萍 - 창고 ㅈ ~ ㅎ/퍼스트 펭귄

12 문헌 따라 전통주 되살리는 신우창 국순당연구소장

浮萍草 2014. 4. 28. 16:47
    고려 때 탁주 복원 … 밥 삭히니 거짓말처럼 향기 나는 술
    문헌 해석 어렵지만 상상력 발휘 10시간 저으라면 10시간 꼭 저어야 22종 살려내 … 파리서도 인기
    ▲ 국순당연구소 실험실에서 신우창 소장이 자신이 복원한 고려시대 최고급 탁주 ‘이화주’를 숟가락으로 떠서 들어보이고 있다. 이화주는 떠먹는 요구르트처럼
    걸쭉하기 때문에 유리 단지에 넣어서 판매한다. 김성룡 기자
    구도 가지 않은 길에 대한 새로운 도전은 미래를 향해 질주하는 데 한정되지 않는다. 온고지신(溫故知新). 옛것에서 배워 새로운 것을 깨닫는다고 했다. 전통주 복원 전문가인 국순당연구소 신우창(46) 소장은 500여 년을 거슬러 올라가는 전통주의 바다로 뛰어들어 현대 양조기술의 혁신법을 낚아온 ‘퍼스트 펭귄’이다. 지난 23일 오후,국순당연구소가 있는 경기도 성남시 상대원동의 한 아파트형 공장 9층. 엘리베이터에서 내리자마자 방앗간에 들어선 듯 구수한 떡 냄새가 훅 끼친다. “여기 이건 소형 정미기입니다. 쌀을 도정하고, 찌고 고두밥과 누룩을 만들고 술을 빚고, 익히는 모든 과정을 연구소에서 다 합니다.” 조끼 형태의 개량한복 유니폼을 입은 신 소장이 설명했다. “오늘은 좋은 냄새가 나지만 ‘향설주’처럼 밥을 일부러 쉬게 해서 술을 만들 때는 연구소 전체에 구린내가 진동하기도 합니다. ‘똥 냄새 난다’며 주변 민원이 쏟아질 정도인데 술이 익으면서 거짓말처럼 아주 향기로워지니 우리 조상님들의 지혜가 얼마나 놀랍습니까.” 신 소장은 경북대에서 분자미생물학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미생물의 DNA를 자르고 붙여서 형질을 전환시키는 첨단 학문이다. 유전공학자의 길을 걷던 그가 왜 전통주 연구로 방향을 틀었을까 지난해 작고한 배상면 전 국순당 회장의 경북대 특강을 우연히 듣고 그 열정에 끌려 1999년 입사를 했다는 설명이다.
    ▲ 전통주의 알코올 도수를 측정하는 실험. 옛 문헌대로
    복원한 술은 다시 현대과학으로 분석한다.
    2008년 배중호 국순당 사장이 전통주 복원 프로젝트를 시작했다. 대표상품인 백세주가 2003년 이후 계속 매출이 떨어지고 와인과 일본술(사케) 열풍에 전통주가 밀리자 회사에서 구조조정까지 했던 때다. “신제품 개발도 못하고 해서 연구원들이 다 힘들어하던 때였어요. 당시 숭례문 화재가 일어났는데 ‘사라진 문화재인 우리 전통주를 복원하면서 뜻을 하나로 모으자’는 것 이었지요.” 조선시대까지만 해도 각 가정에서 술을 담가 먹으며 600여 가지나 되던 전통주는 일제가 술 빚기를 엄격 하게 제한하면서 급격히 감소했다. 그나마 명맥을 이은 전통주도 64년 식량 정책에 따라 쌀로 술을 못 빚게 하면서 거의 다 사라졌는데 이를 다시 부활시키자는 것이었다. 신 소장은 고려시대 최고급 탁주인 ‘이화주’에 도전했다. “논 한 평에서 나오는 쌀로 막걸리를 13~15병 빚을 수 있는데 이화주는 한 병밖에 못 만들어요. 고려시대에는 쌀밥도 먹기 힘들었으니 그야말로 왕이나 마실 수 있는 귀한 술이었던 거지요.” 문헌에 나와 있는 대로 생쌀로 띄운 누룩과 백설기를 이용해 물을 거의 넣지 않고 술을 빚었다. 그런데 술이 아니라 떠먹는 요구르트 비슷한 물질이 만들어졌다. 뽀얗고 새콤달콤한 맛에 숟가락으로 떠먹을 수 있을 정도로 걸쭉했다.
