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명품선시 선

12 - 한산시 (3)

浮萍草 2013. 6. 16. 07:00
    하나의 보물을 캐내어 보니
    값을 매길 수 없는 수정(水精)구슬이네 
    
    석일극빈고(昔日極貧苦)
    야야수타보(夜夜數他寶)
    금일심사량(今日審思量)
    자가수영조(自家須營造)
    굴득일보장(掘得一寶藏)
    순시수정주(純是水精珠)
    대유벽안호(大有碧眼胡)
    밀의매장거(密擬買將去)
    여즉보거언(余卽報渠言)
    차주무가수(此珠無價數)
    지난날 매우 어렵게 고생하며
    밤마다 다른 사람의 보물만 세었네.
    오늘 곰곰이 생각하여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기로 하였네.
    하나의 보물을 캐내어 보니
    깨끗한 수정(水精)구슬이었네.
    푸른 눈동자의 달마대사가 있어
    은밀히 그것을 사가려고 하네.
    나는 그에게 말했네
    이 구슬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고.
    (한자풀이) 昔(석): 예,옛,접때,앞서,오래다,오래 되다.日(일): 해, 태양, 일. 昔日(석일): 지난 날, 전날, 이전 날,옛날.極(극): 다하다, 남아있지 않다, 끝나다, 끝, 극, 한계. 貧(빈): 가난, 가난하다. 極貧(극빈): 아주 가난하다.苦(고): 쓰다, 씀바귀, 쓴 나물, 괴로워하다.極貧苦 (극빈고): 아주 곤궁하여 고통스러움. 夜(야): 밤. 數(수): 세다, 세어서 말하다, 셈에 넣다, 계산하다. 他(타): 다른, 그, 그이(3인칭), 저. 寶(보): 보배, 보물. 타보(他寶): 남의 보배. 今(금): 이제, 지금, 이에(사물을 가리키는 말). 今日(금일): 오늘. 審(심): 살피다, 환히 알다, 자세하다.思(사): 생각하다, 생각.量(량): 헤아리다,무게를 달다, 길이를 재다, 생각하다. 思量(사량): 생각하다. 自(자): 스스로,몸소,자기,-로부터(어조사).家(가): 집. 自家(자가): 자기 집. 須(수): 모름지기, 마땅히, 수염. 榮(영): 꽃, 꽃이 피다, 영화, 성하다. 造(조): 만들다, 짓다. 掘(굴): 파다,파내다,움푹 패다. 得(득): 얻다, 이득.一(일): 하나,오로지.寶(보): 보배,보물.일보 (一寶): 하나의 보배,유일한 보배,최고의 보배.藏(장): 감추다,저장하다,간직하다.일보장(一寶藏): 최고의 보배인 마음을 저장하고 있는 창고.純(순): 순수하다,섞임이 없다,생사(生絲),순색의 비단. 是(시): 옳다,바르다,-이다. 水(수):물.精(정): 정미(精微)하다, 자세하다,쓿은 쌀(精米), 맑다,마음,정성.珠(주): 구슬,진주.수정주(水精珠): 수정주는 범어 sphatika 색파지가(塞頗祗迦)의 의역 으로 수옥(水玉), 수정(水晶), 영수석(英水石)이라고도 번역한다. 수정주는 더러운 물을 맑게 하는 영묘한 구슬로 수청주(水淸珠) 또는 계주(戒珠)라고도 한다.