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 M T = ♣ /과학카페

맹점의 생리학

浮萍草 2015. 9. 1. 13:41
    훈련으로 크기 줄일 수 있어
      마음은 자연과 마찬가지로 진공을 싫어하며,장면을 완성하기 위해 무슨 정보든 채우려고   한다.    -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그러나 이 조사 결과에는 맹점이 있다.’ ‘철학과 과학,심리학 등을 근거로 그 맹점을 꼬집는다.’ 동아사이언스 사이트에서‘맹점’으로 검색할 때 나오는 기사에서 발췌한 문장들이다. 맹점(盲點)은 어떤 일을 할 때 미처 신경을 쓰지 못해,즉 제대로 보지 않아 잘못된 부분을 일컫는 말이다. 비슷한 맥락으로 맹신(盲信), 맹목(盲目)이란 단어도 있다. 필자는 맹점이란 단어를 이처럼 비유적으로 쓰기 위해 만든 것으로 알고 있었다. 그런데 20여 년 전 한 잡지에 실릴 글을 읽고 깜짝 놀란 기억이 지금도 새롭다. 맹점에는 위와 같은 비유적인 용법도 있지만 해부학 용어로 영어 ‘blind spot’을 직역한 단어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아마도 비유적 의미로 쓰이던 한자어 맹점을 해부학 용어의 번역어로 채용했을 것이다. 그리고 영어 ‘blind spot’도 원래 비슷한 맥락의 비유적 의미로 쓰고 있었는데 안구를 해부하다 눈이 볼 수 없는 영역이 있다는 걸 발견한 과학자가 기존 용어를 갖다 쓴 걸로 보인다.) ㆍ맹점은 구조적인 문제
    17세기 프랑스 과학자 에듬 마리오트는 안구에서 시신경이 빠져나가는 부분인 시각신경유두를 발견했다. 그는 시각신경유두가 빛에 반응하지 않는다는 사실을 토대로 시야에서 눈이 볼 수 없는 영역,즉 맹점(point aveugle)이 있다고 추측했다. 눈의 구조를 잠깐 생각해보자. 카메라 렌즈에 해당하는 수정체를 통과한 빛다발은 상하좌우가 바뀌어 안구 뒤쪽의 망막에 상으로 맺힌다. 망막에 있는 빛수용체가 감지한 빛정보는 시신경을 거쳐 뇌로 전달된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시신경은 망막 안쪽에 있다. 즉 빛은 시신경을 통과해 빛수용체세포에 도달한다. 망막 안쪽에 분포한 시신경이 뇌로 들어가려면 망막 바깥쪽으로 빠져나가야 하는데 각자의 위치에서 망막을 뚫고 나가는 게 아니라 한 곳에 모여 다발을 이뤄 망막을 통과한다. 사무용 책상을 보면 한쪽에 구멍이 뚫려 있어 각종 전선을 모아 아래 전원으로 내보는 것과 비슷하다. 이 구멍에 해당하는 부분이 바로 시각신경유두이고 그 결과 맹점이 생긴 것이다. ‘시신경이 망막 바깥쪽에 있으면 될 텐데 눈이 왜 그렇게 진화했지?’ 이런 의문이 드는 독자도 있겠지만 진화는 기존의 구조를 토대로 이뤄지는 것이기 때문에 그 결과가 최선이 아닌 경우가 많다. 흥미롭게도 척추동물과는 별개로 정교한 눈을 진화시킨 두족류의 경우 정말 시신경이 망막 바깥쪽에 있다. 따라서 시신경 다발이 뇌로 연결되기 위해 망막을 뚫을 필요가 없다. 물론 이들 생물은 맹점이 없다!
    ▲  척추동물의 눈(왼쪽)과 두족류(오른쪽)의 눈은 망막의 구조가 다르다.척추동물은 망막(1) 안쪽에 신경섬유(2)가 있어서 시신경 다발(3)로 묶이는 지점인
    시각신경유두(4)에 빛수용체가 없다.그 결과 이 영역의 시각정보가 없어 맹점이 존재한다. 반면 두족류는 망막 바깥쪽에 신경섬유가 있기 때문에 망막이 온전해
    맹점이 없다. - 위키피디아 제공

