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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 허균 (中)

浮萍草 2014. 9. 12. 22:15
    기생 데리고 황해도 부임하다 파직당한 허균, "성욕은..."
    허균이 지은 <홍길동전>(왼쪽)과 <도문대작>.
    문가 출신의 선비인 허균이 음식에 관한 책을 지었다는 것은 당시로서는 엄청난 사건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허균의 <도문대작>에는 당시의 음식을 병이지류(餠餌之類) 과실지류(果實之類) 비주지류(飛走之類) 해수족지류(海水族之類) 소채지류(蔬菜之類) 등의 5가지로 분류하여 각 식품의 특징과 명산지를 기록해 놓았습니다. 병이지류는 떡과 죽,엿,두부 등이고 비주지류는 날짐승 고기이죠. 그리고 당시 서울의 시식(時食) 즉 계절음식도 소개되어 있습니다. 한 마디로 조선 팔도의 미식(美食) 134종을 품평한 책이라고 하겠습니다. 그러니 허균은 원조 ‘푸드 칼럼리스트’인 셈이죠.
    ㆍ허균이 도문대작의 서문에 쓴 내용은?
    “먹는 것은 몸과 생명에 관계되는 것이므로 선현들도 음식을 가지고 말하는 것을 천하게 여겨왔다. 먹는 것을 가리켜 이(利)에 따른 것이라 하여 좋지 않게 말해 온 전통이 뿌리 깊었다.” 성리학이 주도하던 조선시대에 사대부들은 형이상학적인 가치관에 매여 있던 터라 형이하학적인 영역인 음식에 관심을 가진 경우는 극히 드물었습니다. 그렇지만 부친인 허엽도 손수 두부를 만든 데다 홍길동전에서 알 수 있듯이 워낙 시대를 앞섰던 허균이기에 우리 몸과 생명에 중요한 음식에 대하여 깊은 관심을 가졌던 것으로 보입니다. 도문대작 이전에는 안동 지방에 살았던 명문 광산김씨 집안의 ‘김유(金綏 1481~1552)’라는 선비가 1540년 경에 저술한 <수운잡방(需雲雜方)>이라는 필사본 요리 책이 있습니다. 산해진미를 두루 많이 먹어도 문제 없을까? 허균은 도문대작의 서문 말미에 이런 말을 써 놓았습니다. “세상의 부귀한 사람들은 이것을 보고 경계하여 지나치게 음식 사치를 말아야 한다. 절약하지 않고 마구 먹으면 그 부귀영화가 항상 있지 못할 것이다.” 좋은 음식이라도 과도하게 먹지 말라고 강조한 것이죠. 게다가 허균은 기본적으로 한의학을 공부했기에 음식의 성질과 약효를 알고서 체질과 몸 상태에 맞는 음식을 가려먹을 줄 알았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무공해 음식, 유기농 음식만을 먹었던 당시에도 그러했으니 요즘은 어떻게 해야 할까요? 식생활 문제가 심각한 지경이니만큼 음식으로 치료하는 의사인 ‘식의(食醫)’ 수준에는 이르지 못하더라도 음식에 대한 관심을 상당히 기울여야 하지 않겠습니까? 미식가이자 식생활 전문가였던 허균은 불과 50세의 나이에 역모죄로 능지처참을 당하지만 않았더라면 오래 장수하였을 것으로 짐작됩니다.
    ㆍ도문대작에서 허균이 극찬한 방풍죽(防風粥)
    방풍죽은 방풍나물의 어린 싹을 썰어 멥쌀과 섞어서 쑨 죽인데, 그 맛이 얼마나 뛰어났으면“향기가 입에 가득하여 3일 동안 가시지 않는다”며“속간에서 으뜸가는 진미”라고 하였습니다. <증보산림경제>에도 이른 봄에 나는 방풍의 새싹으로 죽을 쑤면 그 맛이 매우 향미롭다고 나와 있고 그밖에 상당히 많은 문헌들에서 ‘단맛이 입안에 그득하여 속간에서 으뜸가는 것이다’라고 그 맛을 칭송했을 정도로 예로부터 맛이 유명하였죠. 방풍죽을 끓이는 방법은“새벽이슬이 앉은 방풍의 새싹을 따다가 죽을 쑨다. 햇빛을 본 것은 좋지 않다. 멥쌀로 죽을 쑤어 쌀이 익고 반쯤 퍼졌을 때 방풍잎을 넣어 센 불에서 끓인다. 알맞게 되었을 때 차가운 사기그릇에 떠서 반쯤 식은 상태에서 먹는다. 반쯤 식은 상태로 죽의 적온을 맞추어 먹으면 그 향미가 더욱 가득하다”라고 하였습니다. 육당 최남선 선생이 지은 <조선 상식>에 강릉의 방풍죽이 평양의 냉면 진주의 비빔밥 대구의 육개장 등과 함께 지방의 유명한 음식으로 소개되어 있습니다.
