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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리 소머빌의 삶을 돌아보며

浮萍草 2016. 4. 25. 12:55
    10파운드 지폐 인물이 된 스코틀랜드 신사임당은 누구?
    년 전 정신분석학자 사비나 슈필라인의 얘기를 담은 ‘데인저러스 메소드’라는 영화가 개봉했다. 
    슈필라인의 역을 맡은 배우의 연기에 깊은 인상을 받았는데 낯설지 않은 얼굴이었다. 
    당시 필자는 몰랐지만 키이라 나이틀리라는 꽤 유명한 배우로 출연작을 보니 2005년 스무 살 때 ‘오만과 편견’에서 주인공 엘리자베스 베넷 역을 맡았다. 
    영화는 제인 오스틴의 동명 소설이 원작이다. 
    필자는 장편 ‘오만과 편견’이 영국 소설가 제인 오스틴의 대표작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읽어볼 생각은 없었다. 
    그런데 우연히 TV에서 방영된 영화를 보고(특히 나이틀리의 호연에 깊은 인상을 받아) 뒤늦게 책을 봤다. 제인 오스틴은 섬세한 심리묘사가 탁월했는데, 그 뒤 ‘
    설득’이라는 장편도 재미있게 읽은 기억이 난다.
    2000년부터 영국 잉글랜드의 10파운드 지폐에는 찰스 다윈이 등장했다. 내년에는 소설가 제인 오스틴이 뒤를 이을 예정이다.
    ㆍ페이스북 투표에서 맥스웰 눌러
    얼마 전 배달된 학술지 ‘사이언스’ 2월 16일자(보통 한 달 뒤에나 온다)를 뒤적거리다 단신에서 흥미로운 사실을 알게 됐다. 제인 오스틴이 2017년부터 잉글랜드 10파운드 지폐의 인물로 나온다는 것이다. 참고로 현재 10파운드에는 찰스 다윈의 얼굴이 있다. 물론 과학자가 작가에게 밀리는 게 아쉽다는 내용은 아니다. 단신은 19세기 스코틀랜드 천문학자인 메리 소머빌이 2017년부터 스코틀랜드 10파운드 지폐의 인물로 나온다는 내용이다. 참고로 현재 스코틀랜드의 모든 지폐는 1995년부터 작가 월터 스콧이 주인공이다. 기사를 읽으며 필자는 두 가지 사실을 알게 됐는데, 영국은 잉글랜드와 스코틀랜드가 지폐에 다른 인물을 쓸 정도로 느슨한 연합국가라는 것(부결되기는 했지만 2014년 스코틀랜드에서는 독립을 놓고 국민투표도 있었다)과 지폐 인물도 바뀔 수 있다는 것이다. 참고로 찰스 다윈은 2000년부터 잉글랜드 10파운드 지폐에 등장했다. 그런데 메리 소머빌이 스코틀랜드 10파운드 지폐의 새로운 인물로 선정된 과정이 흥미로웠다.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은 소머빌과 물리학자 제임스 클러크 맥스웰,토목공학자 토마스 텔포드를 두고 페이스북에서 투표를 진행했고 그 결과 소머빌로 정해졌다. 소머빌과 텔포드에 대해서는 전혀 모르고 있던 필자로서는 물리학계에서 뉴턴과 아인슈타인 다음가는 천재라는 맥스웰이 뽑히지 않는 게 놀라웠다. 물론 소머빌이 여성이라는 점도 작용했겠지만 이런 쟁쟁한 경쟁자들을 누른 건(알고 보니 텔포드도 2009년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폰트치실트 다리’를 설계 하는 등 대단한 업적을 남긴 사람이었다) 뭔가 다른 이유가 있었을 것이다. 전기라도 있으면 읽어볼까 하고 국내 인터넷 서점을 검색해봤는데 소머빌에 대한 책이 전혀 없다. 별수 없이 위키피디아에서 ‘Mary Somerville’을 검색해보니 꽤 긴 글이 뜬다. 문득 신사임당이 떠올랐다. 외국인 가운데 언어학에 관심이 있는 사람이라면 세종대왕을 알 것이고 유학의 역사에 정통한 사람은 이황과 이이의 이름을 들어 봤을 수도 있다. 그러나 5만 원 권에 나오는 신사임당은 우리나라 밖에서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을 것이다. 위키피디아의 글을 읽다보니 소머빌은 과학자로서보다는 과학저술가로 더 유명해 책을 여러 권 남겼다. 미국 인터넷 서점 아마존에서는 소머빌의 책들을 여전히 구매할 수 있다. 그 가운데 필자가 가장 재미있을 거라고 생각한, 소모빌 사후 2년 뒤에 출판된 ‘Personal Recollections(회상)’ 이북을 무료로 다운받을 수 있다. 좀 읽어보니 소머빌이 맥스웰을 누를 정도로 스코틀랜드 사람들의 애정을 받는 이유를 짐작할 수 있었다. ‘ 회상’(아쉽게도 25%밖에 못 읽었다)과 위키피디아의 내용을 바탕으로 소머빌의 삶과 업적을 요약한다.
