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저장소 ㅁ ~ ㅇ/명인들 건강장수비결

29 허균 (上)

浮萍草 2014. 9. 5. 09:53
    음식을 일일이 품평해 좋은 음식만 골라 먹다
    허엽이 손수 만들었다는 초당두부
    병을 예방하고 건강,장수하는데 있어 음식이 차지하는 비중이 높다는 것은 잘 아실 겁니다. 엄격한 유교 사회였던 조선시대에 명문집안의 선비이자 높은 벼슬아치가 직접 음식을 만들었는가 하면 그 아들은 수많은 음식에 대한 품평을 책으로 쓴 경우가 있습니다. 조선시대 명문가인 양천 허씨 집안의 ‘허엽(許曄)’이라는 분이고 그의 아들은 ‘홍길동전(洪吉童傳)’의 저자인 허균(許筠)이죠. 딸도 여류시인으로 이름난 허난설헌(許蘭雪軒)입니다.
    ㆍ높은 벼슬에 있으면서 음식을 직접 만든 허엽은 누구인가?
    국사 시간에 선조 임금 때 동인(東人)과 서인(西人)으로 갈라져 당파싸움이 시작되었다고 배웠을 것인데, 그 때 김효원과 함께 동인의 영수가 되었던 분이 허엽입니다. 동인과 서인의 싸움이 심해진 탓에 당의 우두머리를 중앙정치 무대에서 멀어지게 하는 방법에다 왜국 (倭國)의 동향이 심상치 않았기에 허엽은 경상도 관찰사로 내려가게 되었습니다.
    그러나 임기를 마치고 한양으로 돌아오는 도중에 상주(尙州)의 객관에서 객사하고 말았습니다. 허엽은 유학자이면서도 도가(道家) 사상의 영향을 많이 받은 화담 서경덕(花潭 徐敬德)의 문하에서 공부하였기에 도교에도 관심을 가졌던 분이죠. 허엽이 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ㆍ허엽이 만들었다는 두부는?
    허엽은 조정에 상소를 올렸다가 좌천되어 강릉부사로 내려갔습니다. 근심도 달래고 머리도 식힐 겸 관청 뜰에 있는 우물물을 떠다 마시곤 했는데 물맛이 좋았습니다. 평소 두부를 좋아하던 터라 그 물로 두부를 만들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는데 나중에는 마음이 어지러울 때마다 직접 두부를 만들었다고 합니다. 두부를 만들려면 끓인 콩물을 응고시켜야 하고 그러려면 끓인 콩물에 간수를 넣어야 했지만 강릉에는 천일염이 나지 않아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그때 허엽은 소금 대신 동해의 깨끗한 바닷물을 간수로 사용해서 두부를 만들었습니다. 바닷물로 간수를 대신한 것인데, 기발한 아이디어였던 것이죠.
    도문대작
    강릉부사가 손수 만든 두부가 담백하고 고소해 맛있다는 소문이 곧 그 지역에 났고 그 후 강릉 사람들은 그 두부를 허엽의 호인‘초당(草堂)’을 따서 초당두부라고 불렀습니다. 당시 두부를 만들었던 샘물이 있던 초당마을 강릉시 초당동은 두부마을로 전국적인 명성을 얻었는데 그곳에는 지금도 허엽을 기리는 비석이 있지요. 허엽은 ‘초당두부’의 원조인 셈이죠. 허엽이 정말로 강릉에서 두부를 만들었는지는 논란이 있지만 두부에 대한 관심이 컸던 것은 사실로 보입니다. 초당두부를 만드는 데는 콩을 불리는 작업이 매우 중요하다고 합니다. 겨울에는 12시간, 봄가을에는 8시간 여름철에는 6시간을 불리고 난 뒤에 콩을 갈기 시작합니다. 갈아진 콩을 올이 촘촘한 천으로 걸러 콩물만 빼낸 다음 커다란 가마솥에 붓고 장작불로 끓이면서 젓습니다. 두부의 맛을 결정하는 것은 불의 세기를 적절하게 조절하는 것과 간수 맞추기인데 간수가 얼마나 들어가느냐에 따라 순두부가 부드러워지기도 하고 딱딱해지기도 하기 때문이죠. 간수는 바닷물을 미리 떠다가 불순물을 가라앉히고 사용했습니다.