죄와 악을 스스로 자정(自淨)할 수 있는 우리 마음 가운데 착한 양심을 비유한 것으로 불성(佛性)을 상징한 말이다. 마니주나 심주(心珠), 의주(衣珠)와 같은 말이다. 大(대): 크다, 고귀하다, 대개. 有(유): 있다, 존재하다. 碧(벽): 푸르다, 푸른 옥돌. 眼(안): 눈, 보다碧眼(벽안): 푸른 눈,도를 깨달은 눈,푸른 눈을 가진 인도의 승려 즉 달마대사와 같이 도가 높은 승려. 胡(호):오랑캐,턱에 드리워진 살.碧眼胡(벽안호): 푸른 눈을 가진 오랑캐, 천축국(중국에서는 인도를 오랑캐나라라고 했음)의 달마 대사를 뜻함. 密(밀): 은밀하다, 빽빽하다. 擬(의): 헤아리다, 모방하다. 密擬(밀의): 비밀리에 -을 하려고 모의하다. 買(매): 사다. 將(장): 장차 -하려고 하다,장수,거느리다.余(여): 나(1인칭),자신,나머지(餘). 卽(즉): 곧, 즉시, 가까이하다. 報(보): 갚다, 갚음, 알리다. 渠(거): 그 사람(3인칭), 도랄, 어찌. 言(언): 말씀,언어.此(차): 이,이것(가까운 사물을 가리킴).珠(주): 구슬,진주.無(무): 없다, 말라(금지). 價(가): 값. 가격. 數(수): 세다, 계산하다. 無價數(무가수): 가격으로 계산을 할 수 없다. ㆍ이 구슬은 양심의 구슬이요, 계율의 구슬(戒珠)이요 우리의 본래 마음자리인 진여 불성인 것이다 (해설) 이 시는 평이한 구어체(口語體)로 된 5언시이다. 대구나 운율 등 시의 형식을 무시하고 오로지 시의 내용만을 진솔하게 표현하는데 역점을 두었다. 이것이 원형적안 선시의 특성이다. 한산시의 특징이기도 하다. 형식보다는 내용을 강조하는 한 것이 선시이다. 이 시의 내용은 《법화경》〈오백제자수기품〉에 나오는 ‘의주(衣珠)의 비유’를 시화한 것이다. ‘법화칠유(法華七喩)’는 《법화경》에 나오는 7가지 비유인데 유명하다. 한산시 가운데 ‘화택(火宅)의 비유’를 시화한 작품도 있다. ‘의주의 비유’는 다음과 같다. 어떤 가난한 사람이 친구를 찾아갔는데 그 친구의 집은 굉장한 부자였다. 친구는 가난한 친구에게 산해진미의 음식과 술로 대접했다. 그리고 값으로 따질 수 없는 보배구슬을 가난한 친구의 옷 속에 달아주고 급한 일이 있어 술에 취해 잠들어 있는 친구를 두고 먼 길을 떠났다. 가난한 친구는 다시 밥을 얻어먹느라 여기저기 헤매면서 힘들게 살았다. 수년이 지나 길거리에서 가난한 친구를 만난 부자친구는 깜작 놀랐다. 가난한 친구를 위해 무가지보(無價之寶)를 옷 속에 달아주고 떠났는데 아직도 그것을 발견하지 않고 가난하게 살고 있는 것이다. 가난한 친구에게 옥 속에 보배를 달아놓았으니까 꺼내 쓰라고 알려 주었다. 그래서 그 친구는 기뻐하며 구슬을 팔아서 행복하게 살았다. 여기서 친구는 부처님,가난한 친구는 중생,옷 속의 보배는 불성 즉,본래마음인 자성을 비유한다. 진실로 나의 보배는 내 마음이다. 내 마음이 슬퍼지면 세상이 슬프다. 내 마음이 절망하면 세상은 지옥이다. 내 마음이 나를 부처로 만들기도 하고 악마로 만들기도 한다. 내 마음을 찾으면 부처가 되고, 내 마음을 잃어버리면 중생이다. 어리석은 자식에게 천만 금을 주면 하루아침에 없애버린다. 그래서 진실하고 청정한 내 마음의 불성을 값으로 칠 수 없는 무진보배라고 한 것이다. 