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한반도 지질공원 생성의 비밀 1-3 화순 적벽

浮萍草 2016. 1. 1. 10:33
    화순 적벽에선 육식공룡끼리 살육이 벌어졌나
    쫓고 쫓기는 발자국들, 육식공룡 적벽대전 치렀나
    중생대 백악기 화산재와 모래·펄 쌓인 대규모 퇴적층에 어지러운 공룡 발자국 발 길이 63㎝ 티라노 출현하자 사방으로 흩어진 소형 육식공룡, 물려간 자취도? 동복호 상류 호수의 끄트머리 엄청난 절벽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퇴적층 하나하나 벗겨내 보면 지층마다 1800여개 공룡 발자국들이 움푹움푹
    7㎞에 걸쳐 노루목, 보산, 창랑, 물염 적벽 최대인 노루목 적벽은 폭 300m 높이 70m 중생대 백악기 광주 중심으로 생긴 지름 40㎞ 둥근 함몰지인 능주 분지 그 한가운데 커다란 호수 화산이 용암과 재를 뿜어대 화산재와 모래 진흙이 켜켜이 쌓여 땅속에 응회암 세월이 흘러 지표가 깎여나가며 지상으로 퇴적층 속 철분이 산화돼 바위는 붉은빛 육식공룡 발자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특이하지만 가속도 내어 달려갔던 흔적 세계 첫 보고 대형 육식공룡이 작은 육식공룡을 사냥했던 순간일까 아직 공인을 받지 못한 추정일 뿐이지만 서유리 공룡 화석지가 백악기 ‘공룡의 천국’이었던 것은 사실

    동복호에서 바라본 화순 적벽. 중생대 백악기 퇴적층으로 공룡화석을 품고 있다. 사진=곽윤섭선임기자kwak1027@hani.co.kr
    남 화순군 이서면 일대에는 중국 양츠강의 적벽에 견줄 만하다는 절경이 있다. 광주시민의 상수원으로 최근까지도 일반인의 출입이 금지된 화순 적벽이 그곳이다.  조선 중종 때 유배온 유학자 최산두(1483~1536)가 이곳의 절경을 보고 중국 소동파가 적벽부를 지어 칭송한 양츠강변의 적벽을 떠올려 이런 이름을 지었다고 전해진다. 김삿갓도 이곳에서 시를 즐겨 읊어 물염정에는 그의 시비가 서 있다. 지난 7일 동복호를 통해 화순 적벽으로 향했다. 무등산권 지질공원의 지질명소 가운데 하나인 적벽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
    적벽의 퇴적층. 화산재와 모래, 진흙이 차례로 쌓여 굳은 뒤 지표에 노출돼 형성됐다. 사진=곽윤섭선임기자kwak1027@hani.co.kr

    동복호를 휘돌아 상류로 거슬러 호수의 거의 끄트머리에 이르자 갑자기 눈앞에 엄청난 절벽이 펼쳐졌다. 이름 그대로 붉은빛을 띤 갈색 퇴적층이 시루떡처럼 층층이 쌓여 있다. 인공호가 조성되기 전 동복천 중류 약 7㎞에 걸쳐 노루목, 보산, 창랑, 물염 적벽이 펼쳐졌다. 화순 적벽의 대명사가 된 노루목 적벽은 규모가 가장 커 폭 300m 높이 70m에 이르렀지만 동복댐 물에 절반가량은 잠겼다. 하지만 이런 인공의 손길은 오히려 적벽의 탄생 기원에는 어울리는 것 같았다. 적벽은 호숫가에서 탄생했다. “적벽은 화산재와 모래, 진흙 등이 얕은 호숫가에 번갈아 쌓여 형성됐다.”라고 우연 광주시 지질공원 팀장이 설명했다. 중생대 백악기에 광주를 중심으로 지름 약 40㎞의 둥근 함몰지가 생겼다. 한반도는 지각변동으로 몸부림쳤고 곳곳에서 격렬한 화산활동이 벌어졌다. 광주의 이 함몰지를 능주 분지라고 부른다.
    적벽의 전경. 동북호 때문에 절벽 높이의 절반가량이 물에 잠겼다. 그러나 애초 이 퇴적층이 생긴 곳은 중생대 호수 주변이었다. 사진=조홍섭 환경전문기자

