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계류지 ㄱ ~ ㄹ/고전 속 불멸의 문장과 작가

<61>『 테스』와 토머스 하디

浮萍草 2014. 6. 8. 09:02
    삶의 가치는 아름다움 아닌 연민 속에 …

    토머스 하디(Thomas Hardy, 1840~
    1928)
    석공의 아들로 태어나 고등학교를 마친
    뒤 건축사 사무실에서 도제생활을 하다 작품
    활동을 시작했다.사회적 인습과 불합리한 제도
    를 공격한『테스』와『이름없는 주드』가
    보수 진영으로부터 심한 비난을 받자 1895년
    소설가로서 절필을 선언하고 죽을 때까지 시만
    썼다.
    모의 젊은 여성이 동거하던 재력가 남성을 살해하고 오래전 헤어졌던 남편과 함께 도주행각을 벌이다 6일 만에 검거됐다. 신문 사회면에서 읽을 수 있는 기사는 늘 이렇게 단순하다. 치정 살인극, 이 한마디면 끝이다. 하지만 다시 잘 읽어보자. 단어 하나하나에 “왜?”라는 의문사를 붙여보자. 그러면 이 문장 속에 배어있는 사랑과 슬픔,분노와 복수,미련과 안타까움이 느껴질 것이다. 그 안에 얽혀있는 복잡한 인생사를 재구성하면 수백 쪽 분량의 소설도 쓸 수 있다. 『테스(Tess of the D’Urbervilles)』가 바로 이런 작품인데 비록 실화를 바탕으로 한 것은 아니지만 하디는 이 소설에 순수한 여인(A Pure Woman)이라는 부제까지 붙였다. 미혼모에 법적으로는 간통을 했으며 살인까지 저지른 여인을 순수하다고 했으니 발표 당시 전통과 인습을 중시 하는 교회와 비평가들로부터 매도당할 만도 했지만 테스가 살아온 행적을 추적해보면 그녀는 남자나 돈을 탐 하고 쾌락을 즐기는 여성이 아니라 천성이 착하고 정직한 사람이다. 작약빛 입술과 크고 순결한 눈을 가진 그림처럼 예쁜 시골처녀. 테스는 처음에 이렇게 소개되지만 그녀의 비극은 태어나면서부터 시작된 것이나 마찬가지다. 아버지 잭 더비필드는 가난하고 어리석은 행상이다. 어머니는 지능이 초등학생 수준이고,그녀 아래로는 나이 어린 동생들이 여섯이나 있다. 아버지는 자기가 옛날에 기사였던 더버빌 가문의 직계라는 얘기를 듣고는 더 게을러져서 술에 빠져 지낸다. 답답한 인생, 불운은 늘 예고 없이 끼어든다. 술 취한 아버지를 대신해 밤중에 벌통을 마차에 싣고 장에 가다 사고로 말이 죽는다. 테스는 책임을 느끼고 더버빌이라는 성을 가진 가짜 친척의 저택으로 일하러 갔다가 그 집 아들 알렉에게 유린 당한다. 임신한 몸으로 집에 돌아온 테스는 사람들의 눈을 피해 출산하지만 소로(Sorrow, 슬픔)라는 이름의 이 아이는 얼마 안 가 죽는다. 시련은 계속 이어진다. 테스는 농장에서 젖 짜는 일을 하다 만난 에인절과 사랑에 빠져 결혼에 성공한다. 그러나 첫날밤 과거의 불행한 일을 고백하자 에인절은 그녀를 용서하지 못하고 떠나버린다.
    그녀는 에인절이 돌아오기를 기다리며 모질게 악착같이 살아나간다. 하지만 어머니가 병들고 아버지는 죽고 살던 집에서도 쫓겨나는 불운이 계속 덮쳐온다. 게다가 그녀의 인생을 망친 알렉이 가족을 돌봐주겠다며 다시 유혹한다. 그녀는 어디 있는지도 모르는 에인절에게 편지를 쓴다. “무서운 일이 일어나기 전에 지금 나에게로 와줄 수 없나요? 에인절,난 자기가 사랑하던 그 여자예요. 바로 그 여자예요! 내가 자기를 만났을 때 과거는 무엇이었죠? 그것은 완전히 죽은 것이었어요. 나는 다른 사람이 되어 자기로부터 받은 새로운 인생으로 가득해졌어요. 내가 어떻게 그전의 여자로 계속 살 수 있어요? 왜 이런 점을 보지 못해요? 나에게로 오세요. 나에게로 와서 나를 위협하는 모든 것으로부터 나를 구해 주세요!” 이런 애절한 호소가 와 닿은 것일까? 브라질에 있던 에인절은 깨달음을 얻는다. 인생의 가치가 아름다움이 아니라 연민 속에 있음을 알게 된 그는 초췌한 모습으로 테스를 찾아온다. 그러나 그녀는 이미 알렉의 정부가 돼 있다. 에인절은 뒤돌아서고 방으로 들어간 테스는 자신을 추궁하는 알렉을 죽인 뒤 에인절을 쫓아간다. 테스는 그렇게 사랑을 되찾고 처음으로 행복이 무엇인지 알게 되지만 사랑하는 사람의 곁에서 마지막으로 보낸 시간은 너무 짧다. “내가 자기를 그렇게 사랑할 때 자기는 왜 멀리 가 버렸어요? 왜 갔어요? 자기가 왜 그랬는지 이유를 모르겠어요. 나는 정말로 자기를 다시 만나고 싶었어요. 너무나, 너무나요!” 돌기둥 아래서 잠든 그녀의 주위를 열여섯 명의 경관이 에워싼다. 에인절은 다가오는 그들을 향해 낮은 목소리로 간청한다. “잠이 깰 때까지만이라도 그대로 두세요!” 모두가 기다리는 사이 그녀는 잠에서 깨어난다. “올 것이 왔네요. 난 차라리 기뻐요. 이런 행복은 오래갈 수가 없었어요. 나에게는 너무 과분했어요. 이젠 충분히 누렸어요. 자기가 날 경멸하는 날까지 오래 살지 않게 되었어요!” 테스가 교수형에 처해진 장면은 이렇게 묘사된다. “정의가 행해지고 신들의 대수장(首長)이 테스와의 희롱을 끝낸 것이다.” 이 소설을 처음 읽었을 때는 테스가 너무 측은하고 안타깝게만 여겨졌는데 나이가 들수록 이런 감상은 줄어들고 가혹한 운명 앞에서는 누구나 작은 노리개에 불과 하다는 생각이 든다. 하디의 말처럼, 사랑하는 사람이 사랑하는 시간과 일치하는 일은 거의 없다. 보는 것이 행복한 순간에 하늘이“보라!”고 말하는 경우도 없고 인간이 “어디요?”라고 외칠 때 “여기”라고 답해주는 경우도 없다. 그런 점에서 『테스』는 비극이지만 해피엔드다. 가련한 여주인공이 운명을 향해 살인이라는 마지막 도전장을 던졌고, 사랑하는 사람과의 행복한 엿새를 얻어낼 수 있었으니 말이다.
    Sunday Joins Vol 378 ☜        박정태 굿모닝북스 대표 북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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