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휴먼다큐 사랑>에서 ‘사랑’은 동사다.
사랑이 한 사람의 삶을 어떻게 바꾸는지가 손에 잡힐 듯 생생하다.
세상에 흩어져 있는 사랑의 정수를 발굴해 마음을 촉촉하게 해주는 <사랑>이 올해로 10주년을 맞았다.
방송 후 화제가 된 ‘안현수,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 편을 제작한 이모현 PD를 만났다.
 | ▲ <휴먼다큐 사랑>10주년'안현수,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외에도'엄마의 고백''진실이 엄마'등을 제작한 이모현PD. /김선아 | “You complete me”,스케이트 선수인 안현수와 그의 아내 우나리의 쇄골에 나란히 새겨진 문장이다.
“당신은 나를 완성시킵니다”지난 5월 방영된<휴먼다큐 사랑>‘두 개의 조국,하나의 사랑’편은 이 문장이
어떻게 현실이 되었는지를 담은 다큐멘터리다.
“안현수 선수의 스토리에 대해서는 잘 몰랐어요.
소치 동계올림픽 때 우나리씨가 카메라에 잡힌 모습을 보고‘저 두 사람의 사랑이야기가 궁금하다’는 생각
으로 시작했죠.
자료를 찾아보니 선수의 주변이 시끄러웠던 거지 본인이 트러블메이커가 된 적은 없더군요.”
2003~2007년 세계선수권 종합우승 5연패 2006년 토리노올림픽 3관왕의 빙상 천재는 2008년 왼쪽 무릎
슬개골이 부러지는 부상을 입고 소속팀이던 성남시청이 해체되면서 갈 곳을 잃었다.
러시아 빙상연맹의 러브콜은 그에게 하나의 동아줄이었다.
안현수가‘빅토르 안’이 되는 과정은 순탄치 않았다.
훈련량을 늘렸지만 체력과 실력은 점점 떨어졌다.
모국에서 들은‘한물 간 선수’라는 비아냥,네 차례의 수술… 상처받은 몸과 마음에 이상신호가 오기 시작
했다.
첫 러시아 대표 선발전에서 안현수는 꼴찌를 했다.
밑바닥에 있을 때 그녀가 왔다.
홀로 혼인신고를 마치고 혈혈단신으로 비행기에 오른 우나리였다.
ㆍ얼음왕국을 봄으로 만든 내조의 여왕
“섭외가 되더라도<사랑>의 콘셉트와 맞지 않으면 못 해요.
러시아로 가서 이야기를 들으면서 깜짝 놀랐죠.
갈 때 잡음이 많았던 건 알았지만 그런 극단적 상황이었는지도 가서 그렇게 밑바닥을 경험했는지 몰랐어요.
아내 우나리씨의 역할에 대해서도 처음 알았죠.
두 사람은 상대가 가장 밑바닥일 때 미래가 없는 아무 보장이 안 되어 있는 상황에서 사랑을 시작했어요.”
우나리는 안현수를 지켜봐온 오랜 팬.
한 번의 만남은 인연이 되었고 비밀연애는 비밀결혼으로 이어졌다 .
빅토르 안이 러시아 빙상 역사 최초로 메달을 안겨준 2014 소치올림픽 때 그의 신부도 최초로 공개됐다.
트레이닝복을 입었으나 가려질 수 없었던 미모 순식간에 부와 명예,사랑과 명성을 모두 거머쥔 현대판 신데렐라는 시샘,질투의 시선,매국노라는 질타를 함께 받아야
했다.
 | ▲ mbc |
“<휴먼다큐 사랑>으로 10년을 버텨온 보상을 받는 것 같았어요.
(조심스러운 마음에 한국 언론과는 만나지 않던 두 사람이) <사랑>이니까 하겠다고 하더라고요.
저 역시 안 선수 이야기를 가감 없이 전달해서 안 선수가 오해를 풀고 한국과 러시아에서 두루 사랑받는 선수가 되길 바랐죠
처음에 예고 나갈 때만 해도 악플이 많았어요.
다른 나라 국기를 단 선수의 이야기를 우리가 왜 들어야 하느냐는 거죠.
그런데 방송 후에는 확 줄었어요.
부부도 고마워하고 저도 보람을 느꼈죠.”
하얀 눈밖에 보이지 않는 러시아 선수촌의 숙소에서 우나리는 밥을 하고 김치를 썰고 떡국을 끓였다.
선수촌의 식단이야 수준급이지만 안현수에게 필요한 건 마음의 허기를 채워줄 사랑이었다.
선수촌 화장실에서 설거지를 하고 운동화를 빨면서 남편의 가는 곳마다
그림자처럼 함께했다.
거짓말처럼 안현수의 기량이 안정되고 이전의 페이스를 찾기 시작했다
 | ▲ mbc |
“(다큐의 제목이기도 한)‘하나의 사랑’은 스케이트에 대한 사랑이기도,아내에 대한 사랑이기도 하죠.
처음에는 저희도 안현수 선수에 주목했어요.
