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헬스토리

4 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浮萍草 2015. 8. 24. 00:00
    ▲  사진= 포토리아
    ㆍ건강한 노후에 대하여 로부터 아주 오랜 세월이 흘렀지만, ‘일년감 할매’의 주름이 깊어 쪼그라든 얼굴이 떠오르거나 문득 보고 싶을 때가 있습니다. 일년감 할매가 돌아가신 게 30년도 전이니,지금쯤 하늘 어디에선가 어설픈 작대기 하나로 굽은 등 버티며 바지런히 일년감 밭을 일구고 계시겠지요. 요새 흔한 토마토를 예전에는 흔히 일년감이라고들 불렀습니다. 나이가 들어 ‘노친네’의 자리를 꿰차고 앉아 ‘어른’ 노릇 대신 한사코 세상에 대거리를 하려고 드는 분들을 볼 때마다 그 할매 얼굴이 떠오릅니다. 너무 바싹 말라붙어 불씨라도 얹히면 금새 활활 타오를 듯 살벌하고 강퍅한 세상이어서 나이 잘 든다는 게 쉽지만은 않은 일인가 봅니다. 나이 든다는 건 건강 상태가 점차 취약해진다는 뜻이니 누구라도 건강한 노후에 각별한 신경을 써야 하는 건 당연한 얘기이지요. 그런데, ‘건강한 노후’라고 하니 자꾸 신체의 건강만을 생각하는 사람이 태반입니다. ‘건강한 몸에 건강한 정신이 깃든다’는 예전의 체육정책의 슬로건이 틀린 건 아니지만 뒤집어서 정신이 건강하면 몸의 건강이 따르지 않을 수도 없는 일이니,다 생각 나름인 것 같습니다. ㆍ나이 든다는 것은 양보와 배려를 안다는 것
    나이 드신 분들은 체력은 물론 면역력이나 섭생 등 건강의 기초가 취약한 데다 자칫 세상의 일에서 배제되고 소외됐다고 여기기 쉬워 잘 살펴야 하는데 요즘의 세상을 보면 뭐가 그리도 바쁜지 젊은 사람들이 노인을 따로 돌아보는 일도 없어 뵈고 그래선지 더러는 한사코 엇나가 세상일에 버럭질이나 하려고 드는 노인들이 더 많아지는 듯도 합니다. ‘경로(敬老)’라는 것도 따지고 보면 나이 들어 근력이 약해진 고령의 노인들을 고된 일터에서 물러서게 해 노후를 편하게 맞으라는 기성세대의 배려이기도 하고, 이제는 몸을 내세워 일하기보다 젊은 사람들에게 삶의 경륜을 잇게 하는 소위 ‘어른 노릇’을 하시라는 주문일텐데,어른 노릇을 하려는 쪽이나 가르침을 받으려는 쪽이나 다 그런 염의가 없어 보이기도 합니다. 그러니 온몸으로 아이들 지키려다가 그만 실신해 자빠진 옛날의 그 일년감 할매가 두고 두고 그리울 밖에요. 이웃에 사셨던 그 할매는 노인 반열에 들어서도 여전히 숫기가 없어 말도 가려서 하셨고 오지랖 넓게 이 일, 저 일 설치지도 않는 그냥 찬찬한 성품이었습니다. 그렇다고 가세가 풍족해 몸을 놀리지 않아도 먹고 사는 일이 어렵지 않은 살림이 못 됐던 탓에 종일 들에 나가 하다 못해 밭두렁에서 쇠비름이라도 뜯어야 목구멍 으로 밥이 넘어간다는 타고난 농투산이 일꾼이기도 했지요. 워낙 말수가 없어 하루 종일 들일을 하면서도 꼭 필요한 일이 아니면 입을 열지 않았는데 젊은 아낙들이 “아니 고되실텐데 죙일 입 막고 무슨 일만 그렇게 하시느냐” 고 농이라고 건넬라치면 그제서야 쪼글쪼글한 얼굴에 소녀같은 웃음을 지으며“쉰소리 해봐야 배나 꺼지지”라고 내뱉듯 대꾸하는 게 전부였습니다. ㆍ잘 가꿔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
    아마 제가 초등학교 1∼2학년 무렵이었을 겁니다. 그 할매가 한 해는 마을 초입의 텃밭 귀퉁이에 토마토를 심었는데 조석으로 돌보고 갈무리한 덕분에 어떤 놈은 어른 주먹을 둘쯤 보태놓은 것처럼 크고 실해 참 보기 좋았습니다. 오가면서 발그레 맛이 들어가는 토마토를 볼 때마다 한 입 베어물고 싶은 생각에 한참씩 그걸 바라보곤 했는데 코흘리개가 입맛을 다시며 토마토를 쳐다보는 모양이 그랬던지 그 할매는 “다 익으면 너도 한 개 줄테니 좀만 기다려라”시며 오져 하곤 했지요. 