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환경생태 물바람숲

산악관광은 케이블카 아닌 마을숲부터

浮萍草 2015. 8. 20. 11:14
    논 가운데 개서어나무 극상림…토성 쌓아 조성한 400년 숲…기묘한 소나무숲과 전통 물길
    지리산 자락 전북 남원 운봉읍 마을숲 답사, 마을 살아야 산촌 관광개발의 미래 열린다
    ▲  전북 남원시 운봉읍 행정리 개서어나무숲을 국립산림과학원 답사단이 14일 둘러보고 있다.100년이 넘는 개서어나무 순림이 논 가운데 조성됐다.자연이 만들고
    사람이 가꾼 전통 경관이다.
    난 14~15일 지리산 자락에 자리 잡은 전북 남원의 마을숲을 전문가들과 답사했다. 국립산림과학원이 마을숲의 미래가치를 찾기 위해 처음 조사한 지 20년 만에 다시 찾은 자리였다. 운봉읍 행정리의 개서어나무숲은 독특했다. 100년을 훌쩍 넘겼을 아름드리 개서어나무 90여 그루가 논의 바다 위에 섬처럼 떠있는 모습이었다. 숲에 들어가니 줄기가 울퉁불퉁한 근육질인 키 큰 개서어나무가 사람들을 압도하며 신비로운 분위기를 자아낸다. 원래 깊은 산에서 오래된 숲이 마지막 단계에 도달하는 서어나무숲이 어떻게 논 가운데 들어서게 됐을까. 주민들은 약 200년 전 마을의 허한 기운을 보하기 위해 조성한 비보림(裨補林)이라고 말한다.
    ▲  밖에서 본 행정리 개서어나무숲 전경.

    마을숲은 람천과 공안천 사이에 위치해 북풍과 하천범람으로부터 마을을 지켜주는 위치에 있다. 숲을 둘러본 전문가들은 애초 자연적으로 있던 개서어나무숲을 사람들이 관리한 결과 전국에서도 보기 드문 순림으로 유지한 것으로 보았다. “숲은 100년 전에도 꼭 이런 모습이었을 가능성이 있다”라고 김석권 박사(‘생명의 숲’ 이사)가 말했다. 고목이 바람에 넘어지면 그 빈자리를 어린나무가 자라 채운다. 다른 나무는 제거한다. 깊은 산속에서처럼 개서어나무숲은 안정된 극상림 형태를 유지하게 된 비결은 사람의 세심한 손길이었다.
    ▲  400년 전 들판에 흙으로 성을 쌓고 그 위에 나무를 심은 운봉읍 신기리 마을숲 모습. 마을숲을 유지하려는 주민의 노력이 계속되고 있다.

    이곳에서 북동쪽으로 4㎞ 거리에 신기리 마을숲이 있다. 임진왜란 때 고향을 버리고 떠돌던 인동 장씨가 약 400년 전 이곳에 정착해 ‘새터’(신기 新基) 마을을 일궜다. 그러다가 1748년 산줄기가 끊어져 지맥이 약하다는 지관의 말을 듣고 들판에 토성을 쌓아 나무를 심었다. 이 사실은 1783년에 새긴 비석에 적혀 있다.
    ▲  신기리 주민이 마을숲의 내력과 이를 유지하려는 주민의 노력을 설명하고 있다.

    200년은 너끈히 넘길 느티나무 아래 모인 주민의 목소리에는 오랜 마을숲에 대한 긍지가 넘쳤다. 주민 김동섭(73)씨는“하천변에 500년 된 서어나무숲이 있었는데 1970년대 경지정리를 하면서 모두 베어냈다”고 아쉬워했다. 그렇지만 주민들은 1991년 집집이 쌀 한 두 바가지씩 걷어 사유지가 된 땅을 사들여 폭 5m, 길이 53m, 높이 7m의 토성을 복원했고 2004년에도 주민끼리 돈을 모아 아름드리 나무가 있던 하천변에 묘목을 심었다. 해마다 정월에 당제도 지낸다.
    ▲  산덕리 삼산마을의 소나무숲. 눈과 바람 때문에 비틀려 자란 수형이 기묘하다. 애초 하천변에 자란 소나무 자연림을 주민이 오랜 세월 가꾸고 지켜 이룩한 마을숲으로 보인다.

    지리산 노고단을 향하는 등산로 주변에 위치한 운봉읍 산덕리 삼산마을숲은 기기묘묘한 소나무 거목으로 유명하다. 수령 150~200년의 소나무가 눈 많고 바람 센 지형 탓에 가지가 땅을 기는 등 독특한 형상을 펼친다.
    ▲  삼산리 소나무숲의 일부 모습.

    그런데 명품 소나무에 가린 또 다른 명물이 바로 전통 물길이다. 주민들은 오래전에 공안천의 물길 2개를 돌려 마을과 마을숲을 거쳐 흐르도록 했다. 현재도 여섯 집에서 담장 밑으로 맑은 물이 흘러들어왔다 나간다.
    ▲  자연하천의 물길을 마을과 마을숲으로 돌려 생활에 쓰고 있는 전통 물길. 담장 안에서 맑은 물을 세탁 등에 쓰고 있다.

    예전 아낙들이 이 물로 담장 안에서 빨래,설거지,목욕을 했다고 주민들은 말한다. 일본 비와호 주변의 이런 전통 물길이 국내에도 알려졌지만 정작 우리한테도 이런 보물이 있는지는 잘 모른다. 운봉읍의 마을숲을 둘러보면서 지리산을 다시 보게 됐다. 국립공원으로 지정된 깊은 산만 볼거리는 아니었다. 지리산 자락에는 천왕봉에도 없는,사람과 자연이 수백년 동안 상호작용하면서 빚어낸 마을숲이 있다. 신준환 동양대 교수는 이를 “자연적 조건과 인간의 선호가 씨줄과 날줄로 얽혀 마을숲이란 비단을 짜낸 것”이라고 묘사했다.
    ▲  마을숲의 원형을 잘 간직하고 있는 강원도 원주시의 성황림 서낭당 모습

    마을숲의 생태적, 문화적 가치가 차츰 밝혀지고 있는 것과 반대로 마을숲은 점차 사라지고 있다. 지리산 자락뿐 아니라 전국 거의 모든 마을에 있었던 마을숲이 이제는 1400여개에 지나지 않고 그나마 농·산촌 마을의 쇠퇴와 운명을 같이하고 있다. 정부는 산악관광 활성화를 내세워 후손에 물려줘야 할 국립공원을 놓고 케이블카와 호텔 타령을 늘어놓고 있다. 정작 투자가 필요한 곳은 그 아래 마을숲이 아닐까. 그곳엔 시각적 만족을 넘어서는 이야기가 숨어 있다. 문화가 있는 마을숲을 생태관광의 거점으로 삼고 인근 산림자원으로 재생에너지인 바이오매스를 생산하는 등 농촌공동체를 되살려야 한다. 마을이 살아야 관광도 있는 법이다.
    Ecotopia Hani        조홍섭 한겨레신문 환경전문기자겸 논설위원 ecothink@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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