    잘못 만들었구나 싶었다. 그런데 6개월을 반복해 정성껏 빚어도 계속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이었다. 술을 들고 전통주 권위자이기도 한 배상면 당시 회장을 찾아갔다. “‘이것을 어떻게 만들었느냐. 내가 참 하고 싶었던 술인데 맛이나 향이나 모양이 제대로’라고 칭찬해 주시는 거예요.” 연구소에 부소장 자리가 새로 생겼다. 이화주를 복원한 그의 몫이었다. 전통주 복원은 연구원들에게 ‘문화지킴이’라는 자긍심을 줬다. 신제품 개발 외에 전통주 복원이라는‘가욋일’을 ‘놀이’처럼 즐기며 활기도 찾았다. 신 소장은“10년 넘게 술 연구를 했으니 내가 최고라는 자만심이 옛 술을 재현하면서 완전히 무너졌다”며 “어떻게 그 옛날에 이런 방법으로 술을 빚을 생각을 했을까 감탄할 때가 한두 번이 아니다”라고 말했다. 물 대신 좋은 술을 사용해 다시 술을 빚는 청감주,걸쭉하게 고체발효를 한 술을 또다시 맑게 걸러내 논 한 평에서 술 반 병도 안 나온다는 동정춘 등이다. 쌀이나 밥을 삭혀서 만드는 제조법은 지난해 ‘옛날 막걸리 고’라는 신제품 개발로도 이어졌다. 현대식으로 유산균을 배양해 유산발효를 먼저 시킨 제품이다. “현대 양조기법에서는 유산균이 들어오면 술이 오염됐다고 판단합니다. 그런데 전통주를 복원하다 보니 쌀을 삭혀서 유산균 발효를 먼저 하고 알코올 발효를 하면 도수는 낮아지면서 향과 맛이 좋아진다는 것을 발견한 것이죠.” 유산균이나 열,냉기,술 등으로‘효모를 못살게 굴어서’ 힘들게 알코올을 만드는 과정에서 향과 맛이 발생하게 만드는 것이 우리 전통주의 독특한 비법이라는 설명이다. 신 소장은“옛 문헌에 나와 있는 방식을 적당히 바꾸었더니 술이 안 되더라”며“아직도 과학적으로 밝혀야 할 전통주의 비밀이 많다”고 말했다. 10시간 동안 오른쪽으로만 계속 저어야 한다는 걸 무시하고 2시간 정도만 저으면 반드시 실패한다는 것이다. 신 소장은 “지금은 ‘동쪽으로 난 나뭇가지를 사용해 저으라’는 설명대로 하려고 산에 가서 나뭇가지를 구해 올 정도”라며 웃었다. 지금까지 70여 종의 전통주를 복원하려고 도전했지만 성공한 것은 22가지에 불과하다. 조선시대 백과사전인『임원경제지』등에 나와 있는 만드는 법은 길어야 예닐곱 줄이다. 되나 말, 사발 같은 계량 단위도 현대에 사용하는 것과 크기가 다르다. ‘배꽃이 필 무렵’ ‘정월 돼지의 날에 담그기 시작해 다시 돼지의 날을 두 번 거쳐야 한다’는 식의 추상적인 표현도 많다. 무엇보다 과연 제대로 복원됐는지 확인할 길이 마땅치 않다. 신 소장은“어떤 상황에서 어떤 음식과 함께 먹던 술인지,원료는 어떻고 발효 방법은 어떤지를 보며 상상력을 발휘한다”고 말했다. 복원 7년째인 지금은 제조법만 봐도 웬만큼 맛이 짐작된다고 했다. 시험 중인 술은 하루에도 십수 잔씩 맛본다. 그 때문에 연구원들은 매일 퇴근 전 음주측정기를 꼭 불어보고 간다. 개인용 필터까지 있을 정도다. 입사 때도 ‘음주 면접’을 통해 주량 테스트를 받아야 한다. 이때 주량을 속인 사실이 드러나 탈락하는 지원자도 10% 이상이다 신 소장은“복원주 가격이 한 병에 5만~10만원 정도”라며 “같은 가격의 와인이나 사케는 구입하면서도 전통주는 비싸다고 한다”며 안타까워했다. 지난달 프랑스 파리에 문을 연 ‘백세주 마을’에서 판매하는 이화주가 “독특한 술”이라며 현지에서 인기를 모으고 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요즘은 강원도에 전승되던 ‘옥수수엿술’을 복원 중이다. 실험 중인 술을 맛보니 밝은 노란색에 탄산거품이 보글대고 달착지근한 맛이 ‘호가든’ 같은 수입 맥주와도 비슷했다. 신 소장은“강원도는 온도와 습도가 모두 낮아서 누룩을 제대로 만들기 힘들기 때문에 맥주처럼 맥아(엿기름)로 발효시킨 술이 많다”며 “유럽 맥주의 원형에 가깝다” 고 설명했다. 그는“그야말로 강원도의 ‘테루아르’(산지의 특성을 뜻하는 와인 용어)를 담은 이 술이 평창 겨울올림픽 건배주가 되는 것이 꿈”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Joongang Joins ☜       구희령 기자 healing@joongang.co.kr / 김성룡 기자 xdrago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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