    능주 분지 한가운데는 커다란 호수가 있었고 주위에는 화산이 용암과 재를 뿜어댔다. 한동안 화산재가 쌓이다 멈추면 하천 상류에서 모래와 진흙이 홍수 때 실려와 새로운 층을 이뤘다. 깊어진 퇴적층이 땅속에서 굳어 응회암이 됐다. 다시 세월이 흘러 지표가 깎여나가 퇴적층이 지상에 모습을 드러냈다. 처음엔 강변에, 그리고 마침내 호숫가에.퇴적층 속의 철분이 산화돼 바위는 붉은빛을 띠게 됐다. 동행한 기현 순천 승남중 과학교사는“퇴적층에 부정합이 보이지 않고 고르게 쌓인 것으로 보아 적벽은 한 시대의 흔적을 간직하고 있는 것 같다. 지질학적으로 짧은 기간인 10만~100만 년 동안에 형성됐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말했다. 적벽의 형성과정에 관한 지질학적 연구는 아직 충분치 못한 형편이다.
    서유리 화석산지를 알리는 티라노사우루스 안내판. 적벽과 서유리는 5킬로쯤 떨어져 있지만 동시대에 쌓인 퇴적층이다. 사진=조홍섭 기자

    적벽은 퇴적층이 차곡차곡 쌓인 단면을 보여주지만,지층 하나를 골라 수평으로 벗겨내 위에서 내려다보면 무엇이 보일까. 바로 서유리 공룡 화석지이다. 우연 팀장은 “적벽의 지층을 자세히 보면 공룡 발자국으로 움푹 패인 부분이 있다.”라고 말했다. 적벽에서 북쪽으로 5㎞쯤 떨어진 화순군 북면 화순 온천단지 안에 화산재와 모래, 펄이 굳은 퇴적층이 수평으로 펼쳐진 공룡 화석지가 나온다. 1999년 전남대 한국공룡연구센터가 채석장으로 쓰이던 곳에서 찾아냈다.
    처음 발견된 직후의 서유리 공룡 발자국 화석. a. 발가락이 셋인 소형 육식공룡의 발자국 b. 목이 긴 대형 초식공룡인 용각류의 둥근 발자국 c. 다양한 육식공룡의 발자국. 사진=허민 외(2006)

    우리나라는 중생대 말인 백악기 동안 ‘공룡의 천국’이었다. 당시 지층에 남은 수많은 발자국 화석을 보고 공룡 발자국 화석의 세계적 권위자인 마틴 로클리 미국 콜로라도대 교수가 한 말이다. 대부분의 공룡 발자국 화석은 남해안에 남아있다. 전남과 경남의 신안, 해남, 보성, 여수, 남해, 진주, 고성 등이 그 주요 산지여서 공룡 발자국은 물론 뼈, 알과 함께 같은 시대를 살던 익룡, 새, 식물 등의 화석과 함께 산출된다. 서유리 화석지는 해안이 아닌 내륙의 공룡 화석 산지이다. 현재까지 5개의 지층에서 1800여개의 육식공룡 발자국과 73개의 초식공룡 발자국이 확인됐다.  초식공룡의 흔적이 대부분인 다른 지역과 달리 육식공룡 발자국이 압도적으로 많은 것도 특이하지만,가속도를 내어 달려갔던 흔적이 세계에서 처음으로 보고된 곳 이기도 하다. 아직 확실한 이론으로 뒷받침되지는 않았지만 티라노사우루스 같은 대형 육식공룡이 작은 육식공룡을 사냥했던 순간이 발자국으로 이곳에 남아있다는 흥미로운 가설도 나와 있다. 우리나라엔 공룡의 발자국 화석은 풍부하지만 몽골이나 미국처럼 온전한 골격 화석은 드문 편이다. 발자국만으로 공룡의 살아있을 때의 멋진 모습을 복원하는 것은 어렵다. 그러나 발자국 화석은 뼈에서 알 수 없는 많은 정보를 준다. 뼈 화석은 공룡이 죽은 뒤 다른 곳으로 옮겨진 뒤 보존돼 형성된다. 그러나 발자국은 살아있는 상태에서 그것도 움직임의 흔적이라는 점에서 생동감이 있다.
    소형 육식공룡이 보통의 속도로 걸은 발자국 화석 보행열(A)과 가속을 해 보폭이 넓어지는 보행열(B). 사진=김보성 외(2010)

    서유리에는 공룡 발자국 가운데서도 특별한 보행열이 있다. 육식공룡이 속도를 내어 달려간 흔적이 있는 것이다. 김보성 목포자연사박물관 학예사(고생물학) 등이 이런 사실을 밝힌 논문이 2010년 국제학술지 <고지리학, 고기후학, 고해양학>에 실렸다. 김 박사는“백악기 서유리의 호숫가에서 육식공룡이 속보로 걷다가 무슨 이유에선지 가속도를 붙여 최고속도에 이른 뒤 속력을 늦춘 흔적을 발자국 분석을 통해 확인했다.”라고 말했다. 공룡이 속도를 붙인 것은 보폭이 늘어나는 것에서 추정했다.  엉덩이 높이가 90㎝로 추정되는 이 소형 육식공룡은 시속 20.1㎞의 속도로 달렸는데 최고 속도는 시속 39.5㎞에 이르렀다. 김 박사는“공룡이 에너지를 많이 써가며 속도를 높였다면 먹이를 쫓거나 먹이를 추격하는 특별한 정황이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라고 말했다.
    서유리에서 발견된 대형 육식공룡 발자국 화석 모형. 길이 63센티로 골반까지 높이가 2.5미터에 이르는 대형 육식공룡의 것으로 추정된다. 사진=조홍섭 기자

