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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양이 눈동자가 세로로 길쭉한 이유

浮萍草 2015. 9. 8. 20:46
    눈동자 모양의 생태학
      고양이는 노란 눈으로 그녀를 똑바로 마주보았다.   노란 눈 한가운데 작고 새까만 막대가 수직으로 서 있었다.- 로알드 달, ‘정복왕 에드워드’에서
    ▲  염소 눈(왼쪽)과 고양이 눈. 둘의 눈동자(동공) 모양이 전혀 다른 건 생태적 적응의 결과라는 연구결과가 나왔다. - 위키피디아 제공
    림을 그리는 게 취미인 필자는 연초 양띠 해(을미년)를 맞아 양을 소재로 유화를 하나 그렸다. 그런데 양의 눈을 그리다가 뜻밖의 발견을 했다. 양의 눈동자(동공)가 동그랗지 않고 가로로 길쭉했다. 실눈을 뜬 건가 싶어 자세히 봤지만 아니었다. 그러고 보니 염소 눈도 이상하게 생긴 것 같았다. 며칠 전 영국의 소설가 로알드 달의 단편집에서 ‘정복왕 에드워드’란 단편을 읽었다. 클래식음악을 감상할 줄 아는 고양이에 대한 좀 황당한 얘기인데, 글 앞에 인용한 문구는 고양이의 특이한 눈동자를 묘사하고 있다. 즉 고양이의 눈동자는 세로로 길쭉하다. 수정체에서 빛이 통과하는 부분인 눈동자는 고정된 게 아니라 주변 근육의 작용으로 크기가 변한다. 즉 망막으로 들어오는 빛의 양을 조절하는 조리개로,빛이 강하면 크기가 작아지고 약하면 커진다. 따라서 사람처럼 원형인 게 가장 무난한 구조일 텐데 왜 이런 동물들은 다르게 생겼을까. 그것도 양이나 염소는 가로로 길쭉하고 고양이는 세로로 길쭉하니 뭔가 이유가 있을 것 같기도 하다. 물론 과학자들이 이런 사실에 대해 고민하지 않았을 리가 없고 따라서 몇 가지 가설이 나와 있다. 먼저 길쭉한 형태가 원형보다 더 효과적인 조리개라는 설명이 있다. 즉 눈동자가 원형을 유지하면서 면적을 줄이려면 원둘레의 길이도 비례해서(정확히는 제곱근에) 줄어들어야하는데 고양이의 경우는 좌우를 좁히면 되기 때문이다. 실제로 사람에서 동공의 최소 크기는 최대 크기의 15분의 1인 반면 고양이는 135분의 1이다. 그만큼 폭넓은 광량에 적응할 수 있다는 말이다. 그럼에도 이 가설은 가로와 세로의 차이를 설명하지 못한다. 이밖에 몇 가지 가설이 더 나와 있지만 그다지 설득력은 없다. ㆍ심도를 얕게 하면 거리 추측에 도움 돼
    ▲  고양이가 보는 세상. 눈동자가 세로로 길쭉하면
    좌우는 심도가 깊어 초점거리(왼쪽아래 십자가)를
    벗어나도 그다지 흐릿해지지 않는 반면(세로선 중간
    0.4디옵터,오른쪽 0.8디옵터) 위아래는 심도가 얕아
    초점거리를 조금만 벗어나도 흐릿해진다(가로선 중간
    0.4디옵터,위쪽 0.8디옵터).- 사이언스 어드밴스 제공
    학술지 ‘사이언스 어드밴스’ 8월 7일자에는 동물의 눈동자 모양이 다양한 이유를 생태적 관점에서 해석한 논문이 실렸다. 미국 버클리 캘리포니아대 마틴 뱅크스 교수팀은 육상동물의 눈동자 모양과 생태적 지위,즉 해당 종의 먹이활동 양식과 활동 시간대 등이 밀접히 연관돼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육상동물 214종을 생태적 지위에 따라 분류한 결과 초식동물 42종 가운데 36종이 가로로 길쭉한 눈동자 였다. 반면 육식동물은 사냥 행태에 따라 눈동자 모양이 달랐다. 즉 양안형 육식동물의 경우 사냥감을 쫓아가서 잡는 활동형은 사람처럼 동그란 반면,숨어있다 기습하는 매복형은 65종 가운데 44종이 세로로 길쭉한 눈동자였다. 먼저 매복형 육식동물부터 살펴보자. 연구자들은 숨어서 타이밍을 노리는 사냥법의 경우 사냥감의 거리를 정확히 파악하는 게 중요하다고 설명한다. 거리를 파악하는 실마리 가운데 하나는 양안시다. 즉 뇌는 양쪽의 눈에서 오는 정보의 차이(거리에 따른 상대적인 각도의 차이)를 해석해 입체영상을 재구성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사람처럼 눈동자가 동그란 양안시도 입체영상을 보는데 문제가 없다. 그렇다면 고양이 눈동자가 굳이 세로로 길쭉할 필요가 있을까? 연구자들은 지난 2012년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에 물체의 거리를 파악하는데 양안시의 입체정보뿐 아니라 심도도 중요한 요소임을 밝힌 논문을 발표했다. 심도(depth)란 쉽게 말해 초점거리를 벗어날 때 흐릿해지는 정도다. 즉 초점을 벗어나도 그렇게 흐리지 않으면 ‘심도가 깊다’고 말하고 조금만 벗어나도 흐릿해지면‘심도가 얕다’고 표현한다. 인물 클로즈업 사진을 보면 배경이 흐릿하게 처리된 심도가 얕은 사진이 많다.
