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한국문화 대탐사

22 - 3 국악 <하>

浮萍草 2014. 8. 17. 11:53
    우리의 ‘음’ 가지고 노는 문화 가꿔야 국악 세계화
    “스승에게 배울 때는 스승과 다름을 걱정하고, 배움이 끝났을 때는 스승과 같음을 걱정하라.” 제대로 배우고 익힌 뒤 자기 고유의 길을 열어가는 동양 예술철학정신이 담긴 말이다. 즉흥과 변용의 음악인 국악의 체(體)는 정형성이 있으되 용(用)은 자유자재다. 1951년 한국전쟁 중에 부산에서 개원한 국립국악원은 60여 년간 ‘음악 주권’을 찾고 진흥하는데 주력해왔다. 그 결과 국악이 어느 정도 자생력을 갖추게 됐음은 물론이다. 그러나 국악계에서 ‘이제는 다양성 국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삶의 현장에서 되살아나는 우리 음악을 가지고 세계인과 향유하고자 하는 다양한 시도도 보인다. 지난 13일 오후 2시 서울 북촌 은덕문화원에서 송혜진 숙명여대 교수(전통음악전공) 원일 국립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 허윤정 북촌창우극장 대표와의 좌담을 통해 앞으로 우리 국악이 나아갈 길을 짚어보았다. 송혜진 교수는 숙명가야금연주단의 예술감독이자 평론가로 활동하고 있는‘멀티 국악전문가’로 가족이 함께 보는 음악극 만들기에 주력하고 있다. 원일 예술감독은 작곡가이자 한국예술종합학교 교수로서 내달‘역(易),변화의 리듬’ 공연을 준비하고 있다. 허윤정 대표는 거문고 산조 명인으로 내달 4일 북촌창우극장에서 개막하는 제7회 ‘천차만별’ 콘서트와 월드뮤직 페스티벌 공연을 앞두고 있다.

    국악은 어디로, 어떻게 가야 하는가.현실은 차가웠고
    토론은 뜨거웠다.서울 북촌 은덕문화원의 고즈넉한
    풍광이 말없이 말들을 지켜봤다.왼쪽부터 김종록 문화
    전문객원기자,허윤정 대표,송혜진 교수,원일 감독.
    김춘식 기자
    난 한 달 동안 국악이 살아있는 삶의 현장을 탐사해봤다. 공연위주의 풍토에서 우리 소리를 끌어안은 사람들을 만날 때마다 반가웠다. 앞으로 국악계가 풀어야 할 가장 큰 숙제를 꼽는다면? 송혜진=국악이 하나의 예술 장르로 전승되는 맥은 잡았다. 하지만 여전히 우리 국악인들만의 것일 뿐 국민 속에 파고들지 못했다. 우리 국민이 일상생활 속에서 국악을 거의 향유하지 않고 있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생활화가 안 되었다는 건 곧 국악이 소비되지 않고 있다는 뜻이다. 공연문화로서의 국악의 전망도 그리 밝지만은 않다고 할 수 있다. 허윤정=국악을 바로 접할 수 있는 기회가 여전히 적다. 음악도 언어다. 모국어처럼 태어나면서부터 접하면 바로 습득하게 된다. 서양음악은 언제 어디서나 쉽게 접하는 반면 국악은 멀다. 토양이 뒤바뀐 거다. 국악이 오히려 낯설어서 외국어처럼 돼버렸다. 대부분 국악을 TV로 접하게 되는데 그러면 국악의 매력이 반감된다. 국악은 재미없고 지루하다는 선입견이 생긴다. 이런 한옥과 같은 건물에서 국악과 접하면 대부분 빠져들고 만다. 원일=국악의 생활화는 그만큼 어렵다. 1987년 창단된 우리나라 최초의 사설 국악단인‘중앙 국악관현악단’ 사례가 있다. 처음부터 ‘국악의 생활화· 대중화’를 내세웠지만 반향은 그리 크지 못했다. 이 문제는 국악계가 지속적으로 풀어가야 할 숙제다. 이미 서구화된 생활 여건에서 전문 국악인에 의한 생산과 공급만 있었지, 수용자에 대한 연구가 적었다는 지적이 있다. 송=맞다. 지금까지 ‘국악의 생활화가 필요하다’는 구호와 단편적인 아이디어만 무성했다. 국악이 이미 우리 삶과 분리된 상태이므로 용도·가치·실용성·기능성 등을 입증해주는 과정이 필요하다. 놀랍게도 이와 관련한 연구가 전혀 없었다. 구체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자전거 타기 운동’을 예로 들겠다. 구호뿐만 아니라 관련 법규·전용도로·구체적인 실현 방법들을 오랫동안 준비해서 성공시켰다. 우리는 국악 생활화의 문제를 그런 식으로 접근해본 적이 없다. 옛날 선비들은 우리 음악으로 인격 완성을 꾀했지만 우리시대 엘리트층은 사교활동에서 서양음악만 선호할 뿐 국악은 외면한다. 원=국악의 생활화는 국악의 창작원리와 귀결된다. 국악의 창작원리는 장단이다. 한국 고유의 장단은 현재와 같은 제도권 교육 시스템 안에서는 절대로 살아날 수가 없다고 본다. ‘음을 가지고 논다’는 말이 있지 않나.
