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MOH/醫命學 이야기

4 음식이 곧 천하 명약이다!

浮萍草 2015. 10. 24. 06:00
     년 묵은 산삼보다 좋은 명약이 있다고 하면 눈이 번쩍 뜨이겠지만 쉽게 믿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산삼을 먹지 않아도 생명은 유지할 수 있으나 곡식을 끊으면 곧 죽지 않느냐고 말하면 고개를 끄덕일 것이다. 
    약(藥)이란 개념으로 생각하면 산삼을 먼저 떠올리지 곡식은 얼른 가슴에 와 닿지 않는다. 
    곡식은 평생 매일매일 세 차례씩 꼬박꼬박 챙겨 먹으니 희귀성이 없는데다 난치병을 고쳤다는 사례도 없으니 말이다. 
    그저 허기를 채워주는 재료의 하나쯤으로 무심하게 받아들이기 마련이어서 약이란 생각 자체가 없는 것이 당연하다.
    원시자연의 식물 이야기를 들어보면 곡식이야말로 천하의 명약이란 사실을 인정하게 될 것이다. 
    요즘같이 온실 속의 꽃처럼 사람의 정성으로 재배한 흔하디 흔한 곡식을 말하는 것이 아니다. 
    그것들은 생명을 유지시켜 주기는 하지만 폐해도 적지가 않아서 명약이라 하기엔 무리가 있다. 
    뭐니뭐니 해도 자연의 것들에 비해 면역성을 높여주기엔 부족하기 때문이다. 
    쌀농사 하나만 봐도 그렇다. 
    논에다 물을 대서 흙을 부드럽게 갈아 모를 심고 그리고 가꾸는 데 온갖 정성을 다한다. 
    그나마 예전에는 벼의 성장과 생산량을 좀먹는 잡초를 손으로 뽑았는데 요즘은 과학의 발달로 그 독한 제초제를 뿌린다. 
    이것뿐이 아니다. 
    진드기니 멸구니 하는 것들 때문에 농약을 뿌리고 그리고 비료로 성장을 돕고 생산량을 늘린다. 
    사람이 먹으면 곧 죽을 수 있는 그런 화학성분을 벼가 흡수하기 마련인 데도 말이다. 
    물론 과학의 힘을 빌려 벼도 건강하게 자라고 사람도 먹어서 문제가 없다고 하기는 한다. 
    수박을 매운 고추 거름으로 키우면 맛이 맵고 설탕으로 키우면 맛이 아주 단 것을 생각해 보면 예사롭지가 않다. 
    어쨌거나 같은 식물인 벼가 화학성분이 녹아 있는 물을 마시고 자란 이상 예전의 순수한 쌀과 다르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을 것이다.
    요즘은 소위 유기농법이라 하여 그런 독한 화학성 약을 쓰지 않는 농가가 늘어나고 있어서 다행이기는 하다. 
    안타까운 것은 유기농법도 농약을 쓰지 않으면 벼가 병충해를 이기지 못한다. 
    그만큼 자생력이 약화되었기 때문에 농약을 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마지못해 독성이 약한 농약으로 병충해를 방지한다고는 하지만 평생을 먹으니 가랑비에 옷 젖듯 몸속에 스며들지 않겠는가. 
    게다가 퇴비로 영양을 공급해 주지 않으면 벼건 채소건 건강하게 잘 자라지 못한다. 
    튼튼하고 보기 좋은 열매를 많이 맺게 해 생산량을 늘리기 위해서는 부득이 퇴비를 주고 비료도 좀 필요할 것이다. 
    그 오랜 세월, 같은 장소에서 사람의 돌봄에 의지해서 자란 터라 잡초나 병균을 이길 만한 면역력도 없고 자생력도 없으니 그리하는 게 당연하다.