    ▲  거리지각에 기여하는 요소.과거에는 양안시의 입체영상이
    거리지각에 대한 정보 대부분을 준다고 생각했으나(왼쪽 위)
    심도도 중요한 요소라는 사실이 2012년 밝혀졌다(오른쪽 위).
    심도는 눈동자의 크기에 따라 결정된다.아래는 거리지각에
    양안시와 심도의 기여도를 측정하는 실험을 묘사한 그림.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카메라에서 심도를 조절하는 부분이 바로 눈동자에 해당하는 조리개다. 조리개를 많이 열어 빛이 들어오는 폭을 넓힐 경우 심도가 얕아지고 조리개를 많이 닫으면 심도가 깊어진다. 보통 풍경사진이 심도가 깊은 경우가 많은데 피사체가 전부 선명하기 때문에 오히려 거리감은 떨어진다. 즉 어떤 대상의 거리를 파악할 때는 심도가 얕아 앞뒤의 대상이 흐릿해지는 게 유리하다. 카메라에 고양이 눈동자처럼 세로로 길쭉한 조리개를 끼우면 세로로는 심도가 얕고 가로로는 심도가 깊은 이중 효과를 내는 영상이 얻어진다. 즉 고양이는 세로의 심도를 얕게 해 사냥감의 거리정보를 정확히 파악한다. 한편 눈동자의 폭이 좁아져 가로로 심도가 깊어지는 것 역시 사냥감을 파악하는데 도움이 된다. 앞의 얘기와 모순이 되는 것 같지만 이 경우는 양안시의 해상력을 높여 효과를 낸다. 즉 양안시는 좌우 두 겹으로 보이는 영상을 겹쳐 입체영상을 만들므로, 가로로 심도가 깊을 경우 더 뚜렷한 입체영상을 얻을 수 있기 때문이다. 한편 연구자들은 또 다른 흥미로운 패턴을 발견했다. 소형 맹수류일수록 세로로 길쭉한 눈동자일 가능성이 높다는 것. 즉 어깨높이 42cm 미만인 소형동물은 세로형 눈동자인 44종 가운데 82%를 차지하는 반면 원형 눈동자인 19종 가운데서는 17%에 그쳤다. 이에 대한 설명은 기발하면서도 약간 갖다 붙였다는 느낌도 있는데 아무튼 이렇다. 보통 동물에서 눈알의 크기는 몸의 길이에 비례하는 게 아니라 그 제곱근에 비례한다. 즉 작은 동물일수록 상대적으로 눈이 커 보인다. 그런데 두 눈의 간격(몸의 길이)에 비해 눈의 크기 차이가 상대적으로 작다는 건 소형 동물일수록 심도가 얕아져 양안시의 입체영상 해상도가 떨어짐을 의미한다. 따라서 눈동자의 가로 폭을 좁혀,즉 세로형 눈동자가 돼 심도를 깊게 해서 이 효과를 상쇄했다는 것이다. ㆍ파노라마 시야에 최적화된 구조
    한편 초식동물의 가로형 눈동자에 대해 저자들은 천적을 감시하는데 최적화된 결과라고 해석한다. 초식동물은 특정한 개체를 주시하는 게 아니라 언제 어느 방향에서 급습할지도 모르는 천적을 경계해야 한다.
    ▲  눈동자 모양에 따른 빛처리량(throughput)
    빛에서 망막에 도달하는 비율을 나타낸 그래프.
    빨간색 등고선은 80%,파란색은 60%,녹색40%,
    노란색 20%다.가로형 눈동자는 등고선도 납작해
    위아래 정보보다 좌우정보를 더 많이 처리한다.
    - 사이언스 어드밴스 제공
    따라서 눈도 표적에 초점을 맞추는 양안시형이 아니라 좌우로 많이 벌어져 있는 단안시형이다. 즉 두 시야가 겹쳐 입체영상을 볼 수 있는 영역은 정면으로 제한돼 있는 대신 바로 뒤를 빼면 거의 전 영역을 커버하는 파노라마 사진 같은 시야를 확보하고 있다. 이번 조사에서도 먹잇감으로 분류된 초식동물 27종 가운데 26종의 시축(두 눈 사이의 각도)이 87도를 넘었다. 초식동물의 경우 천적의 정확한 거리보다는 존재 차체를 확인하는 게 더 중요하므로 심도가 깊은 게 더 좋다. 이 경우 세로가 납작하므로 지평선에 따라 펼쳐진 광경을 보는데 유리하다. 한편 눈동자가 가로로 길쭉하기 측면에서 들어오는 빛이 위아래에서 들어오는 빛보다 많다. 즉 천적이 나타날 확률이 희박한 위아래에서 오는 빛은 줄이면서 천적이 출몰하는 좌우에서 오는 빛은 늘리는 구조다. 파노라마 영상을 밝게 볼 수 있는 장치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계통분류학적 기법을 써서 눈동자 모양의 진화과정을 재구성했다. 그 결과 눈동자의 모양이 필요에 따라 독립적으로 여러 차례 진화해왔다는 사실을 밝혀냈다. 즉 고양이과 동물의 경우 공통조상은 세로형 눈동자였고 종분화 과정에서 준원형(세로형과 원형 상이) 눈동자 진화가 2~4차례 일어났고 원형 눈동자 진화가 여섯 차례 일어났다. 반면 개과 동물의 경우 공통조상은 준원형 눈동자였고 종분화 과정에서 세로형과 원형 진화가 각각 두 차례 일어난 것으로 추정됐다. 개가 고양이보다 친숙하게 느껴지는 게 눈동자 모양 때문은 아닐까 하는 생각이 문득 든다.
    l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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