    맹점은 원형으로 지름의 시야각이 5도쯤 된다. 달이 0.5도 이므로 달 열 개가 나란히 놓일 수 있는 범위의 각도다. ‘그 정도면 맹점이 쉽게 ‘보여야’ 하는 것 아냐?’ 당연히 이런 의문이 들 텐데 다행히 우리 눈은 두 개이기 때문에 맹점이 보이지 않는다. 시각신경유두는 안구 뒤에서 몸 중심쪽으로 15도 정도인 지점에 있기 때문에 두 눈의 맹점이 겹치지 않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한쪽 눈을 감으면 맹점이 보인다는 말인데…’ 이런 생각이 번뜩 떠올라 실행에 옮긴 독자는 실망할 것이다. 역시 맹점이 보이지 않기 때문이다. 필자가 20여 년 전 글을 읽고 충격을 받은 건 바로 이 지점부터다. 즉 약간의 트릭을 쓰면 우리 모두 맹점을 쉽게 ‘볼 수’ 있을 뿐 아니라 내 눈에서 믿을 수 없는 일이 벌어지기 때문이다. ㆍ없으면 만들어 채운다
    먼저 우리 눈에서 맹점을 확인해보자. 편한 대로 왼쪽 눈이나 오른쪽 눈을 감는다. 그리고 화면에서 40cm쯤 떨어진 뒤 아래 그림에서 글자 R(오른쪽 눈을 뜬 경우) 또는 L(왼쪽 눈을 뜬 경우)에 시선을 고정한 뒤(이게 중요하다!) 서서히 다가간다. 그러면 어느 순간 옆에 있는 글자가 사라지는데 맹점 안에 글자가 들어갔기 때문이다. 주변시이기 때문에 선명하지는 않지만(제대로 보려고 안구를 돌리는 순간 다시 글자가 나타난다) 몇 번 해보면 사라진다고 확신할 수 있을 것이다.
    ▲  맹점의 존재는 쉽게 확인할 수 있다. 편한 대로 왼쪽 눈이나 오른쪽 눈을 감는다. 그리고 화면에서 40cm쯤 떨어진 뒤 글자 R(오른쪽 눈을 뜬 경우) 또는
    L(왼쪽 눈을 뜬 경우)에 시선을 고정한 뒤 서서히 다가간다. 글자가 맹점 안에 들어가는 순간 사라진다. - 위키피디아 제공

    ▲  뇌가 시각정보를 처리하는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맹점 연구가 큰 도움이 됐다.즉 입력정보가 불완전할
    경우 뇌는 통계적 추측을 바탕으로 정보를 자체생산해
    시각을 완성한다.위:왼쪽 눈으로 오른쪽 검은 점을
    응시하며 다가가면 왼쪽 빨간 막대 두 개가 연결돼
    하나로 보인다.아래:마찬가지로 다가가면 왼쪽 바큇
    살이 중심까지 연장돼 한 점에 수렴한다.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에 나온 그림을 약간 변형했다.
    - 강석기 제공
    신기하긴 한데 왜 맹점은 보이지 않지?’ 즉 글자가 사라졌으니 뭔가 있기는 한 건데 그렇다면 검은 반점이 보여야하지 않을까(입력된 빛정보가 없으므로). 다시 위의 실험을 반복해보자. 글자가 맹점에 들어와 사라졌을 때 무슨 일이 생겼나? 그렇다. 글자만 사라졌을 뿐 주위의 하얀 배경이 그대로 있어서 맹점의 존재를 알 수가 없다. 바꿔 말하면 우리 뇌가 맹점에 해당하는 빈 공간에 색(이 경우 배경색)을 채운 것이다. 미국 캘리포니아대 신경과학자 빌라야누르 라마찬드란 교수는 2000년 출간한 책‘라마찬드란 박사의 두뇌 실험실’의 5장 ‘스스로를 이해하려는 두뇌의 모험’에서 맹점에 대해 자세히 다루고 있다. (필자가 20여 년 전에 읽은 것도 라마찬드란 교수가 미국 월간과학지 ‘사이언티픽 아메리칸’ 1992년 5월호에 기고한 글이다.) 라마찬드란 교수는 책에서 뇌가 맹점을 검은 반점으로 보이게 놔두지 않고 배경과 같은 색으로 채워 넣는 현상을 바탕으로 본다는 것의 의미를 재조명하고 있다. 뇌는 눈이 보내온 잡다한 정보를 바탕으로 자신이 보유하고 있는 데이터베이스를 참조해 영상을 재구성 해낸다는 것. 따라서 맹점 실험처럼 입력된 정보가 부족할 경우 주변 정보를 바탕으로 ‘통계적인 추측’을 해 적당한 이미지를 창조한다는 말이다. 이를 잘 보여주는 맹점실험 예를 두 가지만 더 보자. 오른쪽 눈을 감고 왼쪽 눈으로 아래 그림(위쪽)에서 오른쪽 점을 응시한다. 서서히 다가가는 순간 왼쪽에 수식으로 서 있는 짧은 막대 두 개에서 어떤 일이 일어나는가? 그렇다. 놀랍게도 두 막대가 이어져 하나의 긴 막대가 된다. 막대가 검정색이이라면 맹점에서 입력정보가 없기 때문에 그렇게 됐다고 설명할 수도 있지만 이 막대는 빨간색이다. 즉 뇌는 맹점의 일부분, 즉 두 막대의 연속선상에 해당하는 영역을 빨간색으로 채워 넣은 것이다. 라마찬드란 교수는 이 현상을 뇌의 통계학으로 설명한다. 즉 두 막대가 우연히 맹점 위아래에 나란히 배열돼 있을 가능성은 매우 낮기 때문이다. 전봇대에 가려져 왼쪽에는 고양이 머리가 오른쪽에는 꼬리가 있을 경우 고양이 한 마리라고 생각하는 것과 마찬가지다. 결국 뇌는 부족한 정보를 갖고 통계적 추측을 해 화면을 완성한다. 물론 우리는 의지와 상관없이 뇌가 조작한 영상을 볼 수밖에 없다! 아래쪽 또 다른 예를 보자. 직선이 바큇살처럼 사방으로 뻗치고 있는데 가운데가 비어 있다. 이쯤 되면 가운데가 맹점 안에 들어올 때 어떤 일이 벌어지는지 예상할 수 있을 것이다. 그렇다. 선들이 늘어나 가운데 점으로 수렴하는 것처럼 보인다. 역시 자연스러움을 추구하는 뇌의 채워넣기가 작동한 결과다. 라마찬드라 교수는 책에서“과장되게 말하면 우리는 언제나 환각을 겪고 있다. 우리가 지각이라고 부르는 것은 현재의 감각적 입력에 그중 어떤 환각이 가장 잘 부합하는지 결정함으로써 이루어진다”고 쓰고 있다. ㆍ훈련하면 맹점 작아져
    학술지 ‘커런트 바이올로지’ 8월 31일자에는 맹점과 관련해 특이한 연구결과가 실렸다. 시각훈련을 하면 맹점의 크기를 줄일 수 있다는 내용이다. 호주 퀸즈랜드대와 미국 노스이스턴대 연구자들은 시각이 정상인 사람들을 대상으로 평일 20일 연속으로,즉 4주 동안 시각훈련을 한 결과 맹점의 면적이 24 입방도에서 21입방도로 줄어들었다고 보고했다. 연구자들은 먼저 참가자 10명 각각의 맹점 크기를 측정했다. 즉 한쪽 뜬 눈을 특정 지점을 응시하게 한 뒤 시야측정을 했다. 즉 시야에서 지름 0.35도인 흰 점이 깜빡거리게 하면서(모니터 배경은 회색) 그 지각여부(맹점 안에서 나타나면 모른다)에 따라 맹점의 위치와 크기를 정했다. 그 뒤 20일 동안 맹점 주변에서 동작식별과제와 색상식별과제를 실시했다. 동작식별과제는 고리에 나타나는 물결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맞추는 문제다. 고리 크기는 맹점의 크기와 비슷하다. 색상식별과제 역시 고리에 나타나는 색상을 맞추는 문제다. 참가자들은 각 과제를 매일 200번씩 실시한다. 고리는 중심이 맹점의 중심과 같고 크기는 참가자들이 70%를 맞추는 수준으로 조정된다.
    ▲  맹점의 크기를 줄이는 시각훈련.위:동작식별과제로 중심이 맹점의 중심과 같고 크기가 맹점과 비슷한 고리에 나타나는 물결이 어느 방향으로 움직이는지
    맞추는 문제다.아래:색상식별과제 역시 고리에 나타나는 색상을 맞추는 문제다.참가자들은 각 과제를 매일 200번씩 실시한다.고리 크기는 참가자들이 70%를
    맞추는 수준으로 조정된다. - 커런트 바이올로지 제공