    
    ㆍ30여 년 전과 비교해 급증하고 있는 불치병들
    비단 벼만 그런 것이 아니다. 근원적으로 오장육부의 생명력을 길러주고 지켜주는 오곡(五穀·다섯 가지 곡식),오채(五菜·다섯 가지 나물),오과(五果·다섯 가지 과일) 등 우리가 항상 섭취하는 식물이 다 비슷하다. 신장·방광에 좋은 콩·콩잎·밤,폐·대장에 좋은 기장·파·배, 비장과 위장에 좋은 조·아욱·대추, 심장·소장에 좋은 팥·인삼·살구,간과 쓸개에 좋은 보리·부추·매실 등도 다 벼처럼 보살핌을 받지 않으면 안 된다. 그러니 뭐 하나 스스로 생존할 수 있는 면역력과 자생력을 갖춘 식품이 없는 게 어쩔 수 없는 현실이다. 만약 우거진 숲 속이나 황폐한 땅 혹은 잡초 무리 속에다가 이런 것들의 씨앗을 뿌려두면 어떻게 될까? 싹 을 틔우기도 어려울 것이다. 설사 싹이 튼다 하더라도 잘 자라기 어려울 것이다. 어쩌다가 제법 자라서 애써 열매를 맺어도 병충의 공격에 번식할 씨앗조차 품지 못할 것이다. 언젠가부터 우리는 벌이 여러 꽃에서 따서 머금어 온 프로폴리스를 채취해서 면역 약으로 많이 먹는다. 벌이 자신과 새끼들이 병들어 죽지 않게 하기 위해 가져온 식물의 면역성분을 우리가 강탈해 먹는 셈이다. 하기는 벌도 남의 것을 훔쳐왔으니까 그리 나무랄 것도 아니지만,식물은 그만큼 병의 침범을 막아주고 생명을 지켜주는 성분을 많이 갖고 있다는 사실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예라 하겠다. 특히 곡식에는 그런 성분이 아주 많아서 우리의 생명을 지켜주는 주식으로 단 하루도 거르지 않고 먹어야 한다. 다만 이 때문에 우리 몸을 스스로 망치고 있지는 않은지 점검해 볼 일이다. 불과 30여 년 전만 해도 요즘과 같이 암·당뇨 등과 같은 난치병이 거의 없었다. 그 시절에는 그저 먹고살기 위해 곡식과 채소 등을 기르느라 뼈가 빠지게 일만 해서 오래 산다는 게 쉽지도 않았다. 의료혜택이나 위생 같은 건 생각지도 못했었다. 그 시절을 살다 간 사람은 수명이 짧을 수밖에 없는 운명적인 시기에 태어났던 것이라 할 수 있겠다. 그럼에도 그 시절 사람들은 암·당뇨·혈압·중풍 따위의 무섭고 고통스러운 난치병을 거의 앓지 않았다. 특히 암은 먼 나라 이야기처럼 희귀한 병이었다. 가장 무섭게 여긴 병이라야 결핵 정도였다. 문명,과학,의술,위생,생활환경 등 모든 조건이 그 시절과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발달한 오늘날 왜 그런 무시무시한 병이 급증하고 있을까? 필자는 그 까닭을 음식에서 찾는다. 대기오염, 스트레스 등도 한몫을 하고 있다. 하지만 우리 육신에 면역력을 제공해 주고 생명을 이어주는 식물,그중에서도 곡식,그리고 갖가지 채소와 과일 등에 일차적인 원인이 있는 것이 분명하다. 여기다가 맛내기 화학성분을 함유한 온갖 인스턴트 식품이 엎친 데 덮친 격으로 우리의 육신을 오염시키고 있다. 이제는 그런 병에 걸리지 않은 것만도 다행으로 여기고 살아야 할 판이다. ㆍ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없다