    말을 가지고 놀면서 이야기를 전달하는 게 바로 판소리다. 우리 교육시스템은 ‘놀이’로서의 음악을 수용하지 못했다. 음악은 그렇게 놀면서 본인이 생산주체가 될 수 있는 것이다. 원리만 알려주고 멋대로 하게 놔두어야 한다. 요즘 멋대로 놀던 젊은 음악가들이 드디어 자신들의 음악을 생산해 내기 시작했다. 허=대학에서 해마다 약 700명가량의 국악 전공자들이 배출된다. 그런데 졸업 후 사용할 수 없는 기량만 가르쳐서 사회로 내보낸다. 전부 관현악단에 들어가거나 연주자가 될 것도 아닌데 말이다. 그들 중에는 무대 인력도 나올 수 있고 교육자도 나올 수 있다. 다양한 경험들을 쌓을 수 있도록 해주는 커리큘럼이 필요하다. 4년 내내 본인의 전공 악기를 연주하다가 갑자기 사회로 나오게 되는 건 큰 문제다. 국립극장의 국악관현악단과 국악원의 창작악단 지방의 국악관현악단 등 난립해있는 악단들부터 우선 줄여야 한다는 지적이 많다. 유지 비용이 너무 많이 들고 비효율적이라는데. 원=국악관현악단 예술감독으로서 매우 민감한 문제다. 나도 전에는 그렇게 생각했었다. 유사한 악단들을 유지하느라 지출이 많고 질적 저하도 우려되므로 선택과 집중을 해야 한다고. 하지만 전 예술감독이셨던 황병기 선생의 경우를 보고 생각을 바꿨다. 운영하기 나름이다. 악단끼리 공동 기획으로 대작을 작곡하거나 순회 연주를 할 수도 있다고 본다. 송=악단뿐만 아니라 국립극장과 국립국악원의 유사 기능을 통합해서 전문성을 살려야 한다. 그래야 경상경비를 절감하고 공연의 질을 높일 수 있다. 이런 필요성에 공감하면서도 반발 때문에 어느 누구도 먼저 손대지 못하고 있는 실정이다. 허=예술가가 공무원화 되면 생활이 안정적인 반면 생산적일 수가 없다. 가령 1년에 반쯤은 국공립 단체의 작품에 참여할 수 있고 나머지 반쯤은 외부 활동이 가능한 상태가 되면 효율적이다. 지금처럼 악단에 못 들어온 국악인들의 불만도 사라질 거다. 관제에서 벗어나 협동조합이나 법인을 만들어 활동해도 된다. 국악계에 스타들이 커나가고 있다. 퓨전국악 바람도 한 몫 하는 것 같다. 송=1978년에 창단된 김덕수패 사물놀이 1985년에 창단된 슬기둥 그리고 타악그룹 푸리·공명·숙명가야금연주단이 있다. 김영동·김수철· 임동창 같은 작곡자와 김용우·정수년·강은일 등의 개인 연주자들은 주목할 만한 창작 활동을 펼치며 국악계를 선도했다. 해금플러스·그림·노름마치·정가악회 같은 신진 그룹들이 속속 등장했고 소리꾼 이자람이 세계적인 아티스트로 부상했으며‘국악소녀’로 알려진 송소희나 토크쇼에서 인지도를 높인 남상일 등이 각기 다른 방식으로 국악과 대중 사이에 다양한 징검다리 구실을 하고 있다. 동시에 잠비나이· 숨을 비롯한 약 30여개의 신진 국악 그룹들이 한국음악감성 코드를 찾고 있는 중이다. 사실 나는 그렇게 새롭게 생성되는 음악의 흐름을, ‘퓨전국악’이라는 하나의 이름으로 묶지 않았으면 좋겠다. 허=동의한다. 교육 시스템의 한계를 체감한 젊은 음악가들은 이미 스스로 ‘자신들만의 국악’을 생산해내고 있는 추세다. 규정하지 말고 자유롭게 두자. 그 모든 시도들은 과정도 결과도 매우 다르다. 