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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4> 이베이 창업자 피에르 오미디아

浮萍草 2014. 12. 28. 10:47
    신개념 자선 ‘임팩트 투자’ 주도, 인류의 삶 개선 실험 중
    오미디아 네트워크는 주로 인터넷과 모바일,기업가 정신, 금융 통합,정부 투명성 제고, 재산권 보호 분야의 비영리 조직 및 영리기업에 투자한다.투자의‘사회적
    임팩트’를 가늠할 수 있는 실제적이고 독창적인 평가 시스템도 갖추고 있다.[블룸버그 뉴스
    는 비영리기관인 은행권청년창업재단에서 일한다. 창업 지원과 일자리 창출이 목적이다. 국내 주요 금융기관 20개가 5000억원이란 거금을 출연한 덕분에 상대적으로 운신의 폭이 넓은 편이다. 하지만 일반적인 비영리재단은 상시적인 자금 부족에 시달린다. 미국의 비영리단체는 업무시간의 65%를 기금 마련에 소진한다는 통계도 있다. 이렇다 보니 비영리기관 운영자들의 가장 큰 고민거리는 사업의 영속성을 확보하는 것이다. 어떻게 하면 외부의 선의나 기부에만 의존하지 않고 자생할 수 있을까. 아울러 그 ‘선한 영향력’을 더욱 확장·심화시킬 수 있을까. 그래서 등장한 것이 사회적 기업(Social Enterprise)이다. 비영리조직과 영리기업의 중간 형태로서 사회적 목적을 추구하는 동시에 영업활동을 수행한다. 이런 사회적 기업들의 ‘젖줄’ 역할을 하는 것이 바로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다. 투자수익 창출과 사회 문제 해결을 함께 도모하는 개념이다. 이 분야의 세계적 리더가 있다. ‘개인 대 개인(P2P) 전자상거래’ 원조 이베이(ebay)의 피에르 오미디아(Pierre Omidyar·47) 창업자다. 그가 이사회 의장을 맡고 있는 이베이의 2013년 매출은 160억 달러,영업이익은 34억 달러에 이른다. 개인 자산 규모는 82억 달러(26일 포브스 집계). 세계 52위 부자이지만 ‘자선 영웅’이란 호칭이 더 잘 어울리는 전업 ‘벤처 자선사업가(Venture Philanthropist)’다. 임팩트 투자 전문 벤처캐피털인 ‘오미디아 네트워크’를 이끌며 자선사업의 최전선에서 새 역사를 쓰고 있다.
    ㆍ6세 때 미국 이민 … 애플 자회사 근무 경험
    오미디아는 프랑스의 이란계 이민자 가정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외과의사,어머니는 언어학 박사 학위 소유자였다. 그가 6세 때 가족은 미국 워싱턴DC로 이주한다. 10대 시절 컴퓨터에 흥미를 갖게 된 그는 보스턴의 터프츠대에서 컴퓨터과학을 전공한다. 실리콘밸리로 이주해 애플컴퓨터 자회사인 클라리스에서 직장생활을 시작한 것이 1988년. 3년 후 친구 3명과 링크 디벨로프먼트란 회사를 설립한다. 회사가 마이크로소프트에 인수된 뒤 그는 다시 직장생활을 한다. 95년, 오미디아는 기발한 생각을 해낸다. ‘온라인에서 경매방식을 통해 물건을 사고팔면 어떨까’. 그는 생각을 당장 실천해 옮겼다. 직접 프로그래밍을 해 자신의 홈페이지에 경매 기능을 덧붙였다. 시험 삼아 고장 난 레이저포인터를 올려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구매자가 나타났다. 오미디아는 놀라 “이 물건이 고장 난 걸 알고 산 거냐”고 물었다. 구매자는 “난 망가진 레이저포인터를 수집하는 사람”이라고 답했다. 이런 경험을 통해 오미디아는 온라인을 이용하면 상상 이상의 것들을 서로 사고팔 수 있음을 알았다. 96년 본격적인 사업을 시작했다. 제프 스콜(스콜재단 설립자),멕 휘트먼(현 HP 최고경영자) 같은 걸출한 경영진을 잇따라 영입하며 이베이는 급격히 성장했다. 98년 기업공개를 통해 오미디아는 억만장자가 됐다. 2002년 페이팔을 인수하는 등 탁월한 경영 역량을 발휘했다. 그리고 2004년, 그는 이사회 의장직을 제외한 이베이의 모든 자리에서 물러난다. 자선사업에 전념하기 위해서였다. 이는 갑작스러운 결정이 아니었다. 그는 2011년 허핑턴포스트와의 인터뷰에서 “사람은 기본적으로 선하다는 생각으로 이베이를 창업했다”고 말했다. 누구나 각자의 목표를 이룰 수 있도록 관심 공유와 수평적 소통의 기회를 제공한 결과 큰 성공을 거둘 수 있었다는 것이다. 기업의 사회공헌에 대한 신념에 따라 그는 상장 전 이미 ‘이베이재단’이란 비영리기관을 만들었다. 이는 비상장기업이 자사주 출연 방식으로 공익재단을 만든 최초의 사례다. 2001년에는 대학 동창인 아내인 파멜라와 함께 살아생전 대부분의 재산을 기부하겠다고 선언했다.
