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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렁탕·곰탕·갈비탕·국밥과 세계 최고 레스토랑

浮萍草 2013. 3. 15. 07:00
    역사 반세기 넘은 한식당 소개 책에는 '탕국'이 주 메뉴… 
    佛 레스토랑 기원도 羊足 끓인 탕국음식 
    '관광객 전용' 전락한 세계 最古 식당 '보틴' 
    한국서 되풀이 안 되길
    
     
    '탕·탕·탕…'. 
    지난 7월 한식재단이 펴낸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을 보면서 떠오른 생각이다. 
    이 책은 현재 영업 중인 국내 한식당 중에서 50년 이상 역사를 가진 100집을 모아 소개하고 있다. 
    이 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훑어봤다. 
    설렁탕,곰탕,갈비탕,삼계탕,꼬리곰탕,추어탕 등 탕을 내는 식당의 비율이 유난히 높았다.
    올해로 개업 108년을 맞아 국내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음식점인 서울의 이문설렁탕(1904년 개업)부터 나주곰탕 명가인 전남 나주 
    하얀집(1910년),개장국으로 이름 높은 부산 박달집(1920년),경기도 안성 설렁탕집 안일옥(1920년), 서울 형제추어탕(1926년) 등 
    최고령 한식당 10곳 중 절반이 탕반(湯飯)을 내는 식당이다. 
    고기나 뼈 따위를 끓인 국물음식이 우리의 외식(外食) 메뉴 중에서 역사가 가장 긴 셈이다.
    국물 음식이 외식 메뉴로 가장 먼저 등장한 건 우리만이 아니다. 
    1765년 프랑스 파리에서 개업한'불랑제'라는 식당은'우리는 최고의 레스토랑을 판매합니다'라는 선전 문구를 간판에 적어넣었다. 
    음식점에서 '음식점'을 뜻하는 '레스토랑'을 판매한다? 
    '레스토랑'은 원래 수프, 즉 탕을 일컫는 말이었다. 
    양(羊)의 발 부위를 화이트소스로 끓였다. 
    한국에서 팔았다면 '양족탕(羊足湯)'이라 불렀을지도 모를 일이다.
    한국 사람들은 피곤하고 기운이 없거나 한여름 무더위에 지쳤을 때 찾는 음식이 곰탕이나 삼계탕,추어탕 따위의 탕요리이다. 
    프랑스 사람들도 마찬가지였던 듯하다. 
    18세기 파리 사람들은 기운을 내기 위해 '레스토랑' 한 그릇을 먹으려 불랑제를 찾았다. 
    레스토랑은 일종의 보양식(補養食)이었다. 
    원기를 회복하기 위해 먹는다고 해서'(체력을) 회복시킨다'는 뜻의 프랑스어 동사 '레스토레(restaurer)'에서 '레스토랑(restaurant)'
    이라는 이름이 나왔다. 
    이 보양탕 레스토랑은 큰 인기를 끌었고 마침내 각종 음식을 손님에게 돈 받고 제공하는 외식업체를 총칭하는 일반명사로 굳어진 
    것이다.
    기네스북에 등재된, 현존하는 세계에서 가장 오래된 레스토랑은 스페인 수도 마드리드에 있는 '보틴(Botin)'이다. 
    1725년 문을 열었으니 올해로 무려 287년째 영업 중이다. 
    이 식당을 지난 1월 방문했다. 
    보틴을 찾아가기 위해 투숙하던 호텔에서 식당의 주소와 가는 길을 묻자"요즘 그 식당에 마드리드 사람들은 거의 가지 않는다"며 
    "굳이 음식 맛을 위해 찾아가라고 권하고 싶지는 않다"고 했다. 
    그래도 300년의 역사를 바라보는 식당은 어떤 맛과 모습일까 궁금해 보틴을 찾았다.
    일러스트=김현지 기자 gee@chosun.com

    레스토랑 보틴은 여전히 성업 중이었다. 그런데 뛰어난 음식 맛이나 서비스가 아니라 오래된 역사와 명성을 팔아서 먹고사는 듯했다. 웨이터들의 서비스는 불친절하지는 않았지만 타성에 젖은 듯 무성의했다. 첫 코스인 전채요리가 나오는 데 걸리는 시간은 5분을 넘지 않았다. 미리 만들어놓지 않았으면 불가능한 속도와 신속함이었다. 그리고 전채를 다 끝내기도 전에 웨이터가 메인 요리를 들고 나왔다. 각 코스의 요리를 충분히 즐기도록 손님이 접시를 비우면 다음 요리를 내는 것이 일반적인 유럽의 고급 레스토랑들과는 달랐다. 세계 최고(最古)일지는 몰라도 최고(最高)는 아니었다. 맛있는 음식을 위해 찾는 레스토랑이라기보다는 가장 오래된 식당이라는 명성에 이끌려 찾아가는 관광 명소로 전락한 듯했다. 왜 현지인들은 이 식당을 찾지 않고 미국·일본·한국·중국 등 외국에서 오는 관광객들만 있는지 알 것 같았다. 이대로라면 이 레스토랑이 과연 언제까지 명성과 역사를 이어갈 수 있을지 궁금했다. '한국인이 사랑하는 오래된 한식당'이 출간된 후 미식가들 사이에서는 이 책과 책에 등장하는 음식점들이 화제가 되고 있다. 소개된 일부 음식점에 대해 '음식이 예전 같지 않은데 단지 오래됐단 이유로 포함된 식당이 있다' ' 비싼 요리를 주문하지 않고 식사만 시키면 퉁명스럽게 손님을 대해 불쾌하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한식재단 양일선 이사장은 '펴내는 글'에서'우리나라에 100년 이상 된 한식당은 거의 찾을 수가 없습니다. 그렇다고 80년, 90년 이상 된 식당들이 많은 것도 아닙니다. 역사라고 부를 만큼 오랜 시간 국민에게 사랑받아 온 식당이 세계적으로 다른 국가에 비해 드물다는 것은 분명 안타까운 일입니다' 라고 했다. 이 책에 소개된 식당들이 앞으로도'역사'라고 부를 만큼 오랫동안 국민에게 사랑받으며 명성을 이어가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 알고 있으면 좋겠다.
    김성윤 조선일보 대중문화무 기자 gourmet@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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