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우리 고전 비틀기

2 식인종이라고 인육을 먹고 싶어 먹었을까

浮萍草 2016. 2. 27. 09:29
    자기 것이지만 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 두 가지는?
    《금방울전》 그림 삽화. 그림=꼭두갤러리
    단 질문부터 하나 해보자. “자기 것이지만,자기보다는 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 두 가지가 있다. 그것이 무엇일까?” 수수께끼도 난센스 퀴즈도 아니다. 나름 진지한 문제다. 퍼뜩 답이 생각나지 않는다면 머릿속 한편으로 고민하면서 다음의 옛이야기를 따라가 보자. 곰곰이 생각하며 보다 보면 답이 저절로 떠오를지도 모른다. 옛날이야기의 주인공은 당연히 아름답다. 남자는 잘생기고 세련된 데다 성격과 인품도 훌륭하다. 하는 일도 황홀하다 못해 숨이 막힐 지경으로 멋들어진다. 남자만 그런 게 아니다. 여자는 또 어떤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아름다운 여인이 곧잘 주인공으로 나온다. 물론 맘씨도 착하고 현숙하고 용모도 단정하다. 우리만 그런 것이 아니라 서양도 그렇다. 화롯가의 재를 뒤집어쓰는 부엌데기라는 뜻의 이름인 신데렐라도 아름다웠고 하얗다 못해 눈이 시릴 정도로 아름다워서 백설공주였다. 실제로 그런 남자나 여자가 있느냐는 질문은 의미 없다. 주인공들이 그렇게 그려지는 이유는‘아름다운 것’은 ‘좋은 것’과 쉽게 통하고,그 ‘좋은 것’ ‘아름다운 것’이 되고자 하는 독자의 욕망을 그 주인공들이 채워주기 때문이다. 그런데 특이하게도, 아니 기이할 정도로 이상한 주인공들이 있다. 주인공이면서도 못생긴 인물이 있는 것이다. 현대소설이 아니라 옛날이야기에 주인공이면서 못난이들이 나온다는 것은 정말 특별한 것이다. 대표적인 여성 둘이 있다. 《박씨전》의 박씨와 《금방울전》에서 금방울을 낳는 어머니 막씨이다. ㆍ못생긴 女주인공
    《박씨전》에서 박씨의 추한 모습은 소설 각 편마다 조금씩 다르게 묘사하지만 대표적인 것 하나를 보면 이렇다. 박씨의 용모를 보니 얼굴은 온통 얽었는데 그 얽은 구멍마다 더럽고 지저분한 때가 가득했다. 거기에 눈은 단춧구멍 같고 코는 깊은 산의 바위처럼 널찍한데 이마까지 벗겨져 있다. 키는 또 껑충 큰데 팔은 축 늘어져서 원숭이 같고 심지어 다리는 저는 것 같았다. 밤새 부둥켜안고 자야 할 부인이 이 모양이니 아버지 때문에 억지로 결혼하게 된 남편 이시백은 난감하기 그지없었다. 그래도 효성이 깊은 그는 떨어지지 않는 발을 억지로 떼어 동침하러 간다. 아무튼 박씨는 추녀이기는 하나 본래 못생긴 것이 아니라 특별한 이유로 인해 잠시 동안 그렇게 추한 허물을 쓰고 있어서 그런 거였다. 허물을 벗고 그야말로 환골탈태한 모습은 넋이 나갈 정도로 아름다운 모습이었다. 물론 남편 이시백은 어떻게든 그녀의 몸에 손이라도 한 번 대보려고 안달복달을 하지만 서릿발처럼 냉정한 박씨의 서슬에 똥 마려운 강아지마냥 끙끙거리기만 한다. 나중에 부인의 하해와 같은 은혜(?)를 입어 비로소 동침을 하기까지 그의 노력은 눈물겨울 정도다. 아무튼 뒤집어쓴 허물 때문에 그렇게 추물이었던 거지 본래 박씨는 미인이었다. 하지만 《금방울전》의 막씨는 본래부터 추녀이다. 허물을 벗기 전의 박씨와 우열을 가리기 힘들 정도로 못생긴 막씨는 김삼랑이란 자와 결혼을 한다. 하지만 김삼랑은 막씨를 버리고 조씨 여자를 얻어 따로 산다. 못생겨서 소박 아닌 소박을 맞은 막씨는 그래도 시어머니를 지성으로 섬기며 봉양한다. 그러다 시어머니가 돌아가시게 되는데 막씨는 극진히 장례를 지낸 후 시어머니 묘소에 초막을 짓고 살며 시묘살이를 한다. 이런 극진한 정성에 감동했는지 어느 날 꿈을 꾸는데 그 꿈에 옥황상제의 명을 받은 신선이 나타나 그녀에게 딸을 점지해 주겠다고 한다. 그런데 이 신선의 말이 딱도 한 것이,막씨는 결혼을 했지만 남편을 처음 본 날이 마지막 날이었다. 남자를 본 적이 없는데 어떻게 자식을 낳을 수 있단 말인가. 게다가 꿈 속의 신선은 그녀의 남편인 김삼랑이 죽었다는 말까지 한다. 대체 어떻게 딸을 점지해 주겠다는 것인지 알 수가 없다. 다른 남자랑 결혼하라는 것일까? 그런 것 같지는 않다. 일단 막씨의 외모 때문에도 그렇지만 막씨처럼 극진한 정성의 효부(孝婦)가 시묘살이를 마치지도 않았는데 다른 남자에게 시집간다는 것은 있을 수 없다. 게다가 과부가 재가하는 것은 당시 어려운 일이었다. ㆍ죽은 남편과의 섹스
    영화 〈스피시즈〉의 주인공 실.
