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봉한선과 림프선

浮萍草 2015. 8. 4. 09:21
    현대의학도 몰랐던 신체조직들
    자는 과학에세이를 써서 먹고 살지만,몸이 아프면‘의학’에 가까운 양의원보다 
    ‘의술’에 가까운(물론 필자 개인의견이다) 한의원을 먼저 찾는다. 
    침을 맞거나 뜸을 뜨거나 약을 지어 먹는 게 어떻게 병을 고치는지는 모르겠지만 아무튼 효과가 있는 것 같기 때문이다. 
    반면 아무리 병의 메커니즘을 명쾌히 설명하고 이에 기반한 치료법이 나와 있더라도 막상 약효가 별로이거나 부작용이 있다면 내 몸을 맡기기가 꺼려진다. 
    예를 들어 알레르기에 히스타민이라는 생리활성물질이 관여돼 있고 따라서 항히스타민제를 먹으면 증상이 가라앉지만 대가를 치러야 한다. 
    필자는 계절이 바뀔 때 알레르기비염으로 고생했지만 잠을 못 이룰 정도로 증상이 심하지 않는 한 항히스타민제를 먹지 않았다. 
    하루만 지나도 약발이 사라지는데다 항히스타민제를 복용하면 다음날 낮까지도 지속되는 단순히 졸린 것 이상의 뭔가 불쾌하게 정신이 탁해지는 부작용이 싫기 때문
    이다. 
    그런데 재작년 근육통으로 한 한의원에 침 맞으러 갔다가 무심코 알레르기비염으로 고생하고 있다는 얘기를 했더니 한의사가 맥을 짚고 나서‘당신은 비(脾)가 약해 
    폐(肺)까지 영향을 미쳐 나타나는 증상이므로 비를 보(補)해야 한다’(필자가 잘못 기억할 수도 있다)며 약을 먹는 게 좋겠다고 한다. 
    처방의 철학에 공감하지는 않았지만 ‘별 부작용은 없겠지(한의학은 지난 수천 년 동안 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한 셈이므로)’라는 생각에 약을 반 제 지었다. 
    놀랍게도 지난 십 수 년 간 필자를 괴롭혀온 알레르기 증상이 약을 며칠 먹은 뒤부터 사라지더니 2년이 지난 지금까지도 나타나지 않는다. 
    몸이 아픈 사람 입장에서는 병을 명쾌히 설명하지만 해결책을 제시하지 못하는 의학보다는 어찌 됐건 별 부작용 없이 병을 낫게 해주는 의술이 더 고마운 것 아닐까. 
    ‘이 사람, 병 주고 약 주나…’ 
    한의학에 관련된 사람들은 필자의 관점(평가에는 인색하면서 제 실속만 챙기는)이 좀 괘씸할 수도 있겠지만,요즘 신문이나 방송의 광고를 보면 일부 한의사들이 
    한의학을 좀 더 과학적으로 보이게 하기 위해 되지도 않는 과학이론을 갖다 붙이는 무리수를 두는 것도 사실이다. 
    이 땅에서 수천 년을 이어온 한의학의 과학적 원리를 밝히는 연구는 신중하고 면밀하게 진행돼야 궁극적으로 한의학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까.
    ㆍ경락은 실체가 있는 조직인가
    이런 관점에서 ‘과학동아’ 2003년 11월호에 실린 글 한편은 지금도 필자의 기억에 뚜렷이 남아있다. ‘물리학이 경락의 실체를 밝힌다’는 제목의 기고문으로 당시 서울대 물리학부 소광섭 교수(현 서울대 차세대융합기술연구원 센터장)와 박사과정이던 백구연 씨가 필자다. 경락(經絡)은 한의학 용어로 경혈(經穴)을 연결하는 네트워크다. 경혈은 침이나 뜸을 놓는 자리다. 허리가 아픈데 손가락 발가락에도 침을 놓는 건 우리 몸이 경혈과 경락으로 연결돼 있기 때문이다(물론 한의학계의 주장이다). 흔히 경혈과 경락을 통해 우리 몸의 기(氣)가 흐른다고 말한다(그런데 기의 실체는 뭘까?). 서구의학의 관점에서 경락은 말이 안 되는 얘기다. 해부학적 실체가 없기 때문이다. 즉 우리 몸에서 네트워크에 해당하는 건 혈관과 림프관,신경계인데 셋 가운데 어느 것도 경락에 해당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런데 서구의학의 정신적 지주인 물리학(현대 의학장비의 상당수가 물리학 원리에 기반하고 있다)이 경락의 실체를 밝히겠다고 나선 것이다. 놀랍게도 이런 시도를 처음 한 사람들은 1960년대 북한의 의학자,과학자들이었고 수년 동안의 연구 끝에 ‘봉한관’이라는 경락의 실체를 밝혔다고 한다. 당시 연구를 이끈 김봉한 박사의 이름을 따 ‘봉한학설’이라고 부르는 이 가설은 중국,러시아,일본 등에 소개돼 큰 반향을 불러일으켰다고 한다. 김 박사팀은 자체 개발한 염색약을 토끼의 경혈에 주입해 경락을 추적했고 전자현미경으로 경락(봉한관)을 촬영하기도 했다. 그런데 어찌된 영문인지 1965년 마지막 논문이 나온 뒤 북한에서 김봉한 박사가 홀연 자취를 감췄고 봉한학설 연구도 중단됐다고 한다.
