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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첫 공개되는 시바 여왕의 초상(下)

浮萍草 2014. 5. 6. 06:00
    미모의 시바 여왕이 냉랭하게 대하자 솔로몬왕은...
    에티오피아 사람들이 말하는 시바의 여왕
    ▲ "시바 여왕의 초상’이 새겨진 돌판(왼쪽).악숨에 있는 에티오피아 정교회의 박물관에 소장되어 있다.머리 모양이 퍽 현대적이고 젊고 행동적인 모습의 얼굴
    이다.의지가 굳어 보인다.에티오피아 박물관은 이 돌판이 시바 여왕의 모습이라고 설명한다.여행 조건이 열악한 3000년 전에 왕복으로 8000km를 여행했다니
    젊고 건강한 사람이었을 것이다.오른쪽 사진은 아디스 아바바에서 만난 젊은 사람의 옆 얼굴. 돌판의 얼굴과 많이 비슷해 보인다.
    프리카의 역사를 잘 모르는 상황에서는 우선 현지의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는 것이 현명하다. 시바의 여왕이 솔로몬 왕을 찾아서 예루살렘에 다녀갔다는 기록이 구약성경에 있다. 그렇다면 서기전 10세기의 일이다. 시바의 여왕이 진리를 찾아서 땅 끝에서 왔었다는 예수의 말씀이 신약성경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은 서기 1세기의 기록이다. 에티오피아에는 어떤 기록이 있을까? 서기 14세기에 집대성된 케브라 나가스트(Kebra Nagast)라는 역사책이 있다. 이 책의 모체가 되는 문서의 존재에 대해서는 의견이 분분한데 에티오피아의 고대어인 기즈(Ge’ez)어로 에티오피아의 과거 일들을 총 117장에 걸쳐서 서술하고 있다. 그 책과 구전들을 모아보면 시바의 여왕의 정체와 솔로몬을 만난 상황과 그 다음의 일은 대략 다음과 같다.
    (1) 마케다(Makeda)라는 공주가 시바의 여왕이 되다
    오랜 옛날에 이집트와 인도양 사이에 그리고 홍해 건너편에 있는 싸베안(싸우디 아라비아)까지 걸치는 에티오피아라는 큰 나라를‘시바’라는 곳에 자리 잡고 다스리는 왕이 있었다. 그는 한분의 신만을 섬기고 있었는데 자기 백성들이 수많은 악한 신들에게 제사를 지내는 것을 보고 안타까워하였다. 특히 크고 무서운 뱀 하나가 매일 수없이 많은 가축들을 먹어 치웠고 주민들은 심지어 사람을 희생제물로 뱀에게 바쳤다. 어느 날,왕은 자기의 유일신관을 추종하는 한 현명한 남자의 도움으로 희생제물로 바칠 염소 속에 독을 주입했는데 뱀은 그것을 먹고 굴욕적으로 죽으며 자기가 신이 아님을 증명하였다. 세월이 흘러 에티오피아의 왕은 죽음이 다가오자 자신의 딸 공주 마케다(Makeda)를 후계자로 삼아 그녀가 시바의 여왕(Queen of Sheba)으로 등극하였다.
    (2) 서로에게 끌린 마케다와 솔로몬
    ▲ 에티오피아에서 자주 보게 되는 그림. 마케다 여왕이 시바(악숨)에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는 장면.분위기가 즐거움으로 가득 차 있다.맨 앞에서 나팔수가
    묘기를 부리고 악대가 음악을 연주한다.당나귀를 탄 사람들과 낙타를 탄 사람들 뒤로 창을 든 군인(보병)들이 호위하여 가고 있다.여왕은 키가 큰 낙타 위에
    앉아서 가고 있다.상아와 여러 선물들이 보인다.주변의 자연환경은 숲이 없는 광야지대이다.