    꿈에서 깨어난 막씨는 남편이 죽었다는 말을 떠올리고는 남편의 위패를 만들어서 제사를 지낸다. 그렇게 남편의 죽음을 추모하며 지내던 어느 날 정말 놀랄 일이 벌어진다. 죽은 남편이 나타난 것이다. 어느 날 막씨가 슬픔에 잠겨 앉아 있는데, 갑자기 한 줄기 스산한 바람이 일더니 초막 앞에 한 사람이 나타났다. 자세히 보니 죽은 자신의 남편 김삼랑이 아닌가. “꿈에 신선이 말하기를 돌아가셨다고 하던데 어떻게 오셨나요?” 김삼랑이 목이 멘 소리로 답했다. “내가 방탕해서 당신의 큰 절개를 모르고 맘대로 행하다 죽어 저세상에도 못 가고 귀신도 되지 못해 이렇게 이 세상을 떠돌고 있소. 그런데 당신이 나를 위해 극진히 제사를 지내주니 감격할 따름이오. 비록 이승과 저승의 경계가 분명하나 어찌 내가 사례하지 않겠소.” 그러고는 살아 있을 때처럼 그녀에게 수작하더니 동침하는 것이 아닌가. 그렇게 자주 왕래했는데, 배가 점점 부르더니 뱃속에서 아이가 노는 것 같은 느낌이 났다. 점점 배가 부르자 막씨는 행여 누가 알까 걱정되어 조심했다. 드디어 열 달이 되어 초막에서 해산하고 보니 세상에 사람 아이가 아니라 금으로 빛나는 방울 같은 것이 나온 게 아닌가. 막씨는 놀라 금방울을 손으로 눌러 없애려 했지만 터지지 않았다. 돌을 들어 깨뜨리려 해도 깨지지 않았다. 집어다가 멀리 던지고 왔더니 데굴데굴 굴러 따라오고, 깊은 물에 던져버려도 쪼르르 달려왔다. 불 때는 아궁이에 넣어도 상하기는 고사하고 더욱 금빛을 내며 향기까지 진동했다. 금방울은 낮에는 이리저리 다니며 새도 잡아오고 나무 열매도 따와 어머니 막씨 앞에 가져다 놓고, 밤이면 막씨의 품에 들어가 그녀의 몸을 따뜻하게 해주었다. 신선은 딸을 낳게 해주겠다고 했는데 실제로 막씨가 낳은 것은 괴상망측하게도 금방울이었다. 물론 박씨가 허물을 벗고 미녀가 된 것처럼,훗날 이 금방울이 깨지며 빼어난 미녀가 나오기는 하지만 이때는 그야 말로 괴물 같은 것처럼 여겨졌다.
    신통방통한 행동을 하는 것이나 깨뜨리려 해도 깨지지 않고 불에도 타지 않는 모습 등은 알(卵)로 태어난 신화 속 영웅의 능력과 겪는 시련·고난과 동일하다는 것을 눈여겨 보아야 한다. 우선 이 이야기에서 주목할 것은 천하의 못된 놈이던 김삼랑이 죽고 나자 전에 없이 훌륭하고 뛰어난 인물이 되어 나타난다는 점이다. 하는 말이나 행동 모두 번듯한(?) 것이 살아서 그랬다면 더 없이 좋을 텐데 하는 생각이 들 정도다. 살았을 때 김삼랑은 천하의 박정한 놈팡이였다. 그가 이렇게 ‘반듯’하고 능력 있는 존재가 된 것은 바로 ‘죽었기’ 때문이다. 추녀였던 막씨의 모습과 그녀가 처한 상황을 보면,우리는 쉽게 신화 속 어머니들의 모습을 떠올릴 수 있다. 초막이라는 외딴 공간과 그 속에 놓인 여성,그리고 그곳을 찾아온 남성. 물론 그 남성은 실제 인간이 아니라 신적 존재로 강력한 힘을 지닌 자들이다. 옥황상제의 아들이기도 하고 용이기도 하고 때로는 빛으로 변해서 따라오기도 한다. 그렇게 남성으로 이해되는 신들이 세속의 공간과 구별된 외딴 곳에 있는 여성을 찾아오고 그 여성은 잉태한다. 그리고 그녀가 낳은 자식은 시대적 모순을 해결하는 영웅이 된다. 단군이 그랬고 주몽이 그랬다. 이쯤 되면, 막씨의 못생김을 부정적 표지로 읽어내서는 안 된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추녀 막씨의 외모는 단군을 낳은 곰에서 변한 웅녀와 주몽을 낳은 입술이 기형적으로 길게 늘어나는 형벌을 받았던 유화의 모습과 동일하다는 것을 깨닫게 된다. 즉 막씨가 추녀인 것은 실상 그녀의 탁월성을 표지로 읽어내는 것이 온당한 것이다. 《박씨전》의 박씨가 허물을 뒤집어쓰고 추녀로 지내야 했던 것과도 같은 의미이다. 곰에서 변하는 것이나 새처럼 입술이 길었던 것 허물을 뒤집어쓴 것과 추한 용모는 모두 같은 기제이다. 선별된 여성,특별한 여성의 지표인 것이다. 인간의 시각에서 미추(美醜)의 관념이 신적 존재들의 영역에서도 똑같다고 생각한다면 큰 오산이다. 하다못해 인간들 세상에서도 지역과 문화에 따라 미추를 판별하는 시각이 상이한데 신과 인간의 차이는 현격하다 못해 완전히 판이 다를 수밖에 없다. 다시 말해 신적 존재가 특정 인간의 몸에 임한다는 것은 그 인간이 사람들 보기에 아름다워서 임하는 것이 아니다. 신이 보기에 필요해서, 다른 말로 ‘특별해서’ 신과 교통하고 교합하기 적절하기에 그녀에게 임하는 것이다. <스피시즈〉라는 SF 영화를 보면 외계 생명체의 유전자로 만들어진 실(Sil)이란 여인(?)이 남자를 지속적으로 유혹하는데, 이유는 더 훌륭하고 탁월한 생명체를 만들어내기 위해서다. 재미있는 것은 남성을 선택하는 데 있어 그 남성의 외모나 학식을 보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튼튼한지(?)를 그녀만의 능력으로 스캔해서 합당한 자를 유혹한다. 남들이 보기에 멋들어진 남성이기는 하지만 마약에 찌들어 있는 것을 알고 패스하는 장면은 상당히 함축적이기까지 하다. 엉뚱한 소리이긴 하지만 인간들이 보기에 아름다운 외모가 개나 고양이가 보기에도 아름다울지는 미지수다. ㆍ그토록 부담되면 왜 결혼식을 올리는가
    너무 빤한 상식이어서 언급하는 것조차 한심스러울 정도지만,뭔가 새로운 존재가 태어나려면 반드시 두 존재의 결합이 필수적이다. 한마디로 남자와 여자가 성교를 해야 자식이 태어난다. 신들에조차 성별을 부여해서 남신(男神), 여신(女神)으로 이해했던 이유가 바로 이런 ‘인간적’ 사고 때문이었다. 그래서 초막에 홀로 사는 막씨가 잉태를 하기 위해서는 죽은 존재이긴 해도 남편이 찾아와서 동침을 해야 했던 것이다. ‘죽은 자와 동침해서 자식을 낳는다’는 지금은 조금은 무시무시한 관념이 그때는 신성한 관념으로 이해되었고 그래서 금방울은 영웅적 존재로 자리매김 되었다. 그런데 이렇게 ‘남과 여의 결합’이 있어야 새로운 존재가 출현한다는 관념은 ‘존재의 탄생’에 대해서는 잘 설명해 주지만,‘존재의 성장’에 대해서는 별다른 설명을 해주지 못한다. 태어난 인물이 영웅으로 성장하는 과정에 대해서 별다른 말을 해주지 못하기에, 신화에서 영웅들은 탄생과 동시에 즉시 쑥 성장해 어른이 되기도 하고,어리다는 생각이 들지 않도록 어른과 같은 행동을 서슴없이 행한다. 이는 영웅의 특별함 때문에도 그렇지만 ‘존재의 성장’을 설명해 주는 방법이 없기 때문이다. 이렇게 사람이 스스로 변하는 것을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이해했을까? 아니 그렇게 변하기 위해서 어떻게 노력했을까? 이런 질문은 현대인들에게는 어처구니없게 들릴 수도 있다. “그냥 크는 거지, 뭘 따져?”에서부터 “그게 중요해?”까지 다양한 반응이 쏟아질 것이다. 그리 단순히 치부할 것이 아닌 게,지금도 우리가 날마다 받는 청첩장이 바로 그런 오래된 관념의 편린들이기 때문이다. 수없이 많은 예식과 의식이 바로 그렇게 한 사람이 변화하는 과정, 아니 그렇게 변하겠다는 의지의 과정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것들이니 말이다. 냉정하게 들릴지 모르지만, 왜 우리는 결혼식이라는 소모적이고 피곤한 예식을 치르는가? 그 이유를 한번 곰곰이 생각해 보라. 사실 결혼은 그냥 법적으로 혼인신고만 하면 된다. 그러면 끝이다. 예식은 번다한 군더더기일 뿐이다. 하지만 신랑신부들은 시끌벅적하게 예식을 올리든 조촐하게 올리든 어떻게든 결혼식을 하려 한다. 만약 결혼식을 못 하고 혼인신고만 하고 산다면 보통 두고두고 한으로 생각한다. ㆍ‘어른’의 뜻
    상투는 冠禮를 치른 사람이 하는 머리카락을 위로
    치켜 빗어 꼭대기를 잡아 맨 것을 말한다.