    ▲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에서 토끼 방광 표면
    에서 얻은 봉한관. - 서울대 한의학물리연구실 제공
    그리고 한 세대가 지난 1997년부터 서울대 소광섭 교수팀(한의학물리연구실)에서 경혈과 경락을 찾는 연구를 재개했다. 수년간의 다양한 시도 끝에 연구팀은 2003년 혈관의 내벽에서 지름이 50마이크로미터가 채 안 되는 ‘가늘고 연약하며 투명한 조직’을 발견했다. 그리고 형광실체현미경이라는 자체 제작한 현미경으로 해부한 쥐가 살아있는 상태에서 봉한관을 이루고 있는 세포의 핵을 관찰하는데 성공했다. 당시 기고문에서 필자들은“현재 본 연구실의 연구단계는 김봉한 박사의 이론 검증단계에 불과하다”며 신중한 모습을 보이면서도“그러나 이 연구가 무르익게 되면 한의학은 해부학적 근거를 갖게 됨으로써 과학적 연구의 토대가 마련될 것이며,서구 의학은 새로운 체계의 발견으로 여러 해결되지 않은 문제 해결의 새로운 가능성을 얻게 될 전망이다”라고 포부를 밝혔다. 하지만 글을 읽으면서 내내 1965년 북한에서 연구가 갑자기 중단된 뒤 왜 한 세대 동안이나 잊힌 채 방치돼 왔을까 하는 의문이 들었다. 봉한학설이 정말 ‘노벨상 수상이 기대됐던’ 대단한 업적이라면 세계 곳곳에서 많은 연구자들이‘이때가 기회다’ 라는 생각으로 뛰어들었어야하지 않을까. 기고문을 보면 봉한관을 찾는 게 대단히 어려운 작업이기 때문이라고 하지만 아무튼 첨단 장비가 수두룩한 현대의학이 어쨌든 관인, 따라서 길이가 꽤 긴 구조를 놓치고 있다는 게 좀처럼 수긍이 가지 않았다.
    ㆍ뇌의 노폐물 배출로?
    그런데 최근 봉한관이 연상되는 연구결과가 발표돼 필자의 주의를 끌었다. 즉 뇌에서 림프관을 발견했다는 독립적인 연구논문 두 편이 각각 ‘실험의학저널’(6월 29일자)와 ‘네이처’(7월 16일자)에 실린 것이다. 독자 대다수는 이 연구의 의미가 뭔지 감이 안 올 텐데 한 마디로 현대의학의 도그마에 타격을 입힌 것이다. 지금까지는 뇌 속에 림프관이 없다고 알려져 있었기 때문이다. 즉 현대의학은 봉한관보다 훨씬 실체가 명확한 림프관조차 그 분포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고 있었던 셈이다. 따라서 50여 년 전 존재가 제안된 봉한관의 실체를 여전히 확실하게 규명하지 못하고 있다는 사실을 납득하지 못하고 있던 필자도 흔들리지 않을 수 없다. 비슷한 연구인 것 같아 논문을 구하지 못한 핀란드 연구팀의 실험은 건너뛰고 ‘네이처’에 실린 미국 버지니아대 공동연구팀의 연구결과만 소개한다.