    최근 스코틀랜드 왕립은행은 물리학자 맥스웰(왼쪽), 천문학자 소머빌(가운데), 토목공학자 텔포드를 대상으로 투표를 진행해 소머빌이 2017년부터
    스코틀랜드 10파운드 지폐 인물로 선정됐다고 발표했다.
    ㆍ열 살 때까지는 글도 읽을 줄 몰라
    1780년 메리 페어팩스(Mary Fairfax)는 스코틀랜드 제드버러의 이모집에서 태어났다. 해군인 아버지는 메리의 유년시절 거의 집에 있지 않았다. 어머니는 독실한 신자로 성서 외에는 거의 책을 보지 않았고 딸의 교육에도 무관심했다. 반면 아들(메리의 오빠) 샘은 에든버러의 할아버지 집에서 지내며 교육을 받았다. 그러다보니 메리는 번티슬랜드 해안가에 있는 집 주변을 돌아다니며 거의 야생 상태로 살았다. 메리가 열 살 무렵 집에 온 아버지 윌리엄은 딸의 모습에 경악했고, 딸을 머셀버러의 사립학교로 보내 글을 깨치게 했다. 메리는 그 뒤에도 한 동안 글을 잘 못 읽어 고생했다고 한다. 그 뒤 몇몇 기회를 통해 프랑스어와 지리학, 산수 등을 공부하며 메리는 지식에 대한 갈망을 느끼게 됐고, 열세 살 때 자신이 태어난 이모집에서 한동안 머무르는 동안 이모부 토마스 소머빌에게 부탁해 라틴어를 배우기도 했다. 이 무렵부터 어머니는 에든버러에 작은 집을 구해 겨울을 보냈고 메리는 풍경화가 네이즈미스의 화실에서 그림을 배웠다. 메리는 꾸준히 그림을 배워 뛰어난 풍경화를 여러 점 남겼고 자화상을 그리기도 했다. 어느 날 네이즈미스가 원근법을 제대로 구사하려면 유클리드의 ‘기하학원론’을 읽어야한다는 얘기를 듣고 책을 구하려고 했지만 실패했다. 열다섯 무렵 동생 헨리의 입주가정교사로 온 크로 씨에게 부탁해 ‘기하학원론’과 보니캐슬이라는 수학자가 쓴 ‘대수학’을 입수했다. 여자 친척들은 메리의 이런 모습을 보고 “여자가 많이 배우면 재수가 없다”며 반대했다. 메리는 새벽에 침대에서 독학으로 조금씩 읽어나갔고 낮에는 다른 여자들처럼 피아노를 치고 자수를 배웠다. 회고록에서 메리 소머빌은 시간이 많았던 이 시절을 헛되이 보냈다며 아쉬워하고 있다.