    문제는 마음이다. 마음이 이 같은 현실을 쉽게 받아들이지 않는다. 그렇다. 바로 예식은 마음의 생각인 것이다. 주민센터에 가서 혼인신고를 하는 것은 정말 최근 들어 생긴 규칙일 뿐이다. 진짜 결혼은 예식을 올려야만 결혼인 것이다. 그 마음의 생각이란 것이 예식의 기능이고 그 예식이 필요한 이유이다. 졸업식도 그렇고 입학식도 그렇다. 사실 서류처리만 되면 전혀 문제가 없는 것이지만 아무리 추운 날씨라 해도 발을 동동 구르면서 참석해 지루한 훈화를 듣고 꼭 사진을 찍는다. 그게 바로 예식이다. 옛날 사람들의 생활에 대해서 잘 모르는 사람들도 그 옛날‘입사식(入社式)’이란 기묘한 행위를 통해 한 사회의 구성원을 받아들였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있을 것이다. 한 사회공동체의 일원을 받아들이는 일련의 예식이 있고 그 예식을 당당히 통과한 자만이 그 사회의 소속원으로 인정받는 것이다. 높은 절벽에서 강으로 뛰어내리는 것을 입사식으로 하는 부족도 있고 독수리를 잡아오는 것을 통과 의례로 여기는 부족도 있는 등 다양한 형태의 예식이 존재했는데 여기서 공통점은 모두 ‘어린이가 어른 으로 성장했다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라는 점이다.
    지금처럼 주민등록증이 발급되는 시대가 아니니,누구에게 발언권을 주고 투표권을 줄지 정해야 했던 거다. 그냥 나이 먹는다고 모두에게 권한을 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자신이 ‘성장’했다는 것을, ‘변화’했다는 것을 증명한 자에게만 주었던 것이다. 익히 알듯이 조선시대 때 결혼을 해야 상투를 올릴 수 있었는데 아무리 나이가 많아도 결혼을 하지 못한 총각은 상투를 올릴 수 없었고,그렇게 총각머리를 한 자에게 상투를 튼 어린이가 반말을 하는 것은 결코 결례가 아니었다. 태어난 순서와 나이로 ‘어른’이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이었다. ‘어른’이라는 말부터가 그렇다. ‘어른’은 옛말인 ‘얼다’에서 생겨난 말인데 바로 ‘얼다’라는 말의 뜻이 ‘섹스하다’이다. 즉 결혼해서 성교를 하는 것이 ‘어는 것’이고 그런 행위를 공식적으로 할 수 있는 자들이 바로 ‘어른’인 거였다. 이렇듯 우리가 아직도 중요하다고 여기는 수많은 예식은 바로 어떤 존재가 조금 다른 때로는 아주 많이 다른 어떤 다른 존재로 변화하는 것을 인정하고 승인하는 행위이며, 그런 변화의 과정을 통한 결과를 용인하는 방법이었다. 자, 이젠 그 자신이 변화해서 새로운 존재가 되는 것을 살펴보자. 결혼식, 입사식 같은 예식들의 원형 말이다. 미리 힌트를 주자면 성교와 비슷하다. 둘이지만 하나가 되는 것이다. 바로 식인(食人) 이야기다. 식인종은 왜 사람을 잡아먹는가 식인종이 왜 사람을 잡아먹는지 아냐고 물으면 눈을 끔뻑거리며 별걸 다 묻는다고 핀잔을 할지 모르겠다. “그냥 먹는 거 아냐?” 대강 이런 답이 대다수다. “식인종이니까.” 이런 순환논증의 고리에 빠진 답도 종종 나온다. 식인종이니까 식인을 한다는 말이 틀린 말은 아니지만 애초에 왜 사람을 먹느냐는 본래의 질문을 조금 비껴나간 대답이다. ㆍ“배가 고파서겠지.”