    이야기를 하다 보니 너무 부정적인 생각만 늘어놓은 것 같다. 본론으로 들어가서 이 글에서 말하고자 했던 ‘천하에 병 없이 오래 사는 명약은 있다’라고 한 속내를 꺼내보기로 한다. 이 이야기를 이해하기 위해서는 수천 년 이전 상상 속의 세상으로 달려가야 한다. 농사란 개념 자체가 없던 원시시대였다. 사냥을 하고 자생하는 과일을 따 먹고 그리고 곡식도 알갱이만 채취해 날것을 그냥 씹어 먹었었다. 그야말로 원시자연과 더불어 생활했던 것이다. 약 4000년 전부터 구전으로 전해지던 동양의학원전 《황제내경》에는“옛날 사람들은 자연에 순응하고 양생의 법을 행하였다. 음식이 육신의 정기를 길러주므로 바르게 섭취하면 100세를 훨씬 넘겨서도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기록되어 있다. 뿐만 아니라 한민족의 옛날 사서를 보면 수명이 100세는 보통이고 300세를 넘긴 제왕도 여럿 있었다. 하나같이 음식에 기인해 장수(長壽)한 사람들이다. 기독교의 성서에 나오는,그들 유대인들의 조상들이 수백 년을 생존했다는 기록은 널리 알려진 이야기다. 서양의학의 조종(祖宗) 히포크라테스는 “음식으로 고치지 못하는 병은 의사도 고치지 못한다” “음식을 그대의 의사와 약으로 삼으라” 하는 말까지 남겼다. 오늘날 우리가 섭취하는 음식에 대해 경고하는 말 같기도 하다. 인류가 원시자연의 초목에서 얻은 음식으로 생활하던 그 시절에 병 없이 오래 살았던 까닭을 생각해 보면 이러하다. 곡식 중에서도 우리의 생명을 책임지는 쌀을 예로 들어보자. 인류가 처음 발견할 당시의 벼는 어땠을까? 아마도 물기가 촉촉한 땅에 무리지어 무성하게 자란 벼가 익은 열매를 주렁주렁 매달고 고개를 숙인 채 탐스럽게 서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온갖 잡초, 온갖 벌레들의 공격에서 살아남고 이기기 위해서 치열하고 강력한 생명력을 자생시킨 벼는 키와 몸통도 요즘의 벼와는 하늘과 땅만큼이나 차이가 났을 것 같다. 누구의 돌봄도 없이 스스로 태어나 자란 만큼 키와 몸통이 억새만큼이나 크고 실했음 직하다. 열매도 웬만한 호박씨만 하지 않았을까? ㆍ원시자연의 음식이 천하의 명약
    그러면 그와 같이 자란 원시자연의 벼와 사람의 돌봄으로 자란 요즘의 벼가 어떤 차이가 있는지 생각해 보자. 원시자연에서 자생한 벼에서 수확한 쌀에 얼마만큼의 강력한 면역성분이 함유돼 있을까? 그리고 육신을 자양하는 성분은 또 얼마나 많았을까? 상상만 해도 온몸의 에너지가 용솟음친다. 비단 쌀뿐만 아니라 채소,과일 등도 다 그러하다. 어쩌면 만 가지 병을 다스리는 약성이 그 속에 담겨 있을지도 모른다. 아니 그럴 것 같다. 그때 그 시절 사람들은 요즘 같은 병을 앓지 않았으니까…. 말이야 맞기는 하지만 원시자연으로 돌아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그런 곡식과 채소,과일을 구할 수도 없으니 쓸데없는 이야기만 늘어놓았다고 지적할지 모르겠다. 그러나 전혀 그럴 필요가 없다. 누구나 생전에 그런 곡식과 채소,과일을 얼마든지 스스로 길러서 먹을 수 있으니 말이다. 원시자연의 성분만큼이나 탁월하지는 않겠지만 그에 버금갈 만한 성분과 약성을 지니게 할 만한 아주 간단한 재배방법이 있다. 그러나 인내와 의지가 필요하다. 볍씨나 채소,과일을 심어놓고 잡초가 자라거든 제초제를 뿌리거나 뽑지 말고 그대로 두면 된다. 잘 크라고 비료나 거름을 줄 필요도 없다. 벌레가 먹어도 농약을 뿌리지 않아야 한다. 그러면 그것들이 그때부터 살아남기 위해서 치열하게 잡초에 항거하고 면역력과 약성을 자생시키기 마련이다. 