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大學衍義 리더십

권력은 끊임없이 의심한다

浮萍草 2014. 12. 2. 06:00
    - 태종의 덫에 걸린 이숙번
    임금 양위 시기 질문에 소신 밝혔다가 유배돼
    권력속성 눈뜬 하륜은 절대不可 답해 화 모면
    - 密·簡·敬 3가지 거울 군주를 모시는 사람은 주도면밀한 태도로 조급함·덜렁댐 없이 한계 지키는 모습 필수
    선 초 이숙번(1373~1440)은 하륜과 함께 이방원을 왕위에 올린 1등 공신 중의 공신이다. 그런데 하륜은 모든 권세를 누린 반면 이숙번은 끝내 정승에 오르지 못했다. 게다가 말년은 유배 생활로 보내야 했다. 그것은 사소한 말실수로 자초한 것이다. 태종 9년(1409년) 8월 마흔세 살의 태종은 2차 선위(禪位) 파동을 벌인다. 선위 파동은 임금 자리를 세자에게 물려주겠다고 운을 띄운 다음 세자에게 줄을 대려는 세력을 제거하려는 군왕들의 고전적 술책이다. 그보다 3년 전 1차 선위 파동으로 국왕의 처남들이 추풍낙엽처럼 지는 것을 봤던 신하들이기 때문에 2차 때는 별다른 희생자는 생겨나지 않았다. 그러나 뜻하지 않은 희생자가 있었으니 바로 이숙번이다. 8월 13일 태종은 측근 중 측근인 이숙번을 불러 선위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지를 물었다. 이숙번은 당연히 "계속 정사에 힘쓰셔야 한다"고 답했다. 그런데 주도면밀(周到綿密)하기로 둘째 가라면 서러워할 태종이 덫을 놓았다. "그러면 언제쯤이나 이 무거운 짐을 벗을 수 있겠는가?" 평소 덜렁덜렁하고[簡] 직선적인 성품인 이숙번이 무심결에 답했다. "사람 나이 쉰이 되어야 혈기가 비로소 쇠하니 나이 쉰이 되기를 기다려도 늦지 않습니다." 결국 이숙번은 태종이 정확히 쉰이 된 태종 17년 초 '세자에게 아부했다'는 모호한 죄로 의금부에 갇혔다가 유배를 떠나 결국 유배지에서 쓸쓸하게 삶을 마쳤다. 간(簡)은 간혹 대범하다는 뜻에서 좋은 뜻으로 쓰이지만, 대부분은 거칠고 덜렁덜렁한다는 부정적인 의미로 사용된다. 게다가 이숙번이 주군으로 모신 태종은 주도면밀,치밀,정밀 등 밀(密) 하나에 집중했던 인물이다. 태종 16년에 태종은 옛사람 말이라며 이런 구절을 인용한다. '임금이 치밀하지 못하면 신하를 잃고, 신하가 치밀하지 못하면 몸을 잃는다.' 이 말은 곧 태종 자신의 사람 보는[知人] 원칙이기도 했다. 진덕수는 '대학연의(大學衍義)'에서 임금과 신하 사이에는 무엇보다 간극이나 틈[隙]이 있어서는 안 된다는 걸 수없이 강조한다. "임금과 신하의 즐거움을 나누려면 실오라기만 한 틈도 생기지 않도록 해야 한다." 물론 윗사람도 그래야 하고 아랫사람도 그래야 한다. 이 점은 예나 지금이나 조직 사회에서는 크게 다를 바가 없다. 윗사람은 그 속성상 아랫사람들을 끊임없이 의심할 수밖에 없다. 그의 충성도나 능력 둘 중 하나를 의심한다. 또 그래야 한다. 다만 그것이 겉으로 드러나서는 안 된다. 적어도 겉으로는 강명(剛明)한 모습을 유지해야 한다. 마음이 굳세고[剛] 사리에 밝아야[明] 하는 것이다. 태종이 이숙번을 향해 던진 추가 질문은 실은 윗사람이 먼저 의심하는 속내를 드러낸 것이다. 거친 성품의 이숙번은 그것을 덥석 집어삼켰다. 이는 같은 1등 공신이면서도 노회했던 하륜이 어떻게 대응했는지를 살펴보는 것만으로 충분하다. 하륜은 이렇게 답했다. "주상의 춘추가 60, 70이고 세자 나이가 30, 40이어도 불가할 텐데 하물며 지금 주상의 춘추가 한창때이고 세자가 아직 어리니 절대 불가합니다." 참고로 당시 세자는 16세였으니 7년 후면 얼마든지 국정을 맡을 수 있는 나이였다. 하륜의 이 대답을 그저 천박한 아부 정도로 치부하는 것이 우리 학계의 평가다. 그만큼 학계는 현실 속의 사람 관계를 모른다는 말이 될 수도 있겠다. 하륜은 자신으로서는 넘볼 수 없는 권력 앞에서 스스로 한계를 지키고 조심하며 경계한 것이다[敬]. 이처럼 태종과 하륜 그리고 이숙번의 관계는 각각 밀(密), 간(簡), 경(敬)이라는 사람 보는 핵심 개념을 통해 풀어낼 수 있다. 진덕수가 사람 보는 법[觀人之法]의 교과서로 평가한 '논어'의 옹야 편 첫 장은 이 점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공자가 제자 중궁(仲弓)은 임금도 될 만하다고 하자 중궁이 그러면 자상백자는 어떠냐고 물었다. 이에 공자는 그도 임금이 될 만하다고 답했다. 왜냐하면 두 사람 다 선이 굵었기[簡] 때문이다. 그러나 중궁이 다시 물었다. "(저처럼) 속으로는 삼가면서[居敬] 행동은 털털하다면[行簡] 임금 자리도 맡을 수 있겠지만 속으로도 대충대충 하면서[居簡] 행동도 털털하게 한다면 지나치게 소탈한 것[大簡]이 아니겠습니까?" 공자는 즉각 자신의 잘못을 인정하고 중궁의 말이 옳다고 했다. 이숙번도 분명'논어'계씨 편에 나오는 이 대목을 읽었을 텐데 깊이 새기지는 못했던 것 같다. "군주를 모시는 데 세 가지 허물이 있을 수 있다. 위의 말씀이 아직 미치지 않았는데 먼저 말하는 것을 조급함[躁]이라 하고,위의 말씀이 미쳤는데도 말하지 않는 것을 숨김[隱]이라 하고 위의 안색을 살피지도 않고 말하는 것을 눈뜬장님[�]이라 한다." 누가 봐도 이숙번은 이 순간 눈뜬장님이었다. 조(躁), 은(隱), 고(�)도 사람 보는 핵심 개념이다.
    Premium Chosun ☜        이한우 조선일보 문화부장 hwlee@chosun.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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