굉장히 창의적이다. 최근 세계로 뻗어나갈 수 있는 실력과 스타성을 겸비한 젊은 국악인들이 적지 않다. 가능성을 말하는 해외의 아트 디렉터들의 평가도 아주 진지하다. 이제는 과감한 지원으로 국내는 물론 세계화까지 노려볼 수 있다. 원=국악은 지원할 만한 가치가 있는 콘텐트다. 세계의 음악과 예술계에 거의 알려지지 않은 신대륙이다. 워맥스 같은 세계적인 음악마켓이나 음악 페스티벌에 초청받아 국악을 가지고 밖에 나갔을 때 나오는 관심과 열광을 통해 그 가능성을 본다. 지속적으로 국악의 세계화 프로젝트를 성공시키려면 우선 국악 인재 육성 그리고 역시 ‘좋은 곡’이 필요하다. 그러나 더 중요한 것은 그러한 곡들이 지속적으로 나올 수 있는 환경 조성이다. 송=해외 무대에서의 성취를 안고 돌아와도 국내 시장이 있어야 선순환구조가 되는데 현실은 그렇지 못하다. 인재 양성과 동시에 시장을 형성시켜 줘야 한다. 결국 수요자에 대한 관심을 가져야 한다. 현대인들의 여가 트렌드는 무엇인가 대중의 갈증을 어떻게 국악으로써 해소해 줄 것인가 등 국악 수용자 관련 연구들이 선행돼야 한다. 국악계만 지원하면 다른 예술분야에서 반발할 거다(웃음). 국악기 시장은 어떤가? 허=국악기 규격의 표준화는 돼 있지만 명품 악기의 길은 아직 멀다. 연주자들은 운이 좋으면 저렴한 가격에도 좋은 악기를 갖게 될 수도 있고 운이 나쁘면 비싼 가격에 질 낮은 악기를 갖게 될 수도 있다. 송=국악기 시장 규모가 작은 것부터가 문제다. 연간 매출액 1억원 미만의 국악기 제작업체가 절반이 넘는다. 매출액 10억원 이상은 돼야 몇천만원이라도 연구개발비로 쓸 수 있지 않겠는가. 원=국립국악원에서 개량 악기 사업을 한 적이 있다. 그 사업 진행방식에 문제가 있었다. 기술도 뛰어나지 않고 과학적인 접근방법도 없는 사람들에게 마치 미션을 주듯 악기 개발을 요구했다. 그렇게 개량된 악기는 현재 단 한 대도 쓰이지 않고 있다. 업체와 연주가·작곡가가 공동으로 참여해야 옳다. 국립국악원의 대대적인 조직 개편을 주장하는 목소리도 높다. 연 439억원의 예산 가운데 16억 4700만원인 연구개발비를 늘리고 인건비와 운영비(118억원) 공연사업비(38억 4천만원)를 줄여야 한다는 것이다. 송=현재 국립국악원의 기구와 조직은 외형상 세계 최고의 전통음악기관이라고 할 수 있다. 지난 60여 년간 보존과 전승 역할을 잘 해왔다. 그러나 국악 전승 자체가 위태로웠던 시대에 마련된 과거의 조직에 인원과 예산이 지속적으로 투입되는 형태다. 개편할 때가 되었다. 연주 중심의 국립국악원과 연구 중심의 국악연구소로 이원화하는 방안도 생각해볼 수 있다. 어떤 형태의 조직이 됐건 연구개발비를 대폭 늘려야 함은 물론이다.
    Sunday Joins Vol 388 ☜
    진행=김종록 객원기자·문화국가연구소장 kimkisan7@naver.com 정리=정은경 아산정책연구원 인문연구센터 연구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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