그런데 곁에서 지켜볼수록 우나리씨의 역할이 크더라고요.
다큐는 아내의 시선으로 풀어가자고 했어요.”
방송 후 두 사람에 대한 여론이 달라졌다.
비운의 천재 안현수의 오랜 마음고생,이를 믿고 지지해준 우나리의 정성 어린 내조를 본 이들은 두 사람의 영광의 순간에 비로소 박수를 보낼 수 있었다.
 | ▲ mbc |
ㆍ사랑이 전하는 위대한 순간을 포착
<휴먼다큐 사랑>은 장기 프로젝트다.
매년 5월을 바라보면서 1년을 준비한다.
그렇게 출연진과 오래 살을 부비다 보면 이들의 진짜 모습이 나온다.
이모현 PD는 2011년 <휴먼다큐 사랑> 팀에 합류했다.
그 해 <엄마의 고백(25회)> <진실이 엄마(28회)>와 2014년 <꽃보다 듬직이(39회)> <수현아,컵짜이나 (고마워)(41회)>,2015년 <안현수,두 개의
조국 하나의 사랑(44회)> <진실이 엄마 Ⅱ(46회)> 등을 제작했다.
“사람의 삶에는 사랑이 있어요.
보통은 60년 혹은 80년 인생을 통해 드러나는데 <사랑>의 경우에는 저희와 함께하는 몇 개월 동안에 그 모습이 폭발적으로 드러나요.
프로그램의 성패는 이 작품 안에 그 위대한 사랑의 순간이 드러나느냐 마느냐에 있죠.
일단 스토리의 힘이 있어야 해요.
사연을 보고 괜찮다 싶으면 직접 찾아가요.
인간적인 부분도 중요하니까요.
만났는데 ‘아니다’ 싶은 경우도 있고 촬영이 진행될수록 본모습이 나오는 경우도 많아요.”
시간이 흐를수록 어려운 건 균형과 조절이다.
특히나 <사랑>의 경우에는 편집이 가장 어렵다.
‘무엇을 어떻게 덜어낼까’의 싸움이다.
“방송 프로그램은 특성상 작은 이야기가 크게 나가는 경우가 많아요.
선택과 집중의 과정에서 과장되기도 하고요.
그런데 <사랑>은 우리가 보고 느낀 것을 다 보여드릴 수가 없어요.
아무리 편집을 잘해도 10분의 1도 못 담아요.
그러다 보니 아쉬움이 남고… 또 보여드리고 싶어요.”
 | ▲ 김선아 |
특히 어려울 때가 아이들이 등장할 때다.
마음껏 예뻐해주고 싶은 어른의 마음과,객관적인 시각으로 카메라에 담아야 하는 제작진으로서의 의무가 부딪힌다.
그럼에도 <사랑>이 전해주는 위대한 순간들은 그의 무장을 해제시킨다.
“<사랑>은 촬영 분량이 길기 때문에 어떻게 푸느냐에 따라 100가지 이야기가 나올 수 있어요.
그걸 어떤 방향으로 가지고 갈까를 정하는 것이 PD의 역할이죠.
수현이(<수현아, 컵짜이나> 편)는 생사의 고비를 넘나들면서도 그 생명력이 놀라웠어요.
의사 선생님은 ‘아이라서 가능했다’고 하더라고요.
어른들은 고통의 크기를 짐작하고 예상하잖아요.
그런데 아이는 그때그때 느낀 만큼만 감당하는 거죠.
듬직이(<꽃보다 듬직이> 편)의 경우에는 버림받은 아이들을 자기 자식처럼 보듬는 선생님들의 사랑 그리고 그 아이들 사이에서 생긴 우정이나 우애가
놀라웠고요.
진실씨네(<진실이 엄마> 편) 경우도 70이 넘은 어머니가 어떻게든 딸이 남긴 아이들을 잘 키워보려고 고군분투하시는데 그게 대단해 보였죠.”
이모현 PD는 1991년 MBC 교양국 PD로 입사했다.
25년 동안 한 번도 PD가 된 것을 후회해본 일이 없다.
일을 좋아하는 만큼 자신이 할 수 있는 모든 에너지를 모아 방송을 만드는 데 쓴다.
‘방송으로 좋은 일 하자’는 게 그의 모토다.
“고민은 있어요.
예능에 관찰 다큐가 많아지는데 이건‘연예인 휴먼다큐’나 다름없거든요.
그러다 보면 일반인 휴먼다큐가 영향을 받죠.
아무리 듬직이가 예뻐도 추사랑이나 삼둥이한테는 밀리니까요(웃음).
<사랑>은 그럼에도 대중적이고 서민적이고 쉬운 이야기를 만들려고 해요.
가장 평범한 순간을 담아서 보는 이들로 하여금 ‘내 이야기’라고 느낄 수 있도록요.
그러면서 자기 마음의 미운 면이 아니라 좋은 면을 발견하게 되지 않을까요?”
☞ Premium Chosun ☜ ■ 유슬기 톱클래스 기자
草浮 印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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