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漢字 世上을 말하다

官<관>

浮萍草 2014. 5. 11. 10:03
    원(官員), 관부(官府) 등에 쓰이는 글자 ‘官(벼슬)’은 갑골문에서 ‘冖’ 아래 ‘衆’이 놓여 있는 형상이었다. 
    ‘대중(衆)을 덮어 누른다’라는 의미라고 중국 사전은 풀이하고 있다. 
    임금을 보필하고 임금의 심부름꾼이 되어 백성을 다스리는 자가 곧 관이다(官, 吏事君也).‘(『설문(說文)』)
    『춘추좌씨전(春秋左氏傳)』에는 관리의 바람직한 표상으로 ‘관불이방(官不易方)’이라는 말이 나온다. 
    진경공(秦景公·?~BC537년)이 진(晉)나라를 치고자 했을 때 초(楚)나라 신하 자양(子襄)이 이를 극구 말린다. 
    그가 든 이유는 이렇다.
    “우리는 진나라를 칠 수 없습니다. 
    진나라 국왕은 능력의 크고 작음에 따라 사람을 쓰고(能而使之) 한 번 쓴 인물은 끝까지 믿어줘 잃지 않습니다(擧不失選). 
    관리들은 준칙을 따를 뿐입니다(官不易方). 
    그런 고로 왕족들은 선행을 베풀고 사대부들은 백성 가르치기에 게으르지 않고 서민들은 농사에 매진합니다. 
    장사치나 노예들조차 직업을 바꾸려 들지 않습니다. 
    어찌 이런 나라와 싸워 이기겠습니까?”
    이 고사(故事)에서 ‘관리들이 규정을 중시하고, 정책을 쉽게 바꾸지 않는다’는 뜻의 ‘관불이방(官不易方)’이 나왔다. 
    중국에서는 오늘날에도 ‘정국이 안정되어 있다’라는 뜻으로 널리 쓰인다.
    그러나 임금의 후광을 업은 관리들은 삐뚤어지기 일쑤였다. 자기들끼리 결탁하고 이권을 챙기는 경우가 흔했다. 
    그래서 나온 말이 ‘관관상호(官官相護)’다. 
    관리들의 잘못된 행태는 곧 백성들에게 피해를 주기 마련이고 백성들의 반발을 사게 되어 있으니 그래서 나온 말이 ‘관핍민반(官逼民反)’이다.                             
    관의 행태를 가장 잘 꿰뚫은 지도자 중 한 명이 바로 마오쩌둥(毛澤東)이었다. 
    그는 관료주의(官僚主義)의 행태를 ‘다섯 가지 많고 다섯 가지 적다(五多五少)’란 말로 요약했다. 
    “회의는 많고, 군중과의 접촉은 드물다. 보고는 많고 경험은 적다. 
    사무실 근무는 많고 현장 조사는 없다. 
    일은 많지만, 공부는 드물다. 
    대략적인 지식은 많지만, 구체적으로 아는 것은 없다.”
    지금 이 땅의 공무원들은 어떤 모습인가? 
    세월호 참사 후 자주 거론되는 ‘관피아’라는 신조어를 접하면서 다시 던져보는 질문이다.
    
    Sunday Joins Vol 374 ☜        한우덕 중국연구소장 woodyh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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