한산은 이 시에서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고 남의 보물을 바라보지 말고 내 집안에 있는 마니심주(摩尼心珠)를 찾으라고 설법하고 있다. 이런 시를 선전시(禪典詩)라고 한다. 선전시는 경전이나 조사어록의 내용이나 선의 용어를 이용하여 읊은 시이다. 교화시(敎化詩)이고, 교법시(敎法詩)이다. 원래는 선(禪)과 교(敎)를 나누어서는 안 되는 것이다. 나눌 수도 없는 것이다. 마치 부모를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누어 정자를 물러준 아버지가 진정한 부모라고 우기고, 뱃속에서 10달을 실제로 키워서 낳은 어머니가 진정한 부모라고 싸우는 것과 같다. 선과 교는 본시 하나이고 나눌 수 없는 한 덩어리이다. 선종은 중국의 종파불교의 산물이다. 선시도 그렇다. 부처님의 정법(正法)의 세계를 읊은 교법시(敎法詩)가 대중을 위해 드러내 읊으면 시법시(示法詩)가 되고, 스스로 자신이 깨달은 경계로 읊으면 오도시(悟道詩)가 된다. 선의 목적이 본래마음인 불성을 찾아 부처가 되는 것이기 때문에 오로지 마음을 찾는 공부를 강조하는 것이다. 마음속에 있는 보배구슬은 형상이 없는 구슬이다. 그래서 눈으로 찾을 수가 없다. 마음을 고요히 침묵함으로써 찾을 수 있다. 사량 분별하면 찾을 수 없다. 생각을 쉬고 무심(無心)하면 나타나는 묘한 것이다. 형상이 없으나 없는 것이 아니다. 진공묘유(眞空妙有)한 것이다. 형상은 없으나 작용이 있다. 이것이 부처도 만들고 중생도 만든다. 그것을 바로 찾아 쓰면 부처다.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지 말라(心外無佛). 남의 보배를 세지 말라는 뜻이다. 한산시에 “마음이 부처이니 마음 밖에서 찾지 말라”는 다음과 같은 시가 있다. 깊이 헤아려 생각할 줄 모르고 부처를 찾는 공부가 어렵다고만 하네. 마음 한번 돌리면 곧 부처이니 멀리 밖으로 구하지 말라. 不解審思量(불해심사량) 祗道求佛難(지도구불난) 廻心卽是佛(회심즉시불) 莫向外頭看(막향외두간) 선가에서 마음을 찾는 수행공부를 목동이 잃어버린 소를 찾아가는 10단계 과정에 비유하여 설명한 《십우도》란 선서가 있다. 한산의 본문의 시를 살펴보면 마음을 찾아가는 과정이 보배구슬을 찾아가는 과정으로 묘사되어 있다. 1연 “지난날 매우 어렵게 고생하며 밤마다 다른 사람의 보물만 세었네”는 지난날 자신이 마음을 찾는 수행 방법이 잘못된 것을 알고 후회 반성하고 있다. 내 마음 밖에서 부처를 찾으려는 것은 내 집안의 내 보배를 져버리고 남의 집에서 남의 보배를 세는 것과 같은 어리석은 행위이다. 잃어버린 소를 찾겠다고 시행착오를 거치면서 소를 찾아다니는 심우(尋牛) 단계이다. 2연 “오늘 곰곰이 생각하여 스스로 내 살림을 꾸리기로 하였네”는 스스로 부처의 공덕을 모두 구족(具足)한 내 마음이 부처임을 깨닫고 자력(自力)으로 자신의 살림살이를 통해 성불하겠다는 올바른 수행관이 세워진 견우(見牛)의 단계이다. 