요즘의 씨앗들은 워낙 오랜 세월 인간의 돌봄으로 맺힌 것이라 처음부터 그것들이 잘 자라나기를 기대해서는 안 된다. 첫해는 씨앗도 제대로 맺지 못할 것이다. 그러나 실망하지 말고 볼품이 없는 씨앗이라도 그곳에 또 심으면 된다. 한 3년 그렇게 하다 보면 해마다 그것들이 터뜨린 떡잎이 자라고 자라면서 저절로 자생력을 기르기 마련이다. 따라서 점점 키도 크고 몸통도 실하고 씨앗도 알차게 맺힌다. 그렇게 5년 정도만 반복하면 드디어 원시자연의 시절과 버금가는 곡식과 채소,과일을 틀림없이 얻을 수 있다. 수확량도 지금보다 훨씬 많아진다. 그러므로 이제부터라도 우리 모두 그런 농사를 지어보았으면 좋겠다. 처음부터 전 농토에 다 그리할 수는 없을 테니 농토 한 모퉁이에 혹은 한 마지기씩 그렇게 씨앗을 뿌리고 내버려두다 보면 세월이 흐르고 흐른 뒤에 모든 농토를 다 그렇게 농사를 지을 수 있을 것이다. 가꿀 필요가 없으니 힘도 들지 않고 비용도 들지 않는다. 그리고 아주 비싼 가격으로 전 세계에 수출도 할 수 있으니 대단히 경제적이다. ㆍ자연의 음식이 난치병에 탁월한 효과
    필자는 10여 년 전부터 이런 농법을 생각해 왔었다. 다만 농부가 아니다 보니 생각만 있었을 뿐 실천하기가 어려웠다. 그런데 실로 뜻밖이었다. 필자보다 10년이나 먼저 그런 생각을 하고 원시자연의 곡식을 기르기 시작한 인물이 있었던 것이다. 꿈에도 몰랐던 기적 같은 사실이다. 마음이 있으면 언젠가는 인연이 찾아온다더니 정말 그랬다. 그 인물과 같이 곡식과 채소 등을 기른 이를 우연히 만날 수 있었으니 말이다. 그의 체험담에서 필자의 생각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할 수 있었다. 하지만 직접 경험한 그이의 말은 한층 실감이 났다. 남쪽의 어느 한 섬에다가 곡식,채소 등을 심었는데 앞에서 말한 것처럼 5년간 비료,퇴비,농약 따위를 전혀 쓰지도 않고 특별히 가꾸지도 않았다. 벼의 경우 논갈이를 하거나 물을 대주는 수고도 없었다. 그런데도 볍씨가 아주 크고 실한데다 지금의 농법으로 키운 벼보다 수확량도 훨씬 많았다 그리고 벼가 물을 찾아 땅속으로 내린 뿌리가 무려 2m나 돼서 큰 태풍에도 끄떡없이 꼿꼿이 서 있었다 하였다. 여기서 우리가 주목해야 할 부분은 바로 땅속 깊이 내려간 뿌리가 흡수하는 흙의 정기다. 사람의 육신이 흙이라서 땅의 정기는 곧장 몸의 정기와 통한다. 따라서 육신을 자양하는 흙의 정기가 곡식에 듬뿍 들어 있을 테니 천하의 보약이 따로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뿐이 아니었다. 여기서 말할 수 없는 여러 난치병에 탁월한 효과가 있었다 하였다. 당연하다. 원시자연에서 자란 것들에 버금가는 그 음식들로 식생활을 하니 무슨 병인들 이기지 못하랴 싶어 헛된 말로 들리지 않았다. 그것들이 함유한 면역력 내지 육신을 자양하는 성분 그리고 약성 등만으로도 병 없이 오래 살 수 있다는 확신이 있었던 터라 의심의 여지가 없었다. 아무튼 이 시대에 그런 곡식,채소,과일 등의 재배가 성공한 만큼 여러 사람의 밥상에 오를 날도 머지않았다는 생각에 흐뭇한 미소로 이 글을 맺는다.⊙
    Monthly Chosun Vol ☜        정경대 HS성북한의원학술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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