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퍼스트 펭귄

29 '불꽃놀이' 중동 수출 꿈 ㈜ 한화 문범석 매니저

浮萍草 2014. 9. 29. 11:34
    300만을 들었다 놨다 … 불꽃축제는 엄연한 문화상품
    문범석 ㈜한화 불꽃팀 매니저가 기획한 지난해 서울 세계불꽃축제 전경.사진 중앙포토·한화

    문 매니저가 불꽃놀이에 쓰이는 다양한 크기의
    연화를 들어보이고 있다.사진 중앙포토·한화
    “중국 사신에게 보여서는 안됩니다. 저들이 청하더라도 보여주지 마십시오.” 세종 13년 10월. 예조판서 허조(1369~1439년)가 세종에게 목소리를 높였다. 화약기술의 집약체인 ‘불꽃놀이’를 중국에서 온 사신들에게 보여줘선 안 된다는 것이었다. 최무선이 화약제조법(1373년)을 발명을 한 이후 조선의 화약기술이 발달하자 화약의 발상지인 중국으로의 역 (逆) 기술유출을 우려한 것이었다. 그로부터 600여 년 한때 기술유출 논란의 대상이 됐던 불꽃놀이를 문화 산업으로 만들어‘수출’의 꿈을 키우는 사람이 있다. ㈜한화의 불꽃팀,문범석(41) 매니저다. 지난 26일 서울 장교동 본사에서 그를 만났다. 가을은 그에게 ‘대목’이다. 전국 곳곳에서 불꽃축제가 열리기 때문이다. 4일엔 서울 여의도 한강변에서 열리는 ‘세계 불꽃축제’와 인천 아시안게임 폐막전의 불꽃쇼가 열린다. 10월 마지막 주엔 부산 광안리 해변에서 불꽃축제가 예정돼 있다. 이런 대형 행사 외에도 일년에 전국 곳곳에서 그가 터트리는 불꽃은 130여 회. 처음부터 ‘불꽃 디자이너’가 되려던 건 아니었다. 미사일을 만들고 싶었다. 초등학교 2학년 때 일이다. 서울 석촌호수 인근에 있는 단짝 친구 집에서 종이 비행기를 만들었다. TV에서 보는 우주선들은 한결같이 꽁무니에서 불길을 내뿜으며 하늘로 날아오르던 게 기억났다. 종이 비행기 뒷부분에 불을 붙여 날렸다 . ‘우와~’하는 함성도 잠시. 비행기가 불시착한 화단에 불길이 일었다. 실험은 119 소방대가 출동하면서 눈물바람으로 끝났다. 미사일 발사체를 만드는 꿈을 이루려고 화학공학과엘 진학했다. 그 연으로 화약사업을 하는 한화에 입사해 미사일 추진제를 만들고 연구하는 일을 했다. 2005년 가을. 처음으로 회사에서 하는 불꽃축제를 보러 한강변에 갔다. 칠흙같은 하늘 위에서‘펑-’하고 터지는 불꽃 그리고 뒤이어 들리는 ‘아~’하는 탄성과 환호 소리가 마음을 흔들었다. 그길로 회사로 출근해‘호기롭게’ 인사팀에“불꽃팀에 가고 싶다”고 자원을 했다. 사람들은 “집에서 잘 수 없는 일”이라며 말렸다. 하지만 그는 적을 옮겼다. 일은 듣던 것보다 어려웠다. 음악에 맞게 원하는 부분에서 불꽃이 터질 수 있도록 컴퓨터로 설계하고 점화도 할 수 있지만 나머지는 모두 사람의 손이 필요했다. 불꽃은 찰나에 사라지는 데 반해 만드는 과정은 지난하다. 포로 쏘는 불꽃은 동그란 박 모양으로 ‘연화(煙火)’라고 불린다. 가장 먼저 불꽃 모양을 선정하고 그에 맞는‘별(star)’을 디자인한다.
    예컨대 노란색 국화 모양을 만들고 싶다면 식물씨앗에 노란색을 내는 나트륨(Na)을 여러 화학제랑 섞어 ‘별’이라는 작은 화약을 만든다. 이 별을 국화 모양으로 배치하고 도화선과 별을 터트리는 화약,쏘아올리는 추진제를 넣어 종이로 감싼다. 대부분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이렇게 만든 불꽃을 포에 넣는 일에도 사람손이 간다. 한겨울에도 불꽃을 설치해야 해 손이 얼어붙는 경우도 허다하다. 예행연습이 없는 것도 고욕이었다. 한번 행사에 수십억원이 들기도 하기 때문에 불꽃을 쏴보는 건 어불성설이다. 