    ㆍ10년 전 ‘오미디아 네트워크’ 설립
    오미디아와 그의 아내 파멜라
    2004년 이들 부부는 오미디아 네트워크를 설립한다. 임팩트 투자를 본격화하기 위해서였다. 오미디아 부부는 빌 게이츠와 워런 버핏이 이끄는 억만장자 기부 프로그램 ‘더 기빙 플레지’에 보낸 편지에서 이렇게 밝혔다. “이베이 상장 당시 우리는 갑작스레 엄청난 부를 가졌음을 자각했다… 그 부를 통해 오늘 당장 세상의 가장 다루기 힘든 문제들을 해결할 수 있다면 돈을 지니고 있을 이유가 없다.” 이들은 빌 게이츠 부부처럼 직접 자선사업의 최전선에 섰다. 게이츠재단이 질병 퇴치에 초점을 맞추는 만큼 이들은 그를 제외한 교육과 과학,암 퇴치 및 환경 보호에 주력 했다. 단기적 구호보다 장기적 성과를 통해 지속적이고 근본적인 변화를 이끌어 낼 수 있는 방법을 고심했다. 그 결과 오미디아 네트워크는 마치 실리콘밸리의 벤처캐피털이 벤처기업에 투자하듯이 자신들이 직접 투자· 지원할 곳을 찾고,경영 전반에 대한 집중적이고 전문적인 컨설팅을 제공하며,과감한 투자를 통해 수익 창출은 물론 사회적 파급력을 극대화하는 방식으로 사업을 펼치게 됐다. 이를 통해 수천 명이 아닌 수백만 명의 삶을 개선하는 것이 목표다.
    이코노미스트는 이런 그의 독창적 자선사업 전략을 ‘오미디아 방식(The Omidyar Way)’이라 명명하기도 했다. 세계 최대 사회적 기업가정신 지원기관인 ‘아쇼카재단’,저소득층을 위한 온라인 소액대출 플랫폼 ‘키바’,위키피디아를 운영하는 ‘위키미디어재단’,저작권 공유 운동체 ‘크리에이티브 커먼즈’, 태양열 랜턴 제조사 ‘디라이트’ 등이 주요 수혜처다. 이뿐이 아니다. 오미디아 부부는 그들의 모교인 터프츠대에 마이크로파이낸스 진흥을 위한 기금 1억 달러를 기부했다. 자신들의 주요 거주지 중 한 곳인 하와이의 지역 발전을 위해서도 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전 세계 인신매매 문제 해결을 위한 기구인 ‘휴머니티 유나이티드’를 설립하고 1억1500만 달러를 쾌척한 것도 이들이다. 어린이 건강을 지원하는 ‘호프랩’, 미국 내 정치 관련 사회적 기업가를 지원하는 ‘데모크라시 펀드’도 이들 부부의 작품이다. 지난해 말에는 에드워드 스노든의 미국 국가안전보장국(NSA) 기밀문서 폭로를 주도한 ‘가디언’지 글렌 그린월드 기자와 손잡고 미디어 벤처 창업에 나서 또 한번 큰 화제가 됐다. 무려 2억5000만 달러를 투입해 온라인 독립언론사인 ‘디 인터셉트(The Intercept)’를 설립했다. 그는 자신의 블로그를 통해 “대중의 관심과 알 권리를 옹호하기 위한 방안으로 독립적 언론인에 대한 지원에 관심을 가져왔다”고 밝혔다. 현재 디 인터셉트는 미국 정부의 각종 기밀서류를 입수해 보도하는 등 다양한 미디어 실험을 하고 있다. 해외에는 오미디아처럼 자선사업가로 변신해 놀라운 혁신 역량을 보여 주는 창업가들이 적지 않다. 반면 우리나라에서는 자신의 부와 재능, 영향력을 총동원해 사회적 변화를 이끄는 명사를 찾아보기 힘들다. 우리나라 창업생태계도 서서히 선순환기에 들어서기 시작한 만큼 진정한 의미에서의 자선’사업가’를 기대해 본다.
    Sunday Joins Vol 407 ☜        이나리 은행권청년창업재단 기업가정신센터장 naree@dcamp.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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