    조금 나은 답이다. 먹을 것이 부족해서 사람 고기를 먹는 거라는 설명은 언뜻 타당해 보인다. 나중에 번복하기는 했지만, 인류학자 마빈 해리스도 처음에는 단백질 부족 때문에 사람을 먹는다고 주장한 적이 있다. 인정하고 싶지는 않지만 실제로 배가 고파,또는 단백질 부족으로 인육(人肉)을 먹는 경우가 아주 없지는 않았다. 영화로도 만들어졌는데, 꽤 널리 알려진 사건으로 안데스 산맥에 추락한 비행기 사고 생존자들이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결국 주위에 널린 시체들에서 양식을 구한 실화가 있다. 또 중국 역사에서 전쟁과 흉년이 이어지는 피폐한 시절에 사람을 먹었다는 흉흉한 일은 인육만두를 해먹었다는 말만큼이나 널리 알려진 사실이다. 특히 명 태조 주원장이 원나라와 싸우다 곤경에 처했을 초기에 궁지에 몰려 인육을 먹었다는 주장은 설득력 있게 전해진다. 아무튼 식인종이 사람을 먹는 이유를 “미개해서”와 같이 한심한 대답을 하면 안 되는 이유는 분명하다. 그들도 인간이고 방금 전까지 같이 말하던 사람을 때려잡아 먹을 정도로 ‘우매’하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들이 사람을 먹는 이유는 나름대로 복잡하고 뜻깊은 이유와 연원이 있다. 다시 말해, 식인종에게 마이크를 들이대고 “왜 사람을 먹느냐”고 물으면, 앞서 일반인들이 대답한 것과는 사뭇 다른 대답을 할 것이란 말이다. 일단 식인종들을 미개하다거나 미욱하게 생각하는 시각부터 걷어내야 본질을 제대로 볼 수 있다. 그들이 사람을 먹는 것은 ‘그냥’도 아니고 ‘먹거리가 부족해서’도 아니다. 그들은 사람을 먹어도 아무나 먹지 않는다. 마을의 약자를 골라 먹는 것 역시 아니다. 그들은 적들을 먹는다. 전쟁에서 상대편을 죽인 후 먹는다는 말이다. 이를 또 오해하면,“먹을 것이 부족해서, 먹으려고 싸움을 일으킨다”는 엉뚱한 소리로 흘러 버린다. 그렇지 않다. 식인종들이라고 해서 절대 근시안이 아니다. 외려 냉혹하고 험한 자연 속에 그대로 노출되어 살아야만 했던 그들은 더 멀리 보고 더 깊게 생각했다. 옆의 적이 모두 사라지면 결국 자신들도 죽을 위험에 훨씬 더 많이 노출된다는 것쯤은 알았다. 순망치한(脣亡齒寒)의 이치를 그들은 태어나면서부터 체득하고 있다. 식인종이 먹는 사람은 그들의 적인데 정확히 말하면 자신이 죽인 적을 ‘반드시’ ‘꼭’ 먹어야 했다. 그리고 그렇게 사람을 먹은 자 즉 전쟁에서 이기고 적을 먹고 돌아온 자는 그대로 자신의 집단에 소속되는 것이 아니라 정해진 율례에 따라 일정 기간 동안 특정한 장소에 모여 정해진 의식을 치른 후 본래의 집단으로 돌아갔다. 꼭 단군신화에서 곰과 호랑이가 동굴 속에서 쑥과 마늘을 먹으며 인내한 것과 비슷한 통과의례(通過儀禮)를 거쳐야만 본래의 모습으로 본래의 집단에 소속될 수 있었다는 말이다. 이쯤 되면 사람을 먹는다는 행위가 그리 단순한 것이 아니란 느낌이 온다. 전쟁에 나가고 거기서 적을 죽이면 반드시 그의 신체 일부를 먹고 그리고 돌아와서는 일정한 의식을 거쳐야 비로소 처음의 모습으로 받아들여진다는 것이다. 이는 퍽이나 복잡하고 귀찮은 짓이 아닐 수 없다. 즉 사람을 먹는 행위는 즐거운 행위가 아니라 조금 피곤한 행위이고, 하고 싶지 않지만 억지로라도 해야 하는 거였다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이 점이 중요하다. 대뜸 단백질 부족으로 사람을 먹는다고 말했던 마빈 해리스도 실제로 이런 메커니즘을 파악한 후 비로소 자신의 오류를 인정하고 번복했다. 한마디로 우습게 알았던 식인종들이 우스운 존재가 아니었던 것이다. 정리하면 하고 싶지 않지만 피치 못할 일이고 그런 행위는 일상의 측면에서 매우 ‘비일상적인 행위’로 인식되고 있는 것이다. ㆍ죽음에 대한 경외
    그렇다면 왜 사람을 먹을까? 이렇게 피곤하고 복잡하고 일상성을 깨는 일인 줄 알면서 왜 식인을 할까? 이유는 죽은 자에 대한 두려움에서 비롯된다. 정확하게는 ‘죽음’이라는 것에 대한 경외 때문이다. 죽음은 경이로운 것이다. 아니 경이롭다는 긍정적 말로는 조금 부족한 그 무엇이 들어 있는 것이 바로 죽음이다. 부모님의 장례식을 치른 사람들을 두고 물어보면 하나같이 두 번은 꼭 운다고 한다. 한 번은 부모님이 돌아가셨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와 또 다른 한번은 관에서 시신을 꺼내 깨끗이 씻는 염(殮)을 할 때라고 한다. 이미 돌아가신 것을 알지만 그 시신을 보고 또 그 시신을 다시 관에 넣는 그 염의 과정에서는 아무리 목석 같은 자라도 가슴이 미어지고 눈시울이 붉어지지 않을 수 없다. 염을 하는 공간과 자녀들이 서서 그것을 지켜보는 공간은 보통 흰 천으로 가로막듯이 갈라놓는데 그 흰 천이야말로 이쪽과 저쪽, 이승과 저승을 나눈 경계선이 된다. 자녀들은 울기는 하되 그 가로막은 흰 천을 붙잡지도, 또 그 천을 넘어가지도 않는다. 저쪽 시신이 있는 공간에는 오직 망자의 시신과 염을 하는 장례사만이 움직일 뿐이다. 그러니까 저쪽은 망자와 그 망자와 교통할 수 있는 사제에게만 허락된 공간인 것이다. 예전 사람들도 방금 전까지 살아 움직이고 말하던 존재가 갑자기 완전히 다른 그 무엇이 되어버렸다는 것을 어떻게든 설명해야 했다. 이는 현재까지도 어떻게 설명하지 못하는 그래서 이해하지 못하는 영역의 문제로 남아 있다. 과학은 물론 무수한 종교가 설명을 시도했지만 딱히 명확한 답을 우리에게 속시원히 내주지 못하는 문제이다. 옛날 사람들은 어떻게 죽음을 생각했을까? 그리고 그렇게 죽음의 영역으로 가버린 존재, 그 사람을 어떻게 인식했을까? 여기서 무수한 제례와 종교가 탄생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중 가장 원초적인 것이 그 망자를 ‘먹는 것’이었다. 먹는다는 행위는 곧 그 망자를 자신의 속으로 받아들인다는 것이고,그것은 정확하게 ‘망자를 기억’하고 ‘망자를 자신의 것으로 소속시키는 것’이며 나아가 ‘망자를 자기화하는 과정’이었다. 합일(合一) 과정인 것이다. 그렇게 망자와 하나가 된 식인자는 기존의 자신과는 다른 존재가 된다. 그러므로 그는 그 망자와 하나가 된 또 다른 존재로서 자기를 인정하고 인식하는 일정한 예식을 지내야만 비로소 자기 집단에서 받아들여지는 존재가 되는 거였다. 식인한 자들의 일정한 격리와 의례는 그 과정이었다. 호랑이와 곰의 동굴 속 금기와 비슷하게 말이다. 어쩌면 그 동굴 속에선 이런 소리가 울려 퍼졌을지도 모르겠다. “짐승의 탈을 벗고 인간이 되어라!” ㆍ죽음의 저편에 있는 存在
