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W T = ♣/땅의 歷史

마의태자 루트와 강원도 인제]

浮萍草 2016. 5. 4. 12:22
    마의태자는 인제 땅에서 무엇을 꿈꿨을까
    쓸쓸한 사내 뒷모습 력 10월 경주에서 벌어진 일이다. '왕자가 말했다. "나라의 존망은 하늘에 달려 있으니 충신, 의사들과 함께 민심을 합하여 힘을 다한 뒤에 망할지언정 어찌 천년 사직을 하루아침에 남에게 줄 수 있겠나이까." 그래도 왕이 왕건에게 항복을 청하자 왕자는 통곡하면서 하직 인사를 하고 개골산으로 들어가 바위 아래에 집을 짓고 삼베옷을 입고 풀을 먹으며 일생을 마쳤다.' 신라 마지막 왕인 경순왕 아들 마의태자 이야기다. 사서 제목은 1145년 편찬된 '삼국사기'다. 저자는 김부식이다. 김부식에게 역사교과서 편찬을 명한 사람은 고려 왕이었다. 한 나라 태자가 눈물을 찔찔 흘리며 산속으로 들어가 식음을 전폐하다가 죽었다고 기록했다. 정말 그랬을까. ㆍ미궁 속 행로
    민초(民草)들은 자기 마을에서 벌어진 일을 구전(口傳)으로 1000년 뒤 후손에게 전한다. 바로 지명과 전설이다. 한두 사람이 만든 창작물이 아니라 시간대를 초월해 구비 전승된 집단 기록이다. 식자(識者)들이 애지중지하는 기록보다 더 명징하다.
    마의태자 마을인 강원도 인제 용소마을에는 폭포가 있다. 이름은 용소폭포다. ‘하트’처럼 뚫린 암벽에 폭포수가 흐르고 봄꽃이 점점이 피었다. /박종인 기자
    삼국사기 "마의태자는 금강산에서 풀 먹고 죽었다" 전국 곳곳에 마의태자 관련된 지명·전설 남아 인제에는 태자가 신라 부흥군 지휘한 흔적 몰려 있어 폭포수 흐르는 용소마을에는 '마의태자 권역' 세워져
    대한민국에는 역사책에 없는 마의태자 발자국이 곳곳에 찍혀 있다. 전설과 지명을 따라가면 사서에 없는 마의태자 북상 루트가 윤곽을 드러낸다. 그 지명과 전설은 이렇게 말한다. "태자는 눈물이나 흘리던 약한 사내가 아니라 신라 부흥을 꿈꾸던 군주였다"고. 경북 안동 용두산에는 국망봉이 있다. 경주를 떠난 마의태자가 경주를 돌아봤다는 봉우리다. 이 봉우리에서 3㎞ 들어가면 나오는 마을 이름은 태자리(太子里)다. 산 정상 바윗돌 이름은 마의대다. 충북 충주 월악산에는 미륵대원사지가 있다. 마의태자가 신라 부흥을 꿈꾸며 세웠다는 절터다. 미륵 석불입상이 고고하게 서 있다. 절터 위치는 계립령이다. 계립령은 중원성을 거쳐 경주에서 북쪽으로 가는 대로였다. 전설은 계립령을 넘고 남한강을 건너 이어진다. 경기도 양평 용문산 용문사에는 1000살이 넘은 은행나무가 있다. 사람들은 "마의태자가 지나가면서 꽂은 지팡이가 자라난 나무"라고 믿고 있다. 공작산과 수타사가 있는 홍천 노천리에는 지왕동(至王洞)이 있다. 왕이 당도했다는 뜻이다. 지왕동에서 고개를 넘으면 왕터가 나온다. 왕터를 건너면 바로 인제 땅이다. 지명과 전설을 따라가면 마의태자는 험준한 산과 고개를 넘고 강을 건너 서진(西進),북진(北進), 동진(東進)을 했다. 금강산으로 도망가려 했다면 해안선을 따라 북상하면 그만인데, 패망한 나라 태자가 이 루트를 택한 이유가 수수께끼다. ㆍ군사요충지와 마의태자 루트
    맑은 자연이 있는 곳은 군부대거나 아니면 관광지다. 역사 속 군사요충지는 모두 관광지로 변했다. 몰려드는 여행자들에게 맞서서 군부대들이 그 지역을 선점해버리면 여전히 군부대다. 마의태자 발자국이 있는 곳들은 100% 유명 관광지다. 100% 과거 군사요충지이기도 했다. 계립령은 신라와 북쪽을 잇는 대표적인 교통로였다. 계립령 너머 중원성은 신라 제2 수도로 불렸다. 미륵대원사는 외부와 지리적으로 차단된 공간이었다. 태자는 군사 중심지와 요새(要塞)들만 골라 행군을 해갔다. 양평은 북한강과 남한강이 만나는 수운 중심지였다. 인제는 고구려와 신라가 격전을 벌인 곳이다. 지금도 인제 땅 많은 부분은 지도에 표시되지 않는 군사지역이다. 그만큼 아름다운 자연이 많기에 관광객이 몰리는 관광지이기도 하다. ㆍ인제, 기록되지 않은 역사
    인제에 남은 마의태자 흔적은 이렇다. ' 김부대왕로'라 개칭된 446번 도로를 따라 서쪽에서부터 중간다무리와 웃다무리 마을이 나온다. 김부대왕은 경순왕을 지칭하기도 하고 경순왕 아들 마의태자를 지칭하기도 한다. 현대에 세운 다리 이름은 다물교(多勿橋)다. 삼거리 이름은 다물삼거리다. 다물은 고구려말로 '회복하다'라는 뜻이다. 대규모 군사 훈련장이 있는 지역 이름은 김부리(金富里)다. 김부리 훈련장 속에는 김부대왕각이 있다. 마의태자 위패를 모신 사당이다. 위패에는 신라경순대왕태자김공일지신위(新羅敬順大王太子金公鎰之神位)라고 적혀 있다.
    조금 더 동진하면 갑둔리(甲屯里)가 나온다. 군사가 주둔했다는 뜻이다. 갑둔리에는 오층석탑이 있다. 알 수 없는 어느 때에 파괴돼 묻혀 있다가 발굴된 탑이다. 석탑에는 '김부 가족의 영원을 빈다'는 글귀가 새겨져 있다. 김부리에 있는 골짜기 이름은 맹개골이다. 마의태자를 따르던 맹장군 이름을 딴 지명이다. 맹장군은 양구에서 신라 부흥군을 훈련시키다 죽었다. 훈련 장소 이름은 군량리(軍糧里)다. 태자가 옥새를 숨긴 옥새바위도 있고 태자가 탄 수레가 넘어간 고개 수거네미도 있다. 사람들은 인제 김부리 일대가 신라 부흥을 꿈꾸며 태자가 세운 신라소국이었다고 믿는다. 아쉽게도 이 지명들이 있는 곳은 군부대가 관광객들과 경쟁에서 승리해 군사시설이 들어섰다.
    인제 갑둔리에 있는 오층석탑. 신라 부흥을 꿈꾸던 마의태자와 관련된 탑이다.