초견성(初見性)이다. 3연 “하나의 보배를 캐내어 보니 깨끗한 수정구슬이었네”는 내 마음 속에 감추어진 값으로 계산할 수 없는 보배구슬을 발견하고 찾았다. 그리고 그것을 캐내어 보니 무진장한 보배이다. 그 보배구슬이 부처가 가지고 있는 여의주이다. 득우(得牛)의 단계이다. 드디어 잃어버린 소를 찾아 손에 잡았다. 견성성불한 것이다. 이제는 보배구슬을 잘 사용하여 잘사는 길만 남았다. 세상의 모든 더러움과 오염된 것을 능히 깨끗이 할 수 있는 수정주(水精珠)의 구슬을 얻은 것이다. “능히 깨끗이 할 수 있으면 부처다(能淨是佛)”. 이 구슬은 양심의 구슬이요, 계율의 구슬(戒珠)이요,우리의 본래 마음자리인 진여 불성인 것이다. 4,5연 “푸른 눈동자의 달마대사가 있어 은밀히 그것을 사가려고 하네. 나는 그에게 말했네 이 구슬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배라고”는 보배구슬의 가치 즉, 공능(功能)을 읊은 것이다. 세상에서 가장 값비싼 무가지보(無價之寶)이다. 천상천하무여불(天上天下無與佛)이다. 내 마음이 세상에서 가장 귀중한 보배다. 마음이 미친 사람에게 천하를 주어도 천하는 미친 천하일 뿐이다. 내 마음이 아름다우면 세상이 아름답다. 내 마음 본래자리를 찾으면 부처이고, 동시에 세상은 부처님나라가 된다. 마음을 잃어버린 사람에게 무가지보의 구슬은 아무 가치가 없다. 그 사람은 보배구슬을 사용할 수가 없다. 무용지물(無用之物)이다. 그래서 마음을 깨달으면 부처이고 깨닫지 못하면 중생이라고 하는 것이다. 본래는 부처도 중생도 없다. 마음이 부처이고, 내 마음이 진불(眞佛)이다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지 말라 〈화사족(花蛇足)〉한산시에 ‘마음속의 구슬(摩尼珠, 衣珠, 心珠)’를 주제로 한 시가 본문의 시 외에도 다음과 같은 3수가 있다. 내게 친할 것이 또 무엇 있겠는가 뜻을 펴며 스스로 늙어가네. 얼굴의 모습은 겨울 여름 철 따라 변하더라도 마음의 구슬은 잘 보전해야 하네. 我更何所親(아갱하소친) 暢志自宜老(창지자의로) 形容寒暑遷(형용한서천) 心珠甚可保(심주심가보) 깊숙이 지옥에 든 사람이 되어 금생의 길과 영원한 이별이네. 그대는 힘쓰라 내 말을 믿고 옷 속의 보배구슬을 얻어라. 長爲地獄人(장위지옥인) 永隔今生道(영격금생도) 勉儞信余言(면이신여언) 識取衣中寶(식취의중보) 용왕은 보배구슬을 귓속에 간직하고 칼 든 장수에게 지키게 하니 구슬을 찾을 길 없네. 나그네 되어 헤매다가 집에 돌아와 보니 밝은 보배구슬 원래 내 집안(마음)에 있네. 龍王守護安耳裏(용왕수호안이리) 劍客星揮無處搜(검객성휘무처수) 買客却歸門內去(매객각귀문내거) 明珠元在我心頭(명주원재아심두) 구슬의 광명이 빛을 발휘하여 마음을 비추면 아무 것도 앞을 막아 나타나는 것 없네. 이제 알겠구나 한 덩이 마니구슬이여 잘 사용할 줄 알면 어디서나 대원광명(大圓光明)인 것을. 光影騰輝照心地(광영등휘조심지) 無有一法當現前(무유일법당현전) 方知摩尼一顆珠(방지마니일과주) 解用無方處處圓(해용무방처처원) 《한산시집》를 《삼은시집(한산 ․ 습득 ․ 풍간)》이라고도 하는데 거기에 습득의 시가 50여 수가 포함되어 있다. 