그 뒤로 학교가 끝나면 굴렁쇠를 굴리며 부리나케 집으로 향해 그 집 텃밭에서 익어가는 토마토를 곁눈질하며 지나치곤 했는데 하루는 어린 나이에 그 탐스러운 일년감의 유혹을 이겨내지 못하고 일을 벌이고 말았습니다. 그 날, 저녁을 먹고 나서 또래 동무와 둘이 슬그머니 마을을 빠져나왔습니다. 일부러 마을을 멀리 돌아 나간 뒤 다시 마을로 들어오는 길을 잡아 들어오면 그 텃밭이 있었습니다. 이 정도면 아이들이라도 상당한 지능범 수준이어서 요즘 전문 방송에서 뉴스 보도하는 식으로 말하면 ‘계획 범행’임에 틀림없습니다. 벌써 어두워졌지만 어둠이 눈에 익어 주렁주렁 달린 토마토가 또렷하게 보였습니다. 주변을 쓱, 살핀 뒤 날다람쥐처럼 생울을 비집고 텃밭으로 들어가 손에 잡히는대로 토마토를 서너개 따 들었는데 아뿔싸, 마을쪽 텃밭 어귀에서 할머니의 쇠된 목소리가 터져나오는 것이 아니겠습니까. “이눔들, 가만 있거라. 그거 먹으면 안 된다”며 토마토밭 고랑을 타고 후적후적 달려오는 소리에 그만 오금이 얼어붙었습니다. 어느새 이마에는 찐득하게 진땀이 배고,온몸이 사시나무처럼 떨려 숨조차 쉬기가 어려웠는데 그 때 밭고랑에 바싹 엎드려 있던 동무가 다급하게 나를 잡아끌고는 냅다 줄행랑을 쳤습니다. 그 와중에 간이 쪼그라들어 토마토는 어디다 내던졌는지 기억도 나질 않습니다. 어둑한 밭두렁을 타고 걸음아 날 살려라 내달리는데, 참 일이 난감하게 됐습니다. 그 할매가 한사코 뒤쫓아 오는 게 아니겠습니까. 그런들 다람쥐같이 뛰는 아이들을 따라잡을 수는 없는 일이지요. 한참을 뛰다가 돌아보니 멀리 신작로 어귀에서 그 할매가 가쁜 숨을 내쉬며 여전히 고함을 질러대고 계셨습니다. 가만 들어보니“그거 먹지 말고 이리 가져와라. 내가 사탕 주마”라는 소리가 또렷하게 들렸습니다. 할매는 숨길이 가빠 몇 걸음 떼다가 이내 길바닥에 주저앉고 말았는데 그 때까지도 숨을 헐떡거리며“그거 갖고 이리 와라”고 쇠된 소리로 외치고 계셨습니다. 부리나케 뛴 덕분에 잡힐 걱정은 없었습니다. 사방이 어두워 우리가 누군지 알 턱도 없고, 이 길로 뽕밭은 가로 질러 마을 뒷편으로 돌아 집으로 들어가면 쥐도 새도 모를 일이었지요. 막 따 쥔 토마토를 내버리고 튀는 동무도 마찬가지여서 둘 다 헛웃음만 내뱉으며 몰래 마을 뒤 고샅길로 들어섰는데 마을 어귀에서는 그 할매의 고함소리에 놀란 아낙들이 두런거리며 눈을 꿈벅이고 있었습니다. 텃밭이 마을 입구여서 요요한 저녁에 할매가 내지른 고함소리가 마을 곳곳으로 퍼져나갔을 것임은 불 보듯 뻔한 일이니까요. 벌렁거리는 가슴을 억누르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 집으로 들어왔는데, 마치 기다리고 있었다는 듯 어머니가 닥달을 하십니다. “이눔아,토마토 어쨌어.당장 내놔” 불문곡직 불호령부터 쏟아내는 어머니에게는 둘러댈 말도 생각나지 않았고 꿀먹은 벙어리처럼 웅얼대다가 마침내 전말을 죄다 토설해야 했는데,그 때 골목 어귀에 나와 있던 아낙들이 두런대는 말이 비수처럼 가슴에 와박혔습니다. “찬호 할매가 실신해 신작로에 나자빠진 걸 찬호 아부지가 업어왔대. 이게 무슨 일이래” 뜻밖에 사단이 지경이 되고 보니 당장 제 멱살을 거머쥐고 찬호 할매한테 달려가 이실직고라도 할 태세이던 어머니도 목소리를 낮추고 가만 바깥 동정에 귀를 기울이십니다. 그러면서도 “이 일을 어쩔래”라며 연방 머리통을 쥐어박았는데, 저는 낯이 뜨겁고 가슴이 울렁거려 숨도 크게 쉴 수 없었습니다. ㆍ웅숭 깊었던 그 할매의 배려