    메리 소머빌은 뛰어난 풍경화가이기도 했다. 소머빌의 작품 ‘호숫가의 성채’ - 소머빌 칼리지 제공
    ㆍ첫 남편 사망 후 여건 좋아져
    1804년 스물넷에 먼 친척으로 런던의 러시아 영사로 있던 사무엘 그레이그와 결혼해 런던에 살면서 아들 둘을 낳았지만 3년 만에 남편이 죽었다. 그런데 이게 인생의 전환점이 됐다. 회고록을 보면 “첫 남편은 여자가 배우는 걸 반대했고 과학에는 관심이 없었다”고 쓰고 있다. 친정으로 돌아온 메리는 뉴턴의 ‘프린키피아’를 읽기 시작했고 에든버러대 수학교수인 윌리엄 왈라스를 알게 돼 수학과 천문학 교재를 소개받았다. 메리는 회고록에서 “서른셋이 돼서야 이 책들을 다 모을 수 있었다”고 쓰고 있다. 1812년 메리는 이모의 아들, 즉 아홉 살 연상인 이종사촌 윌리엄 소머빌과 재혼했다. 윌리엄은 영국의 아프리카 식민지를 개척하며 젊은 시절을 보냈고 메리와 결혼한 뒤에는 에든버러의 스코틀랜드 육군의무부 책임자로 일했다. 윌리엄은 첫 번째 남편과는 정반대로 메리의 공부를 적극 도왔고 인맥을 통해 많은 학자들을 소개해줬다. 이런 여건 아래에서 메리 소머빌은 점차 스코틀랜드 지식층에 알려지게 된다. 당시 영국 수학계는 뉴턴의 유율법을 고집하며 대륙의 미적분학을 받아들이지 않아 많이 뒤쳐진 상태였고 몇몇 수학자들이 본격적으로 대륙의 수학을 도입하려는 시점이었다. 왈라스 교수도 이런 사람 가운데 하나로 그가 메리 소머빌에게 추천한 책 가운데는 프랑스 수학자이자 천문학자인 피에르 시몽 라플라스의 ‘천체역학’도 있었다. 소머빌은 1831년 이 책의 번역서를 냈는데,“나는 라플라스의 대수학을 일반 언어로 번역했다”고 말했을 정도로 읽기 쉽게 의역했다고 한다. 이렇게 뒤늦게 학자들과 교류하며 수학과 천문학을 열심히 공부한 소머빌은 1826년 46세에 학술지 ‘영국왕립학회보’에 ‘태양 스펙트럼의 보라색 빛의 자기적 특성’이라는 제목으로 첫 논문을 발표했다. 과학책도 몇 권 썼는데, ‘물리과학의 연관성에 대해’(1834), ‘물리 지리학’(1848), ‘분자 및 미시 과학’(1869) 등이 있다.
    국제천문연맹은 메리 소머빌을 기념해 달의 분화구 가운데 하나를 ‘소머빌 크레이터’라고 명명했다. 아폴로 15호가 찍은 사진이다. - NASA 제공

    1835년 소머빌은 독일의 천문학자 캐롤라인 허셜과 함께 영국왕립천문학회 최초의 여성 회원으로 선출됐다. 소머빌은 ‘물리과학의 연관성에 대해’ 6판(1842)에서 천왕성의 공전궤도를 교란시키는 가상의 천체에 대해 언급했는데,1846년 해왕성이 발견되면서 미스터리가 풀렸다. 1838년 소머빌 부부는 이탈리아에 정착했고 메리 소머빌은 1872년 11월 나폴리에서 92세를 일기로 타계했다. 소머빌은 고령에도 명료한 정신을 유지했는데, 이해 여름 쓴 다음 글을 보면 잘 알 수 있다. “내가 어렸을 때는 지금보다 새들이 훨씬 많았는데, 농부와 정원사들이 지금 사람들보다 가난했지만 덜 잔인했고 욕심도 덜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자연의 산물을 새들과 기꺼이 나누었다. 오늘날 도처에서 볼 수 있는 근시안적인 잔인성은 화를 자초하고 있다. 새들을 무자비하게 죽이면서 자연의 평형이 깨져 곤충이 늘어나면서 농작물이 광범위한 피해를 보고 있다. 올여름을 보낸 소렌토에서도 올리브와 포도. 오렌지까지 심각한 피해를 봤다.” 문득 우리도 영국처럼 한 20년 주기로 지폐 인물을 바꾸면 어떨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면 최근 종영된 사극의 주인공 장영실도 1만 원 권에 등장할 수 있지 않을까. 천출인줄 알면서도 장영실을 중용한 세종대왕은 물론 기쁜 마음으로 자리를 내줄 것이다.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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