    그녀는 아름다웠고 슬기로웠으며 자기 아버지가 아주 높이 평가한 이스라엘 왕국의 유명한 왕 솔로몬을 방문하고 싶어 했다. 사절들이 선물을 가지고 두 통치자들 사이를 오고 간 후에,시바의 여왕 마케다는 솔로몬의 방문 초청을 수락하였다. 멀고 먼 길을 경유하여 예루살렘에 도착한 마케다는 솔로몬 왕의 지혜와 궁정의 화려함에 크게 감동을 받았다. 솔로몬은 그녀의 아름다움에 정신을 못 차리고 매료되었다.
    (3) 솔로몬의 야심
    시바의 여왕 마케다가 예루살렘에 손님으로 머무는 동안 솔로몬은 그녀와 가까이 하고 싶어 했지만 그녀는 냉정한 태도를 취하고 있었다. 어느 날 솔로몬은 그녀가 궁전에서 무엇이라도 그의 허락이 없이 가진다면 그녀는 그 순간에 솔로몬의 것이 되리라는 약속을 하게 하였다. 아쉬울 것이 없이 사는 그녀는 별 생각 없이 약속을 하고 말았다. 그 날 저녁에 솔로몬은 대단히 짜고 매운 음식을 대접하였고 잘 보이는 곳에 물병과 수정으로 만든 컵을 놓아두었다. 한 밤중에 마케다는 참을 수 없는 갈증에 시달리다가 복도로 나와서 물병의 물을 마셨다. 그 때 커튼 뒤에서 보고 있던 솔로몬 왕이 나오며 말하였다. “아하! 당신은 나의 궁전에서 당신의 것이 아닌 것을 취하였소. 당신의 약속을 기억하시오.”
    ▲ 에티오피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그림.솔로몬 왕과 시바 여왕의 만남.왼쪽은 시바의 여왕 마케다와 그녀의 신하들이고 오른 쪽은 이스라엘 왕 솔로몬과 그의
    신하들.무척 큰 상아들을 솔로몬에게 진상하고 있다.

    이 이야기는 시바의 여왕이 자신의 경솔함에 대하여 즐겁게 댓가를 치렀는지는 말하지 않고 있다. 다음 날 아침에 솔로몬은 여왕에게 반지를 하나 주면서 “만약에 아들을 낳거든 이 반지를 주어 나에게 보내 주시오”라고 말했다. 자기 나라로 돌아 온 여왕은 아홉 달 지나서 아들을 낳아 메넬리크(Menelik)라고 이름 하였다.
    (4) 아프리카에 이어진 솔로몬의 왕국
    ▲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오벨리스크 공원의 거대한
    비석 밑에서 신혼사진을 찍는 젊은이들.남쪽에
    배경으로 보이는 큰 건물이 에티오피아 정교회인
    성 마리아 찌욘교회.그 너머로 박물관과 법궤를
    모신 성소와 수도원이 있다.오벨리스크 공원에는
    거대한 비석(오벨리스크)들이 많은데 사진에 있는
    비석은 무솔리니가 1937년에 이탈리아로 가져다
    로마에 세워 놓았던 것을 반환 받아서 2008년에
    다시 제자리에 세웠다.이것은 높이 24 m, 무게
    160 톤인데 더 큰 비석들도 있다.
    아들이 자라서 22살이 되자, 여왕은 그 반지를 내어주며 아들을 솔로몬에게 보냈다. 그러나 솔로몬은 “반지가 필요 없구나. 그런 거 없이도 네가 나의 아들인 것을 알아보겠구나”라고 말하였다. 솔로몬 왕은 메넬리크를 총애하였고 자기의 후계자가가 되기를 바랐다. 그러나 이스라엘 사람들은 솔로몬과는 다른 생각을 하고 있었다. 솔로몬은 장로들의 장자들을 자기 아들 메넬리크와 함께 에티오피아로 가게 하였다. 수행원이 된 젊은이들은 메넬리크 모르게 예루살렘 성전에 있던 언약의 궤(법궤)를 훔쳐서 수송품에 섞어서 출발하였다. 여행 중에 이 사실을 알게 된 메넬리크는 공포에 떨었으나 여호와(하나님)가 허락했기에 법궤를 본 사람들이 아무도 죽지 않은 것이 아니냐는 말에 설득이 되었다. 그들은 법궤와 함께 무사히 악숨에 도착하였다. 시바의 여왕은 흔쾌히 왕위를 아들에게 내어 주었고 그가 메넬리크 1세라는 왕호로 아프리카 악숨에서 솔로몬의 왕국을 이어 나아갔다.
    ㆍ아프리카 흑인 유대인과 법궤
    위에서 풀어 놓은 이야기는 시바의 여왕의 출신성분과 악숨의 역사적 위상에 대한 힌트를 주고 있다. 악숨이 시바였으며 현대 에티오피아라는 영토와 역사를 이룩하는데 대단한 공헌을 하였다는 암시를 준다. 1975년에 암살 당한 하일레 쎌라시에 황제가 메넬리크 왕조의 마지막 왕이었다고 한다. 이런 면에서 볼 때에 시바의 여왕과 솔로몬 왕에 얽힌 이야기는 일회성의 사건이 아니라 그때부터 지금까지 내려오는 흑인 유대인들의 역사의 시발점이며 성경에서 슬그머니 사라진 법궤의 존재유무에 대한 단서가 된다. 이에 대해서는 다음 회에서 말하기로 한다.
    Premium Chosun ☜        고세진 대한성서고고학회 회장 youaremyhonor@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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