    여기서 한 가지 질문을 해보자. 만약, 식인종이 적을 죽인 후 그의 신체를 먹지 않는다면 어떻게 될까? 식인종이 아닌 우리는 잘 이해되지 않겠지만 그들은 이를 매우 심각하게 생각했다. 죽은 적을 먹지 않으면 그 죽은 적이 자신을 해코지한다고 여겼다. 죽음의 영역으로 들어간 그 적이 자신을 괴롭히고 자신에게 덤빌 거라고 생각했다. “죽으면 그만이지, 아니, 죽은 자가 어떻게 산 자를 해코지해?” 물론 시체가 좀비나 강시처럼 되살아나 덤비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 죽음의 존재가 자신을 엄습한다고 여겼다. 그래서 그들은 ‘먹었다’. 그렇게 먹음으로써 그 적을 완전히 자신의 ‘것’으로 만들었다. 아니 그 적과 자신이 하나가 되어 또 다른 자신이 되게 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이 이전과 달리 더 ‘성장’하는 것이고 더 강해지는 이유였다. 어느 여행자가 길을 가다가 뭔가에 발이 걸려 넘어졌다. 살펴보니 웬 짐승의 뼈가 길가에 흩어져 있는 것이 아닌가. 여행자는 그 뼈들을 모아 한쪽에 고이 묻어주었다. 그날 밤 꿈에 뼈의 주인인 짐승이 나타나 고맙다고 감사의 인사를 하고는 앞으로 행운이 있을 거라고 전했다. 대충 이런 이야기는 민담이나 설화 등에 셀 수없이 많다. 짐승의 뼈이기도 하고 때론 사람 뼈이기도 하다. 그 죽은 짐승이나 사람이 여행자에게 행운을 주기도 하고 어떤 때는 요술방망이 같은 구체적인 아이템을 주기도 한다. 아무튼 이를 두고 여행자가 선행을 베푼 것에 대한 보은이라고 보는 해석은 후대적 시각이다. 본래 의미는 죽음의 저편에 있는 강력한 존재가 그 여행자의 일부가 되어 도와주는 것이다. 이때 뼈만 남아 길에 방치되어 있는 사람이나 짐승은 살아 있을 때 힘 있던 존재가 결코 아니다. 그래서 그렇게 죽게 되었고 방치되었던 거다. 하지만 그가 ‘죽어서’, 정확하게는 ‘죽었기에’ 강력한 죽음의 저편에 있기에 강력한 존재가 된 것이다. 못돼 먹은 추녀 막씨의 남편이 죽은 후 개과천선(改過遷善)한 것처럼 착해져서 나타나 성교를 통해 금방울이란 신통방통한 것을 준 것처럼 말이다. 아무튼 이런 설화들의 연원을 조금 더 추적해서 거슬러 올라가면, 뼈를 모두 묻어주는 것이 아니라 뼈의 일부만 묻어주고 나머지 뼈를 여행자가 가지고 간다. 짐작하겠지만 바로 그 뼈가 그의 행운의 아이템, 주술적 마력의 아이템이 된다. 그리고 더 거슬러 올라가면 여행자가 바로 그 뼈의 존재를‘먹는다’. 뼈를 그대로 먹기도 하고 그렇게 사체를 먹기도 한다. 그렇게 뼈라는 구체적 아이템을 소유하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 자체를 먹어버림으로써 체화시켜 완전히 하나 되어 소유하는 것이다. 그렇게 죽음의 무서운 존재, 강력한 존재를 지배하는 것이다. 동물원에서나 호랑이를 보는 우리에겐 호랑이란 그냥 여느 동물 중 하나일 테지만 산속을 어슬렁거리는 호랑이를 직접 보고 살 수밖에 없던 옛날 사람들에게 호랑이는 공포의 대상이었다. 오죽하면 호랑이에게 잡아먹혀 죽는 호환(虎患)이 천연두인 마마(媽媽)와 함께 입에 오르내리겠는가. 이 호랑이에게 누군가 잡아먹히면 그 죽은 자의 일가친척은 차례차례 모두 다 잡아먹힌다고 두려워했다. 옛날에는 친척들이 비슷한 지역에 같이 모여 살았기에 한둘이 호랑이에게 당하면 또다시 당할 가능성이 높아 그랬겠지만,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했다. ㆍ요술을 부리는 호랑이
    창귀가 호랑이의 종노릇에서 벗어나 좋은 곳으로 가려면 다른
    사람을 호랑이 먹이로 바쳐야 한다.그러므로 창귀는 주로 아는
    사람만 찾아다니며 불러낸다고 한다.
    호랑이가 사람을 잡아먹으면 신통한 조화를 부린다. 잡아먹힌 사람은 굴각이란 창귀(倀鬼)가 되어 호랑이 겨드랑이에 들러붙어 살다가 호랑이를 어느 집 부엌으로 인도해 가서는 부뚜막의 솥을 핥게 한다. 그러면 그 집 주인이 갑자기 배가 고파진다. 그래서 한밤중에 아내에게 밥을 지으라고 성화를 부리고 그렇게 밥을 지으러 나온 부인은 호랑이 입속으로 들어가게 된다. 두 번째로 잡아먹힌 사람은 이올이란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광대뼈에 붙어산다. 높이 올라 사냥꾼의 올무나 함정을 확인하고는 이를 호랑이에게 일러준다. 세 번째로 잡아먹힌 사람은 육혼이란 창귀가 되어 범의 턱에 붙어산다. 이 창귀는 자신이 아는 친구 친척의 이름을 불러댄다. 그렇게 한 명씩 불려나와 호랑이 밥이 된다. 유명한 박지원의 《호질》의 앞에 나오는 이야기다. 주목할 것은 죽은 사람이 창귀가 되어 호랑이의 앞잡이 노릇을 한다는 점이다. 이 창귀는 물귀신으로도 이해되는 경우가 종종 있는데 남을 잘 끌어들이는 자를 두고 흔히 ‘물귀신같다’고 할 때 바로 그 물귀신이다. 죽기 전에는 그냥 평범하다 못해 약한 인간이었지만 죽고 나니 그전에는 상상할 수도 없는 일들을 하는 죽음의 존재가 되었고 그 죽음의 존재는 자신을 ‘먹은’ 존재에게 들러붙어 그에게 충성을 다한다는 것이다.