    ▲  뇌에도 림프관이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왼쪽은 생쥐의 뇌를 위에서 바라본 모습으로 좌뇌와 우뇌,소뇌(아래) 사이의 정맥동을 따라 림프상피세포,
    즉 림프관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림프상피세포에 있는 Lyve-1단백질을 표지로 썼다.오른쪽은 림프상피세포(Lyve-1,빨간색)와 혈관상피세포(CD31,파란색)에서
    발현하는 유전자를 표지로 한 이미지로 혈관(정맥)에 나란히 림프관이 존재함을 알 수 있다. - 네이처 제공

    먼저 림프계에 대해 잠깐 알아보자. 순환계 하면 우리는 혈관을 떠올리지만 사실 우리 몸에는 혈관만큼이나 복잡한 림프계 네트워크가 퍼져 있다. 림프계의 기능은 크게 세 가지로 볼 수 있는데 하나는 혈관에서 나오는 유출물을 모아 혈관으로 되돌려 보내는 역할이다. 다음으로 소화계인 소장에서 흡수한 지방을 혈관으로 보낸다. 끝으로 혈관에서 유출된 병원체를 잡아 파괴한다. 혈관계와 림프계의 큰 차이점은 혈관계가 폐쇄구조인 반면 림프계는 열린 구조라는 것. 즉 심장에서 나온 동맥은 점점 갈래가 나뉘면서 결국에는 모세혈관이 되고, 말단조직에서 산소교환이 끝난 모세혈관은 다시 큰 혈관으로 합쳐지면서 정맥이 된다. 즉 나무 두 그루가 잔가지를 공유하고 있는 형상이다. 반면 림프계는 말단이 막다른 골목으로 그냥 나무 한 그루라고 보면 된다. 아무튼 혈관계의 모세혈관 네트워크 사이사이에 림프계의 림프관 말단이 자리하고 있다. 모세혈관을 빠져나간 유체나 단백질은 다시 흡수되기도 하지만 그러지 못한 경우는 말단 림프관에 흡수돼 커다란 림프관으로 합쳐진 뒤 쇄골 아래에서 정맥으로 보내진다. 따라서 림프계가 제대로 작동하지 못할 경우 세포 사이에 유체(액)가 넘쳐나면서 몸이 붓게 된다. 흥미로운 사실은 이런 림프계가 뇌에는 분포하고 있지 않다는 것. 따라서 림프계가 없는 뇌에서 왜 탈이 생기지 않는지는 오래된 미스터리였다. 지난 2013년 10월 18일자 학술지 ‘사이언스’에 이 의문에 답하는 연구결과가 소개돼 화제가 됐는데, 바로 ‘글림프 시스템(glymphatic system)’의 존재다. 뇌세포가 배출한 노폐물을 함유한 뇌척수액을 교세포(glia)가 머금은 뒤 정맥주변 공간으로 보내고 노폐물이 정맥을 따라 이동해 목에서 림프관으로 들어간다는 것 뇌에서는 파이프(림프관) 대신 트럭(교세포)이 운송을 맡는 셈이다. 그런데 이번에 ‘실험의학저널’과 ‘네이처’에 각각 발표된 두 논문에 따르면 뇌 안에도 림프관이 존재한다는 것. 연구자들은 뇌의 모순적인 면역현상을 규명하는 과정에서 뜻밖의 발견을 했다. 즉 기존 의학지식에 따르면 중추신경계에는 림프관이 없는데 뇌수막에 둘러싸인 부분에서는 면역세포가 활동을 하고 있다는 것. 도대체 이 세포들은 어디서 와서 어디로 가는 걸까. 연구자들은 면역세포인 T세포의 출입구를 찾는 과정에서 경막정맥동(dural sinuses)과 나란한 방향으로 림프관이 존재하고 있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경막은 좌우 대뇌와 소뇌를 감싸는 막으로 그 사이에 있는 정맥들을 통칭해 경막정맥동이라고 부른다. 연구자들은 정맥동에서 T세포의 분포를 보기 위해 T세포 표면에 있는 CD3e라는 분자를 표지했는데 흥미롭게도 일부가 정맥을 따라 나란히 분포했다. 연구자들은 이게 정맥을 따라 놓인 림프관 안에서 운반되고 있는 T세포일지도 모른다고 가정하고 림프관상피세포에서 발현되는 Lyve-1 유전자를 표지로 써서 림프관이 실제 존재하는지 알아봤다. 그 결과 Lyve-1이 발현된 세포,즉 림프관상피세포가 정맥과 나란히 줄지어 존재했다. 이는 림프관이 정맥 옆에 존재한다는 뜻이다. 추가 실험을 통해 연구자들은 이 림프관을 통해 뇌척수액과 면역세포가 운반됨을 보였다. 그리고 뇌의 림프관은 목에 있는 림프관으로 연결됐다. 연구자들은 뇌수막림프관이 뇌척수액에 있는 가용성분이나 세포성분이 배출되는 주요 경로라고 추측했다. 논문 말미에 보면 이번 발견을 2013년 글림프 시스템 연구결과와 연결지어 설명하는 대목이 나온다. 즉 뇌의 활동으로 생긴 노폐물을 씻어내기 위해 세포 사이로 침투한 뇌척수액을 머금은 교세포가 정맥주변으로 보낸 노폐물이 뇌수막림프관으로 들어가 배출된다는 시나리오다. 노폐물이 정맥주변공간을 따라 목으로 이동해 림프관으로 넘어간다는 2013년 논문의 시나리오보다 그럴듯해 보인다.