습득(拾得) 또한 한산(寒山)처럼 특정한 인물이 아니라 절에서 주어다 기른(拾得) 사람이란 뜻이다. 습득시도 한산시를 수습 편집하는 과정에서 주변에 있는 시를 주워서 모은 시란 뜻이다. 따라서 한산시나 습득시는 시의 형식이나 내용에서 차이가 없다. 습득의 시 가운데도 ‘마니심주의 비유’를 주제로 읊은 시가 다음과 같은 4수가 있다. 마음은 머무름이 없고 오고 감이 없어 본래가 맑고 고요해 몸 안에도 없고 밖에도 중간에도 있지 않네. 한 덩이 수정구슬은 티 하나 없어 그 광명이 인간과 천상까지 두루 하네. 無居無來本湛然(무거무래본담연) 不居內外及中間(불거내외급중간) 一顆水昌絶瑕翳(일과수창절하예) 光明透滿出人天(광명투만출인천) 중생에게 각각의 천진(天眞) 부처가 있어 이름하여 보왕(寶王)이라 하네. 그 보배구슬의 광명은 밤낮으로 빛나 그윽하고 묘하기가 헤아릴 수가 없네. 各有天眞佛(각유천진불) 號之爲寶王(호지위보왕) 珠光日夜照(주광일야조) 玄妙卒難量(현묘졸난량) 그대는 보라 저 달의 광명을 온 천하를 두루 비추네. 뚜렷한 빛이 허공에 걸려 맑고 깨끗해 티끌을 떨쳤구나. 사람들은 달이 차고 이지러짐이 있다 하나 내가 보기에는 더함과 덜함이 없네. 그 모양은 마치 마니구슬 같고 밤낮없이 그 광명을 발하네. 君看月光明(군관월광명) 照燭四天下(조촉사천하) 圓輝挂太虛(원휘괴태허) 瑩淨能蕭灑(형정능소쇄) 人道有虧盈(인도유휴영) 我見無衰謝(아영무쇠사) 狀似摩尼珠(상사마니주) 光明無晝夜(광명무주야) 왼손에는 여룡(驪龍)의 구슬을 쥐고 오른손에는 지혜의 칼을 들어 먼저 무명(無明)의 도둑을 쳐부수니 신주(神珠)는 스스로 불길을 휘날리네. 左手握驪珠(좌수악려주) 右手執慧劍(우수집혜검) 先破無明賊(선파무명적) 神珠自吐燄(신주자토염) 《법화경》에 나오는‘옷속의 감춰진 보배구슬(衣珠)의 비유’는 한산시 뿐만 아니라《증도가》《돈오입도요문론》《벽암록》등에 자주 나오는 유명한 비유이다. 형상이 없는 내 마음을 찾아 부처가 되라고 할 때 마음을 보배구슬에 비유하여 그것을 찾으라고 방편(方便) 설교를 하는 것이다. 특히 마음을 깨닫는 것을 목표로 삼는 선가의 어록이나 선시에서 자주 사용하고 있다. 대주혜해(大珠慧海, 생몰연대 미상)선사가 마조(馬祖)대사를 찾아가서 깨달음을 얻고《돈오입도요문론》을 짓게 된 인연을 밝힌 ‘자기 집안에 있는 큰 보배구슬’에 대한 일화가 있다. 이 일화가 한산시와 습득시의 시구에 용사(用事)되어 나타나고 있다. 월주(越州) 대운사 혜해선사가 강서에 있는 마조대사를 찾아가 불법을 구하였다. 마조대사가 물었다. “이곳에 무엇 하려 왔는가?” “불법을 구하려왔습니다.” “자기 집 보배창고는 돌아보지 않고 집을 버리고 이리저리 돌아다니며 무엇을 하려는가?(自家寶藏不顧 抛家散走作什麽)” “어떤 것이 자기 집안의 보배창고입니까?(阿那個是慧海自家寶藏)” “지금 나에게 묻고 있는 것,이것이 그대의 보배창고이다. 온갖 것이 다 갖추어져 빠지거나 모자람이 없고,부리어 사용하면 자유자재 한데 어찌 밖을 향해 찾아 구하려 하는가?