실제 불꽃쇼를 시작할 땐 극도의 긴장감에 시달렸다. “우리나라 IT 기술이 세계 최고인데 왜 이런 스트레스를 겪어야 하나”란 생각이 치고 올라왔다. 게다가 불꽃부터 컴퓨터 발사장치,불꽃을 음악에 맞춰 디자인하는 소프트웨어까지 모든 것이 외국 기술이었다. 3차원(3D) 시뮬레이션을 해볼 수 있는 프로그램은 아예 개발이 되지도 않은 상태였다. 그는 제일 시급한 컴퓨터 발사장치부터 개발해보기로 했다. 2012년 무선 발사 시스템 개발에 들어갔다. 그의 야심작인 발사 시스템은 내년에 첫 선을 보일 예정이다. 우리 나라를 상징하는 ‘태극’ 불꽃모양도 만들어냈다. 정부가 힘을 보태 세계 최초로 3D 불꽃 시뮬레이터도 개발에 들어갔다. 그는 불꽃이 행사의 처음이나 마지막에나 쓰이는 게 마뜩지 않았다. 외국에선 불꽃축제가 하나의 단독 문화상품으로 여겨지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각 지방자치단체들이 진행하는 축제의 끄트머리에 주로 쓰였다. 호주의 시드니 하버브리지에서 열리는 새해맞이 불꽃축제는 1940년대부터 이어져오고 매년 8월 넷째 토요일에 개최되는 일본의 오마가리 불꽃대회는 100년 넘게 열리는 데 비해 초라한 형국이었다. 지자체를 찾아다니며 불꽃축제를 열자고 했지만 돌아오는 답은 똑같았다. “얼마면 쏴요? 그거 한다고 사람들이 오겠습니까?” 2000년 서울 세계 불꽃축제,2004년 포항국제불빛축제,2005년 부산불꽃축제가 열리기 시작하면서 조금씩 분위기가 달라졌다. 지난해의 경우 서울 불꽃놀이에 120만 명. 부산에 130만 명이, 포항엔 80만 명이 운집했다. 부산에선 1366명의 일자리가 만들어지고 관광객들의 유입으로 1200억원 경제유발 효과가 생겼다. 포항 생산유발 효과는 728억원, 2113명이 불꽃축제로 일자리를 얻었다. 서울·부산·포항이 성공을 거두면서 지자체들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2012년 충남 당진시가 나섰다. 8만 명이 왜목마을 바닷가에 몰려들면서 인근 횟집들이 즐거운 비명을 질렀다. 지난해엔 인천광역시가 송도에서 ‘인천음악 불꽃축제’를 열면서 그의 시장도 넓어지기 시작했다. 문 매니저는 요즘 불꽃축제를 하나의 유료 상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고민하고 있다. 캐나다 몬트리올 국제 연화대회는 7500석의 좌석을 팔아 매년 25억원의 입장수익을 올린다. 일본 오마가리 축제도 일부 좌석을 팔아 30억원을 벌어들이는 데 반해 우리나라에선 유료 축제는 아직 상상불가이기 때문이다. 그는“상설공연장을 만들어 불꽃을 가장 잘 볼 수 있는 좌석을 판매해 지역 특화 상품으로 만드는 방법을 경기도의 한 지자체와 협의 중”이라고 했다. 시범적으로 서울 행사에서 일부 좌석을 판매해 판매대금을 불우이웃들을 위해 쓰는 방법도 고민하고 있다. 꿈도 있다. 한국의 불꽃을 해외로 수출하는 것이다. 꿈의 무대는 중동이다. 2012년 10월 쿠웨이트 정부가 헌법 비준 50주년을 기념해 163억원을 투입해 초대형 불꽃놀이를 벌이는 것을 보고 무릎을 쳤다. 문 매니저는"중동 시장은 유럽의 불꽃놀이 회사들이 독점하고 있는 상황”이라며“한국의 화약기술과 발사 시스템으로 만든 불꽃축제를 기획해 해외 시장으로 나가고 싶다”고 말했다.
    Joongang Joins ☜       김현예 기자 hykim@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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