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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이병철-정주영 회장의 위대한 화해의 용기(하)

浮萍草 2014. 9. 22. 10:18
    이병철이 타계 2년전에 정주영 회장에게 준 선물
    정주영 현대그룹 회장과 이병철 삼성그룹 회장이 정주영 회장의 고희기념회장에서 만나 담소하고 있다./조선일보DB
    런저런 사연들을 모두 알고 있는 재계 중진들에게 이병철 회장의 등장은 실로 의외의 사건일 수 밖에 없었다. 손가락 하나 제대로 움직일 힘도 남아 있지 않은 것 같이 쇠약해진 몸을 이끌고 이병철 회장이 다른 사람도 아닌 정주영 회장의 고희연에 나타난 심중은 무엇일까 하는 데에 모두의 관심이 쏠렸다. 숨소리 하나 들리지 않을 정도로 조용히 가라앉은 분위기가 잠시 계속되었다. 어느 정도 침묵이 흐른 뒤 이 회장의 손이 조금 움직였다고 느껴진 순간 수행원 중의 한 사람이 앞으로 나섰다. 그의 손에 들려 있는 것은 잘 포장된 상자 하나였다. 그는 조용한 걸음으로 정주영 회장 앞으로 다가가더니 두 손으로 공손히 상자를 바쳤다. “저희 회장님께서 정주영 회장님의 고희를 맞아 준비한 축하의 선물입니다. 약소하지만 받아주시기 바랍니다.” 사람들의 관심은 이제 상자 속의 내용물이 무엇인가 하는 데에 쏠렸다. 좌중에 침묵이 흐르는 가운데 상자 속에서 나온 물건은 큼지막하고 우아한 모양의 하얀 백자였다. 어느 도공에게 부탁을 했는지 평소 미술품과 골동품에 대한 안목이 남달랐던 이병철 회장의 선물답게 언듯 보기에도 고아한 품격이 배어 나오는 멋진 작품이었다. 그리고 얼마나 시간이 흘렀을까…. 뭇 사람들의 호기심 어린 시선 속에서 백자를 살펴보던 정주영 회장의 얼굴에 환하게 웃음이 퍼지기 시작했다. 그리고 곧 그의 미소는 호탕한 웃음으로 바뀌었다. 백자에는 한국 재계를 이끌어온 견인차로서 정주영 회장에 대한 헌사가 가득 새겨져 있었던 것이다. 상상치도 못했던 이병철 회장의 등장,거기에 뜻밖의 선물. 정 회장으로부터 백자를 건네 받은 사회자가 그 내용을 좌중에게 읽어주었다. 이윽고 정 회장이 다시 마이크를 잡았다. “하하하, 이거 진정한 우리 재계의 지도자이신 이병철 회장님으로부터 분에 넘치는 선물을 받고 보니 몸 둘 바를 모르겠습니다. 지금 백자에 쓰여진 내용을 들으셨겠지만 사실 이런 헌사는 바로 저기 계신 이 회장님께나 어울리는 것입니다. 이 회장님은 일찌기 전경련의 토대를 마련해주셨고 제가 이나마 전경련 회장으로서 일을 할 수 있었던 것도 알게 모르게 다 이 회장님과 같은 분의 성원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런 분이 이렇게 부족한 저의 고희연에 직접 참석을 해 주시고 과분한 선물까지 주시다니 정말 감사의 마음을 어떻게 전해야 할지 모르겠습니다.”
    자신의 고희 및 연설문집 출판기념회장에서 부인 변중석 여사와 함께 케이크를 자르고 있는 정주영 회장./조선일보DB

    정 회장의 감사 인사가 끝나자마자 실내는 온통 박수 소리가 울렸다. 오랜 동안 끌어왔던 재계의 두 거목,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의 해묵은 감정의 앙금이 한 순간에 녹아 내리는 것을 축하하는 박수였다. 두 사람의 감정적 반목과 대립은 현대그룹과 삼성그룹만의 문제가 아니라 대내외적으로 결속을 필요로 하는 한국 경제계 전체의 분위기에도 여러모로 영향을 끼치고 있었다. 한국 재계의 두 거목 사이의 이러한 감정적 갈등은 누가 옳고 그름을 떠나 한때의 하찮은 계기로부터 응어리질 수 있지만 한국의 대표적인 두 기업 그룹간에 이것이 풀어지지 않고 그대로 승계된다면 그것은 모두에게 불행한 일일 것이다. 또한 두 그룹 간의 관계를 보더라도 그렇다. 70 고희를 맞았다고는 하지만 50대 못지 않는 건강과 활력, 지치지 않는 열정과 적극성이 넘치는 사람으로 현직 전경련 회장인 그는 국내는 물론 세계적으로 명성과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아직 절정기의 현역이었다. 반면 이병철 회장의 뒤를 이은 이건희 회장은 기질적으로도 밖으로 잘 나서지 않는 내향적 성격에 당시 나이도 아직 40대 중반으로 창업 1 세대인 정 회장에 비하면 한 세대의 차이가 있었다. 재계 중진들의 모임인 전경련의 회장단에도 삼성은 그룹 창업 원로 중 한 사람인 조우동 회장을 대신 삼성그룹 대표로 참석시키고 있었다. 이런 정황에서 이병철 회장과 정주영 회장 사이에서 비롯된 감정의 응어리를 그대로 남겨두지 않고 더 늦기 전에 결자해지 해야 되겠다는 결심이 섰음직도 하다. 그러나 막상 서로 용서와 화해가 얼마나 위대한 용기가 필요한가는 역사의 여러 사례를 통하여 알 수 있다. 때로는 살상을 수반하는 전쟁을 결심하는 것보다 더 큰 용기가 필요한 것이라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이태 후에 이병철 회장은 76세를 일기로 영면하였다. 정 회장은 그의 말대로 “90에나 현역에서 손을 놓고 그 다음부터 여생 동안 쉬겠다”는 의욕에는 못 미쳤지만 이로부터 그가 타계할 때까지 약 15년간 계속하여 식지 않는 의욕을 과시하며 사업의 도전 대통령 출마, 소떼를 이끈 방북 등으로 상징되는 대북 사업에 열정을 쏟았다.
    Premium Chosun        박정웅 메이텍 인터내셔널 대표 ltjwpark@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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