    ㆍ두부의 효능
    두부는 단맛에 서늘한 성질로서 기운을 더해 주고 비위장을 조화롭게 하므로 병후 몸이 허약하고 입맛이 없으며 숨이 가쁠 때 좋습니다. 대장의 탁한 기운을 내려주므로 대변을 잘 나오게 하며 배가 불러 있는 것을 꺼지게 해 줍니다. 폐의 열을 내리고 기침을 멎게 하며 가래를 삭여 주고 몸에 물기를 생기게 하여 건조한 것을 윤기 있게 하므로 뱃속에 열이 있어 입이 마른 것을 그치게 합니다. 그래서 소갈(消渴), 즉 당뇨병에 좋은 음식이 되지요. 신장의 기가 허약하여 소변이 잘 나오지 않거나 조금씩 자주 보는 경우 소변이 뿌옇게 나오거나 붓는 경우에 씁니다. 그밖에도 고혈압 심근경색 동맥경화의 예방과 치료에 좋으며 아이들의 발육과 기억력을 증가시키는 효과도 있지요. 잉어와 함께 끓여 먹으면 산후에 젖을 잘 나오게 합니다. 콩이 해독제로 뛰어난 효과가 있기에 콩으로 만든 두부도 마찬가지로 해독 효능이 있습니다. 특히 유황과 소주의 독을 푸는데 뛰어나므로 소주의 안주로 적합하지요. 만약 소주를 너무 많이 마셔서 온몸에 붉은 반점이 생기고 가슴이 뜨거우며 견디기 힘들어 할 때는 두부를 뜨뜻하게 데워 전신에 붙이고 식으면 바꾸고 해서 깨어날 때까지 하면 됩니다.
    ㆍ음식에 대한 품평을 책으로 쓴 허균
    초당공의 아들인 허균 선생은 <도문대작(屠門大嚼)>을 썼습니다. 광해군 때 전라도 함열(咸悅, 지금의 익산)로 귀양을 갔는데, 유배지이니만큼 허접한 음식만을 먹을 수밖에 없었던 데다 굶주림에 시달여야 했죠. 그래서 주린 배를 쥐고 밤을 새다가 이전에 먹었던 맛있는 음식을 생각나는 대로 쓴 책입니다. 도문(屠門)은 소나 돼지를 잡는 푸줏간의 문이고, 대작(大嚼)은 크게 씹는다는 뜻이죠. 그러니 현재 먹을 수 없는 고기를 생각하며 푸줏간 문을 향해 입맛을 다신다는 의미입니다. 허균이 그런 책을 쓸 수 있었던 것은 음식에 관한 식견이 뛰어났기 때문입니다. 음식에 대한 식견이 뛰어날 수 있었던 데는 이유가 있습니다. 어려서는 높은 벼슬에 있는 부친에게 예물로 들어오는 팔도의 진귀한 음식을 두루 먹었고 혼인한 뒤로는 부유한 처가에서 지내며 산해진미를 맛보았습니다. 게다가 임진왜란의 와중에도 고향인 강릉으로 피난을 갔는데 거기서도 여러 가지 해산물을 많이 먹었고 벼슬길에 나선 뒤로는 세미(稅米)를 거둬들이며 운반하고 감독하는 해운판관에 임명되어 전국을 다니며 수많은 별미를 먹었던 덕분이죠. 어쨌건 조선시대에 선비가 음식에 대한 책을 썼다는 것이 매우 특이한 일이었죠.
    ㆍ특별한 선비 허균의 특별한 점은?
    허균은 최초의 한글 소설인 <洪吉童傳>의 저자일 뿐만 아니라 시문에 뛰어나 조선 최고의 천재로 불리기도 했습니다. 특히‘시대의 이단아’‘시대를 앞선 풍운아’라는 별칭이 있지요. 유성룡 선생에게 배우다가, 둘째 형의 친구인 손곡 이달(蓀谷 李達) 선생에게 배웠습니다. 26세에 정시문과에 급제하여 벼슬길에 나섰고 29세에 문과 중시에 장원하였습니다. 명문집안 출신에다 재주도 뛰어났지만 당시 권력을 잡고 있던 대북파에 밀려 요직에 오르지는 못했습니다. 그러던 중 44세에 홍길동전을 지었는데, 스승 이달을 비롯하여 서양갑 박응서 등 출세가 어려웠던 서자(庶子)들의 처지에 비애를 느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시문에 능하고 중국어 실력도 출중하여 중국 사신이 올 때면 항상 종사관으로 추천되었는데 명나라 3대 문사 중의 하나인 주지번을 영접하면서 명문장으로 중국에 까지 이름을 떨쳤습니다. 그러나 변혁의 세상을 꿈꾸어 오다가 역모죄로 체포되어 능지처참을 당하고 말았습니다.
    Premium Chosun        정지천 동국대 분당한방병원 내과 과장 kyjjc1931@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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