    겨드랑이에 들러붙고 턱밑에 들러붙고 호랑이 얼굴에 척 달라붙어 있는 그 찬란한 전리품들을 떠올려보라. 바로 그것이 호랑이 입장에선 요술방망이 아이템인 것이다. 이제 왜 식인종들의 목에 여러 짐승의 뼈와 이빨로 장식한 목걸이가 걸려 있는지 아시겠는가? 그건 ‘이렇게 많은 것이 내 속에 들어와 있다. 나는 강한 자이다’는 메시지인 것이다. 물론 그 짐승의 뼈와 이빨로 상대방에게 두려움을 주려는 목적도 있다. 주술적이고 본래적인 의미가 사라져 이젠 장식적 의미 외에 별다른 감흥을 주지 못하는 반지,귀걸이,목걸이 같은 것의 본래 의미는 이렇게 연원이 오랜 거였다. ㆍ위령제를 지내야만 하는 권력자
    죽은 자를 위한 행위의 대표적인 것이 장례(葬禮)이다.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장례엔 죽은 자에 대한 안타까움이나 아쉬움 등등의 단순한 감정 이상이 내재해 있다. 식인종들도 시신을 훼손하는 경우는 없다. 시신의 모든 부분을 먹지도 않는다. 그건 극도의 금기로 참람(僭濫)한 짓이다. 일부를 먹을 뿐이고 나머지는 그들이 알고 있는 방식으로 후장(厚葬)을 한다. 동서고금을 통틀어 시신을 훼손하거나 망자의 죽음을 함부로 여기는 경우는 커다란 금기이다. 아무리 악한 자라도 그가 죽으면 장례를 지낸다. 그리고 일정한 경의를 표한다. 그 경의는 정확하게 말해서,살아 있을 때의 그자를 향한 것이 아니라, 죽은 그자를 향한 것이다. 어폐가 있을지 모르지만, 위령제(慰靈祭)를 하는 가장 큰 이유는 죽은 자를 위해서라기보다는 살아 있는 자신을 위해서다. 그 옛날 폭군 황제들도 위령제를 지냈다. 손가락 하나로 별다른 이유 없이 많은 백성을 죽였지만 그렇게 죽였다 하더라도 제사를 지내는 것이다. 이는 ‘이렇게 제사를 지내주니 너희는 더 많이 나를 위해 전쟁에 나가 피를 흘려라’는 메시지를 전쟁에 나갈 군사들에게 전하기 위해서만은 아니다. 위령제는 정말 문자 그대로 영혼(靈魂)을 위로(慰勞)하는 제사(祭祀)를 지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살아 있을 때는 내 맘대로 할 수 있는 하찮은 것들(?)이었지만 죽은 그들은 내가 맘대로 할 수 없는 강력하고 불가사의한 영역의 존재가 되었으니, 그들을 잘 달래야 했던 것이다. 제갈공명이 남만(南蠻)을 정벌할 때 많은 등갑병을 태워 죽인 후 원혼으로 인해 자신의 수명이 길지 않을 거라고 하며 ‘만두’를 만들어 제사지낸 것이나, 자신이 죽인 자가 귀신이 되어 덤빈다며 난리를 피운 조조 등의 권력자들을 생각하면 이를 쉽게 알 수 있다. 권력자도 당연히 무서운 것이 죽음인 것은 동서고금의 변치 않는 사실이다. 심하게 말해, 위령제란 살아 있는 사람이 죽은 자의 해코지를 피하기 위해 그 시신을 먹었던 식인 행위의 세련된 문화적 버전인 것이다. ㆍ살과 피를 먹고 마셔라
    교회 성찬식을 위한 빵과 포도주. 성찬식은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예수와 한 몸이 되는 의식이다.
    사람을 먹는 이야기를 계속하다 보니 조금 거북스럽기는 하다. 현대에 사람을 먹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 하지만 실제로 인육을 먹는 사람은 없겠지만 상징적으로 ‘먹는 행위’를 여전히 하는 사람은 끊이지 않고 이어지고 있다. 아마도 한두 달 전에도 그런 행위를 했을 것이다. 거짓말 같은가? 그렇다면 주변의 성당이나 교회를 가보시라. 매 주일은 아니지만 중요한 절기에는 꼭 그런 행위를 한다. 성례식 혹은 성찬식 말이다. “뭔 소리여?”라고 하시지 말고 성례식 때 먹는 빵과 포도주를 아무 생각 없이 받아만 먹지 말고 집례하는 주교나 목사님의 말씀을 집중해서 잘 들어보시라. 분명하게 빵과 포도주를 먹고 마시는 행위를 ‘예수의 살과 피를 먹는 행위’라고 말씀하실 테니 말이다. 그렇게 ‘예수의 살과 피를 먹음’으로써 그 예수와 한 몸이 되는 거라는 친절한 설명도 곁들여서 말이다. 이 성례식은 실제 예수가 살아 있을 때 그의 제자와 함께했던 행위에서 이어져 내려온 것이다. 예수는 자신이 잡힐 것을 직감하고 그의 제자들과 그 유명한 만찬을 하며 ‘빵과 포도주’를 자신의 ‘살과 피’라고 말한다. 그리고 제자들에게 그것을 받아 마시라고 한다.
    제자들은 예수의 말을 어떻게 들었을까? 달려들어 진짜 자신의 살과 피를 뜯어먹으라는 말로 이해했을까? 아니면 그냥 재미있으라고 농담한 거라 여겼을까? 당연히 둘 다 아니다. 예수나 제자들은 분명하게 알고 있었고 그래서 그런 말을 했던 것이다. ‘먹는다’는 행위는 ‘그 존재의 본질과 합일’하는 행위라는 것 말이다. 정리하면, 실제 인육을 먹는 행위가 빵과 포도주로 변화한 것이다. 그것이 발전인지는 모르겠으나 충분히 당대에 받아들여질 만한 방식이었다. 뭔가 물질적인 것을‘먹는다’는 행위는 인육이든 빵과 포도주이든 구체적인 물질이 입을 통해 감각적으로 흡수된다는 행위로 느끼고 경험할 수 있는 거였기에 비슷한 구조라고 할 수 있다. 실제 성례식에서 먹는 빵과 포도주가 진짜 예수의 육신의 살과 피가 아님에도 경건하고 엄숙한 마음에서 먹고 마시는 것을 볼 때 충분히 납득되는 사실이다. ㆍ범해서는 안 되는 ‘이름’