    그 밤, 찬호 할매가 기를 쓰고 우리를 뒤쫓았던 사연을 나중에야 알았습니다. 그 날 해질녘, 찬호 할매가 토마토밭에 농약을 쳤는데 요즘처럼 기능성이 강화된 농약이 없던 시절이어서 무식하게 독성만 센 DDT를 뿌렸다는 겁니다. 그 시절에야 분무기도 없어 그냥 하얀 DDT를 삼베주머니에 넣은 뒤 밭고랑을 따라가며 막대기로 툭툭 쳐서 뿌리곤 했는데,낮이라면 허연 DDT 가루가 금방 눈에 띄어 따먹을 엄두도 못 냈겠지만 밤에 일을 벌였으니 그게 눈에 보일 리도 없고 그래서 철부지들이 주린 배에 그걸 맛있다고 따먹었더라면 아마 개거품 물고 나자빠졌겠지요. 그 말을 듣는 순간, 전신에서 힘이 빠지며 왈칵,눈물이 흘렀습니다. 어린 ‘세견머리’에 토마토가 아까워 그렇게 악다구니를 부렸다고 생각했는데 그 말을 듣고 보니 혹시라도 토마토를 먹고 어찌 될까봐 당신은 실신하도록 우리 뒤를 쫓으며 “그거 먹지 말고 가져와라. ‘아메다마’(사탕) 줄테니 이리 와라”시며 한사코 우리 뒤를 쫓으신 거지요. 찬호 할매가 절규처럼 토해낸 외침이 밤새 귀 속에서 징징 울렸습니다. ㆍ어른스러워서 더 건강한 노후
    다시, 그 날을 생각합니다. 다들 잠자리에 드는 저녁까지 혹시 농약 사단이라도 날까봐 텃밭을 떠나지 못한 그 할매의 심지 깊은 사려가 없었더라면 제가 지금 이 곳에 있지도 못했겠지요. 그 어른스러운 마음씀이 자꾸 지금의 노인들과 겹쳐 새삼 가슴이 아려옵니다. 막말로, 누군가 야밤에 토마토를 서리해 먹고 죽어나가도 요즘 정서로 말하자면 그 할매는 책임질 일이 없는 일이지요. 그 시절에야 그냥 서리였지만 요즘으로 치면 절도니까요. 나이를 잘 먹는다는 것, 그 수준을 넘어 아름답게 늙는다는 게 결코 쉬운 일은 아닙니다. 그렇다고 어려운 일만은 아닙니다. 노탐의 무게에 짓눌려 아귀처럼 남의 것 뺏으려고만 들거나 스스로 변하지 않으면서 젊은 사람을 마치 변종 바이러스처럼 여기는 건 천박하고 강퍅해 보여 싫습니다. 도대체 세상을 어떻게 살았길래 나이 들어서도 젊은 사람에게 충고는 언감생심 권고 한 마디 건넬 요량을 못 갖췄으며 이념에 대한 생각은 또 왜 그렇게 꽉 막혀 있는지 한심합니다. 나이 들어 수수함의 격을 잊고 비싼 옷 값진 장신구로 겉치장만 해대 돈자랑 하려고 드는 것도 저급하고 뭘 그리 세상을 올곧고 바르게만 살았는지 허구헌날 목에 핏대만 세우려 드는 관용을 모르는 노후도 안타깝습니다. 찬호 할매야 초등학교도 못 나왔으니 당연히 글을 읽고 쓰지 못하고 평생을 빈천하게 살았으니 노탐이라야 이밥에 쇠고깃국 한번 원없이 먹어보거나,안 아프고 편하게 죽는 것이었을테고, 주제를 아는 탓에 그 나이토록 누군가를 단죄하거나 가르치려는 생각도 꿈에도 못 했을 것입니다. 그래도 살면서 무시로 그 할매 얼굴이 떠오르는 것은 무슨 까닭일까요. 그런 추억이 몰래 토마토 하나 따먹으려다 들통 나 뽕밭 어름에 납작 엎드려서 들었던 개구리 울음이 그리워서라기엔 그 분의 마음이 너무 따뜻하고 곱습니다. 저의 철 없는 서리 행각이 부끄럽다고만 여기기에는 그 분의 정이 너무 이타적입니다. 건강한 노후를 위해서는 당연히 몸의 건강을 살펴야 합니다. 그래서 기를 쓰고 좋은 것 찾아 먹고, 운동도 열심이지요. 그런 노후가 보기 좋은 건 사실이지만, 그것이 전부는 아닙니다. 나이 들면서 마음 건강을 도모하는 지혜도 몸 건강 못지 않게 중요합니다. 아직 그 나이에 이르지 않아서 제가 어떻게 될지는 알 수 없지만 그럴 수 있다면 이기심,노탐,벽창호같은 옹고집을 좀 덜어내고,그 자리에 배려와 양보, 넉넉한 포용과 비움의 미덕 같은 걸 채워넣고 싶습니다. 정신 건강에는 그런 것들이 약이니까요. 아마도 찬호 할매는 하늘에서도 자그마한 땅에 일년감을 키우고 있을 것입니다. 그런 삶이 지상에서든 천국에서든 모든 사람들에게 본보기가 되기 때문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건강한 노후를 고민하지만 어쩌겠습니까. 피할 수 없는 게 많고, 한사코 운명을 회피하려다 추해질 수도 있을 터이니 너무 애 닳아 하지 말고 찬호 할매가 그랬듯 주변도 돌아보면서 사는 게 건강하고 아름답게 늙어가는 선택 아닐까요. 내려 놓을 것 조금씩 내려 놓으면서….
    Seoul        심재억 서울신문 의학전문 기자 jeshim@seoul.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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