    갑둔리 너머 용소마을에는 마의태자 전설을 사실로 믿는 사람들이 마의태자권역이라는 공간을 만들었다. 마의태자 루트 안내소와 숙박과 식당이 여행자들을 맞는다. 마을 옆에는 희한하게 생긴 폭포가 있다. 이름은 용소폭포다. 하이힐 신고도 걸을 수 있는 나무데크 끝에 있다. 끝물을 맞은 봄꽃들이 암벽에 달라붙어 있고 하트 모양으로 뚫린 구멍에서 폭포수가 떨어진다. ㆍ한계산성, 그리고 장수대
    신라 부흥을 꿈꾼 마의태자 무리가 정착한 곳이 한계산성이다. 한계령 서쪽, 설악산 국립공원 장수대 입구에 있다. 마의태자는 이곳 산성에서 부흥군을 이끌고 항려(抗麗) 투쟁을 벌였다. 산성은 험준하기 짝이 없다. 등산로도 통제돼 있다. '군사지역=관광지'라는 법칙은 여기서도 통한다. 장수대 입구에서 사방을 돌아보면 첩첩산중 암봉 무리가 좁은 44번 국도를 내려다본다. 고려군에 대한 방어도 공격도 쉬운 길목이다.
    이 암봉 너머에 마의태자가 웅거했던 한계산성이 있다. 44번국도 건너편에는 20세기 6·25 전쟁 전사자를 기리는 산장 장수대가 있다.

    1000년 뒤인 20세기에도 이곳에서 전쟁이 벌어졌다. 인민군이 장악한 설악산을 수복하려는 전투가 벌어졌다. 국군이 승리해 설악산 지역은 대한민국 땅이 되었다. 도로 건너편에 낡은 한옥이 한 채 있다. 이 집 이름이 바로 '장수대(將帥臺)'다. 1959년 국군 3군단장 오덕준이 설악산 전투 전사자들을 추모하며 세운 산장이다. 홍수에도 무사했던 장수대는 지금 폐가로 변했다. 대청마루에는 쓰레기가 뒹굴고 방마다 자물쇠가 잠겨 있다. 민초들이 땅에 기록한 마의태자 행적은 여기까지다. 울분 가득한 태자가 신라 부흥을 꿈꿨는지, 아니면 공식 기록대로 금강산으로 갔는지 궁금하거든 인제 땅에 가서 봄날을 맞아보시라. ㆍ인제 여행수첩
    볼거리/답사 순서 1. 갑둔리 삼층석탑 : 446번 도로로 상남면 쪽으로 가다가 군부대를 지나 왼쪽에 이정표가 나온다. 비포장 내리막길을 가다가 삼거리가 나오면 오른쪽으로. 오른편 작은 언덕에 있다. 2. 갑둔리 오층석탑 :삼층석탑 입구를 지나 446번도로변 오른쪽에 이정표가 있다. 석탑으로 가는 오솔길이 운치 있다. 3. 용소마을(마의태자권역) : 오층석탑에서 상남면 쪽으로 직진하면 나온다. 숙박시설과 식당이 있다. 숙박은 5만~15만원. 일대기를 기록한 작은 공원도 있다. 상남면 김부대왕로 2390, www.마의태자.net, (033)461-0228 4. 용소폭포 : 용소마을 못 미쳐 다리 공사 중인 작은 삼거리에서 오른쪽 좁은 길로 들어가 공사 현장 지나 직진. 나무데크 산책로가 잘돼 있다. 5. 한계산성과 한계사지 : 설악산 국립공원 장수대에 있다.
    출입은 금지. 건너편에 있는 폐가 수준의 낡은 한옥이 1959년에 건립된 장수대다. 6. 남전약수 : 남면 남전리 산145. 2006년 홍수로 주변은 황폐하지만 물맛은 좋다.
          박종인 조선일보 여행문화 전문기자 seno@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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