    물리적 행위가 아닌 다른 존재를 내 속에 들이는 철학적이고 사변적인 방법 또한 존재했다. 물론 이것도 ‘먹는’ 방식은 동일했다. 하지만 그 존재의 물질인 인육을 먹거나 대체물인 빵과 포도주를 먹는 것이 아니라 그 존재를 상징하는 다른 것을 먹는 행위였다. 그 존재를 상징하는 것, 존재의 본질을 고스란히 담고 있는 것을 먹음으로써 인육을 먹는 것과 같은 기능을 했다. 그건 바로 이름을 먹는 것이었다. 이름이란 존재의 본질이자 정수이고 핵심이자 그 무엇으로도 대체할 수 없는 그 자체이다. 단순히 출석부에 오르고 주민등록에 오르는 번호 같은 것이 절대 아니다. 이름을 짓는 것은 그 존재의 본질에 맞게, 적확하게 그 존재를 나타내는 거였다. 즉 이름이 곧 그 존재 자체였다. 성경을 보면, 하나님이 처음으로 만든 인간인 아담이 주변의 동물과 식물들을 ‘처음 부른 이름’이 곧 그 존재의 명칭이 되었다고 설명하고 있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무엇이라고 부르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가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부르는 것이 곧 그 이름이 되었더라(창세기2:19).’ 이름이 곧 존재 자체로 그 이름에 존재의 본질과 정체성이 숨어 있다는 생각은 동서고금을 막론하고 상식이었다. 유명한 《그림동화》 중의 한 편인〈룸펠슈틸츠헨〉이라는 독일의 옛날이야기는 이를 잘 보여준다. 어느 철없는 방앗간 주인이 자기 딸이 물레로 지푸라기를 자으면 황금이 된다며 왕에게 거짓말을 했다. 이를 들은 왕은 그녀를 왕궁에 데려다가 황금을 만들라고 했다. 짚으로 황금을 만들지 못하면 죽이겠다는 협박도 잊지 않았다. 시름에 빠진 딸 앞에 난쟁이가 나타나 짚을 황금으로 만들어줄 테니 대가를 달라고 한다. 그렇게 이런저런 대가를 지불하며 며칠 동안 왕이 말한 대로 황금을 만들어내 목숨을 이어갔다. 마지막 하루만 성공하면 왕이 그녀를 왕비로 삼겠다고 했는데, 마침 그날은 더 이상 난쟁이에게 지불할 것이 없었다. 그러자 난쟁이가 “그럼, 왕비가 되어 처음 낳은 아이를 주세요” 라고 제안한다. 그러기로 하고 요술쟁이 난쟁이에게서 다시 황금을 받은 딸은 결국 왕과 결혼하게 되었다. 왕비가 된 딸이 아기를 낳자, 난쟁이가 나타나 약속한 대로 아이를 달라고 하자, 왕비가 데려가지 말라고 간청을 한다. 그러자 난쟁이가 이렇게 말한다. “사흘 안에 내 이름을 알아맞히면 당신 아이를 데려가지 않지요.” 왕비는 자신이 아는 모든 이름을 말했지만 소용없었다. 신하들을 시켜 온갖 희귀한 이름을 찾아 말했지만 그것들 모두 난쟁이의 이름이 아니었다. 사흘째 날, 왕비의 신하가 숲에서 이상한 노래를 부르는 난쟁이를 보았다. “조금 있으면 왕비의 아이는 내 것. 내 이름이 룸펠슈틸츠헨이라는 걸 아무도 모르니 얼마나 좋아.” 신하의 보고를 들은 왕비는 난쟁이의 이름을 맞혔다. 그러자 화가 난 난쟁이는 자기 몸을 두 동강이 나게 찢어버렸다. 단순히 생각하면 이름을 맞히는 것이 뭐 대단한 일이라고 이렇듯 난리를 피우는가 하는 생각이 든다. 이름을 맞힌다는 것은 곧 그 존재의 본질을 범한다는 것이고 그것은 곧 인육을 먹듯 그 존재를 완벽하게 소유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황금을 만들어내는 비상한 재주가 있는 난쟁이임에도 그깟 왕비에게 그 이상한 룸펠슈틸츠헨이란 이름이 걸려,난쟁이는 더 이상 자유롭지 못한 존재가 된 것이다. ㆍ위대한 네 개의 글자
    출애굽기 3장에 묘사된 하나님과 모세의 만남.

    성경을 보면 광야에서 양을 치는 모세라는 노인에게 신이 나타난다. 그리고 그 신은 모세에게 이집트 파라오를 만나 담판을 짓고 자신의 백성을 구해내라고 명령한다. 80세의 모세는 이런저런 핑계를 대며 계속 발뺌을 한다. 그러다가 결국 모세는 자신 앞에 나타난 신의 ‘이름’을 묻는다. 그 물음에, 신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다’라고 답한다. 그것이 바로 그 신의 이름이었던 것이다. 이 이름을 들은 모세는 더 이상 핑계를 대지 않는다. 왜냐하면 신의 이름을 알게 되었다는 것은 곧 그 신의 본질을 ‘알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하고,그것은 곧 신과 자신이 하나로 합일되었다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이름을 앎으로써 신을 완전히 알게 된 더 정확하게는 신을 자기 속에 체화시킨 모세는 더 이상 평범한 양치기 노인이 아니었던 것이다. 그가 이집트에 10가지 재앙을 불러올 수 있었던 것은 결코 우연이 아니었던 것이다. 우리나라에서 ‘하나님’이라 부르는 신의 이름은 ‘야훼(ㅣ)’이다. 히브리어는 자음으로만 구성되어 사용되었는데 이 신의 이름인 ‘야훼’는 4개의 자음으로 이루어져 있다. 그 이름은 함부로 부를 수 없어 옛날 성경을 읽던 사람들은 그 글자가 나오면 읽지 않든지 아니면 나의 주님이란 의미의 히브리어인 ‘아도나이’로 바꿔서 읽었다. 아무도 ‘야훼’를 “야훼”라고 읽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읽으면 즉 그렇게 부르면 신을 범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읽을 때만 그런 것이 아니라, 그 글자를 필사할 때도 역시 그랬다. 단번에 죽 내려쓰면, 그건 그 신을 범하는 행위였다. 그러지 않기 위해서는 각각의 획을 따로따로 써야 했다. 각각의 획은 이래저래 다른 곳에서도 나오는 획이니 의미가 없지만 한꺼번에 묶인 그 ‘위대한 네 개의 글자(tetragra'maton)’는 신의 이름이었다. 그러므로 4개의 자음이 나오면 한 획을 긋고 목욕재계를 하고 새 붓을 가지고 한 자를 썼다. 그러고 다음 글자를 쓸 때도 또 그렇게 했다. 그렇게 한 글자 한 글자를 구별해서 분리시켰다. 그러니까 4개의 글자를 쓸 때, 네 번 목욕했다는 말이다. 식인종이 사람을 먹고 어떤 금기의 통과의례를 거쳤는지 조금 짐작이 되는가? 적어도 이런 정도의 예식을 했다. ㆍ아버지의 이름, 諱
    공자의 본명은 공구(孔丘)였다.그런 성인의
    이름인‘丘’를 함부로 쓸 수 없어,‘丘’ 대신
    ‘邱(구)’로 바꾸어 썼다.경상도의 대구도
    한자로 ‘大邱’라 쓴다.