    갯방풍

    ㆍ방풍나물은 무엇일까?
    방풍(防風)은 미나리과의 초본으로 산과 들에도 나지만 바닷가 모래땅에서 해풍을 맞고 자란 갯방풍을 윗길로 칩니다. 허균의 외가가 있던 강릉 경포대 해안에 방풍이 많이 났던 모양입니다. 뿌리를 한약재로 쓰는데, 풍을 막는다는 의미이니 중풍,두풍,통풍,피풍,산후풍 등 여러 가지 풍증의 치료에 활용됩니다. 따뜻한 성질이고 달면서 매운 맛으로 두통을 없애고 머리를 맑게 하며 거담,진해,피로회복 효능을 가지고 있지요. 수험생이나 직장인을 비롯하여 머리가 항시 맑지 못하고 흐려 있는 사람에게 좋습니다
    ㆍ허균의 자연스런 정욕 발산
    허균은 남의 이목이나 법도에 신경을 쓰지 않고 행동하여 선천적인 반항아로 불리어졌습니다. 사람을 사귀는데도 신분을 가리지 않았으니 몰락한 양반, 서얼,아전,중인계급 의사 등등 나름대로 능력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유교 사회의 제도 하에서 소외된 삶을 살던 사람들에게 깊은 관심을 가졌기 때문이죠. 뿐만 아니라 전통적으로 정욕을 금기시했던 유학을 공부했으면서도 정욕을 긍정하여 자연스러운 발산을 옹호했고 자기에게 주어진 본성대로 살았습니다. 어느 정도였나 하면, 31세에 황해도사에 임명되었으나 기생을 데리고 부임하는 바람에 사헌부의 탄핵을 받아 파직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33세에 해운판관이 되어 세미(稅米) 징수와 운반을 감독하였는데 그 때 부안의 명기 매창(梅窓)을 비롯한 여러 기생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특히 홀어머니의 상을 당하였으나 3일장을 마치고 공무를 집행하기 위해 계속 충청 전라도를 다녔는데 상중임에도 기생들과 어울렸다고 합니다.
    ㆍ엄청난 비난을 받은 허균
    엄격한 유교 사회였기에 엄청난 비난이 쏟아지자 허균은“남녀의 정욕(情慾)은 식욕(食慾)과도 같은 것이다. 따라서 육접(肉接)은 그저 식사처럼 주린 배를 채우는 것일 뿐이다. 옛 사람들이 먹는 것을 천하다고 한 것은 너무 밝히지를 말라는 뜻이지 어찌 먹지 말라고 한 것이겠는가. 도덕은 성인이 말한 것이요, 성욕은 하늘이 말한 것이니 나는 성인보다 하늘을 따르겠다”고 대답하였습니다. 실제로 성욕이란 생리적인 현상으로서 건강한 남녀에게는 당연히 있어야 하는 것이다. 사실 대부분의 양반들은 여러 명의 처첩을 거느리면서 밖으로 드러나지 않게 즐겼던 것이고 허균은 당시로서는 노골적으로 성생활을 한 것이 문제였던 것이죠. 불세출의 천재이면서 세상을 바꿔볼 야심을 가졌지만 중앙과 지방을 오르내리며 자주 파직당하거나 유배되는 등 순탄치 못한 관직 생활을 하던 허균에게 성생활은 해방구이자 스트레스 해소처가 되었던 것으로 여겨집니다. 현대에 와서 활발한 성생활을 통해 스트레스 완화,면역기능 증강,통증 완화,체중감소,그리고 고혈압,골다공증,전립선질환,우울증,요실금,갱년기장애 등의 질병 예방 및 노화 방지 등의 효과를 얻을 수 있다는 것이 밝혀졌습니다.
    Premium Chosun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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