    ▲  정상인 사람이 본 모습(위)과 황반변성이 있는
    사람이 바라본 모습(아래). - 위키피디아 제공
    이렇게 20일 동안 훈련을 받은 뒤 맹점을 다시 측정하자 크기가 약간 줄어들었던 것. 연구자들은 맹점 주변에 있는 시신경이 훈련을 통해 민감도가 높아져 맹점이 약간 줄어드는 효과를 냈다고 설명했다. 운동으로 근육을 키우는 것과 비슷한 원리다. 그런데 두 눈이 멀쩡한 경우는 말할 것도 없고 설사 눈 하나만 있더라도 맹점 때문에 생활에 불편할 일이 없는데 왜 이런 실험을 했을까. 훈련으로 맹점 크기가 12%정도 줄어들 수 있다는 걸 보여주는데 의의가 있을까. 사실 맹점은 우리 눈의 구조적인 문제이지만 사고나 병으로 망막이나 뇌(시각피질)가 손상될 경우 비슷한 현상이 나타날 수 있다. 이를 암점(scotoma)이라고 부른다. 암점이 맹점 정도의 크기라면 뇌가 알아서 채워 넣으므로 이를 알아차리지 못할 수도 있지만 암점이 커지면 문제가 된다. 예를 들어 황반변성 같은 경우 황반을 중심으로 빛의 정보를 처리할 수 없는 변성의 범위가 점점 커지면서 시각이 불완전해지고 결국은 실명에 이를 수도 있다. 그런데 시각훈련을 하면 이런 진행을 억제할 수 있다는 연구결과가 속속 발표되고 있다. 맹점을 대상으로 한 이번 연구는 병적 암점을 지닌 환자들을 위한 치료법을 찾기 위한 기초연구인 셈이다. 연구자들은 논문에서“지각훈련을 통해 병에서 비롯한 국지적 실명의 범위를 줄일 수 있다”며“이번 연구는 이런 훈련법을 최적화하는데 도움이 될 것”이라고 설명했다. 매사를 꼼꼼하게 챙기는 훈련을 하면 비유적 의미에서의 맹점도 줄일 수 있을 거라는 생각이 문득 든다.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草浮
    印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