(卽今問我者 是汝寶藏 一切具足 更無欠少 使用自在 何假向外求覓)” 혜해서선사가 지은 《돈오입도요문론》을 제자스님이 마조대사에게 바치니 마조대사가 그 책을 보고 난 후 대중들에게 말했다. “월주에 큰 보배구슬이 있는데 둥글고 밝은 광명이 환히 비치니 자유자재하여 어디에도 막힘이 없고 걸림이 없구나 (越州有大珠 圓明光透 自在無遮障處也)” 《돈오입도요문론》 영가 현각(永嘉玄覺, 665-713)대사가 자신이 깨달음의 세계를 증도(證道)한 세계를 게송으로 읊은《증도가(證道歌)》에는‘마니 심주(摩尼心珠)’를 주제로 한 게송이 4송(頌)이 있다. 한산이 직접 그의 시에다 인용한 영가대사의 게송은 다음과 같다. 도리어 여래의 꾸지람 들었으니 남의 집 보배를 셈한들 무슨 이익이 있으리. 지난날 어정거려 방황하며 헛수고만 해온 이 몸 많은 세월 보내면서 풍진객이 되었네. 却被如來苦呵責(각피여래고가책) 數他珍寶有何益(수타진보유하익) 從來蹭蹬覺虛行(종래층등각허행) 多年往作風塵客(다년왕작풍진객) 빈털터리 불제자가 가난하다 말하지만 몸은 비록 가난하나 마음만은 부자라네. 가난하니 옷치장은 남루하다 할지라도 도 이루니 마음속에 귀한 보배 다 갖췄네. 窮釋子 口稱貧(궁석자 구칭빈) 實是身貧道不貧(실시신빈도불빈) 貧卽身常被縷褐(빈즉신상피루갈) 道卽心藏無價珍(도즉심장무가진) 마니주 보배구슬을 사람들은 모르나 내 마음 여래장 속에 친히 간직되어 있네. 여섯 가지 신비로운 작용(6근)이 없는 듯 충만하고 둥근 구슬의 큰 빛은 없는 듯 다양하네. 摩尼珠 人不識(마니주 인불식) 如來藏裏親收得(여래장리친수득) 六般神用空不空(육반신용공불공) 一顆圓光色不色(일과원광색불색) 강에 달이 비치고 소나무에 바람이 불어온다 긴 밤 맑은 하늘 무슨 할 일 있으랴. 불성이다. 계율의 구슬이다. 마음의 바탕이다. 반야의 표시이다. 안개와 이슬, 구름과 아지랑이가 이 몸을 감싸누나. 江月照 松風吹(강월조 송풍취) 永夜淸宵何所爲(영야청소하소위) 佛性戒珠心地印(불성계주심지인) 霧露雲霞體上衣(무로운하체상의) 법왕이 제일 높고 수승함이여 항하사 같이 많은 모든 부처님이 증명하네. 내가 이제 이 여의주(마음)를 알았으니 이것을 믿고 받드는 사람은 모두 하나로 상응하리. 法中王 最高勝(법중왕 최고승) 河沙如來同共證(하사여래동공증) 我今解此如意珠(아금해차여의주) 信受之者皆相應(신수지자개상응) 《벽암록》62칙 ‘운문선사의 제일가는 보배(雲門一寶)’ 역시 마니심주(摩尼心珠)를 주제로 엮어진 화두이다. 어느 날 운문선사가 대중에게 설법하였다. “하늘과 땅 사이, 시간과 공간(宇宙) 사이에 세상에서 제일가는 보배 하나가 있다. 그것이 바로 우리 몸(形山) 속에 감춰져 있다. 그런데 등롱(燈籠)을 들고 불전(佛殿)으로 갔다가 산문(山門)을 그 등롱 위에 올려놓은 채 돌아왔다 (雲門示衆云 乾坤之內 宇宙之間 中有一寶 秘在形山 拈燈籠向佛殿裏 將三門來燈籠上)” 우주는 만물을 모두 포용하고 담고 있고, 광대무변 하지만 스스로 인식하는 작용이 없다. 하늘도 땅도 마찬가지이다. 위대하지만 스스로 행위할 수 있는 의지(마음)가 없다. 신이 만물을 창조했고 인류의 역사를 주관하는 절대자라고 하지만 역시 존재(신)의 유무(有無)를 인식하거나 증명할 수 없다. 