    ㆍ제3 순환계, 기능을 확실히 밝혀야
    글을 쓰다가 문득 ‘그런데 봉한관 연구는 어떻게 됐을까?’하는 의문이 들었다. 아직 주류 의학계의 인정을 받은 것 같지는 않지만(그랬으면 벌써 대서특필됐을 것이다) ‘과학동아’에 글이 실린지 12년이 지났으니 확인할 필요는 있을 것 같았다. 검색을 해보니 몇 차례 관련 연구가 발표됐는데 예상대로 주류학계의 인정을 받은 상태는 아닌 것 같다. 그런데 7월 21일자 동영상이 하나 올라와 있다. YTN사이언스의 ‘이매진’이라는 과학강연쇼 프로그램인데‘왜 제3 순환계인가?’라는 제목으로 소광섭 교수와 국립암센터 권병세 교수가 연사로 초청됐다. 먼저 연사로 나온 소 교수는 필자 같은 시청자를 의식해서인지“전자현미경까지 있는데 신체조직을 모르고 있었다는 게 말이 되느냐고 의문을 갖는 사람들이 많다” 며 그림 두 장이 나란히 있는 화면을 보여준다. 왼쪽은 기존 인체 림프계 분포지도이고 오른쪽은 이번 버지니아대 연구팀의 결과를 반영한 새 림프계 지도다. 소 교수는“그렇게 오랫동안 알려진 림프관조차도 뇌에 존재한다는 사실이 최근 밝혀졌다”며 림프관의 10분의 1에 불과한 프리모관(그 사이 봉한관에서 이름이 바뀌었나보다)의 실체를 알기 어려운 배경을 설명했다. 림프관 연구를 보고 봉한관을 떠올린 필자로서는 비슷한 발상에 깜짝 놀랐다. 아무튼 소 교수는 짧은 강연(5분 정도)에서 프리모관이 림프관 내부 중심축을 따라 나있는 사진을 보여줬고 경락은 피부 가까이에 있는 프리모관이라고 설명했다. 프리모관은 혈관과 림프관뿐 아니라 신경을 따라서도 분포한다고 한다. 소 교수는 프리모관을 ‘제3 순환계’라고 불렀다. 참고로 혈관이 제1 순환계, 림프관이 제2 순환계다. 이어 등장한 권 교수는 역시 짤막한 강연에서 프리모관을 통해 신경전달물질인 아드레날린이 흐르고 있음을 확인했다며,생리적 반응 측면에서 한의학의 기(氣)의 개념에 가장 가까운 물질이 아드레날린임을 생각하면 앞뒤가 맞는다고 덧붙였다. 또 림프관에 림프절이 있는 것처럼 제3 순환계에도 소체가 있는데 이 안에는 면역세포와 줄기세포가 들어있다고 한다. 권 교수는 제3 순환계가 선천성 면역에 관여할 것으로 추정했다. ‘제3 순환계의 미래’라는 주제의 두 번째 짧은 강연까지 듣고 나서 필자는 봉한관(프리모관) 연구가 꽤 진행됐음에도 여전히 주류의학에서 인정받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좀 의아하기도 했다. 질문응답시간에 한 관객이 외국의 연구현황을 묻자 소 교수가 “국내연구가 사실상 전부”라며“외국에서는 연구비를 받기 어려울 것”이라고 답하는 걸 보고 약간 감이 왔다. 한편 진행자가 “어디까지가 사실이고 어디부터가 추측인지 헷갈린다”고 말하자 권 교수가 “해부학적 구조가 있는 건 확실하고 나머지는 추측”이라고 답했다. 아무래도 제3 순환계가 폭넓은 인정을 받으려면 구조뿐 아니라 기능까지 명쾌히 밝혀야 할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Dongascience ☜       강석기 과학칼럼니스트 kangsukki@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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