浮 - 채마밭/기획ㆍ특집

傲慢한 少數, 限 맺힌 多數

浮萍草 2015. 6. 28. 10:06
    신경숙·조현아·삼성… '1등'의 졸렬한 대응이 배고픈 다수의 반발 키워
    恨 품은 집단 힘 커지는데 돈·권력·명예 쥐었다고 오만하게 맞설 것인가
    가 신경숙의 표절 사건에서 드러난 싸움의 양상을 유심히 지켜봤다. 한쪽에는 표절 의혹을 제기한 작가가 있고 그를 응원하는 사람들이 모여 있다. 반대쪽엔 국내 최고의 작가와 막강한 출판사가 버티고 있다. 의혹을 제기한 사람들은 돈이나 세속적 명예,권력이 없어 보인다. 그들의 말에선 한(恨)이 느껴진다. 그들 언어는 날이 서있다. 1등 작가와 톱클래스 출판사를'권력'이라 불렀다. 그바닥에서 독재 권력을 휘둘렀다는 것인가. 권력자로 지목된 출판사와 작가는 첫 해명에 실패하더니 곧바로 뒤로 물러섰다. 그야말로 참혹한 패배다. 우리 사회의 갈등 사건에는 신경숙 케이스 같은 공식(公式)이 있다.
    문제를 제기하는 쪽은 힘없고 돈 없는 다수고 방어하는 쪽은 권력,돈,명예 중 하나나 둘을 가졌거나 셋 다 가진 소수인 경우가 많다. 누군가가 쓰려뜨려야 할 적(敵)으로 지목하면 사태는 금방 튄다. 그러면 싸움에는 별 이해관계가 없는 사람들까지 뛰어들어 큰 소동이 벌어지는 순서다. 삼성서울병원도 엇비슷한 계단을 밟아 혹독한 심판대에 올랐다. 병원장들 모임에서 거대 병원들이 환자를 싹쓸이해 간다는 불평이 그치지 않았다. 중견·중소 병원들이 속속 문을 닫으면서 초대형 병원들에 대한 원망은 더욱 높아갔다. 메르스 사태 속에서 박원순 시장이 시민운동가 출신답게 공격 대상을 콕 집어 삼성을 지목했다. 그 순간 반(反)삼성 화살은 순식간에 쏟아졌다. 변호사 시장의 대진표도 다를 게 없다. 변호사 2만명이 먹고사는 시장은 3조5000억 규모로 추정된다. 이 파이를 2만명이 골고루 나눠먹으면 1인당 1억7000만원 이상이다. 우리 형편에선 최고 수입이 보장된다. 하지만 시장은 실제 그렇게 돌아가지 않는다. 대형 법률회사들이 그중 6~7할을 싹둑 챙겨간다. 대형 로펌에 소속되지 않은 1만6000여 변호사는 1조원 남짓한 작은 떡을 놓고 아귀다툼을 벌어야 한다. 배고픈 다수가 대형 로펌에 적대감을 품지 않을 수 있겠는가. 한 해 수임료로 30억을 받았다는 총리 후보들을 보며 속이 뒤집히지 않을 수 없을 것이다. 주린 배를 움켜쥐고 법원, 검찰청을 들락거리는 변호사들에겐 로펌이나'30억 변호사'는 좁은 시장을 더 비좁게 조이는 적(敵)일 뿐이다. 문제는 글쟁이의 표절 시비는 문학계 일로 끝나지 않고 변호사들끼리의 다툼도 법조 시장 내부에서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정부 공식 통계로 비정규직 근로자 숫자가 600만명을 넘었다. 여기에 실업자, 아예 취업을 포기한 사람들, 일용 근로자들까지 합하면 1000만을 훌쩍 넘는 숫자가 삼시세끼를 걱정해야 하는 계층이다. 이들이라고 해서 특급 작가의 표절을 '쓰다 보면 어쩌다 문장 몇 개가 같을 수도 있겠다'고 눈감아 주겠는가, 30억 변호사를 보며 '그만큼 큰돈을 벌 자격이 있다'며 박수를 치겠는가. 누군가가 적을 지목하면 총질부터 하고 나설 불만 집단이 이토록 두껍게 형성돼 있는 것이다. 땅콩 회항의 주인공에게 저주의 말이 그토록 쏟아졌던 것도 이런 배경 때문일 것이다. 1등 작가, '30억 변호사', 삼성서울병원은 한 맺힌 다수가 공격한다고 해서 쉽게 무너지지는 않는다. 수 십년 동안 쌓아올린 이들의 성(城)은 굳건하다. 이들은 갖고 있는 돈, 권력, 인적(人的) 네트워크를 통해 상처를 금방 치유할 능력까지 갖추고 있다. 그러나 심상치 않은 조짐은 있다. 잘나가는 소수(少數) 집단과 한 맺힌 다수(多數)의 갈등과 마찰이 그치지 않는 게 불길하다. 지금은 한정된 분야에서 산발적으로 발생하는 국지전(局地戰) 양상이지만, 언제 여러 분야에서 동시에 충돌이 번지는 전면전으로 전환될지 조마조마하다. 피해의식을 가진 집단의 크기는 점점 커지고 있다. 공격 방식도 갈수록 치명적인 약점을 파고들고 있다. SNS를 통한 세력 규합 속도도 놀라울 만큼 빨라졌다. 가진 자들의 실수를 물고 정신을 차리지 못하도록 흔들어 대는 능력도 탁월하다. 이런 공격 세력의 전력 증강보다 더 심각한 것은 돈과 권력, 명예를 가진 수비 세력의 오만한 태도다. 이들은 걸핏하면 자신의 잘못을 감추거나 거짓말로 부인하며 자기 왕국의 문을 닫는 자세를 취하기 일쑤이다. 신경숙·조현아 같은 특급 인생이나 삼성서울병원도 굶주린 다수의 공격을 맞아 초기 대응에 실패해 일을 키웠다. 이렇게 졸렬하게 대응할수록 배고픈 다수와의 충돌은 커질 뿐이다. 그 충돌은 간혹 선거를 통해 완화되기도 하겠지만 한 맺힌 계층이 선거라는 합법적 방식으로 불만을 해소하지 못할 때는 무슨 극단 상황을 만들어 낼지 알 수 없다. 2000년 전 화산재에 덮였던 폼페이에는 원래 2만~5만명이 살았다 한다. 대폭발이 있기 전 화산재가 뿜어져 나오던 며칠 동안 노예와 가난한 시민들은 서둘러 피난을 떠났다. 결국 화산재에 파묻힌 2000여명은 대부분 귀족과 돈 많은 상인이었다. 돈, 권력, 명예로 배부른 사람들은 마지막까지 저택을 지키다 모든 것을 잃고 말았다. 우리 사회에서 진영 간 대충돌이 일어나면 피해의식에 찌든 사람들은 더 잃을 게 없다. 태풍에 뿌리가 뽑히는 것은 거목(巨木)이지 잡초가 아니다. '1등들'은 이걸 알아야 한다.
    Chosun        송희영 조선일보 주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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