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0여 년 전의 일이다.
강원도 정선에 무려 103년이나 생존한 한 노인이 있었다.
그 연세에 처녀 장가를 들 수 있고 아이를 낳을 자신도 있다고 당당하게 말했다.
대나무처럼 꼿꼿한 자세,힘이 넘치는 카랑카랑한 목소리,그리고 빛나는 안광은 새삼 생명의 역동성까지 느껴질 정도였다.
자신감이 없는데도 겉으로 큰소리치는 보통 노인과는 확연히 다른 에너지가 가슴에 와닿았다.
설마 그럴까? 할 만큼 고개가 갸웃해지는 말이지만 사실이다.
《황제내경》이 그 노인의 호언을 뒷받침해 준다.
《황제내경》은 중국의 전설적인 황제(黃帝·존칭어임.본명은 헌원·軒轅)라는 인물과 신의(神醫) 기백(岐伯)과의 대화를 통해 체질의 확정과 생리 병리현상을 밝히고
치료법을 제시한 동양의학 원전이다.
한의학의 걸작 《동의보감》이 그로부터 나왔다.
아무튼 생로병사(生老病死)의 절대원리와 대처법이 다 들어 있는 《내경》(內徑·황제내경 줄임말)에 이런 말이 있다.
어느 날 황제가“나이 백세가 넘어도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까?” 하고 물었다.
이에 신의 기백이“물론입니다.
양생(養生)의 도를 행하면 노화가 더뎌져서 백세가 넘어도 행동이 느리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습니다” 하고 즉시 대답했다.
마치 정선의 103세 노인을 두고 하는 말인 듯도 하다.
그 노인이 바로 양생의 법을 행하고 있었으니 말이다.
젊은 시절에 우연히 《내경》을 읽고는 일상을 양생의 도에 맞추어서 생활했다는 것이다.
그러니 103세나 되는 연세에 아이를 낳을 수 있다고 한 말이 헛소리는 아니다.
양생은 생명을 기른다는 뜻인데 이것은 신장(腎臟)을 건강하게 하는 것과 통한다.
신장은 생명의 장단을 주관하는 정기(精氣)의 곳간이다.
정기는 정액의 원료로서 생산능력의 척도이기도 하지만 넉넉하면 노화를 늦추고 생명력도 왕성해서 100세를 훨씬 넘긴다.
반면 그 양이 줄어들면 노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수명도 짧아질 뿐만 아니라 고갈되면 곧바로 죽음에 이른다.
《내경》에서 황제가 기백에게 질문한 내용도 그렇다.
“늙어 자식을 낳지 못하는 것은 천수를 다해서입니까?” 하고 묻자 기백이 대답하기를 “신장의 정기가 흩어지면 급히 늙고 젊은 나이에도 아이를 낳을 수 없습니다.
그러나 양생의 도를 행하면 신장의 정기가 흩어지지 않아 노화가 늦어져 백세를 넘기고 아이를 가질 수 있습니다” 하였다.
이처럼 양생은 나이 80세만 넘겨도 살 만큼 살았다고 자위하는 요즘 세상의 보통 인식을 단박에 깨뜨려준다.
그러니 어느 누가 양생을 하고 싶지 않으랴마는 문제는 있다.
귀한 약을 최선이라 여기는 이는 대수롭지 않게 생각하는 경향이 있고 설사 진지하게 생각한다 해도 대개는 방법을 알지 못한다.
양생의 도란 흔히 말하는 밥 잘 먹고 운동 열심히 하면 그게 최선이라 생각하는 요즘 사람들의 인식과는 판이하게 다르다.
그렇다고 굉장한 도술을 부리는 것처럼 희한한 것도 아니다.
부지런하기만 하면 누구나 일상생활에 쉽게 적용할 수 있다.
하지만 깨우침이 있어서 확실한 믿음이 없이는 진지하게 양생을 할 수가 없으므로 원하는 대로 되지도 않는다.
믿음은 깨달아서 확신이 섰을 때 생기기 마련이라 공부가 필요하다.
때로는 천체물리학과 자연과학의 시각으로 판단할 때도 있고 철학의 깊음까지 요구하기도 한다.
황제의 “그럼 어떻게 하는 것이 양생의 도입니까?” 하는 질문의 대답에서 여실히 알 수 있다.
기백은 “사시(四時)의 삿된 기운을 피하고 음식을 바르게 절제하여 섭취해야 하며 심신을 고요히 하면 됩니다” 하고 대답했다.
평범하고 별것 아닌 것처럼 들릴지 모르지만 대단히 깊은 사유(思惟)가 필요한 말이다.
정말 오래 살 수 있는 방법이 있을까. 앞으로 선현들의 가르침을 하나하나 따져보기로 한다
☞ Monthly Chosun Vol ☜ ■ 정경대 HS성북한의원학술원장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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