사람. 直(직): 곧다, 바른 도. 直心(직심): 바른 마음. 《유마경》에서는 “바르고 곧은 마음이 도량이다”고 하였다.
    ㆍ성냄은 욕하는 말과 함께 밖으로 표현돼 공덕 앗아가는 것 중에 성냄보다 더한 것 없어 <해설> 국어사전을 보면 분노(憤怒)란 분하여 몹시 성을 내는 것을 뜻한다. 성냄은 노여움을 드러냄 즉, 흥분하여 거친 기운을 낸다는 뜻이다. 진심(嗔心)은 왈칵 성내는 마음으로 성내는 마음을 한자어로 나타낸 말이다. 진노(嗔怒) 또한 성냄의 한자어이다. 마음으로 일으키는 성냄은 욕하는 말과 함께 밖으로 표현된다. 욕설(辱說)이란 남을 모욕하거나 저주하는 말이다. 남을 꾸짖거나 나무라며 비난하는 말이다. 분노는 삼독심인 탐심(貪心,탐욕하는 마음) ․ 진심(嗔心, 성내는 마음) ․ 치심(癡心,어리석은 마음) 가운데 성내는 마음인 진심이다. 상대방을 향해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마음과 입으로 많은 업을 짓게 되어 있다. 성내는 마음을 일으키면 먼저 자신의 마음에 참기 힘든 부아(폐장)가 치밀어 피가 뜨거워져 더럽혀지고,악구(惡口: 험한 말) 욕설 (辱說)로 10악업을 짓게 된다. 삼독심과 십악업을 동시에 짓게 되니 모든 수행 공덕이 수포로 돌아가 버린다. 자신 보다 힘이나 세력이 약한 중생에게 상처를 주고 급기야 폭력과 전쟁으로 죽이는 큰 업을 짓는다. 분노하는 마음을 잘 다스리면 너그럽고 자비로운 마음으로 변한다. 관세음보살의 마음이 된다. 이런 뜻에서 한산은 이 시에서 분노하는 마음을 없애라고 읊고 있다. 공덕의 숲을 불살라버린다고 경고하고 있다. 화가 나는 마음을 잘 참는 인욕(忍辱) 수행이 보살이 되는 길이고 부처가 되는 수행이다. 《불도교경》에는 다음과 같이 성내는 마음에 대한 해악을 기록하고 있다. “성내는 마음은 사나운 불보다 심하다는 것을 마땅히 알아라. 항상 성내는 마음을 막고 지켜 그것이 들어오지 못하게 하라. 공덕을 앗아가는 도적으로 성내는 것보다 더한 것이 없느니라.” 한산의 이 시는 매우 쉽고 평범한 교훈시이다. 한산시의 특성 가운데 하나인 세상 사람을 교화하는 권세시(勸世詩)이다. 분노하면 그 동안 지은 모든 공덕의 창고(숲)가 불에 타서 소멸되는 것과 같다고 읊고 있다. 그리고 보살이나 부처의 길을 가려거든 인욕바라밀과 곧은 마음 즉, 정직한 마음을 실천하라고 명료하게 읊고 있다. 뜻은 쉽지만 실천하는 데는 쉽지 않다. 부처가 되는 길이 그렇다. 《유마경》에 “곧은 마음(정직한 마음)이 도량이다(直心是道場)”라고 하였다. 참다운 진리를 구하는 구도자의 마음이 정직하지 못하고, 편협되거나 굽어 있다면 마치 모래를 쩌서 밥을 하려는 것과 같이 천 년을 믿고 닦아도 불가능한 일이다. 그런데도 종교지도자들이 호교론과 방편이란 미명으로 권력에 아부하고 세력에 굴종하는 부끄러운 짓을 하는 경우를 보게 된다. 한산은 불도를 수행하는 이들에게 이 점을 분명하게 천명해 주고 있다. 직심(直心: 정직한 마음)은 고금(古今)에 통용되는 종교인의 덕목이요, 교훈이다. ㆍ성냄 다스리는 수행은 三學 중 선정, 육바라밀 중 인욕 탐진치는 이름만 다를 뿐 한 마음…인욕시불 의미 새겨야
    <화사족>
    《금강경》과 《전생담》에 보면 석가모니께서 과거 인행(因行) 시에 인욕선인으로 사지가 잘리는 고통과 모욕을 잘 참아내고 부처가 되는 공덕을 얻은 이야기가 있다. 인욕하면 부처가 된다(忍辱是佛). 성냄을 다스리는 수행이 삼학(三學: 계율, 선정, 지혜) 가운데 선정이고, 육바라밀(보시, 지계, 인욕, 정진,선정,지혜) 가운데 인욕바 라밀이다. 《아함경》에 “삼독심을 없애면 아라한과를 얻어 열반에 이른다”고 하였다. 성내는 마음을 잘 다스리면 모든 번뇌의 불꽃이 사그라져 해탈 열반의 경지에 이른다. 깨달음이 완성된다는 뜻이다. 삼독심인 탐심과 진심 그리고 치심이 다르지 않고 모두 한 마음에서 비롯된다. 자신의 욕망대로 이루어지지 않기 때문에 분노하고 성내는 마음을 일으킨다. 이 모두가 어리석은 마음에서 생겨난 것이다. 어리석은 마음을 한자어로 치심(癡心)이라 하고,불교용어로는 진리를 모르는 어두운 마음이라 하여 무명심(無明心) 즉, 무명이라 한다. 무명이 없어지면 깨달음을 얻게 되고, 고통의 번뇌가 소멸한다. 십이연기설에서도 무명연기(無明緣起)를 없애면 모든 번뇌가 사라진다고 설하고 있다. 삼독심인 탐욕심과 성내는 마음 그리고 어리석은 마음이 이름만 다르지 한 마음이다. 그래서 법정스님은 탐욕의 마음을 다스리라고 무소유을 강조하셨고,베트남의 틱낙한 스님은 성내는 마음 즉, 화를 다스리는 공부를 강조했다. 《법구경》〈분노품〉에 보면 다음과 같이 분노하는 마음을 경계하고 있다. “분노하면 법을 보지 못하고, 분노하면 도리를 알지 못한다. 능히 분노를 제거하는 사람은 복과 기쁨이 항상 몸에 따라 다닌다.” “성냄을 능히 자제하여 마치 달리는 수레를 멈춤과 같이 이것을 잘 제어하면 어둠을 버리고 밝음으로 들어가게 된다.” 부처님께서는 “애욕보다 더한 불길이 없고,성냄보다 더한 독약이 없다”고 하였다. “원한을 원한으로 갚지 마라. 원한을 인욕으로 갚으면 마침내 원한은 끝나나니 이것이 부처님의 법이라 한다”라고 하였다. 우리 속담에도 “백 번 참는 집에 집안이 화목하고 만사가 형통한다” 하였고,“참을 인(忍) 자 세 개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다. 잘 참고 인욕한 사람이 참다운 수행자이고, 인욕보살이다.
    김형중 법사(문학박사)
    Media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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