    서유리의 발자국에서 더 극적인 육식공룡끼리의 사냥장면을 추론한 연구도 있다. 황구근 박사(현 전남 순천 승주중 과학 교사) 등은 2006년 3월 <지질학회지>에 실린 논문에서 골반까지 높이가 2.5m나 되는 대형 육식공룡이 소형 육식공룡을 향해 은밀하게 접근한 뒤 갑자기 덮쳐 사냥에 성공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주장했다.  그 근거로는 대형 육식공룡이 나타나자 소형 육식공룡들이 사방으로 도망가듯 보행열이 방사상으로 찍혀 있는 것이 여럿 있고 소형 육식공룡이 미끄러지는 등 비정상적인 발자국을 남긴 뒤 무엇엔가 들린 듯 사라진 자국을 남긴 것 등을 근거로 들었다.
    여수 사도에 있는 티라노사우루스 모형. 서유리의 대형 육식공룡은 이런 종류일 것으로
    추정되고 있다. 사진=조홍섭 기자

    사유리의 대형 육식공룡은 깃털 달린 이런 모습일 가능성도 있다. 중국 동북부에서 화석이 발견된 1억2500만년 전 티라노사우루스 종류인 유티라누스의 상상도.

    이 가설이 맞다면 크기 12m로 당시 지상 최강의 포식자였던 티라노사우루스와 같은 대형 육식공룡이 소형 육식공룡을 매복, 추격에 이어 강력한 턱으로 낚아챈 흔적이 화석으로 남은 셈이 된다. 공룡의 사냥 흔적이 확인된 곳은 오스트레일리아 퀸스랜드로 발자국 길이 64㎝인 대형 육식공룡이 나타나자 소형 육식공룡들이 재빨리 달아난 발자국이 보고되어 있다. 서유리에서는 발자국 길이 63㎝에 보폭 3.67m인 대형공룡이 출현하자 이에 영향받은 듯 소형 육식공룡들이 사방으로 흩어진 발자국이 나타나고 그 중 하나는 사냥 당하는 현장까지 남긴 셈이다.
    서유리 소형 육식공룡과 발자국이 비슷한 코엘루로사우루스의 골격 모형. 사진=Greg Goebel, 위키미디어 코먼스

    그러나 이런 추정은 아직 공인을 받고 있지 못한 상태이다. 여러 발자국이 과연 사냥의 자취인지 아니면 다른 흔적인지 확인되지 않았다. 김 박사는 “공인된 국제 학술지에 내기 위해 이들 발자국을 행동역학적으로 분석하고 있다.”라고 말했다. 약 8500만년 전,지금은 화순 서유리가 된 중생대 백악기의 호숫가에서 공룡들이 목숨을 건 급박한 달리기를 하기는커녕 멀리서 불을 뿜는 화산을 바라보면 느긋하게 저녁 산책을 했는지도 모른다.   분명한 사실은 이상하게 많은 수의 육식공룡들이 호숫가를 거닐며 많은 발자국을 남겼고 발자국 화석층이 여러 지층에 걸쳐 나오는 것으로 보아 공룡 세상은 오랫 동안 계속됐다는 것이다.
    풍화와 침식이 일어나기 전 잘 보전돼 있던 서유리의 육식공룡 발자국. 사진=광주광역시

    지난 7일 들른 서유리의 발자국 화석은 풍화와 침식을 많이 받은 모습이었다. 사진=곽윤섭 선임기자

    서유리의 공룡 화석지는 발자국 밀도나 특이한 형상 등으로 높은 가치를 인정받아 2007년 천연기념물 제487호 지정됐다. 그러나 발견 당시에 선명했던 발자국 화석은 풍화와 침식을 받아 갈수록 희미해지고 있다. 허민 전남대 지구환경과학부 교수는“화석지가 경사지여서 빗물이 흘러 풍화와 침식이 심한데도 예산 부족으로 덮개를 씌우는 등의 보전 조처가 이뤄지지 않고 있다. 천연기념물로 지정만 했지 관리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고 있다.”라고 안타까워 했다.
              글·사진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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