    이름에 대해서는 서양보다 동양이 더 민감하게 생각한다. 어려서 동네 꼬마들끼리 놀다가 수가 틀어지거나 힘으로 당하지 못하게 되면 꼬마 하나가 도망을 치며 종종 이렇게 외친다. “나는 네 아버지 이름 안다!” 도망치는 아이는 의기양양하게 달아나고 자기 아버지 이름을 알고 있는 것을 분하다고 여긴 다른 아이는 씩씩 거리며 달아나는 아이를 죽어라 쫓아간다. 아버지 이름을 부른 것도 아니고,하물며 욕을 한 것도 아니다. 단지 ‘안다’는 말을 했다는 이유만으로 서로 흥분하고 성을 내는 것이다. 지금처럼 함부로 부모의 이름을 말하는 시대에는 도저히 이해하지 못할 장면이지만 그리 멀지 않은 몇십 년 전 얘기다. 이름은 존엄한 것일 뿐만 아니라 함부로 부를 수 있는 것이 결코 아니었다. 그 존재를 지배, 능욕할 수 있는 것이기 때문이다. 중국이나 우리나라에서 오랫동안‘휘(諱)’문제가 있었던 것은 바로 이런 관념이 이어져 내려와서다. ‘휘’란 ‘꺼린다’는 의미인데,단순히 싫어서 꺼린다는 것이 아니라 감히 함부로 할 수 없기에 멀리한다는 의미이다. 《삼국지》 같은 책을 보다 보면 이런 설명이 나온다. ‘성(姓)은 유(劉)요, 휘는 비(備)이며, 호(號)는 현덕(賢德)이다.’ 유비(劉備)를 설명하는 내용인데,설명하면서‘이름이 비(備)다’라고 하지 않고,‘휘는 비다’라고 했다. 즉 휘란 이름을 경외해서 꺼릴 때 쓰는 말이다. 성인(聖人)이나 왕의 이름을 함부로 부를 수는 없었다. 그래서 그 이름자인 글자 대신 다른 글자로 바꿔 쓰든지 같은 자라면 마지막 획을 긋지 않는 식으로 글자를 완성 시키지 않았다. 즉 피해서 범하지 않든지 완성시키지 않아서 범하지 않으려 했다. 예를 들면, 유명한 공자의 본명은 언덕을 뜻하는‘丘(구)’자를 써, 즉 공구(孔丘)였다. 그런 성인의 이름인 ‘丘’를 함부로 쓸 수 없어서, ‘丘’ 대신 ‘邱(구)’로 바꿔서 썼다. 그래서 우리나라 경상도의 대구도 한자로는 ‘大邱(대구)’가 된 것이다.
    왕의 이름과 같아서 자신이 죽은 후 이름이 바뀌는 극단적인 경우도 있었다. 고려 때 ‘안향(安珦)’이 그렇다. 고려 말 성리학을 들여온 인물로 우리가 잘 아는 인물인데,그의 처음 이름은 ‘안유(安裕)’였다. 그러다 이름을 바꿔 안향으로 불리다 죽었다. 그런데 조선시대 들어와 문종 때 ‘안향’이란 이름을 다시 ‘안유’로 바꿔 부르게 되었다. 조선 문종의 이름이 ‘향(珦)’이기 때문이었다. 그래서 안향을 ‘안향’이라고 부르면 무엄하게 왕의 이름을 능멸하게 되는 거였다. 그것을 방지하기 위해 ‘안향’을 ‘안유’로 다시 바꿔 부른 것이다. 죽어 땅에 묻힌 전 왕조의 인물 안향은 후대 조선 왕과 이름이 같다는 이유만으로 조선시대 내내 초명인 ‘안유’로 불린 것을 과연 알기나 할까? ㆍ子와 號를 쓴 이유
    아무튼 이런 휘의 문제는 단순히 옛날 왕들에게만 해당하는 것이 아니다. 자신보다 웃어른의 성함을 TV 등에서 아무렇지 않게 불러대는 세대인 지금은 정말 번다하게 여길지 모르지만 자신의 부모님 성함을 함부로 말하지 못했다. 하지만 말을 해야 할 때가 당연히 있었다. 누군가가 부모님 성함을 물으면 그 자식들은 이렇게 했다. “‘○’씨 가문의 몇 대손으로 ‘○’자 ‘○’자 쓰십니다.” 이렇게 무척 복잡한 방식을 통해 이름을 전달했다. 한꺼번에 “○○○입니다”라고 말하면 그야말로 존재의 본질을 범하게 되는 것이다. 자식이 부모를 범하는 하극상이 되고 만다. 신이나 왕은 이름을 불릴 일이 거의 없지만 일반 사람들은 호칭이 없으면 불편하기 그지없다. 그래서 개발해 낸 것이 ‘자(字)’와 ‘호’였다. 자는 성인이 되면서 만드는 이름이었다. 이 이름은 공식적인 때 썼다. 부모들도 자식이 성년이 되면 자로 불렀다. 호는 격식 없는 사이에 부르는 이름이다. 호를 한두 개 이상씩 쓰는 사람들도 무척 많았는데 호는 쉽게 서로를 부를 수 있는 이름이었다. 이렇게 번다하고 복잡하게 수선을 피워대면서까지 하는 것은 모두 진짜 이름을 숨기려는 의도이다. 왜냐하면 이름에는 바로 그 존재의 본질이 담겨 있기 때문이다. ㆍ수수께끼의 해답
    이제 글의 서두에서 말한 질문의 답을 말할 차례다. 자기 것이지만 남을 위해 존재하는 것 두 가지를 찾으셨는가? 그렇다. 그건 바로 얼굴과 이름이다. 사실 따지고 보면 얼굴도 이름도 자기는 별로 사용하지 않는다. 기실 자기 얼굴이 어떤지 어떻게 변하고 있는지 잘 모른다. 어느 날 문득 바라본 거울 속에서 발견하는 자기 모습에 퍼뜩 놀랄 때가 한두 번이 아닌 것이 그 때문이다. 얼굴은 남을 위해 존재한다. 그들이 나를 이해하고 나를 알고 나를 구별하기 위해 존재한다. 이름도 그렇다. 나는 내 이름을 부를 일이 별로 없다. 누군가가 나를 불러줄 때 바로 그때 그 이름이 의미를 지닌다. 얼굴과 이름에 얽힌 먹고 범하는 의미는 살펴본 것처럼 깊고 오랜 연원이 있다. 하지만 이젠 그리 예전만큼 진지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지는 않다. 얼굴과 이름을 쉽게 고치고 함부로 말하는 가운데 그 묵직한 진중함이 이리저리 흩어져 버린 것 같다. 외국의 어느 유명한 양반의 말마따나 나이 40이면 제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그 나이가 되도록 살아온 삶의 깊이와 고민과 통찰이 고스란히 얼굴에 새겨지니 말이다. 척하며 속이려 해야 속일 수 없다. 얼굴에 먹칠하기를 원하는 사람은 아무도 없지만 똥칠을 하고도 모르는 사람은 많다. 자기 이름의 무게를 가볍게 여기는 사람들도 그리 적지 않은 듯하다. 굳이 멀리서 찾을 필요도 없을 듯하다. 나부터 곰곰이 생각해 볼 일이다.
          글 유광수 연세대 교수

    草 浮
    印 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