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大學衍義 리더십

恭敬에 對한 誤解

浮萍草 2014. 12. 28. 12:50
    恭而敬은 드물다-겉으론 공손하지만 속으로는 삼감이 없는 아첨꾼에 속기 쉬워
    리더의 덕목은 明-밝지 못한 임금은 忠 없는 신하만큼 나빠… 사람 보는 법 꼭 배워야
    
    이한우·문화부장
    내의 사서삼경 번역들이 갖고 있는 공통된 문제 중 하나로 오역(誤譯) 이외에 무역(無譯)을 들 수 있다. 물론 이는 필자가 만든 말이긴 한데 한문 원전으로 사서삼경을 읽다 보면 가장 심각한 문제가 바로 이 무역이다. 그중 대표적인 것은 공경(恭敬)이다. 원문에 恭敬으로 돼 있어도 공경,恭이나 敬만 있어도 둘 다 공경으로 옮긴다. 그러다 보니 사람 보는 법[觀人之法]의 핵심 개념인 恭敬(공경)을 그냥 지나치게 만든다. 恭(공)은 외적인 모습으로 공손,敬(경)은 내적인 마음가짐으로 삼감이다. 여기서 네 가지 경우의 수가 발생한다. 첫째는 공손하고 삼가는 것[恭而敬]이다. 가장 힘든 단계이며 많은 수양이 요구되는 단계다. 왜냐하면 인간은 본성상 윗사람을 범하거나[犯上] 타고 넘으려[凌上] 하기 때문이다. 이런 마음을 안으로 잘 다스리고 동시에 그에 걸맞은 표현을 자연스럽게 해낼 때 그것이 공손하고 삼가는 단계다. 둘째는 겉으론 공손한데 속으로는 삼가지 않는 것[恭而不敬]이다. 흔히 아첨꾼이라고 부르는 자들이 대부분 여기에 속한다.
    셋째는 공손하지 못한 듯하지만, 안으로는 삼가는 마음을 가진 사람[不恭而敬]이다. 윗사람들은 그다지 좋아하지 않는 유형인데 간혹 충신이나 직언하는 신하들이 이 부류에서 나오곤 한다. 넷째는 볼 것도 없는 유형인데 공손하지도 않고 삼가는 마음도 없는 자들[不恭不敬]이다. 조직에 적응하기 어려운 유형이다. 리더 입장에서 늘 문제가 되는 것은 첫째와 둘째를 잘 가려내는 것이다. 왜냐하면 둘 다 겉으로는 공손으로 무장하고 있기 때문에 그중에 마음도 삼가는 사람을 찾아내기란 여간 어려운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10명의 공손한 사람이 있다고 할 때 그중에 마음도 삼가는 사람,즉 공이경(恭而敬)하는 사람은 몇 명이나 될까? 공자가 '논어' '학이 3'에서 말한 것을 보면 극소수다.

    "말을 아주 정교하게 남이 듣기 좋도록 하고 얼굴빛도 곱게 하는 사람 중에 어진 사람은 드물다[巧言令色鮮矣仁]." 이는 대표적인 오독(誤讀)과 관련된다. 교언영색(巧言令色)이란 우리가 말한 공(恭),즉 공손한 모습이다. 恭敬의 네 가지 유형으로 보자면 셋째와 넷째는 제외하고 첫째와 둘째만을 말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는 교언영색을 곧장 아첨,즉 두 번째 유형과 연결짓는데 이는 드물다[鮮]에 주목하지 못한 오독의 결과다. 첫째와 둘째는 다 교언영색한다. 문제는 내적인 삼감[敬]이 있느냐 하는 것이다. 이에 대해 공자는 지극히 드물다고 말한 것이다. 즉 교언영색이 안 되는[不恭] 셋째와 넷째는 처음부터 배제된다. 결국 모든 리더가 그렇게 찾고 싶어하는 좋은 인재란 교언영색하면서 마음도 어진 사람[恭而敬=仁]이다. 문제는 어떻게 이런 인재를 알아볼 것인가? 공자는 '논어' '계씨 7'에서 사람 보는 능력을 네 가지로 나눴다. 나면서 아는 자는 최고요[生而知之者 上也],배워서 아는 자는 다음이요[學而知之者 次也],겪고 나서 그것을 배우는 자는 그다음이요[困而學之 又其次也],겪고 나서도 배우지 못하면 사람으로서 최하가 된다[困而不學 民斯爲下矣]. 그리고 '술이 19'에서 공자는 스스로는 나면서 아는 자가 아니라 배워서 아는 자라고 말한다. 이는 겸손의 표현이 아니라 사실상 사람 보는 법은 배우지 않고서는 알 수 없는 것이라는 역설로 볼 수 있다. 당장 주변을 돌아보라. 의외로 겪고 나서도 배우지 못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것을 알게 된다. 사기를 당하는 자들이 끝끝내 사기꾼을 옹호하는 것이 바로 이런 경우다. 우리 같은 평범한 사람들은 대개 사기를 당하고 나면 그다음은 조심하며 살아간다. 조직의 리더는 적어도 배워서 미리 곤란을 겪지 않는 수준까지 자신을 끌어올려야 한다. 자신의 결정 하나하나에 수많은 사람의 생활(옛날에는 생명)이 달렸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조직의 리더는 무엇을 배울 것인가? 진덕수는 '대학연의'에서 신하는 임금에게 충성하고 자식은 부모에게 효도하듯이 임금은 정사에 임할 때 밝게 듣고 밝게 보는 것[明]이 임금다움이라고 말한다. 따라서 밝지 못한 임금은 충성심 없는 신하나 효심 없는 자식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그만큼 밝음[明]은 리더의 덕목 중에서도 근본적이라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학계는 이 밝음도 더 이상 번역하지 않는다. 무역(無譯)하고 있는 것이다. '논어' '안연 6'에서 제자 자장이 明(명)이 무엇이냐고 묻자 공자는 이렇게 답했다. "서서히 젖어드는 동료 간의 중상모략과 살갗을 파고드는 (친지들의) 하소연(愬)이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그 (임금의) 정사는 밝다[明]고 할 만하다. 그런 중상모략과 하소연이 행해지지 않게 한다면 공정하다[遠=公]고 할 만하다." 공(恭) 경(敬) 교언영색(巧言令色) 인(仁) 그리고 특히 명(明)은 뛰어난 리더를 꿈꾸는 자라면 반드시 체화해야 할 기본 개념들이다.
    Premium Chosun ☜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장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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