오직 인간만이 세계를 인식하고 스스로의 의지에 의해서 세상을 새롭게 만들어갈 뿐이다. 그 위대한 인간의 핵이 마음이다. 인간의 몸은 그릇이고, 마음이 주인이고 생명이다. 우주와 신을 이해하고 인식할 수 있는 것이 인간의 마음이다. 그래서 오직 마음이 위대한 것이요, 마음이 주인공이고 왕인 것이다. 따라서 마음이 부처이고, 내 마음이 진불(眞佛)이다. 마음을 떠나서 부처를 찾지 말라는 조사들의 설법이 바로 이런 뜻이다. 교학(敎學)에서는 마음을 모든 것을 주관하는 왕과 같다 하여 심왕(心王),모든 공덕을 길러내고 만물을 길러내는 땅과 같다고 하여 심지(心地)라고 부른다. 선가에서는 용이 가지고 있는 여의주처럼 무엇이든지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다고 하여 마음을 구슬에 비유하여 여의심주 (如意心珠),마니주(摩尼珠),의주(衣珠),재장명주(在掌明珠),일과명주(一顆明珠),수정주(水精珠),심주(心珠),계주(戒珠),무가보주 (無價寶珠) 등으로 불린다. 불성, 자성, 본래심, 진여자성, 진심, 일심, 여래장심 등 모두 마음을 가리킨 말이다. 선가의 일관된 화두는 마음을 깨닫는 일이다. 마음이 만법의 근원이고, 인식작용의 주체이기 때문이다. 마음이 부처이고, 불법이고, 깨달음이고, 선이다. 끝으로 필자가 보배구슬을 주제로 쓴 선시 한 수를 소개하고 글을 마무리하고자 한다. 필자의 어릴 때 아명(兒名, 중학교 때까지 공식 이름)이 행주(行珠)이다. 필자가〈휴정의 선시연구〉를 해서 문학박사 학위를 얻었는데, 서산대사의 《선교석》에 보면 행주대사란 제자가 있다. 묘한 인연이라 생각하여 필자의 법명을 스스로 행주라 하였다. “자기 의지대로 보배구슬(마음)을 부릴 수 있다”는 좋은 의미가 있다. 그래서 ‘행주송(行珠頌)’이란 명호시(名號詩)를 지어 본 것이다. ‘법해(法海)’는 월하 종정예하로부터 받은 법명이다. 필자가 며칠 전 용궁에 갔다가 여의주를 만지면서 놀다가 가지고 나오면서 문 앞에서 잠깐 실수로 떨어뜨리고 말았다. 얼마나 억울한지 말로서는 표현할 길이 없었다. 한 동안 잠도 안 오고 밥맛도 없었다. 우리 문수가 행정고시에서 2차시험까지 합격했다가 3차 면접에서 뜻을 이루지 못했다. 절망이 얼마나 무서운 심마(心魔)인 줄을 알았고,우리의 마음이 얼마나 소중한 것인가를 깨달았다. 이 마음을 잃으면 모든 것을 잃는다는 것을 알았다. 또 절망에서 핀 꽃은 영원히 시들지 않는다는 화중생련(火中生蓮)의 깊은 뜻을 깨달았다. ‘행주송’으로써 안심을 얻었다. 불법의 바다를 달려가는 하나의 구슬이여 너는 색깔도 없고 모양도 없구나. 날마다 사용해도 다함이 없고 깊은 밤에도 항상 스스로 빛을 발하고 있네. ‘내 마음의 노래’ 法海行一珠(법해행일주) 無色亦無相(무색역무상) 日用而無盡(일용이무진) 長夜常自光(장야상자광) ‘行珠頌’
    